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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 초 시크릿가든의 열풍으로 전국적으로 현빈앓이가 시작됐을 때, 스쳐지나가는 말로 그랬던 적이 있다. “현빈은 실제로 보면 잘생겼을까? 실물이 궁금하긴 하다.”

사실 기자로 일하는 동안 웬만한 연예인은 다 봤다고 생각했는데 현빈과 만난 적은,적어도 내가 기억하기론 없었다. 그랬더니 내 친구 꼭 찍어서 말해주길. “너 **신문사에서 있을 적에 신문사 옥상에서 현빈봤다고 했잖아. ^^ 그걸 까먹니.”

아, 그랬구나. 잊고 있었다. 2005년에서 2006년으로 바꿨던 겨울이었다. 선배 기자가 인터뷰가 있는데 날도 춥고 바람도 심해 옆에서 보조로 따라 붙으라고 나를 데리고 옥상에 올라가셨지. 당시 나는 햇볕이 강하게 쏟아졌고 눈이 부셔 얼굴을 잔뜩 찡그린 채로 인터뷰 할 주인공에게 다가갔다. 그리고 나도 모르게 반갑게 인사하고 말았다.

“어머, 동욱아!!!”

나는 왜 그때 현빈씨를 이동욱으로 착각했던 것일까. 지금 생각해도 의문이다. 햇볕이 직각으로 똑 떨어지는 바람에 얼굴을 제대로 보지 못했기 때문일까. 그래도 그렇지. 그런 말도 안되는 실수를. 그렇지만 현빈씨는 까도남답게 쓱 보고 다시 고개를 돌렸다. 사실 그게 더 민망하긴 했다.

대학시절 먼발치에서 동욱이를 본적이 있긴 했다. 회전목마라는 드라마를 찍고 있을 당시 우리학교에 이동욱이 지금 와서 촬영 중이라는 이야기를 친구에게 들었다. 아, 그래? 라며 쿨하게 반응하고 가방을 싸고 신문사실로 가던 중에 정말로 촬영 중인 동욱이를 보게 됐다. 카메라와 스탭들 뒤로 빼곡히 서서 구경 중인 학우들을 보며, 무엇보다 그 중심에 있던 동욱이를 보며 친구가 아닌 이젠 정말 연예인구나, 하는 생각에 발길을 이내 돌렸던 기억이 난다.

그리고 드디어 군대에 간 녀석. 짧게 자른 머리를 하고선 팬들에게 입소 전 마지막 인사를 하는데, 스포츠머리를 하고 다니던 중학교 시절 당시의 모습이 생각이 나 아쉬움보다는 반가운 웃음이 먼저 나왔던 그때도 생각이 난다.

그로부터 2년 뒤 군대에서 박정현 누나 팬이 되었다는 멘트와 함께 동욱이가 돌아왔다. 제대 후 바로 드라마로 얼굴을 비추기 시작했는데, '여인의 향기'라는 주말 드라마였다. 그러나 난 본방사수를 하지 못했다. 주말 저녁에는 K리그 경기가 열리는 날이니 볼 수가 없었고 첫방을 놓치니 이후 회차부터는 흐름을 이해하지 못할 듯 해 안보게 되었다.



그런데 참으로 이상했던 건, 처음부터 보지 못한 드라마였음에도 주인공의 처지에 절로 몰입이 된다는 사실이었다. 제가 이 회사 사표 썼거든요, 라는 말과 함께 눈물을 뚝뚝 흘리다 부장에게 개자식이라 외치며 사표를 던지는 연재의 모습을 보며 나도 함께 눈물이 그렁그렁. 그리고 이내 뚝뚝뚝.

그 나이의 여자들은 늘 그랬다. 하고 싶은 것보다 하지 못하는 것들이 더 많았고 한 달 번 돈을 쪼개서 적금과 생활비와 문화비로 나눠야만 했고 다음 달에는 소비를 줄이겠다고 지키지 못할 다짐을 했고. 애인이 없으면 뭔가 심각한 문제가 있는 여자가 아닌지 오해를 받아야했고 그렇게 혼자 늙어가는 딸이 걱정돼 결혼정보회사의 도움을 받자며 심각하게 이야기하고.

연재의 나이를 향해 가고 있던 나로서는 장면 하나 하나, 대사 하나 하나가 가슴에 와 닿더라. 그렇게 해서 나는 여인의 향기의 열혈 애청자가 되었다. 무엇보다 그 드라마가 갖고 있는 미장센이 좋았다. 첫사랑 동욱이가 나오는 드라마라서가 아니라.

한데 그 드라마를 보며 나는 다시 한 번 이상한 기분에 사로잡혔다. 저 주인공의 이름은 강지욱인데, 자꾸만 내가 알고 있던 이동욱이 튀어나오고 있었기 때문이다. 캐릭터의 몰입도가 대단했기 때문에? 아니면 어쩌다보니 실제의 자신과 비슷한 캐릭터를 연기하게 되서? 그래도 기분은 좋았다. 내 오랜 친구와 만난 듯한 기분이 들었기 때문이다.  

내가 가장 좋았던 장면은 오키나와에서 연재와 지욱이 이까스미 야끼소바를 나눠먹는 장면이다. 오징어먹물이 입과 치아를 덮었을 때 서로의 모습이 재밌어 두 남녀가 깔깔대고 웃는데, 그때 동욱이가 보여주던 웃음은 연기가 아니었다. 그래, 친구들과 즐거울 때 저런 표정으로 웃곤 했지. 그래서 기억은 참 신기한 존재인 거다. 오랫동안 보지 못했음에도 찰나의 순간, 내가 기억하던 장면이 겹칠 때면 이렇게 각인된 기억이 봉인해제되니까.



그러면서 나는 나만의 버킷리스트를 만들기 시작했다. 덮어두었던 토플책을 찾았고 기타강습을 준비했고 줄넘기를 다시 시작했고. 그리고 내 친구 동욱이를 꼭 한번 만나보기도 추가됐다. 준수와 데이트하기 미션에 성공한 뒤 버스에서 그 문장에 줄을 긋던 연재의 모습을 보고 나서부터였다.

하지만 생각보다 빠르게 나의 버킷리스트 중 하나가 이루어졌다. 그것은 놀랍게도 동욱이와 다시 만나고싶다는 목록이었다. 더욱 신기한 것은 나 역시 연재처럼 방송국의 도움을 받아 동욱이와 해후하게 됐다는 거다. 놀라운 것들로 가득차있기에 Wonder-Ful이라던데,  정말로 그랬다.

만남 전날 나는 자정을 훌쩍 넘길 때까지 졸업앨범을 시작으로 함께 찍은 사진, 일기장, 카드 등을 찾아 챙겼다. 그런데 정작 내가 선물로 줄 건 아무 것도 없더라. 갑자기 이뤄진 급만남이었기에 정말로 준비된 선물이 없었다. 그래서 새벽 1시에 컴퓨터에 앉아 옛날이야기를 시작으로 최근의 드라마를 보며 느낀 생각들을 편지로 쓰기 시작했다. 그 새벽에 손글씨는 무리였던터라. 그리고 나서 내가 잠자리에 든 시간은 새벽 3시 반이었고 2시간 반만 자고선 약속장소인 방송국에 가야만 했다. 어찌나 피곤하던지. 드라마 종방 때까지 내내 이렇게 생활할텐데 어떻게 버텨내는 것일까. 그래서 요즘들어 자꾸만 퀭한 얼굴로 나오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 들기도 했다.

VJ분과 먼저 만나 동욱이의 어린시절 이야기를 해줬는데, 이미 블로그에 썼던 내용들과는 별반 차이 없던 이야기들을 해드렸다. 그래도 이번에 동욱이와 관련된 물건들을 찾으면서 다시 찾은 기억들이 몇개 있다. 내 친구가 러브레터를 보내면 그래도 답장은 해주던 참 예의바른 아이였단 거. 비록 연습장을 북 찢어서 준 답장이었지만 그 자체만으로 고마운 거니까. 가정시간에 만든 샌드위치를 가져다줬더니 정말 맛있게 먹었다면서 그동안에 보여줬던 반응 중에서 가장 뜨겁고 고마웠던 반응이었다는 거. 동욱이네 반 포청천에서 장난으로 러브레터를 보냈을 때는 사람 마음 가지고 그렇게 장난하는 거 아니라면서 어른스럽게 또 따끔하게 훈계했던 거.



PD님이 내게 묻기도 했다. 실제의 이동욱은 어떤 사람이냐고. 못 본지 꽤 됐지만 기억 속 동욱이라는 먼저 말 걸기는 다소 어렵지만 일단 친해지면 끝까지 가는, 가슴 뜨겁고 끈끈한 사람이었다. 키가 작고 약한 친구를 괴롭히는 까불이들이 있으면 가만히 지켜보다  그만하라는 한마디로 제압하는 정의의 사도이기도 했으며 성별에 상관없이 약한 자들을 먼저 생각하고 보호해주던 사람이기도 했다. 가족을 참으로 아꼈으며 리더십이 뛰어났다. 또 카리스마 속에서도 적당한 위트가 발휘돼 나이가 들면 들수록 여자보다는 남자들에게 더 인기가 많은 그런 사람이었다.

동욱이는 너무나 좋은 사람이라서 카메라 앞에서 좋은 이야기를 많이 해줬는데 정작 방송에서는 그 부분이 똑 떨어져나갔다. 아무래도 중학교 때 이미 가슴근육이 완성되었다는 이야기나 어린시절부터 여자아이들에게 인기가 많았다는 거나, 중학교 때 우리집에 다 같이 모여 수다 떨다 야설로 넘어갔다는 거나. 뭐 그런 이야기들은 어린시절을 함께 보낸 사람이 아니면 정말 알지 못하는 것들이었기에 살릴 수밖에 없을 거라고 본다.

우리가 만난 곳은 동욱이의 인터뷰가 진행되던 일산의 어느 커피숍이다.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PD님의 안내에 따라 뒤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그러다 편지셔틀이야기가 나오고 동욱이는 이내 잘 모릅니다, 라며 눈을 감기 시작했고 결국엔 그걸 증명해줄 친구가 쨘하고 등장하게 되었다. 바로 나였다.

처음엔 날 못 알아보는 동욱이. 그럴 줄 알았다. ㅎㅎ 그래, 나 참 통통해지고 이젠 너보다 더 나이 들어 보여. 나도 알아. ㅠㅠ

그러더니 잊고 싶은 별명을 던지기 시작한다. 솔직히 나 못지 않게 기억력이 좋거나 아니면 그만큼 내 캐릭터가 강했다는 거겠지. 뭐 어쨌건 후자라도 상관없었다. 이젠 뭐 개성의 시대 아닌가. 강렬하게 기억되는 사람이 오래가고 오래남는 세상이니까. ^^

그래도 고마운 건 VJ에게 내 소개를 참 좋게 해줬다는 사실이다. “아, 얘, 진짜 공부 잘했어요. 대게 똑똑했던 친구에요.” 내가 공부하느라 지치고 힘들 때 가장 힘이 되어주었던 게 지금처럼 늘 1등만 하라던 동욱이의 카드였는데. 마침 칭찬을 해주길래 그 카드를 보여줬는데 동욱이는 아직까지 간직한게 신기하다며 웃었다.

함께 하는 인터뷰는 짧았고 PD님은 지금 거의 생방송 식으로 촬영 중인지라 빨리 빠져야한다고 했다. 그래서 서둘러 나도 가려는데 커피 한잔은 마셔야하지 않냐면서 시원한 아메리카노를 한잔 시켜주었다.



졸업앨범을 분실하여 이번 기회에 보고 싶다 하였기에 앨범을 건네줬고 앨범을 보던 그 짧은 시간이나마 동욱이와 오랜만에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나랑 친했던 쌈 잘하던 수연이와 어눌하게 말하며 빨간글씨편지로 고백하던 봉영이, 지금은 낚시프로로 활동하는 한승이, MCM 행사장에 갔다가 우연히 만났다는 아영이, 면회신청에도 대답이 없어 잠시 삐졌던 군의관 대관이와 미국에 있는 성준이와 하늬 등 그간 서로가 알고 있던 친구들의 근황을 전해줬고. 그래도 다들 열심히 잘 사는 것 같다고 하자 우리 애들이 원래 다 똑똑하고 노력하는 애들 아니었냐고 어른스럽게 이야기하더라. 우리 나이면 이제 정말 자기 직업, 자기 인생 책임지고 살아야한다는 명언도 남겨주고. ^^

참 수련회 가서 노래 불렀던 건 제목까지 기억하던데 춤 췄던 건 기억을 못해서 내가 어떤 춤을 췄는지도 실감나게 설명해줬다. ^^ 그리고 학교로 돌아와서 점심시간 때마다 여자애들이 고음불가와 그 롱다리춤을 흉내냈다고 하자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참 많은 일들이 뒤에서 이뤄진 거 같다며 정말 신나게 웃어댔다. 10일을 밤새서 집에도 못들어가고 힘들다고 하던데 내가 그래도 그거 하나 큰 웃음은 주고 가서 다행인 듯 싶다.



사실 초등학교 동창 남자아이들은 정기적으로 동욱이를 만났다는 걸 알고 있다. 잊을만하면 항상 동욱이가 먼저 연락을 해 약속을 잡았고 드라마를 마치고 10일 뒤에 군대에 갔지만 그 짧은 기간 중에도 시간을 빼 우리 친구들을 만났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다. 그렇게 참 다정다감하게 친구들을 챙기고 우정을 생각했던 속 깊은 아이, 동욱이.

여자아이들에게는 먼저 말은 걸지 않았지만 나와 승은이가 다가가면 그래도 초등학교적 친구라고 대답도 잘해주던 고마웠던 내 친구. 어색 돋던 중학교 1학년 첫 달, 중학교 생활이 적응 안돼 우리 넷이 학교 뒤편에 모여 이야기 나누다 늦은 오후 다돼서야 집에 갔던 것도 나는 잊지 못한다. 그만큼 내게는 특별한 친구였다.

훌륭한 부모님 밑에서 바르게 배우고 자란 덕에 워낙에 배려심 깊은 아이였지만 오랜만에 만난 동욱이는 예전보다 더 상대를 배려해주는 멋진 어른으로 자라있었다. 졸리고 바쁜데도 불구하고 짬을 내서 친구의 이야기를 들어주려고 했던게 나는 그저 고맙기만 했다.

아쉽게도 금세 촬영에 임해야해서 급하게 헤어졌지만 정신없이 가면서도 동욱이는 매니저 동생분에게 택시정류장까지 날 에스코트하라고 부탁하는 친절을 잊지 않았다. 게다 동욱이만큼 잘생겼던 매니저 분은 어쩜 그렇게 예의가 바르시던지! 좋은 사람들과 함께 일하는 걸 알게 돼 참 기분좋게 집까지 돌아갈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헤어질 때 동욱이가 내게 해줬던 말은 각자의 분야에서 이렇게 자리잡고 있는 거 보면 우리 다 잘 큰 거 같구나, 그리고 파이팅, 이었다. 하지만 정말로 멋지게 자리잡은 사람은 동욱이었고 동욱이와의 만남은 내게 감동과 자극을 동시에 준 소중한 시간이었다. 그러니 앞으로 당당히 내 친구라고 말할 수 있도록, 지금 내가 있는 이곳에서 최고가 되기 위해 더 많이 땀흘리고 뛰어다녀야겠다. 



참, 그날 동욱이에게 너를 보며 축구기자 말고 연예기자를 할 걸 그랬다는 생각을 몇번 한적이 있다고 말해주었다. 그랬더니 또 명언을 날려주셨다." 연예기자는 힘들어. 축구기자도 물론 힘들겠지만 너가 더 좋아하는 건 축구 아니야? 힘들어도 자신이 더 좋아하는 일을 해야만 하는 거야."

하지만 무엇보다 가장 잊을 수 없었던 것은 여전히 어린시절, 그러니까 첫사랑 소년으로 만났던 옛날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다는 사실에 있었다. 초심을 잃지 않은 스타가 많이 드물다는 걸 누구보다도 잘 아는 나니까.  어찌하여 성품과 됨됨이로 꾸준히 칭찬받는지 깨달을 수 있었고, 덕분에 앞으로 더 많은 이들에게 사랑받을 것이라는 기분 좋은 예감도 함께 든 그런 시간이었다.

가식없이 솔직한, 연기를 향한 진정성으로 가득찬, 그리고 이런 사람을 좋아해서 다행이고 이렇게나 많이 좋아하고 있다고 자랑할만한 배우. 이동욱. 그렇기에 그를 사랑하는 팬들은 요즘 아주 많이 행복할 거다. 그래서 부럽기도 하다. ^^

동욱아, 내가 말했지. 안성기씨처럼 시대와 세대를 초월해 모두에게 인정받고 사랑받는 배우가 되길 바란다고. 정상에서 우리 꼭 다시 만나자! 힘내라, 멋쟁이 선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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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벌써 15년도 더 된 일이지만 여전히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녀석을 처음 만났던 그날 말이다. 전학 온 지 1년 밖에 되지 않은 터라 아는 친구들보다는 모르는 친구들이 더 많았던 그때, 새 학기 첫날, 쭈뼛거리며 배정받은 4학년 2반 교실 문을 열었다. 그런데, 이럴 수가. 교실에 왕자님이 있었다!

오똑한 콧날, 하얀 피부, 170cm가 넘던(세상에, 초등학교 4학년 키가 그래도 되는 거야?) 녀석. 첫날이라고 담임선생님은 각자 앞에 나와 짧게 자기소개 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그때 알게 됐다. 녀석의 이름을. 동욱이었다. 이동욱.

그렇게 짝이 되길 빌었건만 연이 없었던지 ‘짝꿍’에 당첨되는 행운은 없었다. 불행 중 다행인지 나와 꽤 가까운 자리에 앉았는데, 내 짝의 뒤, 그러니까 내 대각선에 동욱이가 앉게 됐다. 고개만 돌리면 왕자님이 있었다. *^^*

자리가 가깝다 보니 자연스럽게 친해졌고 생일에도 나는 동욱이를 초대했다. 그때, 친구들을 데리고 집에 도착하자 할머니와 고모와 엄마는 동욱이 옆에 앉아 이름이 뭐니, 어디 사니, 종교가 뭐니 -.-;까지 물어보셨다. 대화의 귀결은 “어쩜 이렇게 인물이 훤할꼬!”였다. 부모님이 성당에 다닌다고 하자 “우리 헬레나도 성당 다닌단다!”하며 좋아했던 할머니와 고모와 엄마의 모습을 나는 여전히 잊지 못한다.

글 좀 쓴다며 유달리 성숙한 척했던 나는 --; 영화 <록키4>와 <죽어야 사는 여자>를 억지로 보게 한 다음 남녀 할 것 없이 모두 고무줄 놀이에 참여시켰다. 한데 착한 동욱이는 군말 않고 아파트 주차장에서 같이 고무줄 놀이를 하며 나의 생일을 축하해주었다.



6학년 때 나는 다시 동욱이랑 같은 반이 되었다. 그해 봄 학교에서는 사진촬영대회가 열렸다. 원혁이라는 친구가 미끄럼틀 위에 올라가 전경을 담고 있던 동욱이의 모습을 비스듬하게 찍은 다음 ‘위험한 촬영’이라는 제목으로 제출했는데, 센스 있던 제목 때문이었는지 금상을 받게 되었다. 과하게 말하자면 동욱이는 그때부터 모델적 재능을 갖고 있었던 것 같다.

중학교 때도 나는 동욱이를 볼 수 있었다. 같은 학교에 입학했기 때문이다. 입학과 동시에 이동욱의 존재는 연일 상종가였다. 그 키에, 그 얼굴을 가진 중학생이 어디 흔했던가. 농구도 잘했고 성격도 좋아 남자아이들에게도 인기가 많았다.

그때 우리 반 친구 하나가 동욱이를 좋아하게 되었다. 등하교길에 오고 가며 자연스레 동욱이와 인사하고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을 보게 된 친구는 러브레터를 전해줄 수 있냐고 부탁했다. 딱히 내키지는 않았으나 친구의 부탁을 거절할 수 없었기에 몇 번 편지를 전해주었다. 그리고 착한 동욱이는 친절히도! 답장을 보내주었다. 그렇게 편지를 주고받는 모습을 보게 된 다른 반 여자아이들은 급기야 나를 동욱이의 여자친구로 착각하고 말았다.

쉬는 시간에 우리반으로 찾아와 “쟤야?”라며 나를 흘겨보는 애가 있었는가 하면 “저렇게 생긴 애가 여자친구라고?”라며 대놓고 머라 하는 아해도 있었다. 그때마다 나는 기가 막혀 “그래서? 어쩌라고?”라며 반문했다. 그런데 한 번 대단한 사건이 터졌는데 우리 학년 1진 중의 1진인 여자애가 나를 찾아온 것이다. 화장실로 데리고 가 “동욱이 그만 만나라고! 인사도 하지마! 알았어?”라며 협박하는 사건이 터지고 말았다. 그래도 당시 날라리들은 지금과 달랐다. 그냥 협박만 하고 끝나는 수준이었으니까.



그해 여름에도 동욱이는 내 생일선물을 챙겨줬는데, 그룹 모자이크의 테이프였다. 지금 생각해보면 얼굴만큼 뭔가 선물하는 씀씀이나 생각도 성숙했던 동욱이였던 것 같다. 동욱이는 노래보단 랩하는 걸 좋아했는데, 그해 가을 수련회에선 단지 반장이라는 이유만으로 전교생들 앞에서 “꿈, 사랑, 그리고 착각”을 부르며 어색하게 다리떨기 춤까지 추는 ‘쇼’를 보여줬었다. 여자애들은 귀엽다며 완전 쓰러졌었지.

그때도 난 우리반 여자애들의 성화에 못 이겨 동욱이의 사진을 대표로 찍었어야했는데, 서울로 올라가던 중 버스가 잠시 휴게소에 섰을 때 독사진을 수십장 찍어댔었다. 동욱이는 “이제 그만 찍어. 나 버스 올라탄다”라고 말하면서도 끝까지 얼굴이 카메라 쪽으로 향하는 것을 잊지 않았다. 역시, 그때부터 연예인으로서의 자질과 끼가 보였다. 동욱이는.

중학교 2학년 겨울, 크리스마스 카드를 동욱이에게 줬었다. 그리고 옆 반에 있던 또 다른 친구 대관이한테 줬는데, 대관이 말하길 “카드가 바꿨어.” 깜짝 놀라 동욱이네 반으로 달려가 교실 문을 열고 카드를 돌려달라고 했는데, 이런. 체육시간을 앞두고 남자아이들이 옷을 갈아입고 있었다. 우리의 동욱이는 교복 와이셔츠를 막 벗고 있던 찰나였다. 그런데 가슴에 근육이 잡혀있는 것이 아닌가! 그때나 지금이나 엉뚱소녀였던 나는 궁금한 마음에 “가슴에 그건 무엇이냐!”고 물었다. 동욱이의 대답은 이랬다. “응, 나 요즘 헬스 중이야.”

고등학교 입학 전 겨울방학을 맞아 모처럼 초등학교 친구들이 뭉쳤다. 그때는 동창회보다는 반창회가 대세했다. 6학년 때 같은 반 친구들끼리 만나기로 했는데, 동욱이도 나왔다. KFC에서 치킨버거를 먹으며 이승환의 ‘가족’을 들으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노래방에 갔다. 날쌘 나는 바로 동욱이 옆자리에 착석했다. 하하. 그리고 나서 그대로 헤어지기가 아쉬워 끝까지 남아있던 6명의 친구들을 우리집에 초대했다.



그런데 우리집에 가던 도중, 엘리베이터가 멈추는 사건이 발생했다. 처음엔 하하 웃고 떠들었지만 도와주는 이는 없고 시간은 흘러가고 이것저것 버튼만 누르다 점점 엘리베이터가 한층 한층 아래로 내려가며 걱정을 야기시켰다. 이러다 지하로 떨어질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도와달라고 고함치기 시작했다. 그 소리를 들은 엄마가 경비실에 연락했고 엘리베이터 관리해주는 분이 와 엘리베이터에서 빠져나올 수 있었다.

엄마는 귤과 과자와 음료수를 준비해놓고 있었는데, 역시나 동욱이한테 다가가 “어쩜 여전히 그렇게 잘생겼니!”라는 덕담을 건네주셨다. 동욱이가 기억하는지는 모르겠지만 그날 우리 6명은 밖에서 어른들이 왔다 갔다 하는 것은 잊어버린 채 완전 수위 높은 야한 이야기를 하며 시간을 보냈다. ^^;;;;

내가 동욱이를 마지막으로 만난 건 수능을 마치고 가뿐한 마음으로 만화방에 가던 길에서였다. 고등학교는 서로 다른 학교를 가는 바람에 흘어졌지만 MTM에 다니며 연기를 배운다는 소식은 들고 있었다. 그리고 고3 때 베스트극장을 통해 텔레비전에 데뷔했는데, 반항기 넘치던 고교생인 것만 어렴풋이 기억난다. 방에서 기타를 치며 온몸을 흔들던 그 장면만은 여전히 선연하다.

그때 나는 “드라마 잘봤어!”라고 반갑게 인사했고 동욱이는 “야, 너 피부가 왜 이렇게 안 좋아졌어!”라고 인사했다. 그게 동욱이와의 마지막 만남이었고 그 이후로 나는 <학교> <마이걸> 등의 드라마와 영화를 통해서만 만날 수 있었다.



이 새벽에 문득 동욱이가 생각나는 까닭은 어린시절 돈이 없어 집까지 걸어 다녔다는 이야기를 방송을 통해 들었기 때문이다. 당시 우리가 다니는 학교는 사립이었고 집이 먼 아이들을 위해 지역별로 나눠 스쿨버스가 다니고 있었다. 쌍문동인 학교에서 도봉동인 우리집까지는 거리가 꽤 됐기에 스쿨버스를 타고 다녔는데 우리집보다 더 멀리 살던 동욱이는 늘 여동생과 함께 시내버스를 타고 다녔다. 당시 스쿨버스는 아이들을 내려주며 가느라 시간이 많이 걸렸는데, 그냥 빨리 집에 가고 싶어서 그런가 보다, 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늘 밝게 웃어 어린 나이에 그런 고민과 그늘을 안고 살줄은 몰랐다. 그래서 그렇게 여동생 손을 꼭 잡고 집에 갔었나 보다. 그런 이유도 모르고 나와 친구들은 괜히 동욱이한테 다가가 “여동생이랑 너무 금술이 좋은 거 아냐?”라고 놀려댔었고. 그때는 워낙 어릴 때라, 또 좋아하는 마음을 유치하게 표현할 때라 그런 식으로 놀렸는데, 늘 착한 동욱이도 그때만큼은 심하게 화를 내며 뒤도 안 돌아본 채 집에 가곤 했다.

그때 그 모습이 어제 일처럼 생각나고, 친구의 이야기에 좀 더 귀 기울지지 못했다는 사실이 못내 아쉽다. 그리고 미안하다.

지난 날, 대학생이던 그 시절, 언젠가 기자가 된다면 어린시절 첫사랑이었던 동욱이와 해후할 수 있을 거라고, 아니면 조우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적이 있었다. 물론 지금, 나는 그때 당시의 꿈을 이루었으나 문제는 내가 축구기자라는 사실이다. ^^ 하여 이제는 서로 너무나 다른 세계에서 살고 있기에, 직접 얘기할 방법이 없기에 이렇게 블로그에나마 끄적여본다.

주변 사람들을 아빠처럼 헤아리고 챙겨줬던 너의 마음 씀씀이라면 모두에게 사랑받는 배우가 될 수 있을 거라 믿는다. 지금도 멋지지만, 앞으로도 더 멋진 배우가 되길 바라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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