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자료조사 중 무척 재미있는 사진을 찾았습니다. 1974년에 발간된 월간축구를 뒤적이던 중 당시 대표팀에서 뛰던 선수들의 사진을 보게 됐죠. 그런데 순간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답니다. 뉴하트의 ‘은성’이 사진 속에 있었거든요. 배우 지성을 닮은 어느 선수의 모습에서 은성의 향기가 물씬 풍기더군요. 낯선 선수에게서 은성의 향기를 맡게 될 줄이랴. 그것도 약 35여 년 전 사진에서 말이죠. 아래 사진을 보세요. 어느 선수를 말하는지 아시겠죠? ^^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질문 드리겠습니다. 그 선수의 이름을 맞출 수 있으신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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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김호곤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십니다. 김호곤 전무는 대전시티즌 김호 감독, 울산현대 김정남 감독과 함께 1970년대 한국축구 전성기를 이끌었던 선수입니다. 80년대 이후 출생한 축구팬들에게는 2004아테네올림픽 8강신화를 쓴 감독으로 기억되고 있지요. 2005년 11월에는 대한축구협회 전무이사로 발탁되어 축구행정가로서의 제2의 인생을 살고 계십니다. 이 사진이 실린 다음 페이지에는 김 전무의 일문일답도 함께 실렸는데요, ‘큰 영향을 준 선수가 누구냐’는 질문에 김 전무께서는 “상업은행팀에 있을 때 김호 선수에게서 많은 영향을 받았다”라고 답했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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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나저나 그 다음 대답도 재미납니다. “졸업반(연세대)도 되었고 틈있는대로 수업에 충실하겠다.” 당시 김호곤 전무의 소속은 연세대학교 축구부. 대학생다운 대답이 아닐 수 없네요.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이 없냐고 묻자 김 전무는 “심판들은 제발 재미있는 게임운영이 되록 연구했으면”이라는 대답을 남겼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심판의 경기운영능력은 선수들에게 아쉽게 다가오나 봅니다.
ㅎㅎㅎ 슬럼프에서 페이스 업! 하고 계신다네요.
김호곤 전무는 국가대표팀을 ‘청룡’이라 부르던 1970년대 그 시절 우리나라를 빛낸 태극전사 중 하나였습니다. 1971년부터 1978년까지 자그마치 8년 간 국가대표선수로 활약했지요. 대표팀 부동의 풀백이었던 김 전무는 1973년 체육기자단이 뽑은 베스트 11에도 뽑혔답니다. 어떤가요? 재밌게 보셨나요? 매주 수요일과 목요일 밤, 우리를 즐겁게 해줬던 뉴하트 종영에 맞춰 보여드리는 사진이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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