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가 역기를 들 때, 남들은 힘을 넣기 위한 호령쯤으로 생각했지만 그 신음소리를 나는 늘 제대로 듣지 못하였다. 그 역기를 들기까지, 우리가 상상할 수 없는 한계와 싸워야했다. 그 고통을 아는 나였기에 화면 속의 그녀와 쉽게 대면할 수 없었다.

마지막 3차 시기에서 두 손 모아 기도했다. 그러나 장미란은 170kg을 들지 못하였고 인상 125kg, 용상 164kg, 합계 289kg으로 4위에 오르며 이번 런던올림픽을 마감했다.

베이징올림픽이 끝나고 장미란에게서 연락이 왔다. 연락처가 바뀌었단다. 그런데 뒷번호가 특이했다. 혹시 런던올림픽을 의미하냐고 묻자 그렇다고 했다. 2012. 장미란의 핸드폰 뒷번호. 그녀는 베이징올림픽이 끝나자마자 다시 런던올림픽을 준비하고 있었다.

저녁에 가끔 통화를 할 때 장미란은 간식 먹을 시간이라며 서둘러 전화를 끊곤 했다. 그런데 장미란은 그게 정말 싫다고 하였다. 배가 부른데 종목 특성상 간식도 챙겨먹어야한다고. 부른 상태에서 또 먹는 게 자신은 힘들다고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오해하는 것 중 하나가 장미란의 식사량이다. 장미란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처럼 많이 먹지 않았다. 배가 부르면 바로 수저를 놓고 식사를 끝내곤 했는데, 그때도 수저를 놓지 못하는 나를 보며 잘 먹는 내가 부럽다고 하였다. 그리고 나서 나는 후식까지 또 시켜먹었는데 그때도 그녀는 먹지 않았다. 장미란과 만날 때마다, 혹은 우리의 만남 소식을 듣고 나서, 주변 사람들의 반응은 늘 나의 기분을 언짢게 하곤 했다. 몇몇 남자들이 웃으며 그녀의 외모와 관련해 나에게 건네는 이야기들은 하나같이 분리수거조차 안 되는 것들이었다. 장미란은 꿈을 위해 자신의 여성성까지 희생하면서 자신 뿐 아니라 대한민국의 이름까지 걸고 싸웠던 자랑스런 역도 선수였다. 그렇게 희화화할 대상은 아니었는데, 철없는 몇몇 사람들이 외모를 비하하며 내게 그녀와 관련된 농담을 할 때마다 내가 당한 것처럼 분이 상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그래도 장미란은 천상 여자라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넓고 포근한 마음을 가진 사람이었다. 태릉선수촌에서 합숙훈련을 하고 있던 와중에도, 그 잠깐의 외출시간을 할애해 내 생일을 축하해줬고 직접 만든 카드를 줄 정도로 배려심이 넘쳤다.

운동을 하느라 꾸미지 못하던 그녀에게 가장 큰 사치는 네일아트였다. 살이 벗겨지고 굳은살이 새로 박여 늘 상해있던 장미란의 손이었지만 가끔 시간이 날 때면 네일아트를 받으러 가는 듯했다. 예쁘게 손톱을 다듬고 투명매니큐어를 바르는 게 가장 큰 사치였다.

대용량 수분크림을 하나 사고선 그것 하나만 바르고 운동했던 장미란. 나중에 시간이 되면 꼭 같이 메이크업 받아보러 가자고 했는데 그 약속을 지키지 못했다. 강릉에 도착했다고 맛있는 카페를 알려달라고 했는데, 그런 것들에겐 ‘통’이 아니었던지라 잘 모르겠다고 했던 것도 마음에 남는다. 집으로 가던 버스 안에서 나를 설레게 하던 그 아이와 있었던 이야기를 했을 때, 소녀처럼 맞장구쳐주던 모습도 잊지 못한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중국에 가려고 했지만 회사 일정 때문에 가지 못했었다. 그래서 4년 뒤 런던올림픽 때는 꼭 가겠다고, 마지막 대회일지도 모르는 그 역사의 현장에서 나도 아버님과 같이 태극기를 흔들며 응원하겠다고 했는데, 결국 지키지 못한 약속이 돼버렸다. 그게 참 많이 슬프다.

장미란은 크고 튼튼한 차를 타고 다녔었다. 몸이 재산인 운동선수였기 때문에 늘 조심하며 지냈다. 그런데 운이 나쁘면 이럴 수도 있구나, 했다. 어떻게 뒤차가 들이박는 접촉사고를 당한 것인지. 그 사고나 나지 않았더라면, 하는 가정을 참 많이 했던 지난 새벽이었다.

 


역기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내려놓았을 때, 장미란은 4년 전 금메달을 땄던 그때처럼 무릎을 꿇은 채 짧게 기도를 하고, 바벨을 만지며 굿바이 키스를 보냈다. 국민들을 향한 큰절도 잊지 않았다.

그것이 우리에게 보내는 마지막 작별인사인 것 같아 하염없이 눈물이 쏟아졌다. 이 헤어짐이 영원함이 아니기에, 또 다른 모습으로 우리 앞에 나타날 장미란인 것임을 알면서도 말이다.


내 소중한 벗이었고, 내 큰 영웅이었던 장미란. 그녀 마음 속 평화를 위해, 바벨 앞에서의 그녀처럼, 오늘은 내가 장미란을 위해 아주 오래 기도를 드려야겠다.



블로그 이미지

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티스토리 툴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