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신인드래프트가 끝난 지 얼마 안된 12월의 어느 날. 점심을 먹고 들린 숙소 회의실에는 낯선 얼굴의 소년 열댓 명이 모여 있었다. 드래프트에서 뽑힌 신인선수들이라고 했다. 대학 졸업을 앞둔 선수들이었지만 긴장된 표정에선 앳됨이 먼저 보였다.

그렇게 아직은 소년의 향기가 남아 있던 선수들에게 프로필을 작성해 달라고 종이를 돌렸다. 간단한 일이라고 생각했지만 웬걸. 선수들은 머리를 긁적이며 쓰다 지우기를 반복하고 있었다. 마치 중간고사 시험지와 마주한 학생들처럼. 회의실은 어느새 교실로 변해 있었고 단상 위에서 이를 지켜보고 있던 나는 영락없는 선생님의 모양새였다. 자리를 돌아다니며 프로필 종이를 걷는 마지막 모습까지, 어쩜 그리 추억 속 담임 ‘쌤’의 모습과 닮아 있었던지.

드래프트 4순위로 온 유재원도 소집 첫날 밤 “다시 학교에 입학한 것 같다”고 했다. 문득 고등학교생이 되던 그날이 생각났다. 입학 첫날부터 사람들은 내게 말했었다. 얘야 정신 똑바로 차리고 공부해야지만 대학 문을 통과할 수 있단다. 그래야 네 인생이 잘 풀릴 수 있어. 신인선수들의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았다. 프로 1년차 때 앞으로의 축구인생이 달려있다는 이야기를 귀에 박히도록 들었을테니, 열일곱의 나와 비슷한 마음을 품고 있었을 것만 같다.

 

올해 우리팀은 드래프트 현장에서 모두를 놀라게 했다. 무려 15명을 뽑았으니까. 여기에 추가지명까지 진행되니 스무 명 가까이 되는 선수들이 팀에 합류했다. 말은 안해도 신인선수들 각자는 적잖게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 듯했다. 축구는 11명의 선수들이 화합할 때 가장 빛나지만, 베스트일레븐에 들어가기 위한 과정만큼은 경기보다 더 전쟁 같은 스포츠 아니던가. 선배 뿐 아니라 경쟁할 동기들 또한 차고 넘쳤으니, 프로는 역시 프로구나, 했을 것이다.

 


그래서 이번 신인선수들은 뭐든 다 조심스러워하는 모습이었다. 태백산에 올랐던 소집 첫날도 그랬다. 하산 후 고기집에 들려 회식자리를 가졌는데, 김학범 감독님은 풀어줄 땐 화끈하게 풀어주는 ‘상남자’ 스타일인지라 신인들끼리 편하게 먹으라며 방을 내주셨다. 그 방에 어린 선수들이 옹기종기 모여 앉아 소고기를 먹기 시작했다. 넉넉하게 시켰다고 하지만 알다시피 20대 초중반이면 철도 씹어 먹을 나이 아니던가. 고기는 금세 떨어지고 말았다. 마침 이을용 코치님이 잘 먹고 있는 거냐며 방에 들어왔다가 빈 그릇을 보시곤 더 먹고 싶으면 시켜줄게, 라고 말씀하셨다.

그러나 우리의 신인선수들은 대답 대신 침묵만 지킬 뿐이었다. 아아. 이 장면이 만화였다면 코치님 머리 위로 까마귀가 5마리는 지나갔을 것 같다. 머쓱해진 코치님이 나가는 것과 동시에 신인선수들의 눈빛에서 난 모든 생각을 읽고 말았다. 그래서 말했다. 여긴 프로니까 눈치 보지 말고 시켜먹어요, 라고. 그때 신인선수들은 알았을까. 서당개는 3년만에 천자문을 읊는다지만 구단 프론트는 한 시즌만에 선수단과 ‘이심전심’하는 경지에 오른다는 사실을.

그제야 선수들은 고기집 이모를 부르기 시작했다. 여기 고기 4인분이요, 저희는 2인분만 주세요, 하는 그 애틋한 목소리를 들으며 내 마음은 파리의 연인의 박신양처럼 “저 고기가 내 고기라고, 내가 시켜 먹고 싶다고 왜 코치님께 말을 못하냐구!”라고 외치고 있었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그들은 모든 것이 어렵기만 한 신인선수들인데.

쉽게 말 못하는 건 그 뿐만이 아니었다. 얼마 전 신인선수 A와 통화를 하게 됐는데, 마침 그날은 꿀 같은 외박이 주어진 날이었다. A는 내게 “통화 가능해요. 지금 서울에서 친구랑 저녁 먹고 다시 강릉 가는 길이거든요. 외박이긴 한데 숙소에서 자려고요”라고 말했다. 그런데 가만… 친구와의 저녁식사를 위해 왕복 5시간 걸리는 영동고속도로를 넘나든다고? 나는 다 알겠다는 듯이 웃으며 여자친구는 잘 만난 거냐고 물었다. 순간 깜짝 놀란 A는 “이거 선생님들이 아시면 안 되는데…”하며 말끝을 흐렸다.

자, 드디어 진짜 박신양 아니 파리의 연인 한기주처럼 말할 시간이 온 것이다. “저 여자가 내 사람이다. 저 여자 내 애인이다. 왜 말을 못하냐구!” 그제야 A는 “여긴 프로니까 여자친구 있다고 해도 뭐라고 할 사람 없는 거죠?”라고 되묻더니 헤헤 웃으며 말을 이었다. “그걸 잊고 있었네요! 여자친구랑 오랜만에 만나서 밥도 먹고 위로도 받고 덕분에 마음의 힘 많이 얻고 헤어졌어요.”

반면 신인선수 B는 감독님이 무심코 던진 한마디를 붙잡고 며칠 째 골머리를 썩고 있는 중이었다. 소집 첫날 감독님이 B를 보더니 “넌 머리가 그게 뭐야?”하셨단다. 아! 난 감독님께 첫날부터 찍혔구나. 결국 B는 머리를 쥐어뜯으며 숙소에서 보낸 첫날 밤, 새신랑마냥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다.

비록 김학범 감독님과 내가 함께 한 시간은 채 1년이 되지 않았지만 신인선수들에게 이것만은 확실하게 말할 수 있다. 우리 감독님은 바로 대장부 스타일의 지도자라는 것. 물론 가끔은 너무 시원하신 바람에 ‘화통’한 말씀이 ‘호통’처럼 들릴 때도 있지만. 예를 들자면 이렇다. 오랜만에 내가 숙소에 나타나면 감독님은 대뜸 화부터 먼저 내신다. “여긴 왜 왔어!!!!” 이때 문장 끝에는 느낌표가 꼭 4개 정도는 붙어야한다. 그러나 우리말은 끝까지 들어야 아는 법. “홍보담당자가 숙소에 자주 와서 선수들 이야기도 많이 들어야지. 그래야 우리팀 홍보가 되지. 앞으론 자주 와요. 얼굴 잊기 전에.” 꼭 묶었던 머리 푸는 여자만 반전 있는 사람이 아니라는 걸 나는 우리 감독님을 통해 배운다.

그래서 머리를 짧게 다듬어야겠다는 신인 B에게 말해줬다. “감독님이 우리팀 선수에게 한번은 ‘넌 얼굴이 그게 뭐야. 그래가지고 장가가겠어?’ 하신 적도 있고요, 다른 선수에게는 ‘넌 정신 안차려? 왜 숙소에서 티셔츠를 벗고 다녀!’ 하신 적도 있어요. 그렇게 툭툭 화나듯이 말씀을 던지시지만 돌아서서는 ‘우리 선수들이 내 새끼들이니까 그래도 제일 이뻐보이지’하면서 허허 웃으시는 분이에요.” 함께 보내는 시간이 쌓여갈수록 신인선수들도 나처럼 시나브로 학범슨님만의 스타일에 적응할 것이라고 믿는다. 그게 아니라면? 길들어지겠지. 아마도 흐흐.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동안 미국전지훈련에 참가하는 명단이 드디어 나왔다. 명단을 살펴보니 LA행 항공권을 손에 쥔 선수가 있는가 하면 강릉에 남아 따로 훈련을 하게 된 멤버도 눈에 띈다. 후자의 이름을 확인하니 한숨부터 먼저 나온다. 전지훈련에 동행하지 못한 신인선수들에게 2월의 밤은 또 얼마나 길고 외로울까, 하는 생각이 들어서다. 이것이 친동생을 염려할 때 같은 가족애인지, 아니면 나이먹고 늘기만 한 몹쓸 노파심 때문인지는 잘 모르겠지만. 어쨌거나 걱정스러운 마음을 감추기는 힘들다. 남게 된 선수들 가운데 개막 전(前)부터 자책하며 시즌을 통째로 포기하는 이가 생길까봐, 나는 안스러운 눈빛으로 한참이나 잔류명단을 바라봤다.

만약 혹시라도 그런 생각으로 가슴을 칠 신인선수가 있다면, 그에게 이 말만큼은 꼭 해주고 싶다. 40경기 가까이 열리는 한 시즌동안 그라운드에선 참 많은 일들이 벌어진다고. 멋지게 골을 터뜨린 선수가 십여분 후 들 것에 실려 나가기도 하고 영원한 주전으로 여겼던 선수가 갑자기 슬럼프에 빠지며 벤치에 앉은 일도 발생한다. 다시 말해 이곳 프로라는 무대는 ‘괜찮겠냐’는 감독의 물음에 ‘준비됐습니다’고 외치며 그라운드를 밟는, 그런 드라마 같은 일들이 펼쳐지는 마법의 공간이기도 한 셈이다.

요즈음의 나는 자주 봄을 꿈꾼다. 그 중에서도 바람과 볕이 아주 예쁜 리그의 어느 봄날에, 우리팀 신인선수들이 초원 위의 코뿔소처럼 마음껏 달리는 모습을 상상해본다. 그러니 우리 선수들만큼은 ‘늘 깨어있어라’는 말이 성경 속 구절이 아님을 명심하며 훈련에 임하였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지도자의 갑작스런 부름에도 침착하게 답할 줄 아는, 준비된 신예로 이름을 널리 알리기를 소망한다.

강원의 젊은 그대들이여. 건투를 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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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제 강원FC 1년차 신인선수가 재직증명서와 소득증빙 서류를 떼달라고 부탁전화를 걸어왔습니다. 전 웃으면서 그럼 있다 오후까지 처리해서 보내주겠다고 원본을 받으러 사무실로 오라고 했지요.

그랬더니 지금 급하게 대출을 받기 위해 은행에 가는 길이라면서 은행에서 전화를 다시 하겠다고 하더라구요. 사무실에 들릴 시간이 없다면서 은행에 도착해서 은행 팩스 번호를 알려줄테니 팩스로 바로 넣어달라하면서요. 


집안이 어려운 그 선수는 가계에 빚도 많았고 오늘 오전까지 갚아야할 돈이 있었나봐요. 갑작스레 돈을 마련할 길이 없었던 그의 부모님은 고민하다가 아들에게 부탁을 한 거였죠. 사실 부모된 입장으로서 아들에게 어려운 모습을 보이며 손을 벌린다는 거... 정말 쉽지 않은 일이었겠지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들에게 도움을 요청했다는 것은 얼마나 상황이 급하고 어려웠을까, 하는 생각을 갖게 했습니다.그런데 1시간이 지나도 전화가 오지 않아 제가 전화를 걸었지요. 무슨 일이 생긴 건 아닌지, 급하게 은행을 가는 길에 사고라도 난 것은 아닌지 하는 걱정이 들어서요.

"어떻게 된거야? 은행 도착했니? 팩스 번호 알려주면 지금 바로 보내줄게. 서류 다 만들어놓았어."

잠시 침묵하던 그 선수는 "아니에요. 안 보내주셔도 되요" 했습니다.

눈치없이도 저는 아무렇지 않게 "왜? 대출 안하기로 했어?"라고 바로 되물었죠.

역시나, 이번에도 잠시 뜸을 들이던 그 선수는 힘들게 말을 이었습니다.

"대출할 수 있는 자격이 안된대요. 사실 제 연봉만 보면 은행에서도 대출해주기가 힘들겠죠."

그 선수는 올 시즌 번외지명으로 프로에 입단한, 소위 말하는 '연습생'입니다. 드래프트에서 6순위 안에 들어가지 못한 선수들의 경우 번외로 프로에 지명을 받을 수 있게 되는데 이 선수들은 모두 연봉 1200만원에 계약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 한달에 100만원의 월급을 받게 되고 세금 떼고, 클럽하우스 숙식비를 떼면 80만원 정도가 통장에 들어옵니다.

88만원 세대보다 더 어려운 이들, 그들은 바로 프로 축구 연습생입니다.

100만원이라도 안되겠냐고 하자 은행에서는 거래 기간이 1년도 안되고 월급보다 많은 돈을 대출해줄 수 없다고 했네요. 그래도 아들이 프로구단에 있으니까 어떻게든 대출이 되지 않겠냐고 부모님들은 믿으셨을텐데, 하던 선수의 낮은 목소리가 내내 귓가에 울려펴졌습니다.

지금 6월은 뜨겁습니다. 거리엔 한국 축구의 승리를 기원하며 빨간 옷을 입은 사람들과 신나는 축구 관련 음악들이 쏟아지고 있습니다. 박지성의 연봉이 얼마고, 이청용의 이적을 위해 빅클럽에서 이적료 베팅에 들어갔다고 하고, 16강 진출에 성공했을 때 대표팀이 받게 되는 수당은 얼마고...

빛나고 비싼 이야기들만 가득합니다. 그속에서 전반기 일정을 마치고 함량미달로 짐을 꾸리며 떠나가는 선수들이 있는가하면 80만원 남짓하는 월급을 아껴가며 부모님께 용돈을 드리고 핸드폰비가 5만원이나 나왔다고 이번달 예산이 초과했다며 한숨을 쉬는 선수들도 있고요.

그야말로 명과 암, 빛과 그림자입니다.

모두의 눈이 왼쪽 가슴에 박힌 태극마크에 쏠려 있는 순간, 태극전사들의 투혼에 박수치는 순간에도 그들의 모습을 지켜보며 묵묵히 땀흘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이땅의 K-리그 연습생들. 저 역시 88만원 세대라는 이름 아래 살고 있기에 그들의 모습에 더 시선이 가고 마음이 아픈지도 모릅니다.

그러니 부디 바랍니다. 그들이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고 끝까지 축구선수로 멋지게 은퇴하고 싶다는 꿈을 잃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그건 마치 제가 꿈을 포기하고 방황하는 것과 같으니까요. 그들의 앞날에 건승만이 가득하길, 온 마음으로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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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9년 12월 18일 창단식을 치르며 K-리그에 15번째 닻을 올린 막내 구단 강원FC. 어느새 마지막 홈경기만을 남겨두며 2009년 첫 시즌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2009년 11월 최순호 감독이 강원FC의 첫 감독으로 부임됐고 내셔널리그와 대학출신 선수들 14명을 우선지명한 뒤 참가했던 첫 드래프트. 그때 4순위로 윤준하 선수를 뽑았는데, 그때만해도 윤준하 선수가 강원FC 공격의 기수로 앞서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죠.

12월 첫 공개훈련이 있었고 12월 18일 창단식을 치른 후 속초, 삼척, 고성, 강릉, 동해를 돌며 1차 겨울전지훈련을 가진 후 제주도로 이동해 2차 동계훈련을 가졌습니다. 당시 설 연휴도 없이 제주도에 갇혀(?) 윷놀이를 하며 가족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었죠.


첫 포토데이 때 꽤 많은 취재진이 몰렸는데,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로경험이 없던 터라 원래 포토데이에는 기자들이 이 정도 몰리는구나, 했다고 합니다. 그때 고참 정경호 선수가 이 정도 오면 진짜 많이 오는 거라면서 우리가 이 정도로 관심의 중심에 있다고 설명해주기도 했고요.

역사적인 개막전. 개막전 첫 상대는 제주였는데요, 경기가 열리기 2일 전 주주들에게만 나눠준 초청 입장권이 매진됐고 덕분에 강원FC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을 미리 깨닫기도 했고요.

개막전에서 다들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교체로 들어간 윤준하의 결승골을 소중히 잘 지켜내 1-0 승리를 거두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요. 다들 이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면서 첫 승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저런 충고를 해줬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첫 승을 거둬 저도 놀랐답니다.

더 기뻤던 것은 시도민구단들 중에서 창단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팀이었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뭐든 최초는 영원히 가기 때문에 좋을 수밖에요. ^^

그 다음 상대는 FC서울. 개막전에서 전남을 6-1로 이긴, 지난 시즌 준우승팀은 서울에게는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역시나 슈퍼신인 윤준하의 활약으로 2-1로 꺾는 파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상대는 부산아이파크. 대한민국 대표 스트라이커 출신인 최순호 감독과 황선홍 감독간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는데요. 이 경기에서도 종료 40초 전 윤준하가 또다시 골을 터뜨리며 1-1 무승부를 기록, 3월 한 달 동안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으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홈경기 때면 늘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열광적인 홈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7월 4일 포항전까지 단 한 번도 홈에서 지지 않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건 당시 포항전도 팽팽하게 무승부로 가고 있던 중 종료 30초 전에 데닐손에게 역전골을 허용했다는 사실이죠. 그 골만 잘 막았어도 홈 무패행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강원FC는 올 시즌 타 구단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팀명에서 알 수 있듯 강원FC는 특정 도시에 집중되지 않은 거도적인 구단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 시즌 중에 지역 내 다양한 팬들과 인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하여 전지훈련 기간을 활용하여 최대한 많은 도민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난 1월과 2월에는 속초, 삼척, 고성, 강릉, 동해를 돌며 겨울전지훈련을, 6월에는 춘천, 화천, 양구, 태백에서 여름전지훈련을 가졌지요. 도 전역을 아우르는 전훈과정 아래 팬들과 소통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대표이사도 함께하는 게릴라 홍보 캠페인도 화제였습니다. 홈경기 2~3일 전이면 구단 사장과 직원들이 거리로 나와 직접적인 스킨십을 통해 홈경기 알리기에 노력했지요. 200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강원FC는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붙여 이목을 끌었고요.

김원동 강원FC 대표이사와 구단 프론트, 최순호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들은 지난 3월부터 정기적으로 도 내 조기축구회원들과 함께 친선축구 게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직접 팬들과 그라운드에서 부딪히며 땀을 쏟는 과정 속에서 흐르는 진솔한 ‘팬心’을 읽기 위해서였죠.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아무래도 봉사활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6월 1일 강원FC 선수단은 춘천시 신북읍에 위치한 한국해비타트 춘천지회 건축현장에서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가했습니다. 무주택 서민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 만들어주기 위해 최순호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선수단 전원은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뙤약볕 아래서 망치질에 열중했지요. 한국해비타트 춘천지회 측은 “프로구단 선수들이 시즌 중에 집짓기 현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며 “지역 내 서민들을 위해 어려운 걸음을 아끼지 않은 강원FC에 감동받았다”고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커피판매 행사! 7월 초에는 강릉에 한 커피전문점을 빌려 ‘사랑의 일일찻집’ 자선행사를 가졌습니다. 커피판매, 선수단 애장품 경매, 코칭스태프 및 선수단 전원의 성금을 모아 938만 7천원을 마련해 강릉시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그 기부금은 강릉시지역아동센터 내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을 위한 방과 후 공부방을 위해 소중히 쓰였다고 합니다.

인구도 적은 강원도가 올 시즌 수원, 서울에 이어 홈관중 3위라는 놀라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기저에는 강원도민들과 함께 가기 위해 노력했던 구단의 적극적인 스킨십 마케팅과 내 고장 내 팀이라는 주인의식으로 아꼈던 팬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존 구단의 관행들을 깨기 위해 노력했던 강원FC. 내년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마지막 홈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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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9년 12월 18일 창단식을 치르며 K-리그에 15번째 닻을 올린 막내 구단 강원FC. 어느새 마지막 홈경기만을 남겨두며 2009년 첫 시즌을 정리하게 됐습니다.

2009년 11월 최순호 감독이 강원FC의 첫 감독으로 부임됐고 내셔널리그와 대학출신 선수들 14명을 우선지명한 뒤 참가했던 첫 드래프트. 그때 4순위로 윤준하 선수를 뽑았는데, 그때만해도 윤준하 선수가 강원FC 공격의 기수로 앞서 이끌 것이라고 생각했던 사람은 단 한 사람도 없었죠.

12월 첫 공개훈련이 있었고 12월 18일 창단식을 치른 후 속초, 삼척, 고성, 강릉, 동해를 돌며 1차 겨울전지훈련을 가진 후 제주도로 이동해 2차 동계훈련을 가졌습니다. 당시 설 연휴도 없이 제주도에 갇혀(?) 윷놀이를 하며 가족들을 보지 못하는 아쉬움을 달래기도 했었죠.


첫 포토데이 때 꽤 많은 취재진이 몰렸는데, 대부분의 선수들이 프로경험이 없던 터라 원래 포토데이에는 기자들이 이 정도 몰리는구나, 했다고 합니다. 그때 고참 정경호 선수가 이 정도 오면 진짜 많이 오는 거라면서 우리가 이 정도로 관심의 중심에 있다고 설명해주기도 했고요.

역사적인 개막전. 개막전 첫 상대는 제주였는데요, 경기가 열리기 2일 전 주주들에게만 나눠준 초청 입장권이 매진됐고 덕분에 강원FC를 향한 관심이 뜨겁다는 사실을 미리 깨닫기도 했고요.

개막전에서 다들 어려울 것이라고 했지만 교체로 들어간 윤준하의 결승골을 소중히 잘 지켜내 1-0 승리를 거두는 기쁨을 누리기도 했지요. 다들 이기는 게 얼마나 어려운지 아냐면서 첫 승 거두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이런저런 충고를 해줬었는데 생각보다 빨리 첫 승을 거둬 저도 놀랐답니다.

더 기뻤던 것은 시도민구단들 중에서 창단 개막전에서 승리를 거둔 최초의 팀이었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뭐든 최초는 영원히 가기 때문에 좋을 수밖에요. ^^

그 다음 상대는 FC서울. 개막전에서 전남을 6-1로 이긴, 지난 시즌 준우승팀은 서울에게는 무너질 것이라는 예상이 많았는데, 역시나 슈퍼신인 윤준하의 활약으로 2-1로 꺾는 파란을 연출하기도 했습니다.

세 번째 상대는 부산아이파크. 대한민국 대표 스트라이커 출신인 최순호 감독과 황선홍 감독간의 대결로도 관심을 모았는데요. 이 경기에서도 종료 40초 전 윤준하가 또다시 골을 터뜨리며 1-1 무승부를 기록, 3월 한 달 동안 단 한 차례도 패하지 않으며 모두를 깜짝 놀라게 만들었습니다.

홈경기 때면 늘 경기장을 가득 메우는 열광적인 홈팬들의 성원에 힘입어 7월 4일 포항전까지 단 한 번도 홈에서 지지 않는 저력을 발휘하기도 했습니다. 아쉬운 건 당시 포항전도 팽팽하게 무승부로 가고 있던 중 종료 30초 전에 데닐손에게 역전골을 허용했다는 사실이죠. 그 골만 잘 막았어도 홈 무패행진을 계속 이어나갈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강원FC는 올 시즌 타 구단들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는데요. 팀명에서 알 수 있듯 강원FC는 특정 도시에 집중되지 않은 거도적인 구단을 표방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시간과 공간의 한계로 시즌 중에 지역 내 다양한 팬들과 인사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죠. 하여 전지훈련 기간을 활용하여 최대한 많은 도민들과 만나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지난 1월과 2월에는 속초, 삼척, 고성, 강릉, 동해를 돌며 겨울전지훈련을, 6월에는 춘천, 화천, 양구, 태백에서 여름전지훈련을 가졌지요. 도 전역을 아우르는 전훈과정 아래 팬들과 소통하겠다는 취지였습니다.

대표이사도 함께하는 게릴라 홍보 캠페인도 화제였습니다. 홈경기 2~3일 전이면 구단 사장과 직원들이 거리로 나와 직접적인 스킨십을 통해 홈경기 알리기에 노력했지요. 200가구 이상 대규모 아파트 단지에는 ‘강원FC는 △△아파트 주민들과 함께 합니다’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을 붙여 이목을 끌었고요.

김원동 강원FC 대표이사와 구단 프론트, 최순호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들은 지난 3월부터 정기적으로 도 내 조기축구회원들과 함께 친선축구 게임을 가지기도 했습니다. 직접 팬들과 그라운드에서 부딪히며 땀을 쏟는 과정 속에서 흐르는 진솔한 ‘팬心’을 읽기 위해서였죠.

가장 화제가 됐던 건 아무래도 봉사활동이 아닌가 싶습니다. 지난 6월 1일 강원FC 선수단은 춘천시 신북읍에 위치한 한국해비타트 춘천지회 건축현장에서 ‘사랑의 집짓기’ 봉사활동에 참가했습니다. 무주택 서민들에게 따뜻한 보금자리 만들어주기 위해 최순호 감독 이하 코칭스태프, 선수단 전원은 아침 8시 30분부터 오후 4시까지 뙤약볕 아래서 망치질에 열중했지요. 한국해비타트 춘천지회 측은 “프로구단 선수들이 시즌 중에 집짓기 현장을 찾은 것은 처음이었다”며 “지역 내 서민들을 위해 어려운 걸음을 아끼지 않은 강원FC에 감동받았다”고 감사인사를 전하기도 했답니다.

그리고 잊지 못할 커피판매 행사! 7월 초에는 강릉에 한 커피전문점을 빌려 ‘사랑의 일일찻집’ 자선행사를 가졌습니다. 커피판매, 선수단 애장품 경매, 코칭스태프 및 선수단 전원의 성금을 모아 938만 7천원을 마련해 강릉시에 전달하기도 했습니다. 후에 그 기부금은 강릉시지역아동센터 내 저소득층 가정 자녀들을 위한 방과 후 공부방을 위해 소중히 쓰였다고 합니다.

인구도 적은 강원도가 올 시즌 수원, 서울에 이어 홈관중 3위라는 놀라울만한 성과를 거둘 수 있었던 기저에는 강원도민들과 함께 가기 위해 노력했던 구단의 적극적인 스킨십 마케팅과 내 고장 내 팀이라는 주인의식으로 아꼈던 팬들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기존 구단의 관행들을 깨기 위해 노력했던 강원FC. 내년 시즌이 기대되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입니다. 마지막 홈경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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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청소년대표팀을 시작으로 국가대표팀까지, 각급 대표팀에 빠짐없이 승선하던 그 시절, 서동원의 별명은 ‘프린스’였다. 외모와 실력을 동시에 겸비한 그에게 참으로 잘 어울리는 별칭이었다. 문일고 재학 당시에는 U-19대표팀의 얼굴로 활약했고 연세대 졸업반이던 1998년에는 차범근 감독이 이끄는 대표팀에 깜짝 발탁되며 화제를 모았다. 1997년 12월 K리그 드래프트에선 203명 중 1순위로 대전시티즌에 뽑혔을 뿐 아니라 데뷔시즌부터 주전 자리를 꿰차며 착실히 팀의 중심으로 거듭났다. 그러나, “몇 계단 아래로 내려와 다시 올라가는 날도 많았다”던 그의 말대로 분명 어려운 순간들도 있었다.


하기야 지난 11년간 갈아입은 유니폼만 벌써 7벌이 아니던가. 그래도 다행힌 건, 그 산전수전의 시간 속에서도 그는 결코 무너지지 않았고 결국엔 부산에서 다시 한 번 제2의 전성기를 꽃피웠다는 사실에 있었다. 덕분에 2009년, 서동원은 누구보다도 당당한 모습으로 35번째 새해를 맞이했다.

다시 시작하다
“작년 여름 제가 부산으로 이적한 이후로 팀이 달라졌다고 많이들 말씀하세요. 하지만 개인적으로는 만족스럽게 생각하지 않아요. 쉽게 만족하다보면 그 위치에 도태되거나 안주하기 쉬운데, 그러면서 실패를 맛본 경험이 몇 번 있거든요. 그래도 굳이 만족스러웠던 점을 꼽는다면, 성남에서 1년 넘게 자리를 못 잡고 있다 보니 ‘이제는 내가 가진 능력을 발휘할 수 없는 것일까?’라는 생각을 자주 하곤 했어요. 그 때문에 부산으로 팀을 옮긴 이후 첫 경기를 앞두고 긴장을 많이 했죠. 물론 황선홍 감독님께선 편하게 하라고 주문하셨지만 잘해야 한다는 부담감을 지울 순 없었습니다. 다행히도 당시 패배의식에 젖어있던 선수들을 다독이며 뛰다보니 저도 모르게 힘이 붙었고 자신감도 생기더군요. 그런 부분에선 만족스러웠다고 평가할 수 있겠죠.”

편한 인터뷰를 위해 근황을 물었는데 잘 지내고 있다는 답과 함께, 부산에서 보낸 6개월의 시간에 대해 ‘알아서’ 평가까지 내려줬다. 역시나, 그라운드 밖에서도 ‘베테랑’인 서동원이었다.

“조용히 은퇴하는 선수가 되고 싶진 않았어요. 성남에 있던 당시 김학범 감독님께선 항시 경기에 나설 준비를 하라고 하셨지만, 기회는 좀처럼 오지 않았어요. 그래도 꾸준히 운동하며 몸을 만들고 있었는데, 어느 날 황선홍 감독님으로부터 걸려온 전화 한통이 모든 것을 바꿔놓았죠. 황 감독님께서 제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신기하게도 순간 감독님과 마음 맞춰 잘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더군요. 덕분에 고민 없이 부산까지 내려올 수 있었죠.”

그렇게 그의 7번째 이적이 결정됐고 여기저기서“또?”라는 말도 나왔다.

“작년 12월에 저와 아넬카를 비교한 기사가 스포츠 신문에 실렸더라고요. 팀을 자주 옮겨 다닌 ‘저니맨’이라는 공통점이 있다면서요. 누군가는 그 기사를 읽으며 돈 때문에 많이 옮긴 거 아니냐고 생각했을지도 모르죠. 그렇지만 지금껏 구단이 원하지도 않은데 이만큼 연봉 달라고 우기면서 운동한 적은 없었습니다. 팀을 많이 옮긴 건 사실이지만 그 중엔 제 뜻과는 상관없이 양 구단의 합의하에 옮긴 적도 있었으니까요. 물론 한 팀에서 오래 뿌리 내린 선수들을 보면 부러운 마음이 들기도 해요. 팀의 레전드로 남는다는 건 선수라면 누구나 한번쯤 생각해봤을 꿈이니까요. 본의 아니게 돌아다니다 보니, 지금도 그 부분이 많은 아쉬움으로 남더라고요. 올해 완벽하게 FA가 됐지만, 이제는 부산에서 유종의 미를 거두고 싶다는 생각만 하고 있습니다.”

제도에 대한 아쉬움
서문에 밝혔듯 어느새 해가 바뀌어 서동원도 35세에 접어들었다. 그것은 곧 앞선 그의 말처럼 완벽하게 FA가 됐음을 뜻하는 것이기도 했다.

“FA를 얻기 위해선 기간이 필요하잖아요. 또 나이도 필요하고요. 무슨 이야기냐고요? 사실 힘들게 FA자격을 얻어도 프로축구연맹 규정에 따르면 34세가 넘어야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게 되요. 결국 FA라 해도 국내 이적시에는 이적료가 발생하니 FA로서의 메리트는 거의 없다고 봐도 무관하겠죠. 팀을 옮길 때 이적료가 있고 없고의 차이는 상당히 크니까요. 저 같은 경우엔 올해 드디어 이적료 없는 FA가 됐어요. 그렇지만 그 사실이 크게 와 닿지는 않아요. 이제는 슬슬 선수가 아닌 다른 인생에 대해 생각해 볼 나이인데, 어느 선수가 지금 이 나이에 이적을 생각하겠습니까.”

프로축구연맹 규약·규정집(2007년 개정판) 제30조 (이적료) 1항은 “FA자격 취득 선수가 타 구단으로 이적할 경우, 양 구단 합의에 의해 양수 구단은 원소속(양도) 구단에 이적료를 지급하여야 한다”라고 명시하고 있다. 이때 이적료는 연맹이 정한 기준에 맞춰 정해지는데, 산출 공식은 ‘[(現연봉+원소속 구단이 제시한 차기 연봉+이적 구단이 제시한 연봉)÷3]×연령별 계수=’이다. 여기서 연령별 계수는 8(만19세~21세) 6(만22세~24세) 4(만25세~27세) 3(만28세~30세) 2(만31세~33세) 0(만34세 이상)으로 나눠지는데, 나이가 많아질수록 줄어들게 된다.

결국엔 그 숫자가 0이 되기 위해선 35세까지 기다려야 한다. 다시 말해 35세가 돼야지만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는다는 이야기다. 물론 2005년 이후 입단한 선수들은 계약금을 받지 않았기 때문에 FA자격을 얻을 시 바로 이적료가 발생하지 않지만 아직은, 2005년 이전 입단자들이 거개를 차지하고 있는 K리그다.

“3년 전에 처음 FA자격을 얻었어요. 당연히 이적료 없이 팀을 옮길 수 있다고 생각했죠. 그런데 알아보니 FA임에도 불구하고 국내 구단으로 이적할 땐 연맹이 규정한 산출방법에 따라 이적료가 발생하더군요. 살펴보니 나이에 따라 곱하는 숫자(연령별 계수)가 달라졌는데, 어릴수록 많더라고요. 결국 이적료가 없어지려면 지금 제 나이가 돼야 한다는 말인데, 이 나이에 FA자격을 얻었다고 좋아할 선수는 아마 거의 없을 거에요.”

후배들을 위한 충고
“어린 선수들 중 열에 아홉은 FA 제도에 대해 자세히 모를 겁니다. 저 역시 그랬으니까요. 아까 말씀 드렸다시피 처음 FA자격을 얻던 당시 제 나이가 32살이었어요. 당시 연맹에서 규정한 이적료 산출 기준에 맞춰 계산해봤더니 이적료가 10억 가까이 되더군요. 선수에게 주는 연봉을 합하지 않은 금액만 그 정도인데, 쉽게 주머니를 풀 구단은 거의 없었죠. 이 순간에도 ‘1년만 있으면 FA’라고 생각하며 그날만 기다리는 선수들이 있을지도 몰라요. 그렇지만 막상 FA가 되더라도 선수가 할 수 있는 건 아무 것도 없어요. 오히려 머리만 아플 뿐이죠. 해결할 방법이요? 아무래도 힘들다고 봐야겠죠.”

서동원은, 아쉬운 마음이 곱절로 커지는 건 바로 그 때문이라고 했다. 그래서 후배들에게 이 말만은 꼭 하고 싶다며 무겁게 입을 열었다.

“제가 프로에 갓 데뷔할 때만 해도 에이전트가 많지 않아 선수 본인이 직접 구단과 협상을 벌여야만 했어요. 그런데 지금은 시대가 달라져 선수 대신 에이전트가 대리인으로 들어가 계약을 체결하고 있죠. 그렇게 모든 걸 에이전트에게 맡기다 보니 정작 선수 본인은 계약과 관련된 사항에 대해 모를 때가 많아요. 또 ‘에이전트는 직업 특성상 관련 법률에 대해 상세히 알아야 하지만 선수는 그저 축구만 잘하면 된다’고 생각하는 후배들이 많다는 것 역시 잘 알고 있어요.”
“다만 염려스러운 점은 그러다 보면 나중에 에이전트가 나 몰라라 손을 떼게 됐을 때, 에이전트의 잘못까지 고스란히 선수가 뒤집어 써 피해를 보는 일이 발생한다는 거에요. 그러니 규정이 복잡하다고, 계약서 읽기 머리 아프다는 이유로 단순히 넘어가려고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읽고 공부해도 잘 모르겠으면 주변 고참 선수들에게 물어보세요. 다들 아는 한도 내에서 잘 얘기해줄 테니까요. 경험에서 나온 이야기니 꼭 잘 새겨듣고 참고하길 바랍니다.”


선수로서 풀기 어려운 이야기였을 법도 했다. 그런데도 서동원은 끝까지 흐트러지지 않는 모습으로 자신의 말을 맺었다. 선수와 기자 관계를 떠나 꽤나 감동일 수밖에 없었고 그렇게 마지막까지 프로다운 모습만 보여준 서동원에게 글로써나마 고마운 마음을 전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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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88만원 세대’를 아는가. 여기서 88만원은 비정규직 전체 평균 임금인 119만원에 20대 평균 소득 수준 비율인 74%를 곱한 수치를 뜻한다. 그러나 88만원 세대는 88만원의 월급을 받으며 살아가는 청년 비정규직만을 지칭하는 말은 아니다. 그것은 오늘을 살아가는 20대의 불안한 현실을 상징한다. 또 K리그 연습생들의 고단한 삶을 투영하고 있다.


K리그의 88만원 세대들

지난해 2008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선택받은 자’는 91명이었다. 드래프트 전체 신청자의 31.3%에 불과한 수치다. 그 중 28명은 번외로 지명됐다. 프로축구연맹은 2006년부터 신인선발 드래프트제를 다시 도입했다. 번외지명은 6라운드까지 선수를 선발한 뒤 이뤄진다. 순위 외 선발이기 때문이다. 2006년에는 12명의 선수가 번외로 뽑혔지만 2007년 31명, 2008년 28명으로 점점 늘어나고 있는 추세다. 수치상으로 각 구단이 번외지명을 적극 활용하고 있음이 한눈에 보인다.

1순위로 입단한 선수들은 5000만원의 연봉을 받게 된다. 이에 반해 번외지명 선수들이 받는 연봉은 1200만원에 불과하다. 번외지명된, 소위 ‘연습생’이라 불리는 그들은 우리 사회의 또 다른 ‘88만원 세대’다. 그러나 연봉 1200만원을 열두 달로 쪼개 매달 통장에 들어오는 돈이 100만원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숙소 생활을 하기 때문에 관리비 명목으로 매달 10만원(수원 5만원, 제주·포항 없음)이 빠져 나간다. 결국 이들이 손에 쥐는 월급은 대략 90만원 선. 만약 국민연금이나 보험에 가입했다면 이보다 더 적은 돈을 받게 된다.

번외지명 제도는 구단 입장에서 볼 때 싼 가격에 쓸만한 선수들을 찾는다는 점에서 매력적이다. 특히 자금력이 부족한 구단에게는 유용한 선수 수급수단으로 활용된다. 구단 살림살이가 어려워 검증되지 않은 선수에게까지 많은 돈을 주기란 힘들기 때문이다. 마지막 6순위로 선수를 뽑는다 해도 벌써 연봉이 2000만원에 육박한다. 하지만 이 돈에 400만원만 더 얹으면 번외지명 선수 2명을 뽑을 수 있다는 결론이 나온다. 대전은 지난 드래프트에서 무려 5명의 선수를 번외지명으로 선발했다. 대전 이외의 구단들도 금전적 부담이 덜한 연습생 영입에 갈수록 높은 관심을 보인다. 물론 그들은 “번외지명이 프로를 꿈꾸는 선수들에게 더 많은 기회를 준다”며 서로에게 윈윈(win-win)이라 설명한다.

그렇지만 과연 윈윈이라 할 수 있을까. 냉정히 말해 그 기회란 것도 ‘1년’동안만 제공될 뿐이다. 번외지명 선수들이 그 짧은 시간 안에 자신의 기량을 십분 드러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스타 선수들 틈에서 주전 자리를 차지하기는커녕 2군리그에서조차 살아남기 힘든게 사실이다. 때문에 대부분의 번외지명 선수들은 매년 계약이 끝남과 동시에 흔적 없이 사라지곤 한다. ‘연습생 신화’를 꿈꾸며 입단했지만 결국은 한낱 ‘꿈’에 불과했다는 ‘슬픈’ 결말에 고개를 떨구는 것이다.

어렵고 좁은 길

2007드래프트에서 번외지명된 선수들 중 재계약에 성공한 이는 극히 드물다. 김민구 강수일 안재곤(이상 인천) 최찬양(수원) 조성준(전북) 김민(울산) 정도다. FC서울에 있던 김바우는 대전에 입단했다. 이들 중 강수일(2경기 1도움) 조성준(3경기 1도움)만 1군 경기에 데뷔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번외지명 선수들은 ‘연습생 신화’로 포장되는 성공담이 ‘자신의 이야기가 될 것’이라는 희망을 놓지 못한다.

2006년 드래프트 부활 이후 가장 성공한 연습생을 꼽으라 하면 열에 아홉은 배기종을 거론한다. 배기종은 2006드래프트 당시 번외로 대전에 입단, 주전(27경기 7골3도움)으로 도약하며 신인왕 후보로까지 거론됐다. 비록 시즌 말미에 사전접촉 의혹으로 임의탈퇴, 선수제명위기에 몰렸지만 2007년 수원으로 팀을 옮겨 여전히 선수생활을 계속하고 있다. 주전은 아니지만 교체로 꾸준히 출전(17경기 2도움)하는 그의 모습은 후배 연습생들에게 희망을 안긴다.

지난해 426경기에 출전하며 철인신화를 쓰고 있는 김기동도 1991년 연습생으로 프로생활을 시작했다. K리그 베스트11에 빛나는 장학영도 시작은 연습생이었다. 그리고 이들처럼 성공신화까지는 아니더라도 연습생으로 시작, 꾸준히 1군 경기에 얼굴을 내민 선수들이 있다. 2000년부터 2003년까지 40경기에 출장하며 대전의 특급교체선수로 활약했던 박경규, 2003년 광주에서 이동국 김상식 등 국가대표선수들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한상구가 그 예다.

88만원 세대의 선택과 길

변병주 감독은 “연습생 생활을 감수하면서까지 프로에 몸담고 싶은 마음을 공감한다”며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선수들의 목표는 같다. ‘대표 선발’과 ‘프로 입단’이다. 그렇기 때문에 연습생들은 100만원도 채 안 되는 월급을 받고도 어떻게든 프로생활을 이어가려 하는 것이다.” 인천에서 연습생으로 뛰다 최근 재계약에 성공한 강수일도 이와 비슷한 이야기를 했다. “돈보다 중요한 것은 경험이다. 그 경험을 K리그에서 쌓을 수만 있다면 돈 없이도 좋다고 생각했다. 열심히 하면 돈은 따라오는 법이니까. 그보다 중요한 것은 꿈을 현실로 만들기 위한 노력과 결과를 두려워하지 않는 도전정신이다. 그 때문에 해마다 연습생이라도 좋다며 K리그 문을 두드리는 선수들이 생기는 것이다.”

한편 변병주 감독은 “최선을 다한다면 연습생이라도 빛을 볼 수 있다. (이)근호도 노력으로 스타가 된 경우 아닌가. 좌절하지 말고 스스로 ‘대기만성형’이라 생각하며 이겨내라”는 말도 덧붙였다. 변 감독의 당부에는 계약종료 후 자신을 책망할지도 모를 선수들을 향한 배려가 숨어 있다. 요지는 이렇다. 무릇 프로란 전문 의식을 갖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을 지칭한다. 그러므로 재계약에 실패하여 팀을 떠나게 되더라도 최선을 다했다면 스스로를 프로로 생각하라는 말이다. 길은 또 다시 시작되는 법이니까.

팀을 나오게 된다하더라도 축구인생은 연습생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다. 하위리그에서의 새출발도 생각해볼 수 있겠다. 실제로 K리그를 떠난 선수들 중 많은 이들이 내셔널리그에서 제2의 축구인생을 시작한다. 현재 내셔널리그는 과거 실업축구의 한계를 딛고 지역 연고제를 정착, 준 프로리그로의 면모를 갖춰나가고 있다. 비록 두 시즌 연속 승격제로 많은 논란이 있었지만 내셔널리그의 발전 가능성은 무한하다. 그곳에서 뛰는 선수들 역시 리그와 함께 성장하며 못다 이룬 꿈을 펼치고 있다.
 
2006신인선수 드래프트에서 번외지명으로 FC서울에 입단했던 오기재는 2007년 안산할렐루야로 이적해 팀의 주전으로 활약하고 있고, 2006년과 2007년 각각 번외로 울산에 지명됐던 장재완과 윤동헌은 안산 할렐루야에서 새로이 출격준비 중이다. 부산의 장신 공격수 오철석도 빼놓을 수 없겠다. 포터필드 감독 재임 시절 많은 기대를 받았지만 이에 부응하지 못했던 그는 부산교통공사로 1년간 임대돼 실전감각을 키웠다. 2006년 전체 1순위로 대구에 입단했던 황금성은 주전이 보장되지 않자 2007년 인천한국철도로 옮겼다. 2000시드니올림픽대표 출신이지만 전북에서 오래 무명생활을 하던 고민기도 고양국민은행 이적 후엔 주전으로 도약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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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