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체조역사상 최초의 금메달을 양학선이 목에 걸었다.
양학선이 남자 기계체조 도마 결선에서 1,2차 평균 16.533점으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한국체조역사상 최초의 금이다. 유옥렬(1992년 동메달), 여홍철(1996년 은메달), 양태영(2004년 동메달) 등 체조 선배들이 이루지 못한 꿈이었다.
양1. 이름부터 뭔가 있어보이게 들린다. 양학선은 지난해 세계선수권에서 공중에서 3바퀴, 1080도를 도는 유일한 기술을 처음 선보였다. 국제체조연맹은 이 기술에 양학선의 이름을 붙여 규정집에 등재시켰다. 여홍철의 ‘여2’에서 반바퀴를 더 돌아 착지하는 이 기술에 국제체조연맹은 “도마 역사상 가장 난이도가 높은 기술”이라고 찬사를 보낸 바 있다. 결선 1차시기에 이 기술을 선보인 양학선은 착지에서 두 걸음 나가는 다소 불안한 모습을 보였지만 기술의 난이도를 인정받아 데니스 아블랴진을 0.134로 제치고 끝내 금메달을 따냈다.
사실 양학선의 금메달을 크게 기대한 것은 아니었다. 우리에겐 이미 여홍철과 양태영이 흘린 분루가 있었기 때문이다. 여홍철도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 때 이미 자신의 이름을 딴, 당시 최난이도 기술이었던 ‘여1’과 ‘여2’로 대회에 나섰다. 그러나 착지에서 실수하며 금메달을 아쉽게 내주고 말았다.
양학선의 키는 159cm. 대한민국 여자 평균키에 미치지 못한다. 작은 체구 때문에 열등감을 느낄 법도 했지만 양학선은 이를 체조에 적합한 신체로 승화시켰다. 공중에서 3바퀴를 돌 때도 양한선의 팔고 다리는 곧고 단단함을 잃지 않았다. 작은 새의 비상은 뭉클했고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과 2011년 도쿄세계선수권에 이어 다시 한번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다.
또 한번 심장이 두근했던 순간은 양학선의 경기종료 후의 모습이었다.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을텐데, 함께 출전했던 선수들은 양학선의 활약을 진심으로 축하해주었다. 체조계에서의 양학선의 위치가 얼마나 빛나는지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다. 전세계 선수들도 인정한 선수라니! 올림픽이라서 더 아름답게 보인 장면이기도 했다.
태릉선수촌 훈련비를 모아 매달 부모님께 드렸던 효자 양학선. 체조협회장인 포스코건설 측에서는 대회 전부터 금메달을 딴 선수에게는 포상금 1억원을 지급한다고 하였단다. 단칸방과 비닐하우스에서 먹고 자던 지난 날 드디어 보상받는 듯하다.
양학선은 또 다른 우리의 모습인지도 모른다. 우리는 가진 것보다 가지지 못한 것들이 많고, 가질 수 없는 것 역시 즐비한 채 살고 있다. 양학선도 그랬다. 그러나 양학선이 우리와 달랐던 것은 관점을 바꿔 단점을 장점으로 승화시켰고 환경에 대한 불만도 감사와 최선으로 잠재웠다는 점이다.
그것은 기본을 잃고 사는 우리에게 양학선의 금메달이 알려준 귀한 가르침이었다. 꿈을 이루기 위한 가장 기본적인 자세가 무엇인지 알려줬기에 양학선의 비상은, 그래서 눈부실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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