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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FC 10번 공격수 바제가 유로2012 예선전에 나서기 위해 마케도니아 국가대표팀에 합류했습니다.

마케도니아는 이번 유로2012 조별예선에서 러시아, 슬로바키아, 아르메니아, 아일랜드공화국과 힘께 B조에 묶였습니다. 바제는 오는 9월 3일 슬로바키아와, 9월 7일에는 알메니아와 조별예선 통과를 위한 맞대결을 펼칩니다.

바제는 2005년 11월 마케도니아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A매치에 데뷔했습니다. U-21대표팀에서 활약할 당시 사령탑을 맡고 있던 미르사드 요누즈 감독이 2009년 마케도니아대표팀 감독으로 부임한 이후로는 꾸준히 대표팀에 이름을 올리고 있습니다. 그때의 인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게 된 거죠. 가장 최근에 나선 경기는 지난 6월 2일 루마니아와의 A매치며 현재까지 마케도니아 성인대표팀에서 5경기 1골을 기록 중입니다.


바제는 “마케도니아 대표팀 선수들이 K-리그에 관심이 많다”며 “좋은 경기력을 선보이며 강원FC의 위상을 알리기 위해 열심히 뛰겠다”고 말했습니다. 최근 K-리그에는 동유럽 출신 선수들이 좋은활약을 보이고 있습니다. 수원에서 활약했던 마토가 대표적인 예이겠고요 라돈치치, 스테보, 로브렉 등 많은 동유럽권 선수들이 좋은 모습을 선보였고 많은 연봉과 인기를 누렸고, 또 누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라피치도 휴가를 받아 크로아티아에 돌아갔을 때면 아는 축구선수들이 K-리그 환경, 시스템, 대우, 조건 등 이것 저것 많이 물어봐서 대답하느라 꽤나 머리가 아팠대요. ^^

지난 7월 강원FC에 입단한 바제는 입단 3경기 만인 지난 8월 7일 울산과의 홈경기에서 강원FC에서 데뷔골을 신고했고 지난 8월 28일 대구와의 홈경기에서는 종료 2분 전 김영후의 결승골을 어시스트하며 완벽하게 K-리그에 적응한 모습입니다.



강원FC에게 이번 바제의 국가대표팀 발탁은 꽤나 의미가 깊습니다. 창단 이후 지금까지 강원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나온 적은 한번도 없거든요. 작년 초 골키퍼 정산 U-20대표팀에 잠깐 있었고, 양한빈이 현 U-20대표팀에 꾸준히 이름을 올리고 있지만 어디까지 청소년대표팀입니다. 지난해 신인왕 출신의 김영후가 올 시즌 10골을 터뜨리며 2년차 징크스를 깨고, 득점 4위에 올랐지만 아직까지도 대표팀과 연이 없습니다. 훈련멤버로 합류해도 좋을 법 한데, 예비명단에도 이름을 찾을 수가 없네요.

그런 가운데 바제가 비록 외국인 선수이지만 국가대표팀에 발탁된 것은 강원FC에게는 영광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우리도 이제 국가대표팀을 배출한 클럽, 이라는 생각에 괜히 어깨에 힘이 들어가기도 하고요.

벌써부터 강원FC 응원곡을 흥얼흥얼 따라부르는 등 K-리그에 적응하기 위해 열심히 노력 중인 바제. 좋은 모습을 보여주며 강원FC를 대표하는 공격수가 마케도니아도 대표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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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첫 원정경기에서 서울을 2-1로 누르며 파란을 일으킨데 이어, 울산을 4-3 성남을 4-1 전북을 5-2로 이기며 3경기 연속 4득점 이상이라는 신기록을 세우는 등 K-리그에 돌풍을 일으켰던 강원FC.

2년차에는 훨씬 더 안정적인 모습으로 태풍이 될 거라 생각했지만 현재 강원FC의 순위는 15개 팀들 중 13위로 사실상 하위권입니다. 강원FC의 전반기 부진 원인은 무엇일까요. 최순호 감독님을 만나 직접 이야기를 들어보았습니다.



최순호 감독은 우선 ‘신인선수들의 K-리그 적응 실패’를 꼽았습니다.

“기존 프로팀에서 선수들을 이적, 영입하기는 어려웠고 드래프트에서도 추첨을 통해 뽑았기 때문에 원하는 선수들을 데리고 오는데 어려움이 있었어요. 결국 내셔널리그에 눈을 돌렸고 그 선수들을 많이 활용하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잘 적응을 하지 못했고 성공하지 못했던 전반기였어요.”

두 번째 이유로 ‘부상선수로 인한 어려움’을 지적했습니다.
“주전 수비수였던 김봉겸 등 장기 부상자들이 경기에 출전하지 못했고 시즌이 시작되고 나서는 이을용 등 새로운 부상자들이 생기면서 제가 원하는 데로 팀을 이끌어가지 못했던 게 어려웠어요.”

최순호 감독은 마지막 이유로 ‘3월과 4월 강릉지역에 내린 폭설’을 언급했습니다.
“봄이 다가오기 전에 강릉에 폭설이 많이 온다고 얘기는 들었는데 실제로 3월과 4월에 굉장히 눈이 많이 내렸어요. 일주일에 1, 2번만 밖에서 훈련을 할 수밖에 없었고 나머지는 체육관이나 인조잔디에서 운동하며 컨디션을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겪었죠. 저와 선수들은 좋은 경험을 했다고 생각해요. 내년에도 그런 경험이 있을 수 있는데 잘 감안해서 그 가운데 컨디션을 잘 유지할 수 있도록 훈련방법을 선택해야할 거 같아요.”

최순호 감독이 꼽은 전반기 베스트 경기는 4월 24일 수원원정경기였습니다. 김영후가 2골을 넣으며 2-1로 이겼는데요 최순호 감독은 “그 경기가 굉장히 중요한 경기였어요. 더 어려움에 빠질 수 있었는데 우리 선수들은 좋은 컨디션을 유지했고 행운도 찾아왔고 밖에서 지시하는대로 선수들이 잘 따라준 덕분에 좋은 경기내용으로 승리할 수 있었죠”라고 말했습니다.

전반기 워스트 경기는 5월 5일 홈에서 열린 인천전을 꼽았습니다. 당시 강원FC는 아쉽게 2-1로 패하고 말았는데요 김영후가 1골 유병수가 2골을 넣으며 라이벌대결로서의 즐거움을 팬들에게 주었죠.

“선수들의 정신무장도 좋았고 홈경기라서 하고자하는 의지도 높았어요. 미안한 감정을 느낀게 하나 있다면 그때 김영후와 유병수의 경쟁이 관심의 대상이었죠. 마침 2-1로 뒤지고 있는 상황에서 페널티킥을 하나 얻었는데 경기 시작 전 김영후가 이미 킥커로 선정됐지 그날 여러 상황으로 봐서 그 순간에 잠깐 고민했던 부분은 킥커를 교체할 것인가였어요. 많은 팬들의 관심이 집중돼 있는만큼 좀 더 모험을 하자고 생각하고 안 바꾼 것이 감독으로 새로운 분위기를 만드는데 실패 하지 않았나. 그런 아쉬움이 많아요.”

최순호 감독이 뽑은 전반기 베스트 플레이어는 골키퍼 유현입니다. 지난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도 25개의 유효슈팅 중 23개를 선방하며 경이적인 선방율을 보여줬죠.

“유현는 작년보다 훨씬 더 안정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요. 작년보다 우리팀이 올해 더 어려움을 겪지만 더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다른 팀의 골키퍼에 뒤지지 않는다고 생각해요.”

그렇다면 최순호 감독이 후반기 신경써서 보완한 부분은 무엇일까요.

“공격적으로 가는데 있어 힘과 스피드. 수비조직력이 필요하기에 이것을 보완하는데 신경쓰며 훈련했어요. 작년 같은 경우는 코너킥 프리킥 상황에서 수비수들이 공격에 가담해서 득점했는데 올해는 그렇지 못해요. 첫째, 키커의 부재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부분을 해결할 수 있는 데 중점을 뒀고 후기부터는 그런 부분도 보완이 됐다고 생각해요.

득점기회에서 득점을 하지 못하다 보니 그게 실점으로 이어졌는데 이렇게 경기를 하다가는 선수들이 너무 정신적으로 피곤하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선수들이 스트레스 받지 않게 만들어주는 것도 감독의 역할이에요. 그래서 공격적으로 하기 보다는 안정적으로 하자. 그렇게 하니 실점이 줄어들었어요 전력이 강하면 도전적으로 해도 문제가 없는데 그렇지 못할 때는 안정있게 팀을 운용하는 것도 필요해요. 수비에 대한 부분은 최진철 코치가 조직적인 훈련을 하기 때문에 전에 했던 것을 견고하게 하는 것으로 방법을 택했어요.

어떤 날은 경기 내용이 좋으면서 득점을 하지 못해서 지고 어려운 경기를 하면서도 득점을 해서 쉽게 풀어나는 것이 축구인데 늘 안정되게 하기 위해서는 우리는 여러가지를 해야하고 내년의 목표가 있기 때문에 내년에는 너무 전력이 왔다갔다 하는 굴곡의 차이가 없게 하는 경기를 하기 위해 많은 실험을 하고 있기 때문에 하나의 과정이라고 보면 되겠어요.”

마지막으로 최순호 감독은 “우리는 다른 어떠한 팀보다도 훨씬 더 많은 팬을 갖고 있고 그들은 큰 관심과 열정을 갖고 있어요. 그래서 큰 힘을 얻고 있는데 우리가 어려움을 겪어도 독려해주고 격려해주면 내년에는 더 좋은 팀으로 만들어질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어려울 때 같이 해주는 것에 대해 감사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라는 인사말을 남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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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여러분들은 김진규 선수를 생각하면 어떤 이미지부터 떠오르세요? 제게 있어 김진규 선수는 수비수로서 상당히 뛰어난 재능을 가진, 정확하고 파워있는 킥이 인상깊은 선수였습니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가끔은 그 모든 장점들을 희석시켜버리고 마는 다혈질의 소유자이기도 했고요. 

박주영과 함께 청소년대표팀을 이끌던 어린 캡틴은 어느새 올림픽대표팀과 국가대표팀을 거쳐 홍명보 감독의 뒤를 이끄는 차세대 수비수의 리더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K-리그에서 김진규는 이따금씩 불같은 성격을 참지 못하고 심판에게 과하게 항의하다 퇴장 당하는 등 여론의 도마 위에 오르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면 언론, 팬들 할 것 없이 김진규 선수를 코너에 몰아세우곤 했고요.

물론 저는 김진규 선수가 퇴장당하는 경기를 본 적이 한 번도 없습니다. 그랬음에도 불구하고 퇴장 관련 기사와 그에 달린 팬들의 댓글을 읽으면서 저도 모르게 자연스럽게 김진규 선수가 과했구나, 잘못했네, 라고 생각하곤 했답니다. 그러면서 김진규 선수를 바라보는 제 시선도 자연스럽게 기울기 시작했습니다. 한마디로 삐뚤어진 채로 바라봤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래서 지난 주말 서울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FC서울 대 강원FC와의 경기를 보면서, 후반 34분 김영후 선수가 근육경련으로 쓰러졌을 때, 가장 먼저 김진규가 달려오는 장면을 보며 상당히 놀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저 선수가 왜 다가오지, 하는 생각이 가장 먼저 들었고 무슨 행동을 할지 궁금한 마음도 생겼습니다. 그래서 호기심어린 눈빛으로 비디오카메라를 꺼내 들었죠.


가장 먼저 달려왔던 김진규 선수는 누워있던 김영후 선수의 스타킹을 내리고선 꾹꾹 눌러줬습니다. 강원FC의무 트레이너가 왔을 땐 트레이너를 도와 김영후 선수의 왼쪽 다리를 같이 눌러주었고요 김영후 선수가 오른쪽 다리의 고통을 호소하자 다시 오른쪽 다리를 들고 눌러주었습니다. 그 와중에 물을 한 모금 마시더니 심판에게 건넸고요 그걸 받아 마시려다 마시지 못하고 강원FC 이창훈 선수에게 주었습니다. 이번에 다시 또 마시려나 싶었는데 뚜껑만 열어서 아디에게 주더군요. 아디가 마신 물을 다시 심판에게 줬던 김진규 선수는 가장 나중에 마셨습니다. 그때 김영후 선수는 전동카에 실려 그라운드를 막 빠져나가려고 할 때였고요.

김진규 선수가 그때 무슨 행동을 했는지 아세요? 더 마시고 싶었을텐데 그 물을, 떠나는 김영후 선수의 다리에 뿌려주더군요. 마지막까지 김영후 선수를 위해 김진규 선수가 했던 행동들은 지난 10년 간 K-리그에서 봤던 그 수많았던 경기들 중 가장 감동어린 장면이었습니다.

같은 팀 선수가 아니었음에도, 1-2로 이기고 있었지만 1골이면 따라갈 수 있기에 아직은 안심할 상황이 아니었음에도, 그리고 폭염 속에 치러진 경기였기에 무척이나 지쳐 누군가를 신경써줄 여유가 없었음에도, 김진규 선수는 마지막까지 김영후 선수를 위하는 모습이었습니다.

성적으로 가치가 매겨지는 프로스포츠의 세계. 그 속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은 사전 속의 단어에 불과하다고 생각할 때가 많았습니다. 상대 선수를 함께 K-리그 발전을 위해 뛰는 동반자라고 생각하는 의식은 없는 것 같다고 여겼습니다.

그런데, 김진규 선수는 그동안의 생각이 고정관념에 불과하다는 것을 행동으로 보여줬습니다. 그래서 고마웠고 또 미안했습니다. 저 역시 김진규 선수를 고정관념이라는 틀 안에서 지켜봤으니까요.

그리고 하나 더. 제 지인 역시 제가 찍은 영상 속 김진규 선수의 모습에 감동을 받아 쪽지를 보냈나봐요. 김진규 선수가 답쪽지를 보내줬는데 그것 역시 감동이라며, 그리고 혼자만 읽기엔 너무 아쉽다며 제게 보내줬어요.



김진규 선수의 쪽지 내용 중 '같은 선수들'이라는 표현이 참 가슴에 와 닿습니다. (제 지인은 강원 화이팅!으로 마무리짓는 센스가 무척 마음에 든다고 했고요. ^^ ) 그의 말처럼, 비록 소속팀이 다르고 다른 유니폼을 입고 있지만 같은 선수들이라는 동료애가 있는 한, K-리그는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을 거라고 봅니다.

혹시 다른 프로스포츠에서 이와 같은 감동을 느껴본 적이 있으신가요? 드라마틱한 경기를 볼 때마다 감동은 매 순간 있겠죠. 하지만 이렇게 아름다운 이야기가 경기 중에 펼쳐지는 건, K-리그가 유일하다고 봅니다. 그렇게 자신합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김진규 선수에게 말씀드리고 싶어요. K-리그가 아름다운 곳이라는 걸 다시 한 번 깨닫게 해주셔서 참으로 감사드린다고요. 앞으로 K-리그와 함께 성장할 당신의 모습을 지켜보며 응원하겠습니다. 그 말을 꼭 그에게 전해주고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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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박지성의 단짝 누군지 아십니까. 이제는 많이들 아실 거라고 생각됩니다. 바로 강원FC의 주장 정경호입니다. 2000시드니올림픽부터 2006독일월드컵까지, 함께 대표 생활을 하며 동갑내기 두 선수는 절친이 되었습니다. 재밌는 사실은 박지성이 대표팀 주장이 되었을 때, 정경호도 강원의 주장이 되었다는 사실이에요. 단짝 아니랄까봐 주장완장도 같은 시기에 차고. 역시 궁합이 맞는 친구인듯합니다.

박지성이 소통과 낮춤의 리더십으로 대표팀을 이끌 때 정경호는 강원 선수들을 어떻게 끌었을까요? 저는 정경호의 리더십을 격려의 리더십이라고 부르고 싶습니다. 정경호가 생각하는 주장으로서의 역할. 과연 어떤 것인지 함께 들어보시죠.


2010시즌 초, 아직도 많은 팬들에게 강원FC의 주장은 이을용이었다. 극진하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깊은 사랑을 받았던 지난해, 이을용이 주장으로서 보여줬던 이미지가 워낙에 강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주장 이을용을 떠올리던 시간은 지극히 짧았고, 찬란했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지금, 우리는 정경호를 가리키며 말한다. 노란완장이 어울리는 남자, 그가 강원FC의 주장이라고.

지난 8월 14일 대전과의 원정경기에서 2-1 값진 승리를 거뒀다. 소감이 남다를 것 같은데.
전반기 때는 2년차 징크스라는 말 그대로 꽤 어려움을 겪었던 것 같아요. 많이 힘들었지만 월드컵 휴식기 동안 경기 중 노출됐던 문제점들을 보완하며 노력했죠. 후반기 첫 상대는 제주였는데 아쉽게 졌지만 이후 전북, 울산 등 좋은 팀들을 상대로 선제골도 넣고 지고 있던 상황에서 역전도 시키는 등 좋은 경기력을 보여줬어요. 덕분에 선수들이 우리도 할 수 있다는 자신감을 많이 얻었죠. 대전전 승리를 기점으로 앞으로 더 많은 경기에서 승리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간 주장으로서 선수들은 어떻게 독려했는지 궁금하다.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능력들을 경기장에서 발휘할 수 있도록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고 칭찬을 통해 자신감을 끌어주었죠. 지난해 갓 프로에 데뷔했던 선수들도 프로 2년차에 접어들면서 프로의식이 부쩍 성장했어요. 이제는 팀을 위해 무엇을 해야할지 스스로 잘 알고 이를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기특해요.

강원FC가 추구하는 축구철학은 무엇이라고 생각하는가.
최순호 감독님은 뚜렷한 축구철학을 갖고 계세요. 페어플레이와 팀의 균형을 많이 강조하세요. 특히 보복행위를 하지 말라고 하시죠. 승리는 다른 팀과의 선의의 경쟁을 통해 만드는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물론 처음에는 다소 어려움이 있었어요. 알다시피 강원FC는 창단 당시 기존에 프로에서 뛰던 선수들 보다 대학 선수들을 많이 뽑아 팀을 꾸렸으니까요. 그렇지만 이제는 선수들이 잘 따라가고 있는 등 최순호 감독님이 추구하는 틀이 멋지게 짜여진 것 같아요. 내년에는 완벽하고 아름다운 강원FC만의 축구를 할 수 있을 것 같다는 믿음이 들어요.

마지막으로 강원FC 팬들과 서포터스 나르샤에게 싶은 말이 있다면.
홈에서 경기할 때면 많은 관중이 오시기 때문에 힘이 나요. 그래서 홈에서만큼은 이기고 싶은 욕망이 정말 강해요. 제가 바라는 건 팀이 힘들고 어려울 때, 선수들이 원하는 경기력을 펼치지 못할 때에도 박수치며 격려해주셨으면 한다는 거예요. 그리고 원정경기 때도 찾아와서 응원해주시는 나르샤분들께 참 감사드립니다. 앞으로도 경기에 나서는 선수 뿐 아니라 뛰지 못하는 선수들에게도 따뜻한 격려를 보내주셨으면 해요. 마지막으로 경기 때마다 ‘힘내라 정경호’라는 문구를 들을 때마다 오늘 꼭 열심히 해서 좋은 모습을 보여드려야겠다는 다짐을 해요. 저를 응원하기 위해 경기장까지 오신 분들과 강원FC를 아끼는 모든 분들을 위해 앞으로도 최선을 다하는 강원FC 주장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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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서울과의 원정경기에서 김진일, 윤준하의 연속골로 우승후보 서울을 눌렀던 신생 강원FC. 그날의 감동을 재연하고 싶었던 마음은 컸지만 서울은 강원을 2-1로 이기며 홈 11연승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세웠습니다.

이날 경기에서 서울의 유효슈팅은 무려 14개나 됐습니다. 그 중에서 골로 연결된 것은 단 2골. 강원의 골키퍼 유현신의 눈부신 선방도 한몫했지만 서울 선수들의 2% 부족한 결정력도 그 이유 중 하나였습니다. 반면 강원의 유효슈팅은 단 3개 뿐. 이날 공격수로 나선 김영후는 2개, 바제는 1개의 슈팅을, 공격형미드필더로 나선 안성남 역시 2개의 슈팅을 시도했죠.

상당히 아쉬운 기록이 아닐 수 없습니다. 유효슈팅이 14 대 3으로 약 5배 차이가 나는데요, 슈팅은 이보다 더 많은 차이를 보입니다. 25대 4로 약 6배 차이를 보이고 있죠. 점유율 역시 61대 39로 서울의 우세였습니다. 홈 2연전을 앞두고 있는 만큼 서울전 승리로 홈 연승행진을 이어나가겠다는 강원FC의 꿈은 물거품이 되고 말았죠. 그래서 저는 지난 대전전에서 경고 누적으로 출장정지를 당한 서동현이 더욱 생각났습니다.

서울전에서 보여준 바제 + 김영후 투톱 보다는 지난 대전전에서 보여준 서동현 + 김영후 투톱 조합이 더욱 위협적이더군요. 활동량 많은 서동현이 전방에서 수비진을 흔들어주면 남다른 결정력을 갖고 있는 김영후가 공격의 마침표를 찍는다. 김영후 혼자 고군분투하던 모습이 아쉬웠던 강원FC 팬들에게는 정말 꿈에 그리던 장면이 아닐 수 없죠. 그래서 이번에도 홀로 동분서주하던 김영후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서동현이 더욱 생각났습니다.

그래서였을까요. 김영후는 후반 34분 결국 근육경련을 일으키며 교체되고 말았습니다. 서동현이 있었다면 김영후를 대체해 그가 나올 수 있었겠죠. 서동현의 출장정지로 강원FC의 중앙공격수 카드는 김영후, 바제 둘 뿐이었고 바제는 후반 18분 이창훈과 교체된 상태라 강원으로서는 더이상 공격을 책임질 선수가 없던 막막한 상황이었죠. 결국 권순형이 들어갔는데요, 그래서 더 서동현이 있었더라면, 하는 생각을 절실하게 했던 서울전이었습니다.

전반 32분 터진 곽광선의 동점골.

기뻐하는 바제.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고...

바제도 노력했지만...

그보다는 김영후의 투혼이 더 빛났던 경기였죠.

김용대의 선방에 결정적 득점기회가 무산되자 아쉬워하는 김영후.

힘이 들었던지 특유의 메롱하는 표정을... 남들은 괴물이라고 하지만 전 김영후 굉장히 귀엽다고 생각해요! ^^

한때 서울의 캡틴이었던 을용 형님. 이제는 적으로 만났죠.

산신령의 출동. 수원전에도 이미 출몰한바 있는. ㅎ

중국 선수 리춘유.

결국 김영후는 후반 34분 교체되고 맙니다.

열심히 응원했던 나르샤.

탈의까지 하는 열정... ^^;;

바제의 골이 터졌다면... 하는 아쉬움도 컸습니다.

정경호 주장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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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FC서울과 강원FC와의 K-리그 경기가 열린 서울월드컵경기장. 무더위 속에 경기장을 찾은 FC서울 팬들에게는 축제와도 같은 날이었습니다.

FC서울은 강원FC에 2-1로 이기며 홈 11연승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했거든요. 시작은 전반 29분 정조국의 발에서 시작됐습니다. 정조국의 크로스를 받은 최태욱은 왼발슈팅으로 선제골을 성공시켰는데, 그 골로 최태욱은 30-30클럽에 가입했습니다.

지난 7월 전북에서 서울로 이적하며 최태욱은 등번호 33번을 달았습니다. 30-30클럽에 가입하겠다는 목표를 등번호에 담은 거죠. 그 목표를 서울 이적 2경기만에 이뤘으니 참으로 대단하네요.

결승골은 최태욱의 선제골을 도운 정조국에게서 터졌습니다. 선제골을 터뜨리고 선수들은 아기 아빠가 된 정조국을 위해 요람 세레모니를 했는데요, 자신의 발로 결승골을 터뜨린 최태욱은 엄지손가락을 빨며 정조국 주니어를 위한 멋진 세레모니를 보여줬답니다.

최태욱, 정조국의 골마다 참으로 특별한 의미가 깃들어있었고, 그 골들 덕분에 홈 11연승이라는 신기록을 작성했고 서울에게는 잊을 수 없는 날이었죠.

강원FC도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안정적으로 경기를 운영하기 위해 3-5-2로 전술을 바꿨지만 한 번의 미스로 서울에 골을 허용하며 지고 말았으니까요. 이날 경기를 이기면 2연승 행진을 기록하며 다음주에 열리는 대구와의 홈경기 승리사냥이 좀더 탄력을 받았을텐데. 먼 강원도에서 서울까지 응원하러 온 팬들이 아쉬워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저도 아쉬웠습니다.

그렇지만 서울 선수들에게 고마웠던 건, 경기를 이기고 있었음에도 시간 지연 행위를 하지 않았다는 겁니다. 볼을 돌리지 않고 패스하며 공격 위주로 마지막까지 경기에 임해준 것, 참으로 고맙습니다.

그리고 후반 말미 김영후가 쥐가 났을 때, 김영후를 마크하던 두 수비수가 한참동안 쥐가 난 다리를 눌러주며 도와주더군요. 김진규와 아디. 승부를 떠나 스포츠맨십을 발휘해주셔서 정말 감동이었습니다.

그래서 축구가 아름다울 수밖에 없다는 진리를 다시 한번 몸소 보여주셔서,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는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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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는 이번 여름이적시장을 맞아 중국선수 리춘유를 영입했습니다. 이미 바제(마케도니아) 라피치(크로아티아) 헤나토(브라질)을 보유하고 있던 강원FC가 또 한명의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수 있었던 건 아시아쿼터제 덕분이었죠. 아시아축구연맹 소속 국가의 선수는 한명 더 영입이 가능한 3+1제가 바로 아시아쿼터제입니다.

리춘유는 중국이 2008년 자국에서 열리는 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해 유소년 시절부터 국가의 특별관리를 받던 엘리트 선수였습니다. 베이징올림픽을 준비하며 올림픽대표팀에 선발돼 훈련을 받았지만 아쉽게 올림픽 본선무대에는 나서지 못했습니다. 그렇지만 지난 6월 아시안컵을 대비한 국가대표에 발탁되며 오성기를 가슴에 달게 됐죠.

사실 중국선수를 가까이서 보게 된 건 이번이 처음입니다. J리그 출신 일본선수들은 자주 접할 기회가 있었지만 중국은 가까이 있음에도 그러기가 쉽지 않았습니다. 가까이서 보게 된 중국선수 리춘유는 굉장히 성실하고 팀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모습이 참 기특합니다. 다행히 같은 아시아권국가라 한국음식을 좋아하고요, 한류의 영향을 받은 덕에 한국영화, 한국음악, 한국 TV쇼 프로그램 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특히, 한국음악이 좋다며 제 차에 탔을 땐 흥얼흥얼 따라부르더라고요.

이렇게 좋은 첫인상들로 가득했는데, 그런 리춘유가 저를 감동시키고 말았습니다. 바로 얼마전 1급 장애인들을 위한 시설 <정다운 마을>을 방문했을 때였죠. 장애인 시설에서 봉사활동을 다니면서 느낀 건, 그들의 영혼이 참 맑다는 것입니다. 맑기 때문에 낯선 이들을 봐도 그들에게 두려움과 경계란 없습니다. 그저 반가운 마음만 가득합니다, 그래서 저희를 보면 늘 먼저 달려와 반갑다며 손을 잡고 인사하고 팔짱을 끼고 여기저기 돌아다닙니다.

강원FC 선수들에게 이런 시설 자원봉사는 처음이 아니었기에 그들은 익숙하게 장애인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런데 리춘유는 이곳이 처음이었기에 다소 당황스러웠을 것 같아요. 더구나 말도 안통하니 더 그랬겠죠. 그래서 저는 리춘유를 따라다니며 돌발상황이 발생하지 않을까 걱정하며 지켜보았습니다.

한데 걱정은 기우에 지나지 않았고요 리춘유는 자신을 잘 따르던 장애인의 손을 꼭 잡고 같이 걸어다니고 텔레비전을 시청했습니다. 채널을 바꿔달라며 손짓하자 말은 통하지 않았지만 마음에 통했던 덕에 열심히 채널도 바꿔주고 같이 비빔밥도 먹고 그날 하루 장애인의 좋은 친구가 되어줬답니다.

봉사활동 내내 장애인의 손을 놓지 않던 리춘유의 모습은 참 감동이었어요. 국적도, 언어도 달랐지만 나와 다른 사람일 뿐 틀린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하는 마음이 제게도 느껴졌거든요. 그 따뜻한 마음을 K-리그 팬들도 많이 알았으면 좋겠어요. 나중에 리춘유를 만나면 최고라며 엄지손가락을 들어보여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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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신인왕 수상자 김영후. 그간 K-리그에서는 신인왕 수상자들이 이듬해 부진한다하여 2년차 징크스 혹은 신인왕 징크스 이야기를 많이 했는데요. 김영후에게는 예외인가 봅니다. 벌써 10골을 넣으며 득점 4위를 달리고 있거든요. 강원FC가 리그 13위로 부진하지만 김영후만은 밝게 빛나고 있습니다.

그래서 오히려 더 미안한 마음도 듭니다. 팀이 살아났다면, 그의 득점행진은 더 가속되지 않았을까 해서요. 그래도 어려움을 겪고 있는 팀에 큰 도움이 되지 못하는 것 같아 미안하다 말하는 그는 정말 K-리그에 내려온 천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지난 주말 대전월드컵경기장에 있던 관중들은 일제히 있을 수 없는 골이라며 놀랐습니다. 김영후의 역전 프리킥 골 때문이었는데요, 당시 현장에서 제가 찍은 영상을 한번 보실까요?



사실 그 자리에서 프리킥이 났을 때 저와 지인들은 "영후존이다!"하며 골이 터질 것 같다는 예상을 조금은 해봤어요. 바로 2경기 전이었던 7월 24일 전북과의 홈경기에서 비슷한 위치에서 김영후는 프리킥 골을 성공시켰거든요.

김영후는 올 시즌 3번의 프리킥을 차 3번 모두 성공시키며 100% 성공률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 영광의 1번째 프리킥은 지난 5월 26일 전북과의 컵대회에서 터졌죠. 사실 지난해까지 김영후가 프리킥을 찬 적은 한번도 없었어요. 킥력이 정확했던 일본 선수 마사 또는 중앙미들자원인 권순형 또는 이창훈이 번갈아가며 찼거든요.

한데 전북과의 컵대회에서 갑자기 김영후가 프리킥을 차게 됐어요. 그때만해도 강원FC에서 득점감각이 가장 좋았던 선수였기에 킥의 정확성보다는 김영후가 그간 보여줬던 '한방'에 더 무게를 실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넣으면 좋은 거고 못 넣어도 뭐라 할 순 없겠지, 했는데. 세상에나. 마법같은 일이 벌어지고 말았어요. 크게 휘어지며 골키퍼 손이 닿지 않던 골망 왼쪽 구석으로 빨려들어가지 뭐에요. 그때 너무 정신이 없어서 찍지 못한게 두고 두고 아쉽습니다. 다행히 N석에 있던 어느 서포터 분이 찍으셔서 그때 GIF 파일을 올려드릴게요.




컵대회라서 중계카메라도 없었고, 이건 정말 이날 현장에 있던 몇 안되는 팬들의 머릿속에만 남을 듯합니다. 그래서 그 현장에 있던 제가 참 자랑스럽기까지 합니다. 이런 훌륭한 골을 직접 봤으니까요.

지난해 유병수와 신인왕 경쟁을 열심히 하고 있을 때, 유병수는 무회전 프리킥을 잘 넣는다고 하여 은근슬쩍 김영후에게 이제는 무회전 프리킥을 좀 연마해보자고 농담을 건넨 적이 있는데, 부러 연습을 한 건 아니었음에도 올 시즌 김영후도 무회전 프리킥을 잘 성공시키고 있네요.

그래서 그에게 프리킥 성공 비결을 물어봤어요. 과연 뭐라고 대답했을까요?



김영후는 수비벽을 생각하며 얼마큼 휘어감아차야겠다, 식으로 생각하지 않더라고요. 골문을 향해 정확하고, 세게 차야겠다. 딱  그 생각만 한대요. 머리가 복잡하면 슈팅을 하는 순간 집중력이 떨어지고 그러면 골의 정확성도 함께 떨어지게 되죠. 오히려 간단하게 생각하는게 프리킥을 성공시키는게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보시면 아시겠지만 저런 프리킥을 차기 위해서는 킥력이 꽤나 강력하게 합니다. 그래서 발목강화훈련도 하고 따로 중거리슈팅 연습도 자주 하곤 하는데, 그게 드디어 빛을 발하는 것 같아 지켜보는 저도 참 흐뭇합니다.

K-리그가 재미없다고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김영후 프리킥 동영상을 추천으로 날려드리고 싶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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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 8월 14일 대전월드컵경기장. 전반 35분 리춘유의 프리킥을 골로 성공시키며 서동현은 강원FC 이적 후 첫번째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한데 인상적이었던 것은 그의 골 세레모니. 그간 강원FC 선수들은 동료들과 기쁨을 나누는데 우선이었는데 서동현은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 쪽으로 달려가 춤을 추기 시작했습니다. 엉덩이가 씰룩씰룩. ^^ 알고보니 강원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한 나르샤 세레모니였어요. 브아걸에서 활약 중인 나르샤가 추는 시건방춤을 따라춘 건데, 이적 후 첫골을 성공시킨 기쁨 속에서도 그 세레모니를 해야겠다는 생각을 잊지 않은 그 자세가 참 맘에 들더라고요. 골 넣으면 무조건 팬들 위한 세레모니를 하겠다고 상당히 많이 생각했나봐요. 잊지 않고 바로 팬들 앞으로 달려가 할 정도였으면 말 다한 거겠죠? ^^



그런데 후반 11분 서동현은 경고를 받았고 4분 뒤에 또 추가로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강원FC 창단 이래 퇴장 받은 선수는 한명도 없었는데 서동현이 강원FC 퇴장 1호 선수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데 두번째 경고가 좀 석연찮았죠. 서동현도 이해할 수 없었던지 심판에게 항의했습니다. 물론 다른 팀에서는 자주 볼 수 있는 풍경이었지만 강원FC에서는 처음 보는 장면이었답니다.



강원FC는 지난해 페어플레이상을 받은 구단입니다. 훈련용 유니폼 뒤에는 피파 페어플레이 마크를 새겨놓았어요. 연습 때도 페어플레이 정신을 생각하라는 뜻입니다. 하여 올 시즌에도 최소 파울 및 최소 경고를 받고 있었죠. 그간 퇴장 당한 선수도 없었고 심판 판정에 항의 하는 선수들도 없었습니다.

하지만 경기를 하다보면 때론 심판 판정에 억울한 순간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최순호 감독은 심판의 서로 간에 시합을 해석하는 기준이 다소 다를지라도 그라운드의 포청천이니만큼 심판 판정에 수용하라고 선수들에게 가르치고 있습니다. 그래서 심판에게 억울함을 표하는 서동현의 모습은 다소 생경했습니다.



하지만 서동현의 퇴장이 숫적으로는 열세를 불러왔을지는 몰라도 강원FC 선수들에게는 이 경기만큼은 꼭 이겨야한다는 의지를 불태운 자극제가 되었습니다. 여기에 골키퍼 유현이 쥐가 나는 바람에 교체당했고 센터백 김봉겸 역시 쥐가 나며 고통을 호소했지만 교체카드가 없어 뛰어야만 했습니다. 이런 악전고투 속에서 선수들은 말 그대로 이를 악물고 뛰었는데요 선수들은 경기 후 동료 서동현의 퇴장이 투지를 불러일으켰다면서 언론과 팬들이 너무 나무라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그를 다독거렸습니다. 팬들 역시 그런 선수들의 마음을 알고 있기에 심판 판정에 억울함을 호소하는 선수가 이제는 한두명은 있어야하지 않냐며 서동현에게 격려의 박수를 보내주었습니다.

서동현은 그의 별명 '레인메이커'처럼 현재 이적 이후 강원FC에게 득점 '단비'를 내려주고 있습니다. 그동안 원톱 김영후에게만 집중되던 압박이 서동현의 이적 이후로는 분산이 되었거든요. 상대 수비진들은 골 결정력이 남다른 두 장신공격수를 분산하여 막을 수 밖에 없고 이것이 두 선수 모두에게 좀 더 넓고 자유로운 공간을 만들어준 결정적 계기가 되었습니다. 결국엔 이것이 득점으로 연결돼 김영후는 서동현 이적 후 3게임 연속골을 성공시켰고 서동현 역시 오랜만에 골을 터뜨리며 '축구천재'의 부활을 선포했습니다.

강원FC에서 서동현이 보여주는 움직임은 마치 베르바토프를 연상하게 만듭니다. 활동량은 남다르지만 쓸데없는 움직임은 적습니다. 볼을 향한 집중력은 강하며 슈팅 동작부터 패스하는 순간까지 보여주는 모습은 흡싸 축구를 예술로 승화시킨 사람 같습니다. 그의 동작이 발레리노 같다는 생각이 들 때도 많습니다. 우리나라 스트라이커의 계보 중 하나인 최순호 감독은 그런 서동현을 가리키며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공격수로 만들고 싶다는 포부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그래서 저역시 그를 향한 기대를 감출 수가 없습니다.

강원FC로의 이적 후 첫 홈경기였던 지난 7월 24일. 전북전을 마치고 서동현을 우연히 음식점에서 만났습니다. 그의 첫 홈경기를 응원하기 위해 먼 강릉까지 팬클럽 '레인메이커'가 나들이를 왔더라고요. 상당히 피곤하였을텐데도 서동현은 멀리서 온 팬클럽과 저녁식사를 가졌는데, 밝고 소탈한 모습에 무척이나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데 그 순간 서동현의 양쪽 종아리가 눈에 띄더라고요. 잔뜩 테이핑을 한 다리로 식사를 하고 있더군요. 그러고보니 전북전 당시 교체 된 후 바로 스타킹을 벗었는데, 그때도 발목과 종아리를 꽁꽁 감아싼 테이핑이 한눈에 들어왔죠. 그런데도 경기 결과가 걱정되었는지 아이싱을 한 채 경기장을 떠나지 않더라고요.



2-0으로 앞서다 2골을 내주고 또 다시 1골을 내주며 2-3으로 아쉽게 역전패하는 순간에는 맨발로 일어선 채 그라운드에서 시선을 떼지 못하더라고요. 금세 강원FC를 내 팀처럼 생각하는 충성스런 마음이 느껴져서 보물 같은 선수가 강원FC에 왔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제 카메라는 오래도록 그를 향해 있었습니다.





김영후에 의존된 강원FC의 공격력에 서동현은 새로운 해결사로 등장하여 다양성과 아름다움을 전해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그에게 골룸이 그랬듯 '마이 프레셔스(My precious)'라고 끝없이 외치고 싶습니다. 경기 중 보여주는 플레이도, 팬들과 동료 선수, 그리고 팀을 생각하는 마음도 너무 예쁘니까요.



참... 이적 후 첫 홈경기 때 단상 위에서 소개하는 시간을 가졌는데요, 그때 사회자 분이 티아라의 보삐보삐 춤을 시키셨죠. 수원 선수 시절 이 춤을 추는 세레모니가 기억에 나서 시켰는데, 그 이후로 너무 자주 시키게 됐고... 그래서 서동현은 골 넣고 자기도 모르게 티아라 춤을 추면 어떡하냐면서 걱정을 했다고 합니다. 걱정을 한 이유는?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한 나르샤 댄스를 춰야하는데 그러지 못할까봐라고 하니 팬들을 향한 사랑의 마음이 확실히 느껴지시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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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대전월드컵에서 열린 대전시티즌 대 강원FC와의 K-리그 경기. 14위와 15위의 싸움이었습니다. 이 경기로 꼴찌가 달라지기 때문에 다른 팀들은 신경도 쓰지 않았겠지만 ㅠㅠ 강원과 대전에게는 너무나 중요한 경기였답니다. 전반 35분 리춘유의 프리킥을 서동현이 골 에어리어에서 받아 그대로 오른발 슈팅에 성공, 팀 1번째 골을 기록했습니다. 개인적으로는 상당히 의미가 깊은 골이었어요. 수원에서 강원으로 이적 후 처음으로 기록한 골이었거든요. 한데 상당히 인상깊었던 것은 바로 다음 장면에 일어났습니다.

보통 강원FC 선수들은 선수들끼리 기뻐하느라 정신이 없는데 서동현은 골을 넣자마자 바로 N석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 쪽으로 달려가 춤을 추더라고요. 엉덩이를 오른쪽-왼쪽으로 왔다갔다 하는데... 무슨 춤이냐고요? 바로 브라운아이드걸스의 시건방춤이었답니다.

누군가는 한물 간 춤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역시 그 세레모니에도 깊은 뜻이 숨어있었답니다. 강원 서포터스인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가 활동 중인 브아걸의 춤을 춘 거거든요. 나르샤를 위해 나르샤의 춤을 춘다. 이 뜻이었죠. 첫번째 골은 꼭 나르샤에게 바치겠다는 깊은 의미가 숨어있던 특별한 골 세레모니였습니다.

그렇지만 전반 44분, 그러니까 종료 1분 전 대전의 한재웅에게 동점골을 허용하고 전반을 어렵게 마감하고 말았죠. 더 당황스러웠던 것은 후반 시작하고 나서였습니다. 후반 시작하자마자 11분에 서동현이 경고를 받았고 4분 후에 또 경고를 받아 경고 누적으로 퇴장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10명이서 경기를 풀어나가야하는데 아직 후반 초반이었으니 어려움이 예상됐죠. 여기에 후반 21분에는 유현이 양 다리에 쥐가 나는 바람에 안성남과 권순형이 교체대기 중 권순형 카드를 접을 수 밖에 없었습니다. 유현 대신 김근배 골키퍼가 들어갔는데 김근배는 팀 내 No.2 골키퍼. 강원에서 부동의 골키퍼는 언제나 유현이었고 작년 9월 유현이 부상당했을 때 김근배가 대신 1경기를 나선 적이있었죠. 리그 출장은 이번이 2번째. 경험이 부족한 골키퍼의 출장으로 다시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습니다.

한데 더 어려웠던 건 센터백 김봉겸 또한 쥐를 호소한 거죠. 더이상 교체 카드는 없었고 어쩔 수 없이 의무 트레이너가 달려가 침을 놓아 피를 내는 방법을 쓸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래도 쥐는 계속 났고 통증을 참아가며 김봉겸을 뛰어야했습니다.

그리고 후반 42분. 미드필드 정면에서 살짝 왼쪽으로 빗겨간 자리에서 프리킥 찬스가 났습니다. 지난 전북전에 이미 그 자리에서 프리킥 골을 성공시킨바 있던 김영후였기에 우리는 영후존이라며 골이 터질 것이라 믿었죠.

한데 정말 마법같은 기적의 드라마가 펼쳐졌습니다. 골은 아름다운 곡선을 그리며 그대로 골망을 향해 출렁. 강원의 역전골이 터지고 만 것이죠. 늘 자리에 앉아 기도세레머니를 펼치던 김영후도 이날만큼은 벤치에 있던 동료들에게 달려가 격한 포옹을 하며 기쁨을 나눴죠.

경기 내내 힘든 고비가 많아 승점 3점을 손에 쥔다는 게 이렇게나 어렵구나, 했는데, 강원 선수들은 결국엔 그 난관은 이겨내고 11경기만에 승리를 하며 꼴찌에서 탈출했습니다.

퍼플아레나에서.

서동현이 보여준 시건방춤 세레모니.

김영후, 정경호와 함께 기쁨을 나누는 서동현.

형님들, 저만 믿으세요~

김영후의 프리킥골.

역전골이 터지고 기도도 잊고 어딘가로 달려가는 김영후.

벤치에 있던 선수들과 가쁨을 나누기 위해.

룸메이트 권순형과 격한 기쁨을 나누고 있는 김영후.

경기 종료 후 무실점으로 선방한데 감사드리고 있는 김근배 골키퍼. 왼쪽에 초점이 안맞은 사람은 김영후 입니다.^^

선수들을 격려 중인 김원동 대표이사.

나르사에게 감사 인사 드리고 있는 강원 선수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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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가 드디어 셋방살이 신세를 면했습니다. 강릉시 강남축구공원에 근사한 클럽하우스를 지었거든요. ^^
2008년 12월 18일 성공적으로 K-리그에 첫발을 뗀 강원FC는 출범과 동시에 강릉시청(시장 최명희)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클럽하우스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그리하여 강릉시 노암동 산35번지 강남축구공원 내에 대지면적 2,731.11m2(717.26평)에 연면적 1,939.56m2(568.71평)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클럽하우스가 드디어 문을 열게 됐습니다.

또한 사계절 천연잔디구장 1면과 2면의 인조연습구장을 보유하게 됐고요. 특히 2면의 연습구장은 시민들에게도 개방하여 뜨거운 축구열기를 가진 강릉시민들이 일상에서도 축구를 즐길 수 있게 만들었습니다.

강원FC는 주유니폼 색에서 클럽하우스 이름을 따 ‘오렌지하우스’라 명명했으며, 현재 홈구장 중 하나인 강릉종합경기장 외관에 달린 엠블럼을 오렌지하우스에도 달았습니다. 덕분에 오렌지하우스는 벌써부터 강릉시민들 사이에서 새로운 랜드마크로 자리 잡고 있는 중입니다.
지난해 강원FC 선수단은 클럽하우스가 없어 약 1년가량 관동대학교와 경포대에 마련된 숙소에서 생활하며 불편을 감수해야했습니다. 그러나 이번 오렌지하우스 완공으로 시설 인프라가 완벽하게 구축돼 강원FC는 ‘경기력 향상’과 약 5억원의 ‘예산 절감’이라는 효과를 동시에 누릴 수 있게 됐습니다.

이제 창단 2년차에 접어든 강원FC가 이렇게나 빨리 클럽하우스를 얻을 수 있게 된 배경에는 무엇보다 강릉시의 전폭적인 지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K-리그 데뷔시즌이었던 지난해 강원FC는 지자체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기존 프로스포츠단과 차별되는 ‘지역밀착형 마케팅’을 선보일 수 있었고 이로 인해 지역민과의 일체감 형성 및 지역연고 정착 발전에 성공하며 국내 프로스포츠계에 많은 반향을 일으켰죠. 덕분에 ‘지역발전 극대화 경영모델’로서 구단운영의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했다는 호평 속에서 제5회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 시상식에서 프로스포츠 부분 최우수 마케팅 대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안기도 했습니다.

지상 3층·지하 1층 규모로 지어진 오렌지하우스에는 선수단 숙소 및 회의실, 식당·의무실·샤워실 등 최신 시설을 갖췄습니다. 아시아축구연맹 직원들과 클럽하우스를 돌아볼 기회가 있었는데요, 그때 찍은 영상을 보여드립니다.

모기업의 후원을 받고 있는 기업구단이 아닌, 시도민구단 중에는 최초로 짓게 돼 더욱 의미가 깊은 강원FC 클럽하우스 내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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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K-리그 신인왕의 주인공. MBC 축구드라마 <맨땅의 헤딩> 실제모델인 남자. 내셔널리그에서 3년간 절치부심하다 K-리그를 접수한, 인생역전의 사나이. 2009년 공격포인트 1위라는 기록에 걸맞은 괴물 공격수.

이제 겨우 K-리그 2년차에 접어든 아직은 신출내기이지만 김영후 선수를 수식하는 말들은, 어느새 이렇게 많아졌습니다. 그건 아마도 그의 존재가 그만큼 특별해졌다는 뜻이겠고 무게감이 점점 생겼다는 증거겠지요.

올 시즌에도 김영후 선수는 신인왕 징크스, 혹은 2년차 징크스라는 말이 무색할만큼 준수한 활약을 펼쳐보이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전남전에는 K-리그 데뷔 이후 첫 해트트릭에 성공했고 4월 수원전에서는 멀티골을 터뜨렸습니다. 유병수, 이동국에 이어 K-리그 국내 선수 득점 3위에 오르며 차근차근 정상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이제 드디어 K-리그 후반기가 본격적으로 시작하게 됐는데요, 김영후 선수를 만나 인터뷰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솔직담백한 인터뷰를 원했고, 김영후 선수도 꽤나 진솔한 이야기를 털어놓았어요. 그래서 이번 인터뷰 컨셉은 "무릎팍도사"라고 불러도 부족함이 없을 듯 하더라고요.

인터뷰 중간 작년 한해 신인왕 타이틀을 놓고 경쟁한 유병수 선수에 대해 질문을 던졌더니 영후 선수 다음과 같이 말하더라고요.

"솔직히 마지막까지 정말 확신을 못했고. 일단은 그때 유병수 선수가 막판에 정말 활약이 좋은 상태였고. 저는 막판에 좀 부진했던 상황이었기 때문에 확실히 이렇게 확정을 지을 수 없었고. 그런데 마지막에 플레이오프때 성남이랑 인천이랑 햇을 때 유병수 선수가 골을 못넣고 질 때. 그때는 조금 희망을 갖고 있었죠. 그때 만약 유병수 선수가 골을 넣거나 인천이 승리했거나 그랬으으면 저는 거의 포기를 했었을거 같아요."

"유병수 선수 보면 네 어색하죠. 솔직히 신인상 타기 전까지는. 조모컵 올스타전 갔을 때나 이럴때는 말도 많이하고 그래도 어느정도 좀 친하게 지냈었는데. 제가 신인왕을 타고나서부터 좀. 저도 좀 유병수 선수를 어색하게 대했던 것 같아요. 그 선수도 저를 그렇게 대했던거 같아요. 조모컵 때 거의 유병수 선수랑 제일 많이 얘기했던거 같은데. 다른선수들보다. (축구얘기만 했어요?) 할게 축구 얘기 밖에 없잖아요. 그냥 저희 강원FC랑 경기한거 그런 내용들을 얘기하고. 그래도 그런 경쟁이 있기 때문에 더욱더 발전할 수 있는 것 같고. 그 선수는 어리잖아요. 전 나이가 많고. 유병수 선수랑 저랑 닮았다는 소리를 많이 듣는대요. 닮았으면 뭐. 유병수 선수가 기분 나빠하지 않을까요?"

이건 2%에 불과하고요 나머지 98%는 아래의 영상을 클릭해보시면 아실 수 있습니다. 중간 중간 들리는 제 목소리는 애교로 넘어가주세요. ^^ 김영후 선수의 이야기에 귀 기울려주시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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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는 창단할 때부터 도민구단이라는 이름이 부끄럽지 않도록 도민을 위한 구단이 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래서 매달 지역민들을 위해 선수단이 나서 봉사활동을 갖습니다. 년간 50시간 이상 봉사활동을 의무화하겠다고 최순호 감독님은 늘 말씀하시죠.

사실 지도자의 입장에서 선수들과 함께 봉사활동을 나서는 건 쉽지 않은 일이죠. 하지만 축구도, 봉사도, 소홀히할 수 없는게 바로 프로선수다, 라는 게 감독님이 내건 기치죠. 언젠가는 제게 나중에 내가 강원FC를 떠나더라도 이게 잘 정착되 매달 봉사활동하는 것이 '습관'이 됐으면 좋겠다는 말씀을 하더군요.

겉치레 혹은 보여주기 식이 아니라 정말 진심에서 우러나온 실천이라는 걸 깨달은 건 얼마 전 강원FC 선수들과 중증장애인들이 생활하고 있는 <늘푸른마을>을 방문할 때였습니다. 그때 감독님은 팔을 걷어부치고 선수드과 같이 땀을 뻘뻘 흘려가며 시설을 청소하시더라고요. 이후 식사 시간에는 장애인의 식사 보조 도우미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고 그중 하이라이트는 장애인과 함께 하는 노래자랑 시간이었습니다.

그곳에서 생활 중인 장애인들은 노래방 기계에 맞춰 춤추고 노래부르는 걸 상당히 좋아하더라고요. 음악에 맞춰 몸을 흔들면서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요, 선수들은 한데 어울리지 못하고 뒤에서 쭈볏쭈볏 서있기만 했습니다. 장애인들이 와서 손을 잡고 같이 추자고 해도 같이 어울리지 못하더라고요.

한데 최순호 감독님께서 나서서 장애인들의 눈높이에 맞춰 같이 노래를 부르시고 춤을 추시더라고요. 진심에서 우러나온 그 모습에 저는 정말 놀랐고 감동받았고 많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비록 팀 성적은 좋지 못하지만 이런 진정성을 가진 감독님이 이끄는 팀이라면 곧 부활할 것이고 모두의 귀감으로 자리매김할 것이라는 희망도 얻었고요.

이런 감독님, 여러분들은 혹시 보셨나요? 제게는 너무나 뜻깊은 시간을 안겨준 소중한 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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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가 중국 국가대표 미드필더 리춘유(Lee Chunyu, 李春郁, 1986년 10월 9일 생, 만 23세)를 영입했습니다.

강원FC에는 벌써 크로아티아 수비수 라피치, 마케도니아 공격수 바제, 브라질 미드필더 헤나토가 있습니다. K-리그 규정상 외국인 선수는 단 3명만 허용됩니다. 한데 어떻게 중국 선수를 또 영입하게 됐을까요? 바로 아시아쿼터제 덕분인데요, 선수의 국적이 아시아축구연맹 산하 국가 중 하나라면 1명 더 영입할 수 있는게 바로 아시아쿼터제입니다. 수원이 중국 수비수 리웨이펑을 둘 수 있었던 것도 그 덕분이죠.

리춘유는 중국축구협회에서 2008베이징올림픽을 대비해 계획적으로 육성한 축구 영재로서, 2002년 U-17대표팀에 처음으로 발탁돼 이듬해 열린 U-17월드컵에서 중국대표팀으로 뛰었습니다. 이후 2004년 U-19대표팀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단계별로 거친 축구 엘리트죠. 2007년에는 당시 올림픽대표팀을 이끌던 라토미르 쥬코비치 감독의 눈에 띄여 U-23대표팀에 발탁됐으며 지난 6월 11일에는 가오홍보 감독이 이끄는 2011아시안컵국가대표팀에 승선하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습니다.

2004년 중국 슈퍼리그 산하 창사팀에 입단하며 프로생활을 시작한 리춘유는 2009년까지 창사에서 85경기 3골 15도움을 기록하며 주전 미드필더로 활약했습니다. 2010시즌 후반기에는 지난 시즌 세르비아 1부리그에서 3위에 랭크된 FC RAD로 이적하였으며 드디어 7월 21일 강원FC에 입단하게 됐습니다.

178cm 70kg의 리춘유는 ‘중국의 리켈메’라는 별명답게 정확한 패스와 너른 시야로 공격의 활로를 탁월하게 뚫어주는 플레이메이커입니다. 양발을 자유롭게 사용하며 킥력 또한 빼어나 그간 클럽에서 프리킥과 코너킥 전담 키커로서 활약했습니다. 앞으로 강원FC에서 공수의 연결고리로 중원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할 전망입니다.

리춘유와 짧은 시간이지만 함께 호흡을 맞춰본 강원FC 선수들은 킥과 패스가 남다르다며 칭찬을 아끼지 않는 중입니다. 패스와 킥가 상당히 정확해, 특히나 코너킥에서 올려주는 볼의 정확성을 칭찬하더군요. 라피치 선수는 영입 전 테스트 기간 내내 제게 중국 미드필더 최고라며 온갖 미사어구로 칭찬을 했었는데, 이제 같이 뛰게 됐으니 꽤나 기대가 큰 모습입니다.

“K-리그에서 성공시대를 쓰고 싶다”고 운을 뗀 리춘유는 “원래 포기나 좌절 따윈 모르는 성격이다. 즐겁고 재미난 강원FC만의 축구를 위해 최선을 다해 뛰겠다”고 당찬 각오를 밝혔습니다. 특히나, 수원의 리웨이펑처럼 좋은 모습으로 팬들에게 사랑을 받는 선수가 되고 싶다네요. 여자친구는 지금 타이완에서 일하고 있는데, 내년 쯤에나 한국에 올 수 있을 것 같다고 합니다.

지금은 외국계 IT회사에서 직원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는데, 좋은 직장이라서 직장을 포기하고 한국에 오기엔 너무 리스크가 크다고 합니다. 아직 가족들과 함께 살고 있기 때문에 가계에 보탬이 되야해서야 이유라네요. 그래도 구단에서 아파트를 구해주면 커피 마시러 오라며 활짝 웃는데, 그 모습이 너무 순박했습니다. 사실 구단 유니폼을 입고 사진을 찍어야해서 얼른 옷을 갈아입으라고 하니 머뭇머뭇하면서 제 앞에서 티셔츠를 벗더라고요. 내가 누난데 뭐 어때, 했지만 꽤나 어색해했고 또 괴로운 모습이었어요. 미안. -.ㅜ

한편 지난해 크로아티아 수비수 라피치를 영입하여 K-리그 구단 중 최초로 연봉을 밝혔던 강원FC는 이번 여름 이적시장에 영입한 바제와 헤나토의 연봉 또한 공개해 화제를 모았습니다. 강원FC는 구단 경영의 투명성 확보라는 기치를 이어나가기 위해 이번에도 리춘유의 계약과 관련한 세부사항을 모두 공개하기로 결정하였습니다.

리춘유와의 계약기간은 2010년 7월 21일부터 2011년 12월 31일까지며 연봉은 12만불(월 1만불, 세금포함)입니다. 자유계약 선수이기에 이적료는 없습니다.

강원FC 김원동 대표이사는 “선진구단으로 가기 위한 초석은 투명하고 건전한 구단 경영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앞으로도 강원FC는 외국인 선수 영입시 연봉 공개라는 원칙을 지켜나갈 것”이라며 “도민구단의 생명은 팬들이며 팬들의 알 권리 역시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참 멋지지 않습니까. 이렇게 투명한 공개는 정말 칭찬받아야만 할 거 같아요.

어쨌거나 리춘유의 영입으로 노장 이을용의 공백을 어찌 메울까, 하던 강원FC의 고민이 해갈되는 듯합니다. 중원에서 공격의 활로만 제대로 열린다면 지난해 보여줬던 화끈한 공격축구는 다시 부활할 수 있을 거라 봅니다. 그렇기 위해서는 중국의 리켈메 리춘유의 역할이 꽤나 중요하네요. 그는 과연 K-리그에서 성공한 대륙남이 될 수 있을까요? 기대하며 후반기를 지켜보렵니다.

이건 B컷. 어색하게 웃는 바람에 실패한 사진입니다. 뒤에서 백용선 선수가 스마일이라고 열심히 외쳤건만...ㅎ

한데 저랑 찍을 땐 더 어색하게 있었다는... 이 표정 좀 보세요.. ㅠㅠㅠㅠ 다음엔 좀더 친해지길 바랍니다.

옷을 갈아입기 전 어색하며 웃던... ㅎㅎ 리춘유.

자, 우리 한번 같이 사진 찍어볼까? 형. 난 지금 상태 멜롱이라 찍기 시른데. 흑흑.

잘생긴 리춘유와 용병 담당인 백용선 선수. 원래 백용선군은 잘생겼었는데.. 요즘 더운 여름날 훈련이 힘들다보니 오늘 사진이 잘 못나왔네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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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새로운 선수들과 후반기 대반격을!
강원FC는 이번 여름휴식기 동안 2명의 외국인 선수를 새로이 영입했다. 마케도니아 국가대표 공격수 바제(BLAZHE ILIJOSKI)와 브라질 출신 미드필더 헤나토(RENATO MEDEIROS DE ALMEIDA)가 바로 그 주인공.

바제는 최전방에서부터 좌우날개, 쉐도우 스트라이커까지 소화가 가능한 멀티 공격수로, U-15대표팀을 시작으로 U-17, U-19, U-21대표팀까지 연령별 대표팀을 단계별로 거치며 엘리트 코스를 꾸준히 밟아왔다.

2005년 11월 마케도니아 국가대표팀에 처음으로 이름을 올리며 A매치에 데뷔했으며 최근에는 6월 2일 열린 루마니아와의 A매치에도 출장했다. 현재 마케도니아 성인대표팀의 주축 공격수로 활약하며 4경기 1골을 기록 중이다.

강력한 오른발 캐논슛이 위협적인 바제는 공간침투능력과 스피드가 탁월한 만큼 후반기 김영후의 파트너로 활약하며 기존 강원FC의 공격에 화력을 더해줄 전망이다. 한편 바제와 함께 영입한 헤나토는 드리블, 패스, 킥 3박자를 갖춘 공격형 미드필더다. 경험에서 우러나오는 연륜을 바탕으로 중원에서 안정되게 경기 템포를 조율하며 강원FC의 새로운 플레이메이커로 소임을 다할 예정이다.

바제(좌) 헤나토(우)

김원동 대표이사는 “본래 2011시즌에 외국인 선수를 영입할 계획을 수정하여 팬들에게 조금 앞당겨 선보이게 됐다”며 “바제와 헤나토 두 선수의 실력이 출중할 뿐 아니라 의욕 또한 강하기에 빠르게 팀플레이에 녹아들 것으로 예상된다. 두 외국인 선수의 합류로 후반기에는 빠르고 힘있는 강원FC만의 신명나는 축구를 구현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고 이번 외국인 선수 영입에 대해 평했다.

돌아온 축구천재 서동현
강원도 홍천 출신의 서동현이 고향으로 돌아왔다. 박종진과 1-1 트레이드 조건으로 강원으로 이적한 서동현은 양평중-청평공고-건국대를 거쳐 2006년 수원에 입단, 프로 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전반기까지 최근 5시즌 동안 100경기 21득점 6도움의 기록을 올렸다.

장신을 이용한 포스트플레이와 제공권에 강점을 보이는 서동현은 결정력과 활동량 또한 뛰어나 강원FC의 새로운 ‘해결사’로 그 역할을 톡톡히 해줄 전망이다. 서동현은 “강원도 홍천 태생인 만큼 강원도는 나의 ‘고향’이자 나에게 축구를 알려준 특별한 곳”이라며 “고향 팀인 강원FC에서 뛰게 된 만큼 마음이 설렐 뿐 아니라 기대도 크다”라고 소감을 밝혔다.

서동현은 또 “강원FC 팬들의 사랑이 남다르다는 것은 익히 들어 알고 있다”며 “강원FC의 공격에 방점을 찍고 싶다. 또 팀의 승리에 도움이 될 수 있는 헌신적인 선수가 되겠다”며 남다른 각오를 드러냈다.

서동현(좌) 이상돈(우)

한편 강원FC는 이상돈을 수원에서 추가 영입했다. 밀성중-서울체고-울산대를 거친 이상돈은 2008년 울산에서 데뷔한 뒤 2010년 수원으로 이적, 3시즌 동안 21경기 1득점 1도움을 기록했다. 이상돈은 “최순호 감독님 밑에서 새로운 축구를 배우게 돼서 설렌다”며 “강원FC 팬들의 기대에 부흥하는 선수가 되겠다”는 소감을 밝혔다. 오버래핑 시 정확한 크로스가 일품인 오른쪽 풀백 이상돈의 영입으로 강원FC는 수비진에도 힘이 실렸다.

수비라인 재정비
강원FC는 후반기 도약을 위해 수비라인에 대대적인 전력보강을 가했다. 이정운(MF, 前강릉시청) 강선규(DF, 前대전시티즌) 백종환(DF, 前제주유나이티드) 김동민(DF, 前울산현대)이 새롭게 강원FC 유니폼을 입었다.

경수중-언남고-건국대를 거친 강선규는 2006년 러시아프리미어리그 루빈카잔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한 ‘해외파’다. 2년 간 루빈카잔에서 뛰다 2008년 귀국, 대전시티즌에서 K-리거로 테이프를 끊었으며 당해 시즌 17경기 1도움을 기록했다. 수비형MF, 풀백, 센터백 모두 가능한 멀티형 수비자원이다.

백종환은 부평동중-부평고-인천대를 거쳐 2008년 제주에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2010년 전반기까지 3시즌동안 12경기에 나섰다. 빠른 스피드와 정확한 크로스가 인상적인 오른쪽 풀백이다.

강릉농공고 출신의 김동민은 2009년 울산현대에서 프로데뷔를 한 중앙수비수다. 서전트점프가 뛰어나 공중볼에 강하며 빠른 스피드를 이용, 효과적으로 상대 공격을 차단하는 지능형 수비수다.

이정운(좌) 백종환(우)

강릉시청에서 이적한 이정운은 황지중-강릉농공고-성균관대를 거쳐 2003년 전남에서 데뷔해 2005년까지 3시즌 동안 31경기 6득점을 올렸다. 주 포지션은 풀백이나 양발을 고루 잘 쓰기 때문에 좌우를 가리지 않는다. 뿐만 아니라 윙포워드와 측면미드필더로도 활용이 가능해 앞으로 강원FC의 공수 양면에 있어 활기를 불어넣어줄 것으로 예상된다.

강원FC 김원동 대표이사는 “공수양면에 걸친 고른 영입으로 강원FC의 전력이 탄탄해졌다. 후반기 강원FC의 무한비상을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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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남아공월드컵 개막을 앞두고 심판들에게 가이드라인이 내려졌다고 합니다. 월드컵 심판 가이드라인을 인지하는 것은 우리 대표팀 선수들에게는 상당히 중요합니다. K-리그에서는 묵인된 것들이 국제대회에서까지 용인되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니까요. 물론 K-리그 개막을 앞두고 심판 강습회에서도 월드컵을 앞둔 만큼 월드컵에서 요하는 가이드라인을 선수들에게도 요구하라고 했습니다. 그래서 올 시즌에는 예년보다 심판 판정이 엄격해지고 비신사적인 행위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카드가 내려졌습니다. 연맹의 5mm 정책도 물론 한몫을 했지요.

1. 거친 태클을 강력하게 처단하라
FIFA는 거친 태클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강한 규제를 내려리고 했습니다. 1998월드컵을 기점으로 예전에는 백태클에 대해 규제가 강했지만 -당시 멕시코전에서 프리킥 선제골을 넣었던 우리나라 하석주 선수가 백태클 퇴장의 아픔을 겪기도 했죠- 이번 월드컵에서는 전후좌우 위치에 관계없이 선수의 안전을 위태롭게 하는 태클(특히 발바닥이 보이는 태클)에 대해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이 FIFA의 입장입니다. 무엇보다 선수의 안전을 위한 우선히 하겠다는 의지가 보입니다. 개인적으로 수비수들과 이청용 선수가 이 부분을 잘 인지했으면 좋겠어요. 이청용 선수 심성은 곱고 착한데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태클은... 가끔 보면 위험하다는 느낌이 들때가 있어요.

2. 팔꿈치로 가격하는 행위를 차단하라
손, 그중에서도 팔꿈치를 사용하는 행위를 근절하겠다는 것이 FIFA의 입장입니다. 경합 과정에서 흔히 나오는 팔꿈치 가격은 상대에게 치명상을 입힐 수 있습니다. 특히 헤딩 경함 과정에서 나중에 착지하게 되는 선수들이 머리를 움직이며 팔꿈치를 함께 쓰는데, 이런 경우 무조건 퇴장입니다. K-리그에서도 습관적으로 이러한 반칙을 하는 선수들이 있어 심판들 사이에는 요주의 선수로 불리며 경기 중에 그 선수가 엘보잉 파울을 범하는지 신경쓰며 보는 경우도 많습니다. 따라서 습관적인 팔꿈치 사용에 대해서 강력하게 규제하겠다는 것이 FIFA의 의지라고 생각해도 좋을 것 같습니다.


3. 심판에 대한 항의를 줄여라.
FIFA는 축구의 이미지에도 크게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축구는 전세계 남녀노소가 모두 즐기는 최고의 인기 스포츠입니다. 따라서 월드컵의 이미지, 그리고 어린 선수들에 대한 교육적인 측면에서 좋지 않은 장면은 용인하지 않겠다고 했습니다.

경우에 따라서는 다소 억울한 판정이라 할지라도 적당한 선에서 받아들여야 합니다. 심판의 몸을 건들지 않더라도 과격한 항의, 그리고 심판에게 달려오면서 위협적인 모습을 연출한다면 규제를 받게 될 것입니다. 제가 K-리그 심판 강습회 때 받았던 교육에서는 선수들이 판정에 항의하며 ‘떼’를 지어 달려올 때 심판은 결코 뒷걸음질을 치거나 피하면 안된다는 내용이 나옵니다.

이런 모습이 관중과 어린 선수들에게는 심판의 권위를 무너뜨리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렇기 때문에 단체로 선수들이 몰려올 때는 가장 먼저 심판에게 달려온 선수에게 가차없이 카드를 뽑으라는 내용도 있었습니다.

혹자는 주장은 심판에게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이 있지 않냐고 하는데요, FIFA 규칙서에도 이와 관련된 내용은 전혀 없습니다. 주장이라고 팀을 대표해서 항의할 수 있는 권한은 없으므로 가볍게 어필할 수 있을지언정 십자가를 짊어지고 항의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일찍이 월드컵에서 대표적인 오심 중에 하나인 마라도나의 ‘신의 손’ 사건이나 얼마전 앙리에 의해 연출됐던 핸드볼 사건은 모든 사람들이 명백히 봤지만 주심이 미처 보지 못해 발생한 사건이었습니다. 이럴 경우에도 선수들의 과도한 항의는 없었습니다. 이것이 축구고 잘못된 판정도 경기의 일부분이라는 점을 인식해야만 월드컵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입니다.

지난 5월 에콰도르전에서 이동국의 첫 번째 골에 대해 오프사이드 판정이 내려졌습니다. 그러나 TV시청자들이나 그 라인을 볼 수 있었던 관중들은 그 장면이 오프사이드가 아니었음을 알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 선수들은 크게 항의하지 않고 경기에 임했습니다. 오심도 경기의 일부분이라 생각하고 순간의 오심을 받아들이고 경기에 임한 것은 높아진 대표팀의 수준을 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습니다. 월드컵에서도 이런 평정심을 유지해야합니다.

4. 명백한 득점 기회 무산시켰을 때는 퇴장
이외에도 골키퍼와 1대 1로 맞서는 명백한 득점 기회에서 파울로 끊을 경우 곧바로 퇴장을 당한다는 것을 유념해야합니다. 또한 좋은 기회를 파울로 무산시켰을 때는 경고조치를 받는다는 것도 같이 알아둡시다.

마지막으로 FIFA는 월드컵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을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합니다. 따라서 보복행위 같은 경우는 엄중에 취하게 되니 깨끗하고 상대 선수를 존중하며 동반자로 생각하는 플레이를 선보여야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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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제 강원FC 1년차 신인선수가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 서류를 떼달라고 부탁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 웃으면서 그럼 있다 오후까지 처리해서 보내주겠다고 원본을 받으러 사무실로 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지금 급하게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가는 길이라면서 은행에서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사무실에 들릴 시간이 없다면서 은행에 도착해서 은행 팩스 번호를 알려줄테니 팩스로 바로 넣어달라하면서요. 


집안이 어려운 그 선수는 가계에 빚도 많았고 오늘 오전까지 갚아야할 돈이 있었나봐요. 갑작스레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의 부모님은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부탁을 한 거였죠. 사실 부모된 입장으로서 아들에게 어려운 모습을 보이며 손을 벌린다는 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얼마나 상황이 급하고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아 제가 전화를 걸었지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급하게 은행을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어서요.

"어떻게 된거야? 은행 도착했니? 팩스 번호 알려주면 지금 바로 보내줄게. 서류 다 만들어놓았어."

잠시 침묵하던 그 선수는 "아니에요. 안 보내주셔도 되요" 했습니다.

눈치없이도 저는 아무렇지 않게 "왜? 대출 안하기로 했어?"라고 바로 되물었죠.

역시나, 이번에도 잠시 뜸을 들이던 그 선수는 힘들게 말을 이었습니다.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대요. 사실 제 연봉만 보면 은행에서도 대출해주기가 힘들겠죠."

그 선수는 올 시즌 번외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한, 소위 말하는 '연습생'입니다. 드래프트에서 6순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 번외로 프로에 지명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선수들은 모두 연봉 1200만원에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달에 10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고 세금 떼고, 클럽하우스 숙식비를 떼면 80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옵니다.

88만원 세대보다 더 어려운 이들, 그들은 바로 프로 축구 연습생입니다.

100만원이라도 안되겠냐고 하자 은행에서는 거래 기간이 1년도 안되고 월급보다 많은 돈을 대출해줄 수 없다고 했네요. 그래도 아들이 프로구단에 있으니까 어떻게든 대출이 되지 않겠냐고 부모님들은 믿으셨을텐데, 하던 선수의 낮은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 울려펴졌습니다.

지금 6월은 뜨겁습니다. 거리엔 한국 축구의 승리를 기원하며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과 신나는 축구 관련 음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연봉이 얼마고, 이청용의 이적을 위해 빅클럽에서 이적료 베팅에 들어갔다고 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때 대표팀이 받게 되는 수당은 얼마고...

빛나고 비싼 이야기들만 가득합니다. 그속에서 전반기 일정을 마치고 함량미달로 짐을 꾸리며 떠나가는 선수들이 있는가하면 80만원 남짓하는 월급을 아껴가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핸드폰비가 5만원이나 나왔다고 이번달 예산이 초과했다며 한숨을 쉬는 선수들도 있고요.

그야말로 명과 암, 빛과 그림자입니다.

모두의 눈이 왼쪽 가슴에 박힌 태극마크에 쏠려 있는 순간,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박수치는 순간에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묵묵히 땀흘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땅의 K-리그 연습생들. 저 역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 아래 살고 있기에 그들의 모습에 더 시선이 가고 마음이 아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바랍니다. 그들이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축구선수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마치 제가 꿈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들의 앞날에 건승만이 가득하길,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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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대전시티즌은 지난 시즌 정규리그에서 2번, 컵 대회에서 1번, 이렇게 총 3번 만났다. 상대전적은 1승 1무 1패로 누적스코어는 6-4로 강원FC가 앞선다. 4월 22일 강릉에서 열린 컵 대회 첫 대결에서는 3-0, 홈 팀 강원의 승리였다.

이성민이 전반전에 오른발로 선취골을 기록했고 정경호는 후반전에 머리로만 2골을 성공시켰다. 당시 강원은 일방적으로 대전을 밀어붙이며 압도적인 경기 내용을 보여줬고 실로 기분 좋은 승리를 거둔 바 있다.


강원FC는 7월 12일 정규리그에서 대전을 다시 만났는데, 당시에는 상대의 자책골과 김영후의 골로 전반에만 2골 앞서 나갔으나 이성운, 고창현에게 골을 내주며 2-2 무승부로 만족해야만 했다.

고창현만 있는 게 아니다
대전의 경계 대상이라 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창현을 떠올린다. 투지 넘치는 돌파, 날카로운 패스, 정확한 킥. 무엇 하나 빠지는 게 없는 선수임에 틀림없다. 하지만 대전에서 경계해야 할 선수는 고창현만이 아니다. 우선 서울전에서 원톱으로 활약했던 박성호는 190cm의 장신이다. 큰 키를 이용한 헤딩슛과 헤딩으로 팀 동료에게 볼을 떨어뜨려주는 플레이까지 조심해야 한다. 또 수비 뒷공간으로 들어가는 움직임이 굉장히 좋았는데 곽광선, 라피치 두 선수의 적극적인 수비가 필요하다.

수비수 뒷공간을 공략해라
대전은 경기마다 측면 수비, 특히 라이트백 우승제가 오버래핑을 활발히 시도하는 모습을 보였는데, 그럴 때 마다 자연스레 측면 쪽으로 공간이 생기곤 했다. 수비수들이 커버플레이를 하기 전에 이을용, 김준태, 권순형 등 중앙MF들이 빈 공간을 향해 빠른 템포로 패스를 넣어 주고 정경호, 이창훈, 박종진 등 윙어들이 뛰어 들어 간다면 공격의 효과를 더욱 높일 수 있을 듯하다.

또 이 과정에서 측면에 위치한 선수가 백패스를 한다거나 볼을 잡기보다는 볼의 스피드를 죽이지 않고 공격 템포를 최대한 살려 드리블을 한 후 중앙 공격수들에게 연결해 주거나 직접 슛팅하는 움직임이 필요하다.

중앙에서는 김영후만을 고집할 게 아니라 2선에서 침투해 들어오는 선수가 슛팅을 시도하는 그림도 그려볼 법하다. 측면 공격이 여유롭지 않을 때에는 김영후가 뛰어 들어가는 중앙을 향해 직접 연결해주는 것도 좋은 루트가 될 수 있다고 본다.

찬스는 반드시 잡자.
지난 1라운드 성남전에서 가장 아쉬웠던 장면은 후반 17분 박종진의 패스에 이은 김영후의 왼발 슛팅이 골대 옆 그물을 맞은 것이었다. 축구는 그 어느 스포츠보다도 경기 분위기가 결과에 크게 작용하는 스포츠다. 남은 시간도 적지 않았기에 한 골을 성공시켰더라면 충분히 해볼 만한 경기였다. 분위기가 우리 쪽으로 왔을 때 골을 넣어야 이길 수 있다. 90분 동안 분명히 몇 차례의 골 찬스가 생긴다. 조금 더 높은 집중력으로, 조금 더 차분한 마음으로 찬스를 꼭 잡아줬으면 하는 바람이다.

집중력 저하를 노려라.
전광판의 시계 바늘이 90분에 가까워질수록 대전의 집중력 저하는 심했다. 패스미스도 많이 나왔고 서울의 이승렬에게 4번째 골을 실점하는 장면에서는 수비수의 어설픈 백패스가 결정적인 빌미를 제공했다. 초반부터 강한 압박으로 대응하던 대전이 체력적인 부담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을 여실히 드러낸 모습이었다.

경기는 90분이 되었다고 끝나는 게 아니다. 이미 작년 시즌 3월 21일 부산전 윤준하 골(91분) 5월 16일 곽광선 골(94분)에서도 보았듯 90분이 넘어도 휘슬이 울리기 전까지 골은 터진다. 끝까지 집중해 공격수들은 찬스를 노리고 수비수들은 찬스를 내주지 않는 경기를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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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과 대전과의 리그 15라운드 경기가 끝난 후. 오른쪽 발목에 아이싱을 한 김영후가 나타났습니다. 한데 표정은 좋지 못했습니다. 경기결과 때문인 듯했습니다. 강원은 전반 2골로 앞서나가다 후반 내리 2골을 헌납하며 무승부로 아쉽게 경기를 마쳤거든요.

그렇지만 김영후 개인에게는 참으로 의미 깊던 경기였습니다. 전반 36분 유현의 롱패스를 받은 김영후는 관록의 골키퍼 최은성을 제친 뒤 왼발 슈팅을 시도했고 멋지게도 골로 성공시켰습니다. K리그 4경기 연속 골 행진을 이어간 순간이었죠.


4경기 동안 무려 5골 1도움을 기록한 김영후입니다. 그것도 이동국과 함께 공격포인트 부문 1위(12)를 기록하면서 말이죠. 이로써 내셔널리그의 괴물공격수는 K-리그의 괴물 공격수로 새롭게 역사를 쓰게 됐습니다.

하지만 그는 팀적으로 봤을 땐 자신의 역할을 제대로 다하지 못했기에 아쉬움이 많다며, 기록은 중요치 않다는 말과 함께 버스에 올라탔습니다. 그러면서 당분간 인터뷰를 하지 않으면 안 되겠냐고, 경기장에서 더 나은 모습을 보여줄 수 있도록 운동에만 집중하고 싶다는 부탁을 제게 했습니다. 아무래도 선수의 심적 상태가 가장 우선인지라 저는 알겠다고 답했죠. 참으로 속 깊은 선수더군요. 개인기록에 기뻐하기 보단 팀을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씨가 그랬습니다. 그러나 비단 그날만 그랬던가요.

지난 7월 2일 포항전 당시 김영후는 후반 16분 포항 골키퍼 김지혁과 부딪히며 이마에 찢어지는 부상을 입고 말았습니다. 급히 지혈을 했지만 거즈 사이로 피는 계속해서 배어나왔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김영후는 후반 39분 윤준하가 얻어낸 페널티킥을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팀을 1-1 동점으로 이끌었습니다. 물론 49분에 데닐손에게 역전골을 허용하며 아쉽게 패했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투혼을 발휘하던 김영후의 모습은 저와, 또 그날 경기장을 방문했던 우리 모두를 눈물짓게 만들었습니다.


경기가 끝난 후 병원으로 달려간 김영후는 무려 16바늘이나 꿰매야했습니다. 지난 3월 25일 성남과의 컵대회에선 조병국과 헤딩경합 도중 왼쪽 이마가 찢어지는 바람에 5바늘이나 꿰맸는데 말이죠. 왼쪽 오른쪽 할 것 없이 성한 곳 없는, 어느새 상처들이 훈장처럼 가득한 이마가 되고 말았네요. 응급실에 들어가 상처를 꿰매기 전 김지혁과 만난 김영후가 가장 먼저 했던 말은 바로 괜찮냐는 말이었습니다. 충돌 후 기절했던 김지혁의 상태가 염려스러웠던 거죠. 김영후는 “난 괜찮다. 너도 괜찮냐”는 김지혁의 대답에 안심한 뒤 응급실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3월 25일 성남전 당시 부상 모습.

그러고 보니 비슷한 상황이 지난 6월 27일에도 있었네요. 전북과의 원정경기에서도 김영후는 전반 41분 전북 골키퍼 권순태와 슈팅하는 장면에서 충돌하고 맙니다. 한데 그 충격으로 권순태는 기절한 채 경기장을 나서야만 했죠. 이날 강원은 화끈한 공격축구의 진수를 보여주며 5-2 대승을 거뒀습니다. 당시 김영후는 4월 11일 전남전에 이어 또다시 멀티골을 터뜨리며 모두의 주목을 받았죠. 기자들이 경기 후 공식기자회견 인터뷰이로 김영후를 지목한 건 당연한 결과였고요.

2골을 터뜨린 소감을 묻자 김영후는 “먼저 2골을 넣었다는 기쁨보다 다쳐서 나간 권순태 선수의 상태가 걱정되는 마음이 큽니다”로 말문을 열었습니다. 상대 선수의 안부를 먼저 생각하는 그 마음씨를 보며 저는 역시 김영후구나, 라고 생각했고요. 이번에도 김지혁의 상태를 체크하는 김영후의 모습을 보며 그의 고운 심성에 다시 한 번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지만 제가 더 그에게 감동받았던 건 바로 그 다음날이었습니다. 포항전 다음날인 7월 5일은 어려운 이웃을 돕기 위해 강원FC 선수단이 사랑의 일일찻집을 여는 날이었습니다. 일일찻집과 관련된 세부사항을 알려주기 위해 선수들이 점심을 먹던 식당을 찾아갔습니다. 마침 김영후가 보이기에 괜찮냐고 묻자, 머리가 조금 아프다고 하더군요. 여느 때 같으면 사람 좋은 웃음을 지으며 괜찮아요, 라고 말할 법한데 오늘은 아프다고 말하는 걸 보니 아무래도 조금이 아닌 제법 아픈 것처럼 보였습니다. 김영후는 새벽 즈음 마취가 풀리는 바람에 통증으로 인해 도통 잠을 이룰 수 없었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워낙에 피도 많이 흘렸던 탓도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했고요.

식사 후 머리가 아프다며 고개 숙인 채 있던 김영후.

팬들을 위해 상처를 보여달라고 하자 그래도 웃으면서 보여주더군요. 이런 순박한 모습이 저는 참 좋습니다. ^^

그에게 그럼 팬들에게 인사만 드리고 가는 게 낫지 않겠냐고 넌지시 얘기해봤습니다. 그랬더니 그는 “어떻게 그렇게 해요. 선수들 다 같이 참여하는 행사인데. 이거 한다고 상처에 무리 가는 것도 아니니까 끝까지 참여할래요”라고, 참으로 다부지게 말하더군요. 어느새 프로선수로 거듭난 김영후였습니다. 때문에 그저 미안한 마음으로, 조금만 고생하세요, 라고 말할 수밖에 없었죠.

아픈 몸을 이끌고 나선 김영후는 그날, 마지막까지 자리를 지키며 열심히 일했답니다. 커피를 나르고 구단용품을 판매하고 사인과 사진을 요청하는 사람들에게 일일이 미소로 화답하면서 말이죠. 머리가 아프다는 말에 두통약을 챙겨왔지만 “참을 수 있는 걸요. 괜찮아요” 라는 말과 함께 팬들에게 달려가는 그 모습에서, 저는 다시 한 번 감동받았고 또 감사했습니다. 이런 선수가 우리 팀에 있다는 사실에 말이죠.

요렇게 사인도 해주고

팬들과 함께 정답게 사진촬영에도 응하고... ^^

자신의 기념티를 입고선 요렇게 커피를 나르고 구단용품을 팔았죠. 괴물공격수라는 별명답지 않게 평소엔 이렇게 귀엽답니다. ^^

늘 그와 함께 하는 것이 아니기에 저는 아직 김영후를 온전히 알지 못합니다. 그러기에 어쩜 이건 김영후가 가진 달란트의 일부분을 이야기하는 것인지도 모르지요.

하나 한 가지 확신할 수 있는 건 앞으로도 김영후는 더 많은 활약을 보여줄 것이라는 점, 그리고 그때마다 우리는 동료 선수들과 팬들에게 먼저 감사하는 고운 심성을 확인할 수 있다는 것이겠지요. 그는 또 얼마나 많은 감동을 우리에게 안겨줄까요.


앞으로가 더욱 기대되는 강원FC의 ‘귀여운’ 괴물공격수 김영후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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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비는 참 많이도 내렸습니다. 호우경보와 주의보를 오락가락하며 오늘 경기가 하는 게 맞냐는 지인들의 전화로 풀로 충전했던 핸드폰은 어느새 밧데리가 한칸밖에 남지 아니했고요. 결국 비는 경기 시작 30분 전 조금 잦긴 했으나 역시나 많이 내렸고 그 때문에 평소 관중의 4분의 1 수준밖에 오지 않은 듯 했습니다.

그런데도 오랜만에 선수들은 반갑게 저를 맞아주더군요. 여전히 생글생글한 대전 통역 태우. 대전의 아들 우승제. 최은성 골키퍼와 언제 애기아빠가 될지, 좋은소식 있음 가장 먼저 알려주겠다던 유재훈씨. 이제는 대학스타에서 프로선수로 다시 만난 박정혜. 4년 전 잠깐의 만남도 잊지 않고 여전히 예의바르게 인사해주곤하는 황지윤씨.


그리고 간만에 원피스에 깜짝 놀라던 철운이와 종진이. 대전에서 잠깐 운동한 경력 때문에 대전 코치님들로부터 골 넣으면 알아서하라는 얘기를 들어야만했던 광선이. 대전 장비 담당 대학선배와 무슨 할 이야기가 그렇게 많았는지 복도에서 서서 정신없이 대화하던 준하까지.

경기 시작과 동시에 2분만에 대전의 자책골로 1-0으로 앞서나가던 강원은 김영후가 골키퍼 유현의 롱패스를 최은성 대전 골키퍼를 제치며 골로 연결, 2-0으로 앞서나갔습니다. 그러나 후반 대전의 로번(지단인가요? ^^) 이성운의 멋진 중거리슛에 당하며 2-1, 그리고 다시 안타깝게 골을 헌납하며 2-2 무승부로 경기를 마감하고 말았습니다.

쏟아지는 빗속에서 끝까지 최선을 다해 달린 선수들. 그리고 그 선수들을 응원하기 위해 온몸으로 그 많은 비를 맞아가며 응원하던 양팀 서포터들. 그날의 여름밤이 아름다웠던 당신들의 열정이 경기장을 가득 메웠기 때문이겠지요. 글/ 헬레나 사진/ 강명호

경기에서 에스코트 어린이들과 함께 입장한 김봉겸, 유현, 강용, 이성민의 모습. 골키퍼 유현의 테이핑한 오른쪽 새끼 손가락이 눈에 띈다.

비오는 날의 서포팅. 이 정도는 되야죠. 강원FC의 열혈서포터 나르샤의 모습.

전반 2분만에 대전의 자책골이 들어가자 오원종이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며 기쁨을 표하고 있다

한때 강릉농공고의 전국대회 제패를 이끌며 탈고교급스타로 이름을 날렸던 오원종.

권순형의 코너킥. 이날 부상으로 결정한 이을용 대신 중앙MF로 출장했다.

괴물 공격수 김영후가 나가신다.

최은성을 제치고 슈팅.

유현의 롱킥에 이은 김영후의 깔끔한 슈팅.

결국 강원의 두번째 골로 연결되고...

감사기도 드리는 김영후.

4경기 연속골이나 K-리그 공격포인트 1위(12)를 기록하는 순간이었다.

서포터들을 향해 엄지를 들어보이는 김영후.

동료 선수들에게 축하도 받고.

얼굴에 꽃주름이 잔뜩 지도록 웃는 모습으로 보아하니... 당시의 즐거움이 사진에서 단박에 느껴진다.

강원의 곽퍼디난드 곽광선. 이날도 대전의 장신 공격수들과의 볼경합에서 밀리지 않으며 강원의 철벽센터백임을 입증했다.

강원의 매직드리블러 이창훈. 아쉽게 공은 골 포스트 왼쪽을 빗겨나가며 리그 2호골 달성은 이루지 못했다.

투지가 넘쳤던 오원종. 앞으로도 지금처럼만.

위치선정의 달인 김영후. 그러나 공은 아쉽게도 최은성 골리의 손으로...

강원의 루니 윤준하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교체출전했지만 6호골 달성에는 실패했다.

쏟아지는 비를 다 맞으며 응원했던 강원서포터들.

그런 서포터들에게 경기 종료 후 인사하러 달려온 강원 선수들.

멀리까지 와서 응원해주시느라 고생많았습니다. 감사합니다. 안녕히 돌아가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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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영원히 겁없는 아이, 앙팡테리블로만 남을 것 같던 고종수가 전격 은퇴를 선언했다. 1998년 이동국, 안정환과 함께 K리그 르네상스를 열였던 그를, 우리는 이제 더이상 그라운드 위에서 보지 못한다.

2007년 여름 아버지 김호 감독과 함께 대전으로 둥지를 튼 그에게서 나는 부활의 날갯짓을 엿봤었다. 인터뷰를 이유로 가진 만남에서 고종수는, 이대로 선수생활이 끝날 것 같아 자살도 생각했었지만 이렇게 허무하게 무너지기는 싫었다, 며 다시 일어서겠다는 말을 계속해서 강조했었다. 허름한 대전시티즌 숙소에서 진행된 고종수와의 인터뷰는, 그래서 더 기억에 남고 그때문에 내 마음을 더욱 아프게 만든다.  


사진 출처: 스포탈코리아

앙팡테리블과의 재회

오후훈련 시작 전 조심스레 다가가서 물었다. “저녁 식사 후에 인터뷰하면 된다고 들었어요. 괜찮으시죠?” 짜증 섞인 목소리로 고종수가 말했다. “나는 11시 반이라고 들었어요. 그때부터 숙소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지금 뭐하시는 겁니까?” 전달과정에서 착오가 벌어진 듯 했다. 당황스런 기색을 애써 감춘 채 그에게 다시 물었다. “어쩜 그렇게 10년 전이랑 똑같으세요?” 그제야 고종수는 웃었다. “그때를 기억하세요?”라고 말하며.

저녁 식사가 끝난 후 고종수는 “잠깐 방에 좀 갔다 올게요”라고 말했다. 괜히 걱정스런 마음에 숙소 계단을 지키고 서 있었다. 5분 쯤 지났을까. 핸드폰을 들고 내려오는 고종수의 모습이 보였다. “안 오시는 줄 알았어요”라고 말하자 고종수는 “아, 진짜 사람들은 왜 자꾸 마음대로 저에 대해 생각하죠?”라며 반문했다. 그것은 공백 기간 동안 끊임없이 스스로에게 던진 질문이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맺힌 응어리가 많았나 보다. 고종수는 자리에 앉아 마자 ‘리지니’ 이야기부터 꺼냈다.

“1999년 수원에 있을 때 선수들이 리니지를 많이 했어요. 저녁에 운동 끝나고 나면 남들처럼 통닭집에서 맥주를 먹겠어요. 뭘 하겠어요. 그래서 다들 당구장 아니면 PC방에 가곤 했죠. 그런데 당구를 치면 계속 서있어야 하잖아요. 그러면 몸이 쉽게 피곤해진다며 감독님께서 당구장에는 잘 못가게 하셨어요. 그래서 가끔씩 PC방에 가기 시작했는데 한번은 친구가 리니지를 하고 있더라고요. 옆에서 구경하다 자연스레 하게 됐죠. 그런데 이게 중독성이 정말 강해요. 한 한달 정도 했나봐요. 어느 날 인터뷰 중에 쉬는 시간엔 뭘 하냐는 질문을 받았어요. 그래서 PC방에 다닌다고 했죠. 그랬더니 주로 무슨 게임을 하냐고 다시 묻더라고요. 당시 제 대답이 ‘리니지요’였어요. 그때 딱 세 마디 한 게 지금까지 온 거예요. 그 뒤로는 한 번도 해본 적 없었는데 말이에요. 그런데 내가 성을 먹었다느니, 레벨이 높다느니, 밤낮으로 리니지만 하다가 축구를 안 하게 됐다느니… 사람이 잠도 안자고 리니지만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아세요? 죽어요. 죽어. 어떻게 해서 소문이 그렇게까지 났는지 모르겠어요. 그러다 음식점을 차렸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엔 울컥 했어요. 그러면서 생각했죠. ‘아, 빨리 복귀해서 운동장에 있어야겠구나. 운동장에 없으니까 자꾸 이런 소리가 나오는구나’라고요.”

잠깐 침묵하나 싶었지만 이내 이야기는 계속 됐다.

“팬들이 그랬어요. ‘예전의 화려한 모습을 바라는 게 아니다. 푸른 그라운드에 서있는 그 모습만이라도 보고 싶다’라고요. 용기를 많이 냈죠. 여기서 그만뒀으면 ‘게임 중독에 빠져 연예인들과 술만 마시다가 축구를 망친’ 고종수로 밖에 기억이 안 될 거 아니에요. 안 좋은 선례의 대표적인 주인공이 되겠죠. 그렇다면 제 삶이 얼마나 불행할까요? 그동안 제가 프로무대에서 뛴 지도 어느새 횟수로 13년째에요. 그 시간동안 나름 열심히 했다고 하지만 그게 나만의 생각이 될 수도 있잖아요. 저는 그저 축구선수 고종수로만 기억되길 바라요. 그런데 꼭 앞에 수식어가 붙네요. 건방지다느니, 게으른 천재라니… 그게 싫었어요. 그래서 ‘다시 운동장에 돌아오자.’ ‘10분이라도 뛰고 관두자.’ 그 마음으로 다시 재기하게 된 거예요.”

그렇지만 그 공백의 시간들을 온전히 메운다는 것은 생각처럼 쉽지 않았다.

“입단 당시 최윤겸 前감독님께서 참 잘해주셨어요. 무엇보다 저를 믿어주셨고요. 그런데 마음이 너무 앞선 게 화근이었어요. 전지훈련 가서 한달 만에 8kg를 뺐는데 그게 문제였죠. 단백질 섭취도 안하고 살만 급히 빼다보니 근력이 떨어지고 말았거든요. 결국 근육을 다 못쓰게 돼버렸어요. 감각만 끌어올리면 된다고 생각했는데 말이에요. 거기서 끝난게 아니에요. 3월 중순엔 연습 중에 패스를 하다 왼쪽 사타구니 쪽 근육이 그만 파열되고 말았어요. 빨리 운동장에 나가고 싶은 마음에 과욕을 부린 게 결국 전반기를 그냥 보내버리게 된 계기가 되고 말았죠.”

지난 봄 검정색 모자를 푹 눌러쓴 채 경기를 지켜보던 고종수의 모습이 생각난다. 모자가 갖고 있던 본디 색보다 더 어두운 빛을 하고 있던 그의 얼굴 역시 기억난다.

“정말 뛰고 싶었어요. 그러면서 깨달았죠. 나는 어쩔 수 없는 축구 선수구나. 그러니 꼭 이 악물고 운동해서 복귀하자. 그렇게 다시 한 번 다짐했죠.”

부활의 서곡을 불러라
“함성소리를 듣는데 온 몸에 소름이 쫙 돋더라고요. 경기장을 돌면서 모든 사람들에게 큰절을 올리고 싶었어요.”

2007년 8월 1일. 부산과의 FA컵 16강전에서 고종수는 2년 1개월 만에 경기에 나섰다. 2005년 7월 10일 수원전 이후 처음이었다. 그 뒤 고종수는 10분(8월 12일 포항전), 22분(8월 19일 인천전), 27분(8월 26일 전북전), 40분(9월 2일) 이렇게 조금씩 출전 시간을 늘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지난 9월 15일 서울전에선 올 시즌 처음으로 선발 출장해 90분 풀타임을 소화했다. 그러나 많은 이들의 눈길을 사로잡은 경기는 앞서 열린 성남전이었다. 그는 그날 ‘고종수는 아직 죽지 않았다’는 사실을 모두에게 증명했다.

“0-1로 지고 있을 때 반전을 바라면서 투입됐죠. 처음에는 잘 풀렸어요. 관중들이 환호해주니까 힘이 저절로 났거든요. 마지막에 역전할 수도 있었는데 좀 어이 없는 상황이 발생하고 말았죠. 물론 그 심판은 못 봤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난 몰랐는데…’가 끝은 아니잖아요. 우리나라 축구가 발전하기 위해선 서로가 발전해야죠. 그날 제가 심판 판정이 잘못됐다고 어필을 많이 했잖아요. 누군가는 그 모습을 보며 아직도 저를 싸가지 없는 놈으로 생각할 지 몰라요. 하지만 모든 선수들에겐 이기고 싶은 욕망이 있어요. 지는 거 좋아하는 사람이 어디 있겠어요. 그러다보니 감정이 자기도 모르게 올라가는 거예요. 게임 끝나면 죄송스럽지만 그래도 경기 중엔 분이 안 삼켜져요. 그래서 성남전 때도 그랬던 것 같아요.”

시련의 고비를 이제 막 건넌 그는 후배 선수들을 위한 진심어린 충고 역시 아끼지 않았다.

“그동안 인생에 대해 많이 배울 수 있었어요. 최고의 자리에도 올라가봤고 최악의 자리까지도 가봤잖아요. 지금도 이 순간에도 과거의 저처럼 방황하는 선수들이 많이 있겠죠. 중요한 건 자기 스스로 잘못됐다는 사실을 느끼고 깨닫는 거예요. 그 전까지는 주체하기가 힘들죠. 어디 가면 사람들이 알아봐주지, 젊고 혈기는 왕성하지, 여자들은 축구 선수라며 다 좋아해주지. 정말 귀신이 끌어당기는 것만 같은 기분이 들어요. 그러니 옆에서 누가 이야기해도 그게 나쁜 건지 모르죠. 그러다 후회할 날이 올 거예요. 옛날에 김호 감독님도 저 불러놓고 많이 야단치고 그러셨거든요. 그래도 제가 끝까지 정신을 못 차리니까 결국엔 포기하고 마셨죠. 그렇지만 보세요. 결국엔 후회했잖아요. 그러니 저처럼 뒤늦게 후회하지 말아요.” 그러나 이렇게 교훈적인 멘트로 끝낼 고종수가 아니었다. “그리고 앞으로 질문은 그냥 직설적으로 하세요. 뭘 그렇게 돌려 말하세요.” 역시나 그의 입심은 10년 전이나 지금이나 여전했다.

오해에 대해 말하다
“나요, 기자들 별로 안 좋아해요. 많이 당했거든요. 가끔씩 기자들이 편하게 이야기나 하자며 만나자고 그랬어요. 그때마다 기사로 안 쓰겠다고 약속까지 하며 말하길래 그 말 믿고 속마음을 있는 그대로 얘기한 적이 많았어요. 그런데 꼭 다음날 제가 한 이야기가 기사로 전부 나오더라고요. 그것 말고도 할 말은 정말 많아요. 대표팀에 있다가 무릎 수술하러 독일 갈 때도 그랬어요. 감독님과 이야기 한 뒤 간 거였는데 다음날 신문 1면에는 ‘고종수 국가대표 퇴출!’이라고 나오더라고요. 가판만 본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하겠어요. ‘쟤 또 무슨 사고 쳤나보다’ 하겠죠. 그냥 ‘수술차 독일행’ 이렇게 써도 되는 거잖아요. 왜 있지도 않은 이야기를 지어내서 쓰고 그러냐고 항의라도 하면 그냥 미안하다는 말로 끝나더라고요. 늘 저에 대한 이야기는 자극적으로 쓰는 것 같아 항상 속상하고 마음이 안 좋았어요. 한번은 1면에 ‘고종수, 기자들 반말하지마!’ 라고 나왔더라고요. 그게 어떻게 된 건 줄 아세요? 어느 날 파주에서 훈련하고 있는데 어떤 기자가 다가와서 ‘내가 야구 담당하다 이번에 축구 쪽으로 다시 왔어. 야, 반갑다’라고 하더라고요. 딱 봤는데 나랑 나이 차이가 별로 안 나 보였어요. 그래서 ‘저 아세요?’라고 물어봤죠. 그랬더니 빨개진 얼굴로 ‘죄송합니다’라고 말하고 가더라고요. 거기서 저는 끝났나보다 생각했죠. 그런데 웬걸요. 다음날 신문 1면에 ‘나한테 반말하지마!’라는 제목의 기사로 제 이야기가 실렸더라고요. 또 그냥 지나치며 1면만 본 사람들은 ‘고종수 또 또라이 짓 했네’ 이럴 거 아니겠어요. 억울할 때가 많았죠.”

물론 고종수가 말하는 ‘억울한 순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요즘도 운동 선수는 운동만 해야 하지 않냐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그럼 공부하는 사람들은 공부만 하나요? 그럴 순 없잖아요. 솔직히 사람인데 어떻게 그래요. 물론 일단 축구 선수니까 축구를 잘해야겠죠. 그렇지만 운동장 밖에서 축구 외적으로 보여줄 수 있는 끼가 있다면 보여주는 것도 나쁘지 않다고 생각해요. 그런데 쉴 때 뮤직비디오 하나 찍었다고 ‘네가 연예인이라도 되냐?’ ‘그 시간에 축구나 하지 이 정신 나간 놈아’ ‘그냥 축구 그만두고 딴따라나 해’하는 반응들은 너무 아쉽고 억울했죠.”

그에게 요즘 젊은 선수들이 큰 제약 없이 광고나 패션화보를 찍는 것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질문이 끝나기가 무섭게 톡톡 뛰는 대답이 돌아왔다.

“미리 다 욕먹으면서 ‘선빵’ 쳤잖아요. 그래서 편한 거죠. 군대 갔다 오셨어요? 지금 가는 애들은 선배들에게 이런 얘기 많이 듣잖아요. ‘지금처럼 군 생활하면 나는 5년도 할 수도 있겠다. 너넨 복에 겨운 거다’라고요. 그 말처럼 제가 운동할 때도 선배들이 참 운동 편하게 한다고 그랬어요. 그때마다 저는 그냥 웃었죠. 지금 후배들에게 ‘나 때문에 너네 편한 거다’라고 말한다면 후배들 역시 제가 그랬듯 그냥 웃기만 할 걸요.”

시련의 나날 속에 꺾인 청춘
“교토 퍼플상가에서 방출 당한 후 수원으로 복귀했을 때, 그때가 제일 힘들었어요. 건방지다고 할 수도 있겠지만 그분이 생각하는 축구와 제가 하고 싶은 축구는 너무 차이가 컸어요. 그때는 미드필드 플레이가 없었거든요. 하지만 만날 뻥뻥하면 보는 사람 입장에서 그게 재밌겠어요? 무슨 만루 홈런 치는 것도 아니고… 우리가 하는 건 야구가 아니라 축구인데 말이에요. 흔히 프랑스 축구를 ‘아트사커’라고 부르잖아요. 저는 우리나라 선수들도 충분히 그렇게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문제는 왜 안하느냐 이거죠. 시합장에서도 충분히 할 수 있는데 그러지 못할 때가 많아요. 그걸 연습장에서 혼자 남아서 해야 하나요? 프로 선수라면 하나의 상품이고 그걸 잘 포장해야지만 소비자인 팬들이 볼 때 ‘괜찮다’는 소리가 나오는 법이에요. 그런데 보통은 ‘그냥 그렇네’라는 반응이 나오잖아요. 그건 ‘안 좋네’보다 더 무서운 거예요. 그런 와중에 제 정신이 그냥 나가 버린 것 같아요. 일단 팀 스타일엔 안 맞지, 그 상황에서 2군 게임 뛰라고 하지, 자존심은 상할대로 상해버렸지, 그래도 열심히 뛰었는데 전반 끝나자마자 바로 교체 해버렸지. 그러면서 정신이 확 나가버렸어요. 쥐뿔로 없는 게 자존심만 센 거죠. 그래서 ‘축구 그만두겠습니다. 좋은 성적 거두십시오’라고 적힌 편지를 감독님 책상 위에 올려 놓고 그냥 팀을 나와 버렸어요. 그러고 나서 호텔에 박혀있었죠.”

그가 자살을 생각한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다.

“글쎄요. 그때는 내가 뭐에 쓰였는지 모르겠어요. 자존심도 많이 상했고 축구에 대한 회의도 느껴졌고요. 그래서 우울증에 시달리다 자살까지 생각했던 것 같아요. 죽으러 영동대교까지 갔다가 그냥 돌아왔지만… 그 이야기는 더 하고 싶지 않네요.”

우여곡절 끝에 다시 팀으로 돌아왔지만 신은 여전히 그에게 평온을 허락하지 않았다.

“당시 숙소생활을 안했는데 구단에서 훈련이 있건 없건 무조건 9시에 와서 6시까지 있으라 고 그랬어요. (길들이기 단계였나요?) 그 단계가 아니라니까요. 거진 완전 아웃된 단계에요. 보통 오전 훈련만 있는 날에도 저는 혼자서 저녁까지 숙소를 지키고 있어야만 했어요. 물론 처음엔 그럭저럭 괜찮았죠. 그런데 한 2주 쯤 지났을까. 짜증이 확 나버리더라고요. 그래서 구단가서 임의탈퇴 시켜달라고 했죠. 그때는 제가 무슨 정신으로 그랬는지 모르겠어요. 아시죠? 원래는 교토 퍼플상가에서 나오면서 FC서울에 가려고 했던 거. 그런데 수원 쪽에서 안 된다며 FIFA에 제소까지 하면서 나를 데리고 갔잖아요. 그렇게 대우할 거면서 도대체 날 왜 데리고 갔는지… 그러다 임의탈퇴는 2대 1로 트레이드로 자연스레 풀렸어요.”

여기서 그가 말한 트레이드는 지난 2005년 1월 자신과 조병국을 묶어 전남에 내주는 조건으로 김남일을 영입한 것을 말한다.

“자존심 많이 상했죠. 그때 관뒀어야 했는데…(웃음). 그런데 사람 일이 다 그런 거잖아요. 위에 있을 때도 있지만 밑에 있을 때도 있는 거고… 그러니 크게 상관 안 해요. 축구 선수는 운동장에서 자기 실력을 보여줘야지 다니면서 ‘나는 누구보다 더 잘해’ ‘나는 어딜가도 누구보다 더 잘할 수 있어’ 이렇게 말하는 건 아무 소용없다 생각해요. 다른 사람들이 운동장에서 뛰는 모습을 직접 눈으로 보고 판단하는 거지 백날 혼자서 말만 하면 뭐해요. 전남에 있을 때도 선수로서 할 건 다했어요. 허정무 감독님이 워낙 스타일이 강하기 때문에 맞춰가는게 힘들었지만 그래도 감독이 원하는 걸 선수는 당연히 따라가는 거니까요. 전남에서 나오게 된 건 애당초 1년 계약이었기 때문에 그런 거예요. 마침 가을 쯤에 발목에 자란 뼈를 제거하는 수술을 하는 바람에 시즌이 일찍 마감된 것 뿐이고요.”

그렇다면 무적(無籍) 상태로 2006년을 보낸 것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까.

“사연이 깁니다. 다른 팀으로 가려고 했는데 마지막에 틀어지는 바람에 못 가게 된 거예요. 마지막에 윗사람이 틀어서 안됐다고 들었어요. 저는 붕 떠버린 거죠. 그래서 2006년을 그렇게 보낸 거예요. 1년 동안 혼자 운동하며 있었어요. ‘이렇게 하면 뭐해’라며 운동 안하고 있다가 ‘아냐, 다시 해야 해’라며 마음 고쳐먹고 다시 운동하고. 그렇게 좀 운동하다 ‘아, 젠장. 하면 뭐하냐고’라며 다시 한탄하고. 그런 생활의 반복이었죠.”

마지막이라는 마음으로
처음 고종수가 대전에 입단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많은 사람들은 ‘과연 잘할 수 있을까?’라는 의문을 던졌다. 시민구단 대전시티즌과 그간 그라운드의 반항아로만 표상되던 고종수와의 조합은 너무나 어울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 그렇게 생각하세요? 저는 대전보다 더 어려운 상황 속에 있다 이곳에 왔어요. 그래서 지금 이렇게 팀에 들어와 운동하고 있다는 사실만으로 너무 좋아요. 무엇보다 대전에서는 다른 팀에서 느끼지 못한 걸 많이 느낄 수 있어 좋고요. (구체적으로 어떤 것들이죠?) 따뜻함? 왠지 맑음? 왜 웃으세요? 진짜에요. 사람들이 다 맑아요. 순수하고 맑고 거리낌 없고. 솔직히 상위권 팀들은 ‘너를 잡아야 내가 산다’라는 인식이 서로들 강해 겉으로만 친한 척하는 경우가 많아요. 그런데 대전은 그런 느낌을 좀처럼 받을 수 없어요. 선수들 간의 끈끈한 정을 이 팀에서 많이 느끼고 있어요.”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좋았던 것은 단지 대전 유니폼을 입었다는 이유만으로 무한한 지지와 격려를 보내준 대전 팬들의 존재였다.

“감사하게 생각해요. 그냥 흘러 지나가듯 감사하다는 게 아니라 진심으로 감사해요. 이 팀에 와서 아직까지 크게 도움은 안됐지만 팬들과 함께 다시 한 번 날고 싶어요. 올 시즌은 준비도 많이 부족했고 감독님도 바뀌는 등 정신 없었지만 앞으로 서로 힘을 더 합쳐야겠죠. 그래서 좋은 모습 보여드릴게요. 꼭 다시 날게요.”
동화 속 네버랜드의 피터팬은 동심을 잃어버린 순간 날지 못했다. 그러나 고종수는 스스로 어른이 되길 거부하며 날기를 거부했다. 하지만 추락하던 순간, 그 마지막 찰나에 그는 깨달았다. 다시 날자고. 마지막으로 꼭 다시 한 번.

물론 아쉽게 그의 비상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 그러나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변치 않는 믿음만이 그를 곧 날게 해줄 것이라는 사실을. 아마도 그것은 지금 우리가 고종수의 부활을 믿고 싶은 가장 큰 이유일지도 모른다.


사진 출처: 오센

이제 더이상 선수 고종수로선 만날 수 없겠지만 축구인 고종수의 삶은 앞으로도 계속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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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청소년대표팀을 시작으로 국가대표팀까지, 각급 대표팀에 빠짐없이 승선하던 그 시절, 서동원의 별명은 ‘프린스’였다. 외모와 실력을 동시에 겸비한 그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별칭이었다. 문일고 재학 당시에는 U-19대표팀의 얼굴로 활약했고 연세대 졸업반이던 1998년에는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깜짝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다. 1997년 12월 K리그 드래프트에선 203명 중 1순위로 대전시티즌에 뽑혔을 뿐 아니라 데뷔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착실히 팀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몇 계단 아래로 내려와 다시 올라가는 날도 많았다”던 그의 말대로 분명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하기야 지난 11년간 갈아입은 유니폼만 벌써 7벌이 아니던가. 그래도 다행힌 건, 그 산전수전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엔 부산에서 다시 한 번 제2의 전성기를 꽃피웠다는 사실에 있었다. 덕분에 2009년, 서동원은 누구보다도 당당한 모습으로 35번째 새해를 맞이했다.

다시 시작하다
“작년 여름 제가 부산으로 이적한 이후로 팀이 달라졌다고 많이들 말씀하세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쉽게 만족하다보면 그 위치에 도태되거나 안주하기 쉬운데, 그러면서 실패를 맛본 경험이 몇 번 있거든요. 그래도 굳이 만족스러웠던 점을 꼽는다면, 성남에서 1년 넘게 자리를 못 잡고 있다 보니 ‘이제는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어요. 그 때문에 부산으로 팀을 옮긴 이후 첫 경기를 앞두고 긴장을 많이 했죠. 물론 황선홍 감독님께선 편하게 하라고 주문하셨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울 순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선수들을 다독이며 뛰다보니 저도 모르게 힘이 붙었고 자신감도 생기더군요. 그런 부분에선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할 수 있겠죠.”

편한 인터뷰를 위해 근황을 물었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답과 함께, 부산에서 보낸 6개월의 시간에 대해 ‘알아서’ 평가까지 내려줬다. 역시나, 그라운드 밖에서도 ‘베테랑’인 서동원이었다.

“조용히 은퇴하는 선수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성남에 있던 당시 김학범 감독님께선 항시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라고 하셨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운동하며 몸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황선홍 감독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죠. 황 감독님께서 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신기하게도 순간 감독님과 마음 맞춰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덕분에 고민 없이 부산까지 내려올 수 있었죠.”

그렇게 그의 7번째 이적이 결정됐고 여기저기서“또?”라는 말도 나왔다.

“작년 12월에 저와 아넬카를 비교한 기사가 스포츠 신문에 실렸더라고요. 팀을 자주 옮겨 다닌 ‘저니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면서요. 누군가는 그 기사를 읽으며 돈 때문에 많이 옮긴 거 아니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지금껏 구단이 원하지도 않은데 이만큼 연봉 달라고 우기면서 운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팀을 많이 옮긴 건 사실이지만 그 중엔 제 뜻과는 상관없이 양 구단의 합의하에 옮긴 적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한 팀에서 오래 뿌리 내린 선수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팀의 레전드로 남는다는 건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꿈이니까요. 본의 아니게 돌아다니다 보니, 지금도 그 부분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더라고요. 올해 완벽하게 FA가 됐지만, 이제는 부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제도에 대한 아쉬움
서문에 밝혔듯 어느새 해가 바뀌어 서동원도 35세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곧 앞선 그의 말처럼 완벽하게 FA가 됐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FA를 얻기 위해선 기간이 필요하잖아요. 또 나이도 필요하고요. 무슨 이야기냐고요? 사실 힘들게 FA자격을 얻어도 프로축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34세가 넘어야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게 되요. 결국 FA라 해도 국내 이적시에는 이적료가 발생하니 FA로서의 메리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하겠죠. 팀을 옮길 때 이적료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히 크니까요. 저 같은 경우엔 올해 드디어 이적료 없는 FA가 됐어요. 그렇지만 그 사실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아요. 이제는 슬슬 선수가 아닌 다른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나이인데, 어느 선수가 지금 이 나이에 이적을 생각하겠습니까.”

프로축구연맹 규약·규정집(2007년 개정판) 제30조 (이적료) 1항은 “FA자격 취득 선수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경우, 양 구단 합의에 의해 양수 구단은 원소속(양도) 구단에 이적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이적료는 연맹이 정한 기준에 맞춰 정해지는데, 산출 공식은 ‘[(現연봉+원소속 구단이 제시한 차기 연봉+이적 구단이 제시한 연봉)÷3]×연령별 계수=’이다. 여기서 연령별 계수는 8(만19세~21세) 6(만22세~24세) 4(만25세~27세) 3(만28세~30세) 2(만31세~33세) 0(만34세 이상)으로 나눠지는데, 나이가 많아질수록 줄어들게 된다.

결국엔 그 숫자가 0이 되기 위해선 35세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말해 35세가 돼야지만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2005년 이후 입단한 선수들은 계약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FA자격을 얻을 시 바로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지만 아직은, 2005년 이전 입단자들이 거개를 차지하고 있는 K리그다.

“3년 전에 처음 FA자격을 얻었어요. 당연히 이적료 없이 팀을 옮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알아보니 FA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구단으로 이적할 땐 연맹이 규정한 산출방법에 따라 이적료가 발생하더군요. 살펴보니 나이에 따라 곱하는 숫자(연령별 계수)가 달라졌는데, 어릴수록 많더라고요. 결국 이적료가 없어지려면 지금 제 나이가 돼야 한다는 말인데, 이 나이에 FA자격을 얻었다고 좋아할 선수는 아마 거의 없을 거에요.”

후배들을 위한 충고
“어린 선수들 중 열에 아홉은 FA 제도에 대해 자세히 모를 겁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처음 FA자격을 얻던 당시 제 나이가 32살이었어요. 당시 연맹에서 규정한 이적료 산출 기준에 맞춰 계산해봤더니 이적료가 10억 가까이 되더군요. 선수에게 주는 연봉을 합하지 않은 금액만 그 정도인데, 쉽게 주머니를 풀 구단은 거의 없었죠. 이 순간에도 ‘1년만 있으면 FA’라고 생각하며 그날만 기다리는 선수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막상 FA가 되더라도 선수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오히려 머리만 아플 뿐이죠. 해결할 방법이요? 아무래도 힘들다고 봐야겠죠.”

서동원은, 아쉬운 마음이 곱절로 커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가 프로에 갓 데뷔할 때만 해도 에이전트가 많지 않아 선수 본인이 직접 구단과 협상을 벌여야만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선수 대신 에이전트가 대리인으로 들어가 계약을 체결하고 있죠. 그렇게 모든 걸 에이전트에게 맡기다 보니 정작 선수 본인은 계약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모를 때가 많아요. 또 ‘에이전트는 직업 특성상 관련 법률에 대해 상세히 알아야 하지만 선수는 그저 축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염려스러운 점은 그러다 보면 나중에 에이전트가 나 몰라라 손을 떼게 됐을 때, 에이전트의 잘못까지 고스란히 선수가 뒤집어 써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다는 거에요. 그러니 규정이 복잡하다고, 계약서 읽기 머리 아프다는 이유로 단순히 넘어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읽고 공부해도 잘 모르겠으면 주변 고참 선수들에게 물어보세요. 다들 아는 한도 내에서 잘 얘기해줄 테니까요.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니 꼭 잘 새겨듣고 참고하길 바랍니다.”


선수로서 풀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법도 했다. 그런데도 서동원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말을 맺었다. 선수와 기자 관계를 떠나 꽤나 감동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프로다운 모습만 보여준 서동원에게 글로써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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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지난해 대전이 보여준 뒷심은 무서웠다. 전반기를 11위(2승7무4패)로 마친 대전은 후반기 ‘8승5패’라는 확 달라진 승률로 6위를 차지하며 6강PO 막차에 올라탔다. 경남 역시 후반기부터 ‘항서매직’이라는 신조어와 함께 돌풍을 일으켰는데, 공격트리오 까보레(18골) 뽀뽀(10골) 정윤성(6골)이 연달아 화끈한 공격력을 선보인 덕분에 정규리그 4위로 일치감치 6강PO행을 결정지었다. 기실 넉넉지 못한 예산 때문에 A급 용병, 혹은 대표급 선수들을 보유하기 어려운 시민구단이다. 그러나 그런 형편 속에서도 시민구단들은 특유의 뚝심과 조직력으로 매 시즌 예상을 뒤엎는 성적들을 올렸다. 리그가 끝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 현재 인천(6위) 경남(7위) 대구(11위) 대전(12위)은 나란히 랭크돼 있다. 올해도 시민구단들의 6강PO 진출은 영 불가능하지만은 않다.

창을 갈다
‘4월은 잔인한 달’이라는 말은 대전에게도 그대로 적용됐다. 3월9일 수원전을 시작으로 4월19일 성남전까지, 대전은 3무3패로 단 1승도 올리지 못한 채 리그 순위표 최하단으로 미끄러졌다. 다행히 5월 들어 상승기류를 타기 시작했다. 대전은 5월11일 부산원정에서 2-1로 승리를 거둔 이후 7월20일 제주전까지 7경기 무패행진을 달렸다. 무엇보다 안정된 수비진 덕이 컸다. 전반기 대전이 기록한 실점은 15실점으로, 수원(10실점) 성남(13실점) 다음으로 적다. 다만, 적게 내준 만큼 적게 넣었다게 문제다. 전반기 동안 대전은 11골을 기록하는데 그쳤는데, 이는 14개 팀들 가운데서 가장 적은 수치다. 결국 부족한 골 결정력이 대전을 ‘10위’에 묶은 가장 큰 이유였다. 지난해 공격을 책임졌던 브라질 삼총사 데닐손(14골) 슈바(8골) 브라질리아(3골)가 합작한 골은 모두 25골로, 대전이 기록한 전체 34골 중 자그마치 74%나 차지한다.

그러나 이들은 2008시즌을 앞두고 모두 적을 옮겼고, 그들을 대체하기 위한 새로운 용병농사는 유난히 박복했다. 까스톨 에드손 등 야심차게 영입한 대포들은 성능불량으로 판명돼 짐을 싸야만 했고 그중 에릭은 다행히 잔류에 성공했으나 단 2득점에 그치며 한숨을 낳았다. 그 때문일까. 후반기 대전의 전력보강은 ‘창’에 집중됐다. 우선 브라질 세리에A에서 경기 당 0.9 공격포인트를 기록한 ‘골잡이’ 바우텔과 K리그 4년 차 용병 셀미르를 영입했다. 여기에 김형일을 포항에 내주는 대신 권집을 데려와 고종수의 뉴파트너로 맺어줬다. 권집으로 하여금 중원을 강화시켜 고종수의 활동 폭을 좀 더 넓고 자유롭게 만들겠다는 복안이다. 그러나 그 대가로 내준 수비의 핵 김형일의 빈자리를 어떻게 채울지는 아직 오리무중인 상태다. 이동원과 민영기를 제하면 눈에 띄는 센터백 자원이 없는 대전으로선, 트레이드로 인한 공백을 메울 대안이 필요하다.

공격축구의 결말은
지난해부터 K리그에 불기 시작한 화두는 다름아닌 ‘공격축구’. 올 시즌 대구가 보여준 축구가 꼭 그러했다. 대구는 전반기 동안 성남 다음(35골)으로 많은 득점(31골)에 성공하며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였다. 비록 팀의 주포 루이지뉴가 떠난 뒤 영입한 알렉산드로와 조우실바가 정규리그 무득점으로 기대만 못한 모습을 보여줬으나, 다행히 이근호(9골) 장남석(8골) 에닝요(6골)가 고루 활약하며 화력에 힘을 실었다. 공격본능은 비단 공격수들만의 것이 아니었다. 수비수 황지윤은 3월16일 부산전에서 2골을 넣는 ‘원맨쇼’로 ‘전원공격’의 진면모를 보여줬다. 그러나 많이 넣었지만 또 많이 내주는 바람에 리그 최다 실점(37골) 팀이라는 멍에도 썼다. 대전과 반대다.


게다 수비수들의 잦은 부상도 눈에 밟혔다. 양승원과 윤여산, 조홍규가 연달아 부상으로 이탈하는 바람에 미드필더 진경선이 수비라인까지 내려오는 등 수비진 운용에 다소 어려움을 겪었다. 이것은 결국 7월5일 성남전(4실점)과 7월12일 경남전(4실점)에서 대량실점을 하게 된 계기가 됐고 대구는 9위로 하락하며 중상위권 경쟁에서 한발자국 밀려나고 말았다. 그 때문에 변병주 감독은 휴식기동안 수비수 보강에 초점을 맞췄다. 성남에서 기회를 잡지 못하고 있던 수비수 김종경과 외인 수비수 레안드로를 영입했다. 최근엔 윤여산이 부상에서 회복, 팀에 합류했다는 반가운 소식도 들린다. 6강PO 진출이 목표인 대구로선 공격력 못지 않게 수비조직력을 탄탄히 쌓는 게 가장 큰 관건이겠다.


그늘에서 벗어나
시즌 초 경남FC의 선전을 예상하는 전문가는 없었다. 지난해 돌풍의 주역들인 박항서 감독, 뽀뽀, 까보레가 자리를 옮겼고 주전 골키퍼 이정래마저 군입대로 팀을 떠났기 때문이다. 개막전에서 대구를 상대로 무려 4골을 몰아치며 첫 승에 성공했지만 광주, 수원에게 연달아 덜미를 잡히며 불안한 행보를 보였다. 그러나 다행히 7월 한 달 동안 무패행진을 이어나간 덕분에 6위(6승3무6패)로 전반기를 마감하며 6강PO 경쟁팀 명단에 당당히 이름을 내밀었다. 이러한 결과 뒤에는 무엇보다 이광석과 박재홍 두 노장의 공로가 컸다. 이광석은 주전 골리 이정래의 군입대 공백을 무난히 메웠고 박재홍 또한 체력저하로 예전만 못한 모습을 보여준 산토스의 빈자리를 채웠다.

그러나 이번 시즌 경남이 거둔 일대 수확은 뽀뽀와 까보레, 두 외인 공격수의 그늘에서 벗어났다는 사실에 있다. 두 공격수와의 작별은 초반 전력에 반짝 영향을 미치는 듯 보였지만 결국 서상민 김영우 인디오 등 미드필더들의 적극적인 공격가담을 유도하는 계기가 됐다. 여기에 돌아온 골잡이 김진용이 공격의 중심을 잡아주고 있고 늦깎이 신인 김동찬도 공격포인트를 늘려가고 있다. 그런 가운데 최근 경남은 창끝을 더욱 날카롭게 갈았다. 새 용병 공격수 알미르와 브라질 유학파 출신의 공격형MF 이상민, 날개 공격수 박윤화를 영입, 공격자원을 한층 강화시킨 것이다. 그러나 지나치게 창에만 신경 쓴 나머지 상대적으로 방패에는 소홀히 한 경향이 없지 않다. 역시나 문제는 수비인데, 이상홍 산토스 박재홍을 제외하면 현 경남의 스쿼드에서 믿음직한 수비자원을 찾기가 어렵다. 남은 후반기 경남의 발목을 잡을 불안 요소로 작용할 가능성 또한 배제할 수만은 없다.

중원을 장악하라
지난 시즌 ‘고난의 행군’ 끝에 아쉽게 6강PO 티켓을 놓친 인천은 잉글랜드 유학을 마친 장외룡 감독과 함께 ‘인내 희생 노력’의 정신으로 새 시즌에 임했다. 일단 분위기는 좋았다. 드래프트를 통해 안재준 안현식 이호진 등 가능성 있는 신인들을 대거 영입한 것도 큰 힘이 되었다. 그러나 초반 3연승으로 돌풍을 일으키는가 싶었지만 이후 서울 울산 수원 등 강팀들과의 경기에서 내리 패하며 7위로 내려앉고 말았다. 물론 그 와중에 결실은 있었다. J리그에서 임대복귀한 ‘미운오리새끼’ 라돈치치가 전반기 10골을 터뜨리며 ‘백조’로 거듭났기 때문이다. 라돈치치는 어느새 2005년 13골을 터뜨렸던 한 시즌 최다 골 기록에도 근접했다. 한 마디로 개과천선이다.


여기에 출장정지 징계가 풀린 방승환도 그라운드로 돌아왔다. 휴식기 동안 파이터형 수비수 이정열이 성남으로 떠났지만 임중용 김영빈 안재준 안현식 등 기존 선수들이 무난한 활약을 보이고 있기에 전력공백은 없을 전망이다. 그런 인천에게도 고민은 있다. 후방에서 전방으로 연결되는, 단조로운 긴 패스 위주의 공격이 여전하다는 사실 말이다. 미드필더진에 대한 아쉬움이 일어나는 것도 바로 그 때문이다. 이준영 김상록 보르코 등 측면 자원들이 활발히 움직이며 매듭을 풀어주고는 있으나 한계가 있어 보인다. 2005년 당시 중원에서 아기치가 보여준 활약 그대로를 십분 기대하는 것은 아니나 6강PO 진출을 위해서라면 앞으로 미드필더들의 분전이 좀 더 필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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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8컵대회 포항과의 준결승전이 끝나고 믹스트존에서 만난 배기종은 “오랜만이에요”라는 인사와 함께 웃었다. 사실 배기종과 난 만나면 참 격없는 기자와 선수 사이다. 2년 전, 어리버리했던 기자와 또 역시 갓 프로에 뛰어 들어 어리버리했던 신출내기 선수는 인터뷰를 이유로 처음 만났다. 당시 배기종과의 인터뷰를 위해 서울에서 대구까지 내려가는 강행군을 했어야했는데, 내가 식사도 못한 채 자신을 만나러 왔다는 사실을 알고선 참 많이 미안해했다. 굳이 그러지 않아도 됐건만 그는 인터뷰 내내 “배 안 고프세요?” “안 피곤하세요?” 그렇게 부러 안부를 묻던, 참 착한 청년이었다. 배기종은.  


2005년 겨울 그를 부르는 프로팀은 어느 곳에도 없었다. 간신히 대학시절 감독님 소개로 대전시티즌에 입단할 수 있었다. 번외지명, 그러니까 지명 외 선수로 들어간 그에게 매달 쥐어진 돈은 85만원에 불과했다. 그 적은 돈으로 뭘 할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건만 그는 국민연금까지 낸다며, 국민연금공단 아가씨가 “배기종 선수, 내년에는 연봉 올려서 다른 선수들처럼 연금 많이 내세요”했다며 하하 웃었다. 그만큼 참 심성이 맑은 선수였다.

전반기만 해도 대전시티즌에서 그가 보여준 모습은 여타 신인들 사이에서 단연 도드라졌고 신인왕 No.1으로 꼽힐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올스타전 이후로 배기종의 컨디션은 점점 하향곡선을 그렸다. 골은 침묵하기 시작했고 모 구단과의 사전접촉과 태업파문에 얽히는 것으로 모자라 결국 임의탈퇴까지 당하고 말았다.

그래도 잘될 거라고 믿으며 희망의 끈을 놓지 않았던 배기종은 다행히 맞트레이드 형식(황규환 +조재민)으로 수원에 입단하게 되었고 대전과의 개막전에도 인상깊은 모습을 보였다, 쏟아지던 빗속에서 거침없이 골문을 향해 드리블하던 오른쪽 날개 배기종의 모습을 어찌 잊을 수 있으랴. 물론 그 이후 크고 작은 부상들로 인해 1군과 2군을 오갔지만 결국 배기종은 컵대회 결승전에서 보란 듯이 해냈다.

그 멋진 슛을 모두에게 보여주기 위해 그렇게나 결승전 때 꼭 오라고 했나보다. 전반 11분 전남 풀백 유지노를 등진 채 돌며 터뜨린 선제골은 그날의 베스트골로 선정되기에 모자람이 없었다. 후반 33분 터진 에두의 결승골도 시작은 특유의 날랜 드리블로 오른쪽 측면을 무너뜨린 배기종의 발끝에서였다.

경기 후 MVP로 선정돼 잔뜩 긴장한 채 어쩔 줄 몰라 하던 그 모습을 보며, 배기종의 어머니는 얼마나 기뻐하며 눈물을 흘릴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하여 2년 전 배기종과 처음 만나 인터뷰 했던 그날의 녹취록을 블로그에다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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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힘드시죠?” “피곤하시겠어요.” “저 때문에 고생하시는 거 아니에요?” 인터뷰 내내 배기종이 제일 많이 했던 말이다. 그렇다. 이제 막 프로무대에 선 그는 모든 것이 조심스러웠다. 질문에 답할 때도 한참을 생각한 뒤 천천히 자신의 생각을 말했다.

“요즘이 제일 기쁘고 가장 행복해요. 고등학교, 대학교 시절에는 기뻤던 적이 별로 없었거든요. 지금 이렇게 잘되라고 그때 많이 힘들었나봐요.”

살짝 미소 짓는 얼굴에서 숨겨놓았던 슬픔이 묻어났다.

아버지. 이제는 담담하게 부를 수 있는 그 이름, 아버지. 오늘처럼 따뜻했던, 막 열한 살이 됐던 어느 봄날, 아버지는 가족 곁을 떠났다. 그리고 아버지의 부재와 함께 배기종의 축구인생도 시작됐다. 그런 아들을 위해 어머니는 뒤늦게 야식일을 시작해야만 했다. 어린 기종이 새벽운동을 나갈 때 어머니는 하루 일을 마치고 집으로 돌아왔다. 어깨 위론 긴 밤 고단함을 켜켜이 쌓은 채로.

그때 배기종은 결심했다. 어른이 되야겠다고. 내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하루 빨리 어른이 되야겠다고. 그 뒤론 얼마 안 되는 용돈을 쪼개고 모아 축구화를 샀고, 어머니의 단잠을 위해 오후에는 전화조차 하지 않았다. 어머니의 눈물을 처음 봤던 열여섯 어린 나이에 이미 세상을 다 알아버린 아이. 그때부터 오직 어머니를 위해 공을 찼던 아이, 배기종. 그리고 지금, 어머니를 위해서라도 빨리 어른이 되길 기도하던 그 아이는 어느덧 대전을 빛내는 별로 자랐다.

배기종, 그는 매일 그라운드 위에서 희망을 쏜다. 그렇다. 그의 발끝에서 터지는 것은 골이 아니다. 그것은 분명, 희망이다.

-작년 한해 마음고생이 심했다고 들었습니다.
제 축구인생이 그래요. 잘 하다 갑자기 뚝 떨어지고 기복이 심한 편이에요. 대학 1학년 때는 잘했어요. 게임 때마다 좋은 모습 보여줬고 그래서 늘 자신감에 차있었어요. 그런데 4학년 때 동계훈련이 거의 끝날 무렵, 종아리 근육이 파열되는 부상을 입었어요. 다행히 11월에 마카오에서 열린 동아시아대회 대표에 뽑혔지만, 1분도 뛰지 못했어요. 그런 모습을 보여 참 많이 속상했어요. 사실 처음 대학에 왔을 때만 해도 어느 정도 자신감이 있었거든요. 늘 자신감을 갖고 있었는데 그렇게 되니 제 자신이 원망스러울 지경이었어요.

당시 드래프트 결과를 전화로 듣고 핸드폰을 껐죠. 혼자 하루 종일 이곳저곳을 돌아다녔어요. 그날 눈도 많이 왔는데. 다음날 코치 선생님께서 “괜찮으니까 다시 잘 하라” 는 이야기를 듣고, 마음잡고 고등학교에서 운동하기 시작했어요.

드래프트 당시 어떤 팀에서도 저를 뽑아주지 않았을 때, 주위 많은 사람들은 “걱정하지 마라. 넌 꼭 갈 수 있다” 라고 말해줬어요. 물론 그때마다 ‘이렇게 속이 바싹바싹 타는 기분을 알까?’라는 생각이 들었죠. 많이 힘들었어요.

-프로진출이 잘 풀리지 않았을 때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없었던가요.
초등학교와 달리 중학교부터는 ‘축구부 회비’ 라는 게 있어요. 그런데 가정형편상 회비를 낼 수가 없었고, 그래서 중학생이 되면서 축구부를 그만두려고 했어요. 그때 다행히 중학교 코치 선생님께서 면제를 해주셨고, 그 덕분에 계속 할 수 있었죠. 그때부터 쭉 고 1때까지 면제 받았어요.

중학교 3학년 당시 운동하면서 많이 맞았어요. 어린 마음에 그게 싫어 3학년 초에 친구 한명과 팀을 나왔어요. 나중에 어머니께서 “제발 다시 운동하라” 고 하셨고 코치님께 “용서해주고 다시 받아 달라” 며 우셨어요. 그때 이후로는 한 번도 그만두거나 도망간 적 없어요. 고등학교 2학년 시절에도 이유 없이 형들에게 맞고 그랬지만 단지 맞는 게 싫다는 이유로 그만두는 것은 바보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꾹 참고 계속 운동했죠.

그 때문에 고등학교에서 후배들과 운동하며 지난 12월 한 달을 보낼 때도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은 전혀 하지 않았어요.

-그래도 이제는 후배들에게 희망이자 귀감인 선배가 됐네요.
아직은 아니에요. 이제 겨우 시작인데요. 작년 12월 한 달 동안 고등학교 후배들과 같이 운동하면서 많이 친해졌죠. 그 때문에 나중에 연습생으로 프로에 가고 나서도 후배들이 신경 쓰였던 것이 사실이에요. 지금도 종종 후배들에게 연락이 와요. 용품 달라고 할 때마다 준다고는 하는데 막상 크게 줄 게 없어, 요즘은 그게 참 미안해요.

-축구는 어떻게 해서 시작했나요?
초등학교 4학년 때 감독님이 절 찾아왔어요. “축구 잘한다고 소문났는데 축구부 들어올 생각 없냐”고 물어보셨죠. 그 시절 제가 본 축구부는 매일 맞고 뛰는 이미지밖에 없었어요. 그래서 ‘축구부 같은 거 하면 안 되겠다’ 는 생각이 들어 거절했죠. 그런데 저희 외삼촌이 축구를 정말 좋아하시거든요. 제게 축구 해볼 생각 없냐며 권유하셨고, 마침 그때가 학교에서 축구부원을 뽑는다며 무작위로 아이들을 뽑아 축구부에 넣을 때였거든요. 선생님이 일부러 그랬는지는 몰라도 그 중에 저도 있었어요. 그렇게 축구부에 들어갔고 자연스럽게 축구를 시작하게 됐죠.

-어머니 홀로 힘들게 배기종 선수와 여동생을 키웠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초등학교 4학년 때 부모님이 이혼하셨어요. 그때부터 어머니는 외삼촌이 하시는 야식집에서 일하세요. 밤새 음식 만드시다 매일 새벽에 들어오는데도 혹 제가 신경이라고 쓸까봐 한 번도 힘든 내색 하지 않았어요. 그 때문에 학교에서 운동하다 무슨 일 때문에 집에 전화하려해도 어머니 주무시는 거 아니까 전화를 못 걸 때도 많았고요.

아버지하고는 연락이 안돼요. 고등학교 때는 몇 번 찾아오셨는데 어느 순간 안 오시면서 연락이 끊어졌어요. ‘프로에 와서 내가 잘 되면 아버지께서 연락하시지 않을까?’ 라는 생각역시 한 번도 해보지 않았고요. 아버지가 찾아오시면 만날 수야 있겠지만 전처럼 좋아질 수는 없을 거라고 생각해요. 전 그저 ‘꼭 성공해서 어머니 호강시켜드리자’ 는 생각뿐이에요.

프로 첫 데뷔전을 마치고 MVP를 탔어요. 어머니께 부상으로 받은 100만원 상품권을 드렸죠. 마침 그때가 어머니 생신이었거든요. 특별한 것을 준비 못해 그걸 선물로 드렸는데 어머니께서는 뭘 이런 걸주냐며 앞으로 더 열심히 하라고 고맙게 받으셨어요.

요즘은 “경건해져라” 는 말씀을 많이 하세요. 매스컴에서 제 이야기가 종종 나오는 것에 자만하지 말고 열심히 하라고 하세요. 참, 밥 잘 먹으라는 말씀도 많이 하세요. 밥을 많이 먹어야 힘이 난대요. (웃음)

-어떻게 프로에 적응 중인지 궁금합니다.
어머니를 비롯해서 많은 사람들이 ‘가서 잘하면 더 좋은 기회를 만들 수 있을 것’ 이라고 충고해주셨어요. 첫 연습게임 때 포워드로 뛰었는데, 지켜보시던 최윤겸 감독님이 안 되겠다며 미드필드로 내려가라고 하셨어요. 그때부터 미드필더로 뛰게 됐는데, 처음 보는 자리라 힘들었어요. 지금도 힘들지만 그때는 더 힘들었죠.

사실 대학 때는 오는 공만 받고, 만들어주는 것만 해결했거든요. 그런데 지금은 제가 패스도 줘야하고 더 많이 움직여야하고, 지금도 그런 게 완전히 익혀지지 않은 상태라 아직은 힘든 게 사실이에요. 솔직히 아직까지 가끔 헤매기도 해요. 그럴 때마다 감독님이 잡아주시고 가르쳐주세요. 다들 알고 계시지만 감독님 참 좋으신 분이에요. 보잘 것 없는 상태로 왔는데도 저를 믿어주시고 이렇게 기회까지 주셨어요. 그래서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배우고 있어요.

참, 데뷔전 때는 체력안배를 잘못해 숨 쉬는 게 힘들었어요. 그때 정말 ‘이래서 프로무대가 높다는 말을 하는구나’ 하는 생각을 했고요. 지금은 그래도 많이 적응한 것 같아요. 그리고 무엇보다 말이 많이 늘었어요. 첫 게임 때 처음으로 인터뷰를 하는데, 제가 할 말은 다하더라고요. 저도 놀랐어요. 그렇지만 지금은 그때보다 늘은 것 같아요. 다행이죠(웃음).

-그러고 보니 데뷔전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지난 2006년 3월15일 부산전 때 데뷔하며 골까지 기록하셨죠?
마음의 준비는 하고 있었지만 막상 경기에 투입돼 뛰는데 정말 깜짝 놀랐어요. 와, 힘든 거예요. 호흡이 내려갈 생각을 안하더라고요. 얼마 뛰지도 않았는데 말이에요, 당황했죠. 골 넣고 나서도 너무 힘들었어요. 형들도 제가 헐떡헐떡 숨 쉬는 것 밖에 안보였대요. (웃음)

그때 데뷔전은 정말 운이 좋았던 것 같아요. 그날 밤 혼자 누워서 이게 운일까, 실력일까, 생각했어요. 오늘 있던 일이 진짜였을까, 다시 떠올려보기도 했고. 골을 넣었다는 사실에 기뻐 잠이 안온건지 모르겠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어요. 그날 새벽 2시까지 잠 못 이룬 채 멀뚱멀뚱 천장만 바라보고 있었어요.

데뷔전 이후 ‘힘들게 프로에 왔지만 열심히 하니까 나도 되는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됐어요 그때부터 자신감이 많이 생겼죠. 형들이 그래요. “너는 게임이 안 풀리면 무조건 들어간다. 그러니까 항상 들어간다는 생각을 가지고 몸을 만들어라.” 계속 열심히 하다보면 좋은 모습 보여줄 수 있을 것이라고 믿어요.

-올해 세운 목표가 있다면요.
처음 프로에 왔을 때 (강)정훈이 형이 해주신 말씀이 생각나요. “네가 못해서 연습생으로 들어온 게 아니니까 열심히 해. 열심히 하면 잘될 수밖에 없어.” 그 말씀이 맞는 것 같아요. 물론 프로에서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에요. 다들 경기에 나가기 위해 치열하게 싸우고 있어요. 그 속에서 저 역시 항상 배우는 자세로 꾸준히 노력하고 싶어요. 쉽게 오지 않았잖아요. 어렵게 온 만큼 더 열심히 해서 경기장에서 좋은 모습 보여드리고 싶어요. 처음 프로에 왔을 때 세운 다짐들 기억하며 뛰고 싶어요.

-마지막으로 K리그를 사랑하는 팬들에게 한 말씀해주세요.
언젠가 (이)관우 형이 잡지 인터뷰에서 그랬어요. "오래 기억에 남는 선수가 되겠다" 고. 저도 꼭 그랬으면 좋겠어요. 모두의 기억에 오래도록 남는 선수가 됐으면 좋겠어요. 그런 선수가 되기 위해 항상 노력할 테니 이제 막 시작하는 저에게 많은 관심과 충고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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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젠가 배기종이 내게 했던 말, 2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나는 말을 마지막으로 긴 글을 마칠까 한다.

“어머니께서 늘 말씀하세요. 항상 겸손하라고. 이제 막 시작인 아들이 프로무대에서 자칫 흔들릴까봐 걱정되나봐요. 매일 기도하고 있으니까 열심히 하라고만 하세요. 어머니 말씀 새기면서 스스로에게 다짐하고 또 다짐해요. 자신감을 갖고 하자. 그리고 처음처럼, 처음 그 마음 잊지 말고 열심히 하자. 아직 부족한 것들, 스스로가 잘 아니까 주변에서 들려오는 말들 신경쓰지 않고 계속 열심히 할 생각입니다.”

참, 착한 아들 배기종은 컵대회 MVP 소감을 묻자 수요예배 때문에 경기장에 못 나오신 어머니가 제일 많이 생각났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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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최윤겸 감독님께서 멀리, 터키로 떠나셨습니다. 터키 2부리그에 있는 “카이크루 리제스포르”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클럽에서, 앞으로 코치로 계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부터 외국에 떠날 채비를 하신다길래 저는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으로 떠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먼 나라로 가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작년 이맘 때 쯤, 대전 숙소를 방문했던 그날 저녁이 생각나는군요. 저녁 식사 후 감독님은 저를 숙소 뒤편으로 데려 가셨죠. 숙소 뒷편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는 찰나에 선생님의 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감독님께서는 이걸 보여주시기 위해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가신 거였더군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감독님을 올려다보며 웃었습니다.

“저게 그 비바 K-리그에 나왔던 그 토끼들이군요.”
“그렇죠. 참 예쁘죠?”
“네. 감독님께서 직접 먹이 주시면서 키우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렇죠. 얘네들이 어느덧 새끼까지 낳고 이렇게 늘었네요.”
“자식처럼 잘 키우셨어요.”
“그런데 내 자식 같은 우리 대전시티즌 아이들은 한 번도 토끼를 보러 안 오네요.”
“정말요? 한 번도 안와요? 그래도 한번은 올 수 있을텐데… 아쉽네요.”
“원래 그때는 하나만 보게 돼있어요. 당장 경기 나가서 이기는 게 중요하니까. 나 역시 그게 아쉽죠.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보면 좋으련만. 삶의 여유를 갖는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을텐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걸 모르네요. 물론 하나에만 모든 걸 바치면서 뛰고 있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요.”
“언제까지 그렇게 사는 거죠? 영원히 안 바뀌나요?”
“바뀌죠. 선수 생활이 끝나면 다들 바꿔요. 그런데 그때 바뀌는 건 너무 늦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으면 좋으련만.”
“저도 가끔 그런 생각 하는데. 감독님도 그런 생각하셨군요.”
“감독님이 우리 애들 많이 도와주세요. 하나만 아는 녀석들이니까. 옆에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요. 부탁해요.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니까.”
“감독님이 부탁 안하셔도 감독님 밑에서 자라는 선수들이니까 분명 감독님 마음 다 알 거예요. 제가 아는 대전시티즌은 그런 팀이에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그런데요, 저 오늘 숙소 처음 와봤는데 주위 풍경들이 참 좋아요. 선수들은 다들 피 끓는 청춘이니까 시골 구석에 있다고 투덜댈 수도 있겠지만, 음… 뭐랄까? 시골에서 살던 어린시절이 생각나요. 무척 아늑하고 편안해요.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한테 국곡리에서 살자 그럴까봐요. ^^”
“가끔 오면 좋지 만날 있어봐요. 젊은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요.”
“아닌데요. 풀 냄새, 나무 냄새, 꽃 냄새… 너무 좋은데요. 여기 온지 겨우 1시간 밖에 안됐는데 벌써 정들었어요.”
“허허허.”

그날, 저녁바람은 참 따뜻했어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고 주홍빛으로 물든 햇볕은 은은하게 감독님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죠. 우리 아빠 같던 감독님의 그 인자한 웃음이 좋았고 바람에 실려 오던 자연 냄새가 좋았어요. 기분 좋게 마른 나무 냄새 또한요. 그렇게 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그 바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날의 기억을 모두 담고 있는 그 바람을 어찌 잊을까요.

인터뷰를 마친 뒤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에 찾아갔을 때 감독님은 홀로 누운 채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어요. “기자님,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언제나처럼 존댓말로 제게 먼저 인사해주시던 감독님의 그 인자함에 저는 또 한 번 감동 받았죠.

그날 밤, 숙소를 나오던 제 머리 위로는 수많은 별들이 은가루를 뿌리며 떨어지고 있었고 제 마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국곡리의 밤하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속삭였죠. 아주 오랫동안 말이에요. 그 순간, 개골개골 우렁차게 울어대던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는 어찌나 씩씩하던지요.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던, 최신 인기 가요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어느 선수의 흥겨운 목소리는 또 어떻고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감독님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지금도 그날 저녁의 기억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드렸을 때 감독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잘하면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늘 따뜻한 시선으로 봐달라고 말이죠. 무엇보다 격려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마지막까지 말씀하셨죠.

작년 이맘 때 쯤 감독님의 둘째 아드님이 SM에서 가수 준비 중인 ‘연습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팬들은 제게 “우리 감독님을 닮아 너무 멋지다”고 제게 말했죠. 늘 말로만 듣던 둘째 아드님이 이제 샤이니의 ‘민호’로 모두에게 알려지고 있군요.

터키로 떠나시기 전, 아들들에게 좋은 또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던 감독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감독님은 대전을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늘 멋진 아버지라는 사실, 부디 잊지 마세요. 제게도 감독님은 존경하는 또 다른 아버지이시니까요.

이제는 가요프로그램을 보는 순간에도 감독님이 생각날 듯합니다. 모쪼록 건강히 그곳에서 또 다른 축구인생을 펼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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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바쁜다는 핑계로 늘 가지 못한 대전 홈경기. 어린이날 휴일을 맞이하여 큰 마음 먹고 갔답니다. 역시나 대전은 늘 제가 갈 때마다 패배를 기록하는군요. ㅠㅠ 작년에도 제가 안가는 날만 골라 승리를 하는 바람에 지인들은 늘 제게 대전에 오지 않는 것이 대전을 진정 위하는 길이다, 라고 놀려대곤 했는데... 올해도 그럴 줄은 몰랐습니다.



황병주 선수의 선제골을 너무 일찍 터지는 바람에 후반전에도 가슴 졸이며 봤는데, 역시나 경남에 연속골을 허용하며 결국 또 패하고 말았습니다. 경기 종료 후 카이스트에 들려 대전 팬인 매튜를 만났는데 경기 결과를 전해주자 "또 졌어? 맙소사!"라며 속상한 표정을 짓더군요. 하지만 다음에는 꼭 이길 수 있겠죠. 작년 팀 100승에 이르는 길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기억해보세요. 뭐든 쉽게 얻어지는 것은 없으니까요. 개인적으로 김호 감독님의 200승은 꼭 홈에서 이뤄졌으면 좋겠습니다.


"그냥 열심히 했습니다." "동료 선수들 덕분입니다." 기자들은 이렇게 대답하는 선수들을 싫어한답니다. ^^;;; 열심히 하지 않은 선수가 어디있겠으며, 팀 스포츠라는 특성 탓에 동료 선수들 도움 없이 뛰는 선수가 어디있을까요. 질문에 작은 일화를 구체적으로 밝히는 선수를 좋아하는데 이날 김영우 선수가 그랬답니다.

롤 모델은 "자기 자신"이라며 올해 "김영우라는 이름을 알리고 싶다"고 밝힌 당찬 소감도 참 멋졌습니다. 골 넣으면 아이팟을 사주겠다는 팀 동료 김근철 선수의 이야기도 재밌었고 점심 식사 도중 "내가 골을 넣으려는데 네가 가로채서 골을 넣었다"며 "꿈은 반대니까 내가 넣겠다"던 이지남 선수 이야기도 모두 웃으며 잘 들었답니다. "200승 제물이 되면 평생 안고 간다. 고로 우리 꼭 파이팅해서 이기자"던 팀 고참 공오균 선수의 이야기도 상당히 좋았고요. 멘트 하나 하나가 다 기사감이라 오랜만에 '달변'인 선수를 만났다고 다들 칭찬이었답니다.


고경준 선수가 늘 "잘생긴 우리 영우 형"이라며 늘 의지하고 기대던 선수였던지라 그날 후반 교체 투입 당시부터 눈여겨 봤는데, 제 앞에서 프로 데뷔골까지 터뜨려 참 깜짝 놀랐답니다. 처음엔 경기에 투입됐다는 사실만으로도 신기하게 생각했는데 말이죠.

감독님과 기념사진을 찍고 들어서려는 그에게 고경준 선수의 안부를 물었습니다. 2군 경기에서도 보이지 않고 컵대회 수원전에 이어 정규리그 대전전까지 2경기 연속 엔트리에 빠진 상태라 몸 상태가 걱정됐거든요. 부상을 당한 거냐는 질문에 그냥 몸이 좀 안좋다는 대답이 돌아왔습니다. "자세한 건 경준이한테 전화해서 물어보세요"라고 말하며 그는 라커룸으로 들어갔지요.

하지만 우리는 전화로 몸 상태를 물어볼 수 있는 사이가 아닌걸요. 다시 복귀하면 기록지를 통해 알 수 있겠죠. 그는 강한 사람이 되고 싶다고 스스로에게 늘 주문을 거는 사람이니까 다시 그라운드에 씩씩한 모습으로 나타날 수 있겠죠.


KBSN과 MBCESPN과의 연이은 인터뷰. 그리고 조광래 감독님과도 기념촬영을. 이날은 정말 김영우 선수의 날이었어요. ^^ 마침 4개 방송사가 생중계를 했던 날 종료 20초를 남기고 역전골을 터뜨리다뇨.

개인적으로 저는 대전을 아주 많이 좋아하는 사람인지라 역전골이 터졌을 때 조금 속상했답니다. 그러나 그 골의 주인공이 김영우 선수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그동안 고생을 견디며 열심히 뛴 선수의 프로 데뷔골이므로 축하해줘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죠.

이날 인터뷰 내내 잔뜩 상기된 표정으로 입가에서는 미소가 사라지지 않는 그 모습을 보며 참 많이 기쁜가보다, 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무엇보다 이렇게나 많은 기자들 앞에서 자기 생각을 척척 말하던 김영우 선수의 모습은 정말 인상적이었답니다.


동점 프리킥골의 주인공 김동찬 선수. 정말 깔끔한 곡선을 그리며 대전 골문 안으로 들어갔지요. 종료 20초 전 역전골을 어시스트하기도 했는데요 김영우 선수의 골이 워낙 인상적이라 '1골1도움'라는 기록이 약간 바래진 감이 있지요.

저는 이날 김동찬 선수의 플레이를 처음 봤는데요, 작은 키에도 불구하고 중앙공격수로 출전하여 참 열심히 뛰더군요. 올 시즌 경남은 지난 해와 달리 공격수들을 국내파로만 꾸리고 있습니다. 서상민 선수가 최근 눈에 띄기는 하나 김진용 선수, 정윤성 선수는 그간 보여줬던 활약에 비해 다소 부진한 감이 없지 않아 있죠. 김동찬 선수. 이제 이름을 확실히 기억할 수 있겠군요. 앞으로도 지켜보겠습니다.

참. 첫 인상은 약간 체조 선수, 혹은 역도 선수 같았답니다. 다부졌거든요. ^^


늘 예쁜 말, 고운 말만 해주는 황병주 선수. 저를 볼 때마다 항상 먼저 고개 숙이는데 너무 예의바른 그 모습에 저도 늘 아, 네, 하며 고개를 푹 숙이고 맙니다. 동료들과 있을 때는 재밌을 것만 같은데 저를 볼 때만 늘 조근조근 조용하게 말한답니다.

지난 울산전에 복귀전을 치렀다고 하는데 그 경기는 제가 보지 못하여 이날 경기가 제게는 복귀전으로 각인됐습니다. 보통 경기 시작 전에는 선수들과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 편인데 이날은 이상하게 황병주 선수와 이야기를 나누게 됐지요.

여전히 그는 뽀얀 피부를 자랑하고 있어서 축구 선수가 무슨 피부가 이렇게 하얗냐며 구박하기도 했죠. ^^ 자리에 돌아와 언니들에게 황병주 선수 이야기를 들려주는데 신기하게도 그때 골을 넣더군요. 기쁨을 주체하지 못한 채 동료 선수들과 그라운드 위에서 '나뒹구는'는 모습이 상당히 인상적이었습니다. 김형일 선수가 달려가 껴안고 같이 잔디 위를 구르는 모습을 지켜보고 있던 몇몇 아가씨들은 "너무 야해요!"라고 외치기도 했고요. ^^

그와중에도 벤치 쪽으로 달려가 두 명의 코치 선생님과 악수를 한 뒤 김호 감독님께 고개 숙여 인사를 하는데 부상을 이겨낸 자신을 믿고 기용해준 감독님의 의사에 대한 고마움을 표시한 것이라 생각합니다.

2006년 마지막 전국대회에서 숭실대가 우승하던 당시, 고양종합운동장에 가서 취재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때 그 경기가 황병주 선수의 대학시절 마지막 경기였죠. 상당히 좋은 기억으로 남아있던터라 프로에서도 통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데 부상 때문에 그 시간이 조금 늦어졌네요.

지난해 FC서울과의 경기를 앞두고 서울에 왔었을 당시 최윤겸 감독님과 데닐손 선수 영상을 찍으러 호텔에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최 감독님이 저녁 식사를 하고 가라고 해서 호텔에서 맛있게 저녁을 먹고 동영상 촬영을 마친 뒤 1층에서 오현주 에이전트, 우승제 선수, 김형일 선수와 함께 잠시 이야기를 나눴는데 그때 황병주 선수도 합류, 아주 잠깐 이야기를 나눴지요.

그때 저녁 식사 도중 황병주 선수를 보고 감독님께 부상에서 회복된 거냐고 묻자 감독님은대답 대신 미소만 지었답니다. 알고 봤더니 후보 골키퍼로 엔트리에 이름을 올린 것이더군요. 부상에서 막 회복됐기에 어쩔 수 없이 그랬다고 합니다. 감독님은 팀을 위한 결정이었지만 상처받지 않았으면 좋겠다며 경기 후 계속 염려스런 말씀을 기자들에게 건네셨죠. 그 모습 역시 잊혀지지 않네요. 지난 봄, 대구와의 원정경기에서 최은성 선수가 부상을 당하는 바람에 유재훈 선수가 선발로 경기에 나설 때였습니다. 그러나 당시 또 다른 골키퍼 양동원 선수는 올림픽대표팀 훈련 때문에 팀에 없던 상태라 후보 골키퍼로는 필드 플레이어가 대신 이름을 올릴 수밖에 없었죠. 그리하여 그때 황병주 선수가 선택된 것이랍니다.
 
그날 호텔 로비에서 만난 황병주 선수는 몸에 살짝 붙는 흰색 긴팔 티셔츠를 입었는데 팔, 다리가 상당히 길어, 또 축구 선수치고는 다소 마른 체격인지라 축구 선수가 아닌 발레리노 같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얼굴도 투명할 정도로 하얀 상태였고요.

그날 두세마디 한게 전부였는데 후에 그는 제게 "더운 날에도 고생하시는 멋진 분"이라는 상당히 감동적인 이야기를 제게 해줬답니다. 그해 여름, 저는 제 담당구단이었던 대전시티즌 취재에 상당히 열심히였거든요. 대전경기장, 혹은 숙소룰 방문할 때마다 땀을 뻘뻘 흘리며 취재에 열중했는데 대전 선수가 그 사실을 알아줬다는 것은 감동이 아닐 수 없었겠지요.

그리하여 그날 이후로 황병주 선수는 제게 '만점'을 받은 몇 안되는 선수로 등극했습니다. 팔은 안으로 굽는 법이니까요. ^^


퍼플아레나에서 또 다시 터진 휴지폭탄.  정말 멋있죠? 대전선수들에게 이 장관을 선물로 주기 위하여, 대전의 필승을 위하여 대전시티즌 서포터스 퍼플크루는 늘 열심히 휴지폭탄을 준비하고 또 준비하죠. 그 노고를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네요.



아스날의 센더로스 같은 외모로 나타난 김형일 선수. 작년 신인시절에는 늘 제게 표정이 그게 뭐냐며, 좀 밝은 표정을 지어보라며 구박했던 그가 요즘은 늘 이렇게 시무룩한, 때론 잔뜩 화가 난 표정으로 믹스트존을 나선답니다. 기자들의 질문에도 대답하지 않고 그냥 지나갈 때도 많고요. 스스로에 대한 기대치와 욕심이 많은 까닭이겠지요. 지금의 고민과 숙제를 잘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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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제(5월3일 토요일) 왼쪽 위에 자리 잡고 있던 사랑니를 뽑았다. 뽑기 전부터 사랑니에 관련된 무시무시한 이야기들을 심히 들은 터라 치과에 도착하고 나서부터 무지 심난한 상태였다. 마취 주사를 한 대 맞고 나서 잡지를 보며 10분가량 있었는데 점점 마취가 풀린 듯한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불안했다. 다행히 1대를 더 맞고 나서야 제대로 마취가 된 듯한 느낌이 들어 양손을 꼭 붙잡고 입을 벌린 채 누웠다.


선생님은 “길어야 20분일 것”이라며 혹시라도 아프면 참지 말고 꼭 말하라고 신신당부했다. 아파도 말 안하고 참는 내 성격을 알아채신 걸까. 다행히 치료 도중 아픈 느낌은 없었다. 뭔가 누르고 잡아당기는 느낌은 있었지만... 중간에 내가 너무 바들바들 떨며 있자 긴장 풀라며 내 걱정을 해주시던 선생님은 치아를 다 뽑고 나서 내 관자놀이를 눌러주시며 입을 벌렸다 닫았다를 반복할 수 있도록 도와주셨다.

2시간 후 솜을 뺐는데 여전히 피가 멈추지 않아 다시 새 솜을 넣었다. 그리고 긴장 때문에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는지 이내 잠에 빠져 들고 말았다. 저녁 무렵 잠시 잠에서 깼지만 입안에 있던 솜뭉치를 뺀 뒤 잠이 들었다.

그래도 다음날, 경기장은 가야한다는 생각에 억지로 죽을 먹고 집을 나섰다. 중간에 버스에서 배고프면 안 된다는 생각에 죽을 2그릇이나 먹었다. -.-; 왼쪽 뺨이 살짝 부어오른 것 같아 간호사의 지시대로 아이스크림을 먹기로 했다. 베스킨라빈스에서 내가 좋아라하는 아몬드퍼지를 하나 산 다음(입을 크게 벌릴 수 없어 컵에 담은 뒤 수저로 떠먹었다) 유성행 버스에 올라탔다. 앗, 그런데 버스 안에 스포츠월드 김현기 선배가 있더라.

버스에서 김광진의 노래를 들으며(이상하게 2006년 이후로 늘 대전에 갈 때면 김광진의 노래를 듣는 듯하다.) 1시간 50분 가량 꾸벅꾸벅 졸다 유성에 도착했다. 선배와 함께 택시를 타고 경기장에 도착, 기자석에 올라가려는데 믹스트존에서 낯익은 얼굴 하나가 보였다.

“김광명 선수 아니세요?”

그를 가까이서 본 것은 처음이었으나 사진 속 얼굴과 실물이 많이 닮아 한 번에 알아볼 수 있었다. 부상 중이라고 했다. 포항과의 2군경기 당시 후반 교체로 들어가 골을 터뜨리는 모습을 봤던 기억이 선했다. 그날 이야기를 꺼내자 “아! 누군지 알겠어요”한다.

“기원이 형이랑 인사하셨던 분이죠? 형한테 누구냐고 물어봤더니 그냥 아는 사람이라고 해서 팬인 줄 알았어요. 기자인줄은 몰랐어요.”

다리가 다 나은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아 다음주 화요일에 병원에서 검사를 받기로 했다고 한다. 서울 올라가기 전에 소속팀 경기를 보기 위해 대전까지 온 것이고. 그에게 자이니치 기사 쓸 때 자문을 구할 수 있냐고 물었다. 다행히, 또 흥쾌히 도와주겠다고 하더라.

그런데 개명이 아직 안됐다고 한다. 원래 이름은 광명인데 여권을 만드는 과정에서 굉명이 됐다. 때문에 지금 연맹에도 김굉명으로 기록된 상황. 소속팀에서는 그의 의사를 존중해 김광명이라고 유니폼을 만들어줬지만 2군경기에서(지난 포항전) 경기감독관 이하 심판진들이 연맹 기록과 유니폼 이름이 다르다며 지적이 들어왔다고 한다. 원칙에 어긋난다고. 하여 김굉명이라는 이름으로 유니폼을 다시 맞춰야한다고 했다. “금방 이름 바뀔 건데 그냥 흰 테이프 붙이고 뛰면 안 돼요?”라고 뜬금없이 말하자 씩 웃으며 대답한다. “그러면 가오가 안 살잖아요.” 그 대답에 난 또 하하하, 웃고.



그는 한국에 온지 2년밖에 되지 않았지만 우리말을 참 잘했다. 약간 일본식 억양이 나오긴 했지만 일본에서 태어나 24년간 일본에서만 살아온 사람답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는 한국어는 여전히 어렵다며 손사래 쳤다.

그와 헤어진 뒤 경기장에 들어섰다. 오른쪽에서 추리닝을 입고 뛰던 선수들 중에 낯익은 얼굴은 강기원 선수와 정윤성 선수뿐이더라. 고경준 선수는 오지 않은 듯했다. 아픈 걸까. 지난 2군경기에도 나오지 않은 그는 컵대회 수원전에서도 엔트리에 이름을 올리지 않았다.

기자석에 올라가려는데 황병주 선수가 인사를 꾸벅 한다. 너무 오랜만에 만나는 듯 했다. 유니폼을 입은 것으로 보아 선발명단에 든 것 같았다. 올 시즌 대전에 처음 내려오는 것이라며 복귀전 보게 돼 기쁘다고 말해줬다. 그랬더니 인사를 다시 한 번 꾸벅, 하는데 거의 90도 가량을 숙이는 것이었다. 그 예의바름에 마냥 웃음이 나왔다. 그렇지만 “축구선수 얼굴이 왜 이리 하얘요? 운동 안하죠?”라는 농담을 툭 던진 뒤 헤어졌다. 그 와중에 추 선생님이 오랜만이라며 반갑게 인사를 하셨다.

경기 시작 10분 전, 어린이날 기념으로 에스코트 어린이들을 찍으려고 선수단 출입구 쪽으로 내려갔다. 혼자 벽 앞에 서서 몸을 푸는 김형일 선수가 보였다. 여전하더라. 그 시간을 방해하면 안 될 것 같아 뒤에 조용히 서 있다가 아이들 손잡고 선수들이 들어설 때 뒤 따라 들어갔다. 그런데 문제는, 동영상 카메라에 메모리칩이 없었다는 사실. ㅠㅠ

하여 재호씨에게 아이들 사진 좀 찍어 달라 부탁했다. 대신 나는 아이들에게 좀 웃어보라며 주문했고. 그러나 아이들은 웃지 않았다. 긴장이 컸던 걸까? 다들 무표정한 얼굴로 기자들을 바라보는데 그 와중에도 나는 연신 “얘들아, 우리 조금만 웃어보자!”라고 외쳤다. 그때 나와 눈이 마주친 김형일 선수가 씨익, 웃더라.

사인볼 던지는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작년 어린이날 받았던 깜짝 선물이 문득 생각나 잠시 가던 걸음을 멈추기도. 그리고 다시 엘리베이터를 향해 가는데 김민수 선수가 안녕하세요, 하며 나를 향해 인사를 했다. 가까이서 보기는 처음이었다. 그는 내가 누군지도 모르면서 인사를 하더라. 대전 선수들은 어쩜 그리 예의가 바를까.

우승제-김용태가 좌우날개로 출전했고 중앙공격수는 언제나처럼 박니. ^^ 공격형MF로 에드손, 수비형MF로는 황병주, 이성운 선수가 출장했다. 최근식-김형일-이동원-나광현이 플랫4를 구축했다.

경남은... 음... 잘 모르겠다. 김동찬 선수가 센터포워드인 것은 확실히 알겠다. 김진용 선수도 스트라이커로 나온 게 맞긴 한데 서상민 선수와 공오균 선수가 헷갈린다. ㅠ.ㅠ 수비는 박재홍-산토스-이상홍 선수가 맡았으나 이렇게 됐을 때 김대건 선수, 김성일 선수, 김효일 선수는 어디서 무엇을 했는지 도통 기억이 안난다......................

어쨌거나 전반 5분만에 황병주 선수가 선제골을 넣어서 어찌나 놀랐던지. 마침 그때 황병주 선수가 90도 가량 숙여 어쩔 줄 몰랐다는 이야기를 언니들에게 해주고 있을 때 헤딩으로 넣은 것이었다. 세트피스 상황에서 문전 혼전 중에 넣은 골이라 더욱 값졌다. 김형일 선수와 껴안은 채로 뒹굴 때는 우리끼리 우아, 야한데~~ 라며 농담을 하기도. ^^ 데뷔골이라 기쁨이 더 컸겠지. 벤치로 다가가 코치님들과 악수한 뒤 감독님께 다시 한번 꾸벅 인사하는데, 그 예의바름은 경기중에도 여전했다.

후반전 때 공오균 선수가 나오고 정윤성 선수가 들어갔다. 그러나 지난 후반기만 못하더라. 뽀뽀와 까보레 특수를 누린게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든다. 두 용병이 워낙 날고 뛰었기에 수비수들이 그 두 선수에 집중할 때면 자유로운 상태라 폭발적인 득점행진이 가능한게 아닐까. 물론 자신감이 플러스 됐기에 결정력과 슈팅력도 배가 됐겠지.

김동찬 선수의 플레이는 처음 봤는데 후반 19분 터진 프리킥은 정말 깔끔하더라. 전반전까지는 그냥 열심히 뛰기만 한 선수로만 생각됐는데. 중앙공격수로 뛰기엔 키가 다소 작고 제공권도 약한 것 같아 다소 의아하기도 했지만. 후반 32분 김진용 선수가 나오고(그는 여전히 부상 후유증에 빠진 듯 하다. 2005년 울산에서의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 지금이 축구선수로서 딱 좋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노력파라고 들었는데 무엇이 문제일까?) 김영우 선수가 들어왔다.

24번 김영우라. 어디선가 많이 들어본 이름 같았는데. 아, 맞다. 그 아이가 말했던 그 잘생긴 영우 형? 얼마나 잘할까 궁금한 마음에 지켜봤는데, 기어이 일을 해내고 말았다. 추가시간이 5분이나 주어졌는데 후반50분, 그러니까 종료 20초 전 결승골을 터뜨리고 만 것이다. (물론 도움은 김동찬 선수가!)

경기 종료 후 KBSN과 MBCESPN의 인터뷰 후 신문기자들과 인터뷰를 진행했다. 우아, 정말 말 잘하더라. 일화를 중심으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데 듣는 기자들은 연신 흐뭇해하며(대답 하나 하나가 다 기사거리였으니까) 계속 질문을 던졌다. 인터뷰가 거의 끝날 즈음 나도 질문 2개를 던져 보았다. 1. 롤모델이 있냐. 2. 김호 감독님과 조광래 감독님도 그간 라이벌 의식이 알게 모르게 있는데 선수들도 인지하고 있었나. 경기 전에 그와 관련된 이야기를 하지 않았나.

믹스트존에서 대전선수들을 기다리고 있던 중 김형일 선수가 가장 먼저 나왔다. 주변 사람들이 부르는 소리에도 아랑곳하지 않은 채 고개를 살짝 숙이며 버스에 올라탔다. 이동원 선수도 마찬가지였고. 첫 번째 프리킥을 내준 게 이동원 선수였지. 훔. 아쉬워라. 그래도 선제골이자 데뷔골을 기록했던 황병주 선수와는 잠시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그러나 대답은 너무나 겸손됐다는 것. ㅠ.ㅠ 김동찬 선수는 뭐랄까. 대답이 너무 짧아서 나를 당황하게 만들었고. 결국 버스 올라타야한다며 황급히 가버렸다.

난 김귀화 선생님께 축하드린다며 인사 드린 뒤 회사 차 타고 막힌 고속도로 위에서 5시간을 보내다 겨우 집에 도착했다. 저녁은 휴게소에서 짬뽕 우동 몇 가닥을 씹다 아이스크림으로 겨우 연명했고. 그래도 고마운 사진기자는 집 앞까지 데려다주셨다. 사랑니 때문에 아파서 식사도 제대로 못한 제 사정을 배려해주느라.

참, 올라오는 길에 LG vs 두산 경기를 라디오로 들었는데 김동연 아나운서가 야구도 맡더라.



그런데 같이 해설하시는 분이 거의 막장해설을 하는데 그 와중에도 적당히 장단을 맞춰주시는 바람에 우리는 차안에서 박장대소하며 즐겁게 올 수 있었다. 나중에 어록이 있는지 꼭 찾아봐야겠다.

20080504 대전 vs 경남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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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오랜만에 경기장에 다녀왔습니다. 어린이날 기념으로 퍼플아레나까지 먼 걸음을 했죠. 바빴다는 핑계로 대전 홈경기를 그간 보러가지 못했는데 작년 FC서울과의 홈경기에서의 추억이 새록새록 떠올라 사랑니의 고통을 무릅쓰고 달려갔습니다.

전반5분 에드손의 도움으로 황병주 선수가 헤딩골을 성공시키며 대전은 1-0으로 앞서나가기 시작했습니다.



추가득점 없이 1-0으로 전반을 마친 뒤 하프타임에는 공군의장대의 공연이 펼쳐졌습니다. 공군의장대의 공연을 보기는 처음이었는데 일단 그 장소가 축구장이라는 사실이 꽤나 재미났습니다. 그런데 더 재미난 이유는 따로 있었죠.

공연 도중에 갑자기 원더걸스의 ‘텔미’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습니다 설마, 했는데 역시나 공군의장대에서 그 노래에 맞춰 춤을 추더군요. 제복을 입은 공군들이 오른손으로 입을 살짝 가린 채 ‘어머나!’할 때는 관중들이 박장대소했답니다. 지켜보던 저 역시 마찬가지였고요. ^^

약 15분 정도 진행된 공군의장대의 공연이 너무나 훌륭하였기에 원더걸스 노래가 나오는 부분은 조금 뒤로 가게 편집했습니다.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보시더라도 결코 지루하지 않을 거라 확신합니다. 재밌게 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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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하체 근육만 봐서는 유연함과 거리가 먼 것처럼 보이지만 축구 선수들은 생각보다(?) 아주 유연하답니다. 몸풀 때 유심히 쳐다보면 깜짝 놀랄 때가 많아요. 긴 다리를 하늘 높이 쭉쭉 뻗는데 저는 절대로 따라하지 못할 동작들을 반복해서 하죠. 초등학교 졸업 이후로는 늘 실패한 '다리 일자로 벌리기'도 가뿐히 한답니다.


4월19일 성남전 대기명단에 오른 유재훈, 이동근, 권혁진, 민영기, 나광현, 이여성 선수 중 사진에 찍힌 선수들은 누구일까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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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에릭 선수의 첫 골이 드디어 터졌군요. 후반 49분 주승진 선수의 힐패스를 페널티에어리어 왼쪽 지점에서 오른발로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K-리그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얼마전 데닐손 선수를 무척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때 요즘 대전이 골 때문에 배고플 것 같다고 그 이유가 무엇이냐며 걱정스럽게 물었지요.



(다른 기자들은 데닐손 선수 자신이 고민해야할 문제 아니냐며 비웃었지만 ㅠㅠ 저는 데닐손 선수를 무척 좋아한지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제 대답은 외국인 선수들이 작년 너희들(데닐손, 슈바, 브라질리아)처럼 제 몫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였습니다. 그런데 에릭 선수가 드디어 골을 터뜨리며 청신호를 밝혔네요. ^^

4월19일 성남전에서 대전은 0-3으로 패했습니다. 2006년 후기리그 개막전에서의 아픔이 생각나더군요. ㅠㅠ 작년 5월 성남 원정경기에서는 0-0으로 경기를 마쳤는데 차라리 그때가 그립더군요. 에릭 선수는 전반 43분 이여성 선수와 교체돼 나갔습니다. 경기 후 만난 에릭 선수는 교체 이유를 감독이 말해주지 않아서 그 이유는 모르겠다네요. 딱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전반전에서 보여준 자신의 플레이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팀이 먼저이기에, 또 감독의 생각을 존중하기에 전적으로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골을 넣지 못한다는 사실에 크게 부담 갖는 것은 아니라고, 부담이 크면 그만큼 골소식도 늦을 거라며 브라질리언 특유의 낙천성도 보여줬죠.

이날 경기장에 들어서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그의 시선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딸과 부인이 와있더군요. 경기 후 딸이 쪼르르 내려와 아빠 품에 쏙 안겼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5개월만에 만나는 것이라네요.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분간 또 작별이라며 아쉬워했습니다. 딸 사라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고등학교 시절 프랑스어 수업 때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설프게나마 프랑스어로 말도 걸어봤습니다. ^^ 라커룸 계단에서 기자들과 아빠 에릭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빠 목덜미를 감싸고 있는 사라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준다음 보여줬더니 꺄르르 웃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쁜지라 자리를 떠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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