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원도민프로축구단(이하 강원FC)은 300만 강원도민의 뜨거운 열정 속에 2009년 K리그 15번째 구단으로 닻을 올렸습니다. 2008년 4월 특정지역이 아닌 강원도라는 거도를 아우르는 이념 아래 창단준비위원회를 발족했고 이후 ▲법인설립 ▲도민주공모 ▲선수단 및 코치진 구성 ▲엠블럼 발표 등 창단을 위한 과정을 착실히 진행시켰습니다.

강원FC의 초대사령탑을 맡은 최순호 감독은 대한민국 스트라이커의 계보를 잇는 스타 공격수 출신으로 포항과 울산미포조선 감독 시절 ▲FA컵 3회 준우승 ▲K리그 1회 준우승 ▲내셔널리그 2회 우승 등 화려한 승자탑을 쌓으며 선수시절 못지 않게 지도자로서도 그 명성을 이어왔습니다.


또 1983년 멕시코 4강신화의 주역 김상호 수석코치와 2002년 한일월드컵의 영웅 최진철과 서동명이 코치진으로 합류하여 힘을 실었습니다.

2009년 3월 8일 전석매진이라는 뜨거운 성원 속에 강원FC는 창단 첫 경기를 승리로 장식하며 화려한 신고식을 치렀습니다. 이후 강원FC는 3골 이상의 다득점을 7차례나 기록하며 화끈한 공격축구를 선보였고 관중몰이에도 성공, 홈관중 20만명 돌파라는 경사까지 누렸지요. ▲득점 4위 ▲베스트팀 선정 2위 ▲관중동원 3위 ▲최소파울 및 경고 1위 등을 기록하며 찬란한 데뷔시즌을 보냈습니다.


구단의 마케팅도 화제였습니다. 강원FC는 지자체와의 긴밀한 유대관계를 통해 기존 프로스포츠단과 차별화되는 ‘지역밀착형 마케팅’을 선보였습니다. ▲친선 조기축구 ▲우추리 마을잔치 ▲에스코트 어르신 이벤트 등을 통해 지역과 함께 호흡하는 법을 배우며 데뷔 첫해 안정적으로 연고지에 뿌리내리는데 성공했습니다. 또 집짓기, 일일찻집, 연탄배달, 장애인시설 및 농촌 봉사활동 등 연간 50시간 이상 이웃을 위해 봉사했던 강원FC의 나눔정신은 지역민과의 일체감 형성에 높이 기여하며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뿐만 아니라 2009년 7월 크로아티아 수비수 라피치의 이적료와 연봉(각 20만불)을 최초로 공개한데 이어, 2010년에도 바제, 헤나토, 리춘유의 연봉을 언론에 알려 내실있고 투명한 구단경영으로 주목을 받았습니다.

이러한 강원FC의 노력은 947억의 지역경제효과, 280명의 고용창출효과를 거두어 객관적인 수치로도 입증됐으며 덕분에 창단 첫 해 ‘대한민국 스포츠산업대상’ 프로스포츠 부분 최우수 마케팅 대상이라는 영예까지 누릴 수 있었습니다. 강원FC는 2009년 K리그 대상 시상식에서▲김영후 신인상 ▲페어플레이상 ▲서포터스 나르샤 감사패를 수상하며 3관왕의 영광을 안았으며 같은 시기 대한축구협회는 “프로구단 지역 연고지 정착의 모범을 보이며 K리그 발전에 기여했다”며 김원동 대표이사에게 특별공헌상을 수여했습니다.

2010년 7월에는 강릉시의 전폭적인 지원으로 노암동 산35번지 강남축구공원 내에 지상 3층 지하 1층 규모의 선수단 숙소 ‘오렌지하우스’를 개관했습니다. 9월에는 강릉지역 유소년클럽을 창단했고 12월에는 깨끗한 경기 매너로 2년 연속 K리그 페어플레이상을 수상하는 영광을 차지했습니다다.

이렇듯 강원FC는 프로구단 운영의 새로운 롤모델을 제시했다는 호평 속에 ‘강원도의 힘’을 전국에 알리는데 크게 기여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저는 15번째로 창단한 막내구단 광주FC가 지역과 밀착하여 연고지 정착에 성공한 강원FC를 본받아 구단을 운영하면 어떨까 생각합니다.

넉넉지 못한 재정 속에서도 저비용 고효율로 효과적인 마케팅 정책을 펼쳤고, 그로 인해 언론과 팬들 사이에서 호평을 받은 강원FC의 정책은 -물론 경기력은 그보다 못해 아쉬웠지만 말입니다- 분명 배울 점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광주FC 구단 관계자 역시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는 듯 합니다. 창단 전부터, 그리고 창단식을 마친 지금까지, 자주 전화를 걸어 구단운영과 관련해 이것 저것 많이 물어보시네요. 강원FC 역시 짧은 역사 속에서 거둔 운영 노하우를 알려주고 있다고 하는데요, 이런 상부상조하는 아름다움이 K리그의 매력을 널리 알리는데 보탬이 되었으면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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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괴물은 역시 괴물인 것 같습니다. 강원FC의 괴물 공격수 김영후가 전북현대와의 2009 K-리그 27라운드 경기를 앞두고 남다른 기대감을 표했기 때문이죠.

김영후는 “이번 전북전은 춘천에서 열리는 마지막 홈경기입니다. 춘천 시민들에게 홈에서 마지막으로 인사드리는 날이니만큼 꼭 승리하고 싶어요”는 말로 운을 뗀 뒤 깜짝 놀랄만한 이야기를 꺼냈습니다.


“전북과의 첫 대결이 있었던 6월 27일은 결코 잊을 수 없는 날에요. 힘든 어웨이 경기에서 5-2로 대승을 거뒀을 뿐 아니라 프로 입단 이후 2번째로 멀티골을 터뜨렸기 때문이죠. 전북전과 관련해선 이처럼 기분 좋은 추억만 가득한데, 이번에는 홈에서 어린 시절 우상이던 이동국 선수와 그라운드에서 다시 만나게 됩니다. 무척 의미깊은 경기가 될 듯 하네요.”

김영후의 말에 따르면, 학창시절 포항에서 이동국이 뛰는 경기를 직접 볼 기회가 있었다고 합니다. 당시 이동국의 나이는 20살을 갓 넘겼었고, 고로 27살인 지금의 김영후보다 훨씬 어렸다네요. 한데 이동국의 플레이는 약관을 막 넘긴 어린 선수의 플레이가 아니었다고 합니다.

“축구선수로선 아직은 어린나이인데... 어떻게 저렇게 성숙된 플레이를 할 수 있는 거지?”

김영후는 당시 대단한 충격이었다고 지금도 회상합니다. 지금 자신은 그때의 이동국보다 훨씬 더 많은 나이인데도, 전성기 시절 이동국이 보여줬던 플레이에 미치지 못하는 것 같다고, 역시 K-리그에서 최고의 공격수인 것 같다고 평했습니다.

또한 김영후는 “현재 이동국 선수에 이어 득점 2위를 달리고 있는데, 그 덕분에 많은 분들이 올 시즌 득점왕 레이스에서 이동국 선수의 강력한 경쟁자로 나를 많이 지목하는 것 같아요. 그렇지만 아직은 스트라이커로서 부족한 점이 많아요. 어린 시절부터 좋아했던 선수와 함께 이름을 올릴 수 있다는 점에서 영광이라 생각합니다”라며 겸손한 자평을 내놓았습니다.

뭐랄까요. 김영후에게서 느껴지는 마음의 여유가 참 좋았습니다. 더 잘하고 싶다며 발을 동동 구르기 보단, 노력하면 자연스레 얻을 수 있을 거라 믿으며, 묵묵히 밭을 가는 소처럼 꿈을 위해 달리는 그 모습이 아주 많이 좋았습니다.

확실히 내셔널리그에서 보낸 시간은 그에게 하늘은 참고 노력하는 자에게 길을 열어주신다는 진리를 알려준 것 같았습니다.

어린시절 우상이었던 이동국을 여전히 존경하고, 또 함께 뛰며 많은 것을 배우고 싶다던 김영후. 그 말처럼 훌륭한 축구선수가 되고 싶다던 그의 꿈도 이뤄질 거라 믿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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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떨거지 차봉군이 FC소울 선수가 됐다구!” - 맨땅에 헤딩 2화 中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자연스레 수원삼성 차범근 감독과 FC서울이 연상되죠. 실제로 차봉군이 데뷔전을 치렀던 경기장은 FC서울이 홈으로 삼고 있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고 드라마 중간 나오던 서포터들은 FC서울 서포터스 수호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셔널리그에서 고군분투하다 극적으로 K-리그에 입성, 데뷔전을 치른 후 시나브로 팬들에게 강렬히 이름을 기억시킨다는 차봉군의 이야기는 올 시즌 K-리그서 많이 본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대요. 그러니까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무서워하면 안 돼. 조금만 기다리면 해가 뜨니까… 어두울수록 빛이 가까운 거니까.” - 맨땅에 헤딩 2화 中

숙소에 앉아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을 보고 있던 김영후는 극중 주인공 차봉군(유노윤호)의 에이전트 김해빈(고아라)의 독백을 들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처음 내셔널리그에 입성할 당시 그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죠.

2005년 12월 20일은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가 열린 ‘운명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냉혹한 현실과 만난 날이기도 하고요. 눈이 아주 많이 내렸던 그날, 김영후를 지명한 구단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2005년 한국축구대상 대학부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프로의 벽은 실로 높았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라는 좌절 속에서 며칠을 보내고 있던 중 모교 숭실대 축구부 감독에게서 “프로 연습생과 울산현대미포조선 行 중 하나를 택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김영후의 어머니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말과 함께 “미포조선에서 열심히 뛰다 보면 또 다른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음과 기도, 그리고 노력이 함께 한다면 곧 밝은 태양이 비추는 아침이 돌아올 것”이라 말했고, 그 말대로 꼭 3년 후인 2008년 11월 20일. 김영후는 ‘K-리그’라는 아침 해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지요.

2009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강원FC 최순호 감독이 우선지명한 김영후는 “올 시즌 목표는 10골”이라는 말과 함께 취재진 앞에서 웃는 여유까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디지털 캠코더로 고스란히 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현재 <맨땅에 헤딩> 연출을 맡고 있는 박성수 PD였습니다.

제가 박성수 PD와 만난 순간이기도 했지요. 그날 저는 베스트일레븐 8월호에 실릴 인터뷰 때문에 김영후와 인터뷰를 가졌던 7월 이후 약 4개월만에 만났던 터라 그와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죠. 당시 박성수 PD가 그런 저와 김영후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저는 박성수 PD의 얼굴을 모르고 있던 터라, 속으로 ‘어. 모자를 푹 눌러쓴 저 아저씨는 누구지. 계속 쳐다보고 계시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강원FC가서도 잘할 거라고 믿는다는 덕담을 건네며 악수를 나눈 뒤 돌아서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아저씨(?)가 제게 다가와 축구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며 명함을 건넸습니다.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며 설명을 하시는데 처음엔 ‘혹시 사기꾼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방송국 PD라고 사칭하면서 사기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좀 들었나요.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날 드라마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ㅎ 

그리고... 집에 가서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게 명함을 주신 그 PD님이 지금도 최고의 드라마로 회자 중인 ‘네 멋대로 해라’를 연출했던 그 PD님이더라고요. 그리하여 김영후 덕분에 저는 박성수 PD와 만나게 되었고 축구 드라마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아주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크진 않았던, 미약한 도움이었지만 그래도 제가 알고 있는 축구 지식, 축구 선수들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드라마에 녹아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무명선수가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그리고 3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가운데 결국엔 꿈을 이룬다는 내용의 축구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던 박성수 PD는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로 입성한 김영후의 7전8기 스토리를 눈여겨 지켜보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드래프트 현장에서 김영후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자연스레 저와도 만나게 된 것이지요. 김영후의 이야기는 드라마를 준비할 당시 주인공 차봉군의 캐릭터 설정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고요.

박성수 PD는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 전 K-리그 경기장을 둘러보며 사전답사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박 PD가 처음 찾았던 경기장이 바로 강릉종합운동장입니다. 박성수 PD가 강릉에 왔던 4월 10일. 경포 근처 횟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는데, 그날  인터뷰 때문에 김영후와 문자를 주고 받던 저를 보고 있던 중 제 핸드폰을 뺏으시더군요. 그러더니 “우리 가슴 뛰게 만드는 멋진 골 기대!”라고 문자를 제 이름으로 보내시더라고요.

드라마 준비 중 강릉 월드구장에서 강원FC 선수단 훈련을 지켜보던 박성수 PD님.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위해 사전준비에도 참 열심히셨죠.

한데 신기하게도 그 문자는 곧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전남드래곤즈와의 11라운드 경기가 열렸던 다음날, 김영후는 박성수 PD가 보는 앞에서 K-리그 데뷔골에 이어 추가골까지 터뜨리며 ‘괴물 공격수’의 부활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그 골은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정말로 멋진 골이었습니다.

<맨땅에 헤딩>이 처음 방송됐던 9월 9일 저녁. 저와 주무는 김영후의 방에 가서 “오~ 김영후 드라마 드디어 나오는 거야?”라며 놀려댔습니다. 다음날 드라마를 본 소감을 묻자 “1회 때 차봉군이 내셔널리그에서 뛰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년까지 몸담아 뛰었던 곳이라 보는 순간 가슴이 짠했어요. 차봉군의 최종목표가 ‘국가대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목표 역시 태극마크를 다는 거예요. 제가 ‘원조’인 만큼 차봉군보다 먼저 국가대표가 됐으면 좋겠네요”라며 웃더군요.

또한 김영후는 2회 마지막 장면에서 차봉군이 FC소울 입단 확정 소식을 들은 뒤 “나는 K-리거다!”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맨땅에 헤딩> 최고 명장면으로 뽑았습니다. “우선지명으로 강원FC에 입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 역시 차봉군처럼 ‘드디어 K-리거가 됐다’고 방에 앉아 소리쳤던 기억이 나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차봉군의 모습에서 내셔널리그 무대에 있었을 당시 K-리거가 되겠다는 꿈을 잊지 않고 노력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곤 해요”라고 말했지요.

누군가는 축구가 실종된 축구드라마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게는 참으로 현실 같은 축구드라마로 느껴집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하나 하나가 제겐 곧 현실이었으니까요. <맨땅에 헤딩>에서 에이전트 해빈은 차봉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죠.

“좀 바보같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첫 번째, 내 선수' 에요.”
“차봉군. 진짜 멋진 선수로 만들 거에요. 에이전트 일 할 수 있게 해준 선수고... 공동 운명체니까.”

제게도 김영후는 소중한 우리팀 강원FC의 첫 번째 내 선수입니다. 언젠가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후 선수 위해서라면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어요. K-리그에서 가장 멋진 선수로 만들 거에요. 그래서 꼭 신인왕 타게 도울 거구. 어쩜 신인왕 타는 날 엉엉 울지도 몰라요. ^^”라고요.

지난 여름, 맨체스터Utd.와 FC서울과의 친선경기가 열렸던 날,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문자를 보내자 김영후는 “상암이세요? 완전 좋겠다^^”라고 답문을 보내왔지요. 그날 저는 김영후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TV앞에서 그들을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맨체스터Utd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 넓은 무대에서 멋지게 뛸 영후 선수 모습을 그려보며. 지금도 최고지만 앞으로는 더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 믿어요.”

해빈도 봉군에게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죠. “내 꿈이 뭐냐면요.. 맨유 가는 거. 그쪽이랑.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요. 올드 트래포드에서.. 공중에 뜬 볼을 발리슛으로 내다 꽂는 거야. 함성 소리.. 들려요? 차봉군을 보고.. 열광하는 거야. 그쪽이 달리는 모습... 골세레머니 하는 모습 보면서.. 어떤 사람은.. 살고 싶어질 거에요.”

어디 그뿐인가요. K-리그 미디어데이 때 운전을 못하는 저로 인해 김영후는 강릉에서 서울까지 무려 3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운전을 했었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에 지쳐 영동고속도로에서 졸기도 했고요. 그날 어찌나 심장이 덜컹했었는지요. 그래서 지난 여름 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6시마다 운전교육을 받았습니다. 면허를 따기까지 꼬박 1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새벽잠이 너무 많아 여느 때의 저라면 침대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겠지만 운전학원을 다니던 그때만큼은 달랐습니다. 자명종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으니까요. 하루 빨리 운전면허를 따 선수 대신 내가 운전할 것. 단순명료했지만 절대적으로 지킬 수 밖에 없던 저와의 약속 때문이었죠.

그리고 지난 8월 조모컵 한일올스타전이 열렸던 그때, 저는 드디어 제 차로 김영후를 인천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죠. 제가 초보운전이었기 때문에 김영후는 거듭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운전하느라 힘 빼면 안되요. 우리 선수니까요”라며 운전대를 잡았죠. 마치 해빈이 봉군에게 “비 맞으면 안돼. 내 선수”라고 말했듯이요.

김영후는 제게 말했습니다.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맨땅이 아닌 시멘트바닥에라도 헤딩할 수 있어요”라고요. 그 말이 참 와닿더라고요. 그런 절박함과 치열함이 지금의 김영후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맨땅에 헤딩>을 보며 자충우돌하는 봉군에게서 김영후의 모습을 대입시키겠죠. 차봉군도, 김영후도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길 바라며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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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의 괴물 공격수 김영후가 K-리그 팬들이 뽑은 올 시즌 가장 인상적인 공격수에 선정됐습니다.

다음스포츠와 축구전문 월간지 베스트일레븐이 지난 9월 4일부터 16일까지 공동으로 실시한 ‘2009년 K-리그에서 가장 인상적인 활약을 보이고 있는 공격수는 누구일까’라는 설문조사에 1,236명의 네티즌 중 약 47.9%에 달하는 605명의 지지를 받아 당당히 1위에 이름을 올렸네요.

그렇다면 이번 설문조사 결과와 관련해 김영후는 어떤 생각을 하고 있을까요?

“2009년에는 좋은 일들만 가득한 것 같아요”라며 배시시 웃던 김영후는 다음과 같이 말했습니다.

“목표는 항상 높게 가져야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내셔널리그에 있는 동안에도 언젠가는 K-리그에서 활약할 제 모습을 그리며 뛰었죠. 올 시즌 꿈에 그리던 프로 무대를 밟았다는 사실만으로도 기뻤는데 벌써 13골이나 넣어 시즌 시작 전 목표로 삼았던 10골을 초과달성했네요. 한데 지난 8월 조모컵 한일올스타전 대표 발탁에 이어 이번에는 가장 인상적인 공격수 1위에까지 뽑히다니… 전 참으로 행복한 사람입니다.”

김영후의 소감은 한마디로 “행복하다”였습니다. “난 참 행복한 사람”이라는 말에서 그의 진심이 느껴졌습니다. 정말로 그가 느끼는 행복한 마음이 제게도 전달됐기 때문이죠.

24라운드까지 치른 현재 김영후는 13골 7도움으로 공격포인트 1위에 올라있습니다. 골과 도움 모두에 능한 ‘킬러’로서 완벽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가운데, 그에게 4골 차로 앞서며 득점 1위를 달리고 있는 이동국에 대해선 다음과 같이 말하더군요.


“학창 시절 이동국 선수가 뛰는 경기를 포항에서 직접 볼 기회가 있었어요. 당시 슈팅, 위치선정, 돌파력 등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좋은 공격수가 되기 위해선 이동국 선수가 가진 장점들을 배워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지금도 K-리그에서 가장 존경하는 공격수에요.”

‘경쟁자’라는 생각보단 ‘롤모델’이라는 생각이 더 크다는 게 김영후의 답변이었죠. 사실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스트라이커 이동국에 대한 평이 극명하게 갈리죠. 하지만 김영후는 “자신이 갖지 못한 장점들을 두루 갖춘 공격수”라며 존경의 인사말을 건넸습니다.

1995년 노상래 현 전남 코치의 신인왕 & 득점왕 동시 석권에 이어 14년만에 깨질 기록에 대한 열광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솔직한 심경을 밝혔습니다.

“신인왕과 득점왕 중에 어느 상이 가장 탐나냐는 질문을 요즘 들어 자주 받아요. 솔직히 말하자면 정말로 마음을 비웠습니다. 집착은 플레이를 무디게 만드는 ‘독’과 같은 것이니까요.”

시즌 초반 지나친 신인왕 욕심이 오히려 자신을 힘들게 만들었다는 고백과 함께 말이지요.

김영후는 “지금 제가 가장 바라는 것은 오직 강원FC의 승리 뿐입니다. 최근 팀이 승수를 추가하지 못해 잠시 주춤한 상태지만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열광적인 홈팬들의 응원을 생각해서라도 남은 경기에서는 꼭 승리하겠습니다”며 다부진 각오를 밝히기도 했습니다.

옆에서 지켜보는 김영후는 참으로 맑은 사람입니다. 욕심과 자만을 경계하며 늘 정도의 길만 걸으려고 합니다. 최선을 다하는 자에게 신은 손을 내미는 법이라는 믿음과 함께 말이지요. 꼭 거창한 타이틀 달지 않아도 그는 참으로 멋진 선수고, 그래서 저는 김영후가 참으로 좋습니다. 존경할 수밖에 없는 선수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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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강원FC와 전북현대와의 리그 13라운드가 열린 토요일 저녁. 경기 시작 전 기자들은 모두 전북의 승리를 점쳤습니다. 지난 11라운드 울산과의 경기에서 4-3승, 성남과의 12라운드에서 4-1승을 거푸 거두며, 그것도 2경기 연속 4골이라는 폭발적인 득점력을 선보인 강원이지만 그래도 전북에게는 어렵지 않겠냐가 중론이었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는 전북이다, 가 이유였습니다. 부활한 킬러 이동국을 축으로 최태욱과 루이스가 보여주는 빠른 돌파에 이은 정확한 슈팅력은 가히 일품이었으며 중원에는 킬패스와 프리킥의 달인 에닝요와 가끔씩 보여주는 위협적인 중거리슛이 인상적인 하대성이 있으니까요.


경기 하루 전 강원 주무에게 선수들 컨디션을 넌지시 물어봤습니다. 언제나처럼 좋다는 대답이 들여왔습니다. 그러나 그 뒤에 이어진 대답은... "그런데 전북 선수들 컨디션이 더 좋아보여요." 아무래도 5시간이 걸리는 원정은 강원 선수들에게 부담이었던 것 같습니다. 기자들의 생각 역시 크게 다르지 않았죠. 솔직히 울산이나 성남은 예전만 못한 팀이 아니겠냐. 감독이 교체되며 팀이 리빌딩되는 시점이라 올 시즌 두 팀의 성적과 경기력은 과거 명성만 못한게 사실이었으니까요. 그런 팀을 상대로 거둔 승리는 예견됐던게 아니겠느냐는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이래저래 강원에게 전북은 어려운 상대였고 엔트리 명단이 나오자 모 기자는 명단 속 이름을 찬찬히 살핀 뒤 이렇게 말했답니다. "강원 주전들 중에서 전북가서 선발로 뛸 수 있을만한 선수는 한 명도 없겠구만. 오늘 경기는 3-1 전북의 승리다." 그 자리에 있던 대부분의 기자들의 생각이 그러했듯, 강원에게 전북은 어려운 상대였고 쉽게 넘기 힘든 상대였던 것 사실입니다. 그러나 이번 고비만 잘 넘어간다면 진정 K-리그 강팀으로 거듭날 수 있는 기회였기에 강원 선수들은 초반부터 거세게 전북의 골문을 향해 달려가더군요.

시작은 이을용의 발끝에서 시작됐습니다. 전반 4분 전북 수비 뒷공간을 노린 이을용의 롱패스. 그리고 아크 정면에서 그 공을 받은 오원종은 침착하게 오른발로 선제골을 터뜨렸습니다. 그뒤 전북의 이동국와 최태욱, 루이스와 에닝요는 번갈아가며 시종일관 강원의 골문을 두드렸지만 한 골을 넣어야겠다는 생각이 컸던 까닭인지 너무 힘이 들어간 모양새였습니다. 공은 계속해서 떴고 크로스바 위를 훌쩍 넘기기 일쑤였죠. 전반 41분 괴물 공격수 김영후의 2번째 골이 터지며 전반을 마감했습니다.

후반 시작과 동시에 하대성의 만회골이 터졌고 이어 후반 18분 오른쪽 윙어로 교체출전한 서정진의 도움으로 정훈이 동점골을 터뜨렸습니다. 이대로 전북의 기세로 경기가 지배되는가 싶었으나 후반 25분 박종진의 투입이후 강원은 중원에서 볼을 점유하며 공격 에어리어를 넓히기 시작했고 공격의 속도 역시 경기 초반 당시처럼 빠르게 진행되기 시작했습니다. 후반 26분 영혼의 파트너 김영후와 윤준하의 작품이 나왔습니다. 아크 정면에서 볼을 받은 윤준하는 욕심 대신 실리를 택했고 김영후에게 내준 볼은 그대로 전북의 골망을 출렁였습니다. 그후 4분 뒤 오른쪽 측면에서 전북 수비수의 태클을 완벽하게 피한 박종진은 빠른 돌파 후 골 에어리어 안에 있던 윤준하에게 올렸고 윤준하는 침착하게 오른발로 골을 성공시켰습니다.

경기는 순십간에 4-2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이대로 끝났을까요? 후반 30분 4-2로 리그하고 있는 상황에 많은 팀들은 수비지향적 전술을 쓰기 쉽습니다. 2골이나 앞서기 때문에 골문을 잘 지키기만 한다면 쉽게 승리로 경기를 마감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강원은 달랐습니다. 마지막 순간까지 미드필더와 공격수들은 공격앞으로를 외쳤고 후반 43분 박종진의 택배크로스는 이창훈의 머리를 향해 그대로 정확하게 날아갔습니다. 그리고 골!

5-2 완벽한 강원의 승리였고, 토요일밤 전주성은 화끈한 공격축구로 달아올랐습니다. 경기 종료 후 최순호 감독님께 "판타스틱한 밤이지 않냐"고 웃으면서 인삿말을 건네자 감독님은 "강릉 홈이 아니기 때문에 아쉽다"는 대답을 들려주셨습니다. 다소 흥분할 법도 한 상황에서 홈경기장을 찾아와주는 강원도민들을 먼저 생각한 그 마음에 저는 또 한번 놀랐고 또 감동받았죠. 게다 먼 곳까지 오느라 고생했다며 제 어깨를 토닥토닥해주시기까지.

고마운 마음에 저는 아름답고 또 감동적인 경기를 보여주셔서 감사드린다는 끝인사를 드린 뒤 집으로 총총 달려왔습니다. 경기 시작 전 전북의 승리를 점쳤던 기자들은 K-리그 다른 구단들도 강원FC의 경기를 보고 배우며 또 반성해야한다며 엄지손가락을 들여보였습니다. 그리고 이 대박 경기를 중계하지 않은 방송사들은 안타까워해야한다고 말했고요.

이날의 경기는 기록 대신 기억으로만 남게 됐지만, 이날의 경기를 본 사람으로서 전 참으로 복 받은 K-리그 팬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도대체 누가 K-리그 경기가 재미없다고 했을까요. 그런 사람이 있다면 강원FC 경기를 보라는 말을 들려주고 싶군요. ^^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전반 초반 첫 골을 성공시킨 강원 FC 오원종이 이성민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전반 초반 첫 골을 성공시킨 강원FC 오원종이 골세레머니를 펼치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 전반,강원 FC 김영후(왼쪽)가 이날 팀의 두번째 골이자, 자신의 첫 골을 성공시키고 있다. 김영후는 두 골을 기록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강원 김영후가 환호하고 있다.

전북의 첫번째 골을 성공시킨 하대성이 이동국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전북의 동점골을 성공시킨 정훈이 동료들에게 축하인사를 받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강원 FC 윤준하(왼쪽)와 전북 현대 정훈이 치열한 볼다툼을 벌이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후반 강원 FC 5-2 승리의 네번째 골을 성공시킨 강원 윤준하가 환호하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후반 강원 FC 5-2 승리의 네번째 골을 성공시킨 강원 윤준하가 관중석을 향해 골세레머니를 펼치고 있다.

골이 터지지 않자 유니폼으로 얼굴을 감싼 채 좌절하던 이동국.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후반 강원 FC 5-2 승리의 세번째 골을 성공시킨 강원 김영후(가운데)가 동료들과 얼싸안고 기뻐하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 후반, 골 기회를 놓친 전북 이동국(왼쪽)이 유니폼으로 얼굴을 감싸고 있다. 오른쪽은 강원 김영후.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후반 강원 FC 5-2 승리의 세번째 골을 성공시킨 강원 김영후(가운데)가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후반 강원 FC 5-2 승리의 다섯번째 골을 성공시킨 강원 이창훈이 환호하고 있다.

전주월드컵경기장에서 있은 전북 현대와 강원 FC 경기에서 후반 강원 FC 5-2 승리의 다섯번째 골을 성공시킨 강원 이창훈(가운데)이 김영후(오른쪽)의 축하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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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베트남의 여름 날씨는 질퍽하게 녹아내린 아이스크림을 만졌을 때의 느낌과 많이 닮았다. 기온이 높을 뿐만 아니라 습기까지 심해 그늘에 앉아 있어도 끈적끈적한 기분은 여전하다. 2004년 8월28일 베트남 호치민 탄 롱 스포츠센터 경기장 내 날씨는 더 했다. 4만 명을 수용할 수 있는 그곳에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기 때문이다. 2004LG컵국제친선대회 베트남국가대표팀과 한국대학선발팀 간의 결승전을 보기 위해 아침부터 모인 사람들이었다.

후반45분 전광판에 적힌 숫자는 3-4. 베트남이 앞서고 있었으니 경기장은 한바탕 축제 분위기였다. 그러나 PA중앙으로 돌파하던 배기종(前광운대)을 막으려던 수비수의 태클이 상황을 반전시켰다. 결국 염기훈(前호남대)이 왼발로 페널티킥을 성공시키며 승부를 연장으로 돌렸다. 그리고 연장 후반13분 쐐기골이 터졌다. 작은 몸집의 한 선수가 자신을 두 겹 세 겹으로 에워싸던 벽을 뚫고 결승골을 터뜨렸다. 4년의 시간이 흘렀지만 여전히 선연한 기억으로 남아있다. 그의 이름은 한승현. 오늘 우리가 만날 주인공의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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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는 없다
작년이요? 말도 마요. 부상을 달고 살았죠. 운동할 때마다 자꾸 다치다 보니 점점 경기에 나가는 횟수가 줄어들었어요. 선수한테 그것보다 더 힘든 게 있을까요?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생각마저 들었어요. 모든 게 귀찮아져 마냥 손 놓고 있었는데 이우형 감독님께서 그런 저를 불러주셨어요. 참 이상한 거 있죠. 전혀 생각이 없었는데, 갑자기 이곳에서 뛰게 된다면 다시 예전의 나로 돌아갈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그냥 마음속에서 그런 희망이 절로 생겼어요.”

여기서 예전은 그의 대학시절을 의미한다. 2006년 가을, 드래프트를 목전에 뒀을 즈음 한승현은 김신영(前한양대)과 함께 대학무대 ‘최대어’로 불렸다. 그런데 예상 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한승현의 울산미포조선行. 처음 그 이야기를 들었을 때 의아하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그는 왜 그런 선택을 하게 된 것일까.

“처음부터 프로에 못갈 것 같다는 생각은 없었어요. 항상 잘한다는 소리만 들으며 뛰었으니까요. 그런데 그때 마침 미포조선에서 드래프트 1순위 못지않은 대접을 해주겠다고 연락이 왔어요. 제 능력을 믿겠다더군요. 저를 믿겠다는데 어찌 뿌리칠 수 있겠나요. ‘그래, 나를 인정해주는 곳에서 맘껏 뛰어보자’는 생각으로 간 거죠.”

결론부터 말하자면 ‘지금도 후회는 없다’란다. 대학선발에서 함께 공격을 책임지던 염기훈이 신인왕을 받았을 때도 그는 가장 먼저 축하 메시지를 보냈다. 대학동기 김영빈이 인천Utd.에서 주전으로 나서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도 “녀석, 진짜 잘됐네”라며 웃었다고 한다.

“대학시절 함께 뛰던 선배들, 동기들이 프로에서 잘하는 모습을 보면 가끔 부럽다는 생각이 들기도 해요. 하지만 크게 신경 쓰진 않아요. 중요한 건 ‘나를 원하는 팀에서 과연 얼마만큼 실력을 보여줄 수 있는가’ ‘내가 가진 능력을 입증할 수 있는가’ 이게 아닐까요?”

이우형 감독 또한 한승현의 의중을 읽은 듯했다. 방황하던 한승현을 고양국민은행으로 불러들이며 이 감독은 “꾸준히,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믿음만 갖고 뛰어라”는 덕담을 건넸다. 이보다 힘이 되는 영양제가 또 있을까. 한승현은 뛰다가 걷고 싶어질 때면 ‘감독님의 조언’을 떠올리며 다시 뛴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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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의 이름은 누군가의 희망

“얼마 전 고등학교 동창회에 다녀왔어요. 갔더니 다들 너무 반가워하는 거예요. 뜻밖이었죠. 이름도 모르는 친구들이 제게 다가와서 ‘네가 우리에게 희망이야’라고 얘기하더군요. 순간 고개가 절로 숙여지더라고요. 힘들다는 이유로 운동을 그만 두려했던 철없던 제 모습이 생각났거든요.”

프로필을 보면 알겠지만 한승현은 ‘소년의 집’으로 널리 알려진 부산 알로시오 고등학교 축구부 출신이다. 그는 그곳에서 수녀님을 ‘엄마’라 부르며 자랐다. 그의 엄마는 전교생의 엄마이기도 했다.

“4살 때였나. 학교 앞에 있는 절 엄마 수녀님이 발견하셨대요. 그 뒤로 학교가 제 집이 됐죠. 그곳에서 축구를 배웠고 지금도 휴가 받을 때면 가장 먼저 가는 곳이니까 언제나 소중한 ‘나의 집’이죠.”

한승현은 그곳 아이들에게 ‘희망’같은 존재다. 축구가 좋아 택했던 친구들 중에서 입때껏 공을 차고 있는 사람은 현재 한승현이 유일하다. 그래서일까. 그들은 한승현의 오늘날에서 못다 이룬 지난 날의 꿈을 투영하는 중이다. “네가 희망이야”라는 말에는 그런 이유가 숨어 있다.

“다들 축구를 그만둬서 아쉬워요. 하지만 후원 없이 대학교에서 축구를 한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 당장 축구화 살 걱정부터 해야하니까요.” 한승현에게 물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홀로 축구를 그만두지 않는 이유는 무엇이냐고. 일말의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희망 때문에요.” 무엇에 대한 기대와 바람이냐고 다시 한번 물었다.

“제가 훌륭한 선수가 된다면 사람들은 제가 나온 학교에 대해서도 관심을 갖겠죠. 그러면 알로시오 고등학교를 한 번 더 바라보는 계기가 될 거예요. 사람들이 그곳에도 가능성을 지닌 선수들이 많다는 사실을 알았으면 좋겠어요. 제가 그 기회를 만들어주고 싶어요.”

어쩌면 버림받았다는 피동형 문장과 함께 누군가를 원망하며 살았을지도 모를 젊은 날이다. 그러나 적어도 축구만은, 그의 삶에 한없는 능동성만을 부여했다. “11살 적 처음 축구를 시작했어요. 축구가 절 택한 게 아니라 제가 축구를 선택한 거죠. 그 덕분에 방황 없이 자랄 수 있었어요. 앞으로 고양국민은행에서도 흔들림 없이 잘하고 싶어요. 제가 받은 은혜와 감사를 고등학교 후배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라도요.”

‘내셔널리그’에서 ‘National’이 되겠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는 법”이라는 말이 있다. 한승현은 이를 “누구에게나 기회는 온다”라고 해석한다. “고양국민은행은 가족 같은 팀이에요. 그러다 보니 전체적인 분위기도 밝고 덕분에 조직력도 타 팀에 비해 잘 다져졌어요. 서로를 생각하는 마음이 그대로 전력으로 이어진 거죠. 못했을 때 크게 나무라거나 탓하는 사람이 없다 보니 자신감을 갖고 뛸 수 있어요. 이곳에서라면 제게 다가온 기회들을 잘 잡을 수 있을 듯해요.”

역시나 목소리에서부터 자신감이 가득 묻어 나온다. “올해가 제 축구인생에서 중요한 발판이 될 거예요. 독하게 해야죠. 남과 똑같이 하면 남 이상이 될 수 없어요. 남을 뛰어넘기 위해서는 더 많은 노력을 기울여야죠.” 말을 아껴 잠시 침묵하던 그는 속내를 드러냈다.

“내셔널리그에서 ‘National’이 되고 싶어요. 그래서 꼭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래요. 내셔널리그 선수 중에서 국가대표 선수가 나오지 말라는 법도 없잖아요.” 그것이 내셔널리그에 입성하며 세운 ‘제1목표’라고 말했다. 그렇다면 제2목표는? “재미있는 축구를 보여드리는 것이죠. 팬들에게 내셔널리그도 K리그 못지않게 박진감 넘치고 흥미롭다는 사실을 느끼게 해드리고 싶어요. 신나고 즐거워서 돌아서면 다시 또 보고 싶어지는 그런 경기를 보여드릴게요. 그러니 많은 분들이 경기장으로 발걸음 하셨으면 좋겠네요.”


누군가는 아무 것도 없다 말했지만 스스로는 모든 것을 다 가졌다고 생각했다. 축구화가 없으면 운동화를 신고 뛰면 된다고 다짐했다. 왜 내셔널리그로 가느냐는 지인들의 물음에는 National이 되고 싶은 마음 때문이라 답했다. 희망의 존재가 되고픈 소년의 꿈은 그렇게 내셔널리그와 같은 키로 자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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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5년 12월 20일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가 열린 그랜드힐튼호텔. 1순위를 시작으로 8순위를 지나, 이윽고 번외지명 선수까지 발표했지만 그는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이름을 듣지 못했다. 거리에 나서자 잿빛 건물들 사이로 눈이 흩날리기 시작했다.


손전화가 울렸다. “여보세요. 네, 선생님. 그렇게 됐어요. 저 이제 어떡하죠?” 유난히 추웠던 겨울로 기억한다. 그리고 그해 겨울 미포조선 최순호 감독은 모든 것이 막막했던 대학 졸업반 어느 무명 선수를, ‘가능성’ 하나만 믿고 받아줬다. 그러나 그날로부터 채 3년도 지나지 않은 지금, 그는 어느새 ‘내셔널리그의 반니스텔루이’로 불리며 팀의 중심으로 성장했다. ‘그’가 누구냐고? 오늘 우리가 만날 주인공, 김영후의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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괴물 공격수의 등장

미포조선은 지난 6월7일 안산 와~스타디움에서 열린 2008내셔널리그 할렐루야와의 경기에서 3-1로 승리하며 22경기 연속 무패행진(16승6무)을 세웠다. 이날 미포조선이 세운 눈부신 기록 뒤에는 해트트릭을 작성하며 팀 승리를 견인한 김영후의 공이 깃들어 있다. 이날 3골을 보태며 김영후는 현재(6월11일 기준) 10골(10경기)로 이길용(창원시청/6골 8경기)에 4골차 앞선 득점 선두를 달리고 있다. 내용을 살펴보면 그의 질주가 더욱 대단하게만 보인다. 일단 경기당 득점률이 무려 ‘1골’이다. 이쯤 되니 지난 시즌 맨체스터Utd.의 호나우도가 보여줬던 득점력(34경기 31골)이 부럽지 않을 정도다. 덕분에 연일 언론에 이름이 오르내리며 유명세도 탔다. “운이 좋았어요. 수비수들이 공을 걷어내도 꼭 제 앞에 떨어지더라고요.”

그러나 정작 그가 세운 대단한 기록은 따로 있다. 지난 5월10일 김영후는 천안시청을 상대로 8경기 연속골을 성공시키며 내셔널리그 최다 연속골 기록(2007년 이후선 7골)을 갈아치웠다. 그와 동시에 K리그 연속골 기록(1995년 황선홍, 2000년 김도훈)과도 타이를 이뤘다. 이것 역시 그의 말마따나 단지 ‘운’으로만 설명할 수 있을까. “90분 내내 경기가 안 풀리더라도 찬스는 온다고 생각해요. 그 순간을 골로 연결시키기 위해서는 항상 집중력을 가져야하죠. 골 넣는 비법이라면 비법이겠죠. 물론 개인적으로 조금 아쉽기도 해요. 1골만 더 넣었다면 K리그 기록까지 깰 수 있었으니까요. 축구팬들의 관심을 조금이나마 내셔널리그로 돌릴 수 있는 좋은 기회였는데 이를 놓쳐 아쉽네요.”

그러더니 앞에 놓인 포도 주스를 한 모금 마시며 잠시 입을 축였다. “골 행진이 이어질 때 대표팀 쪽에서 제가 뛰는 모습이 담긴 테이프를 저희 팀에 요청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형들이 인터넷에 관련 기사가 떴다면서 보여줬거든요. 기대요? 제 실력을 알았기에 큰 기대는 없었어요. 그렇지만 그 후로 달라진 점이 하나 있긴 해요.”

순간 김영후의 눈이 반짝였다. 뭘까. “요즘은 경기 때마다 전담 마크맨이 붙어요. 제가 공만 잡으면 기를 쓰고 달려들죠. 처음엔 ‘왜 나만 따라다닐까?’라는 생각이 들었는데 반복되다 보니 짜증도 나고 급기야 평정심도 잃게 되더라고요. 그런데 최순호 감독님이 이를 눈치 채셨는지 ‘그런 과정을 이겨내야 좋은 공격수가 되는 것’이라고 조언해주시더군요.” 최순호 감독이 던진 충고의 힘이 컸던 모양이다. 최근 3경기(7·8·9라운드) 연속 침묵했던 김영후는 결국 지난 할렐루야전에서 올 시즌 첫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다시 기지개를 폈다.

아픔의 순간도 있었지만
“드래프트에서 탈락했을 때 정말 낙담했어요. 이것 하나만 바라보며 지난 4년 간 열심히 뛰었는데… 한 순간에 모든 것이 무너진 듯한 마음이었죠. 그렇지만 부모님을 생각하며 마음을 곧추 세웠습니다. 이런 모습 보이려고 그 반대를 무릅쓰고 축구를 시작했던 건 아니었으니까요.”

부모님의 만류 속에서 시작한 축구였다. 김영후 역시 그 마음을 이해 못하는 것은 아니었다. 외아들이 식사 도중 코피까지 흘려가며 피곤해하는 모습을 마냥 두고 볼 어버이는 어디에도 없었다. “한번은 훈련 시간이 다가오자 제가 못나가도록 문을 잠그시더라고요. 그런데 그것으로 부족했는지 방문 앞을 지키고 계셨어요. 결국 급한 마음에 2층에서 뛰어 내려 훈련장으로 달려갔죠. 그만큼 축구가 정말 하고 싶었어요. 그게 11살 적 일이니 벌써 15년 전이네요.”

결국 그의 부모님은 축구선수가 되겠다는 김영후의 꿈을 허락했다. 물론 온전히 이해하고 받아들인 것은 아니었다. 두 분이 축구를 향한 마음의 문을 열기까지, 꼬박 10년의 시간이 걸렸다. 아들이 뛰는 경기를 보기 시작한 것도 그가 막 대학 3학년이 됐을 때부터였다. “그렇지만 제겐 부모님이 가장 든든한 지원군이자 조언자였어요. 드래프트에서 떨어지고 갈 곳이 없을 당시 대학(숭실대) 감독님께서 ‘프로 연습생과 미포조선行 중 하나를 택하라’고 하셨어요. 그때 부모님께서 미포조선으로 가라고, 가서 열심히 하다 보면 꼭 좋은 일 있을 것이라고 말씀해주셨죠.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더 이상 어디로 가야할지 고민할 필요도 없더군요.”

지금도 김영후는 자신의 선택에 “후회는 없다”라고 딱 잘라 말한다. “감사하게도 감독님께서 입단 첫 해부터 기회를 주셨고 덕분에 꾸준히 경기에 나설 수 있었어요. 선수로서 경험을 쌓을 수 있었다는 점에서 만족합니다. 미포조선과 전 처음부터 궁합이 잘 맞았던 것 같아요.”

그렇지만 뿌리 깊은 떡갈나무도 잎사귀는 바람에 흔들리는 법. 그 역시 마음이 쉬이 흔들린 순간은 없었을까. 에둘러 숭실대 동기 양상민(수원) 이동원(대전) 등이 프로에서 잘하고 있다는 소식을 접할 때면 어떤 생각이 드냐고 물어봤다. “부러웠죠. 속상한 마음도 들었고요. 하지만 그런 생각들은 이내 버렸어요. 제가 그 친구들보다 먼저 프로에 뛰어들었다 하더라도 그들처럼 성공할 수 있다는 장담은 결코 할 수 없었으니까요.” 덧붙여 말했다. “전 다만 주어진 현실에 최선을 다할 뿐입니다. 이곳에서 더 열심히 노력해서 그 친구들만큼, 아니 그보다 더 잘하고 싶네요.”

소박한 바람
올해도 김영후는 순풍과 함께 뛰고 있다. 덕분에 이렇다 할 부상이나 슬럼프 없이 맹활약 중이다. 이대로라면 개인 트레블(우승·MVP·득점왕)도 노려봄직하다. “아니요. 일부러라도 그런 생각은 안 하려고 해요. 이런 저런 생각들에 빠지다보면 잡념이 많아 집중하기 어려워지니까요.” 물론 대답은 정석에 가까웠으나 그가 누구던가. 2006년 신인왕과 득점왕을 동시에 석권했을 때도, 이듬해 팀이 우승하며 MVP를 거머쥐었을 당시에도 ‘내가 받기엔 과분한 상’이라고 생각했던 김영후다. “정말로 제게는 분에 넘치는 상들이었어요. 작년 5월26일 인천 코레일과의 경기 도중 왼쪽 발목이 부러지는 부상을 당했어요. 재활 후 10월부터 팀에 합류해 뛰기 시작했는데 MVP를 받게 돼 동료들에게 미안했죠. 보이지 않는 곳에서 팀이 우승할 수 있게 도운 선수들이 많았거든요.”

그러나 아직 뼈가 완전히 붙지 않은 상황에서 테이핑과 진통제의 힘을 빌려 뛰었던 김영후의 ‘투혼’을 생각한다면, 고맙고 미안한 이는 외려 동료들이 아닐까. “만약 그렇다면 그건 아마 ‘상턱’으로 통닭과 피자를 돌렸기 때문일 거예요(웃음).” 이 말과 함께 순박한 웃음을 터뜨리는 김영후의 올 시즌 목표는 웃음만큼이나 소박했다.

“관중들이 많이 왔으면 좋겠어요. 아직도 내셔널리그가 K리그만 못하다고 생각하는 분들이 많아요. 그렇지만 K리그 못지않게 재미있는 경기가 주말마다 열리고 있어요. 선수들 간 동업자 의식도 강해 서로 경쟁은 하되 깨끗하고 매너 있는 플레이를 선보이고 있고요. 직접 와서 보시면 다들 내셔널리그만의 매력에 푹 빠지게 될 거예요. 이렇게 말로 듣는 것과 보는 것은 상당히 다르니까요. 경기장에서 응원해주신다면 힘이 나서 더 즐겁고 재미난 경기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좋은 모습 보여 드릴 테니 꼭 경기장에 놀러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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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