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대한민국 수영역사상 처음으로 올림픽메달을 안겨줬던 소년, 박태환. 수영의 불모지라고 할 수 있는 우리나라에서 나고 자란 선수가, 아시아인이 아닌 전세계인과 경쟁을 치러야했던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는 사실은 기적과도 같은 일이었다.

하지만 박태환의 금메달 소식은 그저 반가운 스포츠 뉴스 중 하나에 불과했다. 기본적으로 국제대회에서 선수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는 하나의 감동스토리로 연결되곤 하는데, 단지 금메달을 땄다는 이유만으로 박태환 스토리에 갑자기 감동을 받을 순 없었다. 사실 모든 국가대표 선수들이 그만큼의 땀을 흘리지 않던가. 열심히 하는 것은 기본이기에 박태환 관련 뉴스는 내게 그저 배경지식을 보태는데 도움을 주는 일에 불과했다.

4년 뒤에 런던올림픽에서 다시 만난 박태환. 여전히 ‘마린보이’라는 별명이 잘 어울리는 선수였다. 아직도 청년보다는 소년이라는 단어를 써야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마냥 어리게만 보였던 박태환은 분명 진화했다. 부정출발이라는 오심으로 400m 예선탈락이라는 충격적 사건이 터진 직후에야 깨달았다.

아무 생각도 들지 않았을테고, 아무 말도 할 수가 없던 그 순간에도, 박태환은 미소를 잃지 않았고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전달했다. 쉽지 않았을 일이다. 결국 은메달을 따고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하며 지옥에서 천국으로 간 시간을 복기할 때, 그제야 박태환은 꾹꾹 눌러왔던 감정들을 내보였다. 그러나 그는 혼자 숙소 방에 앉아 오심이 번복되길 기다리며 괴로움과 싸워야했음에도 시합이 끝나기 전까지는 결코 내색하지 않았다. 그 감정의 절제가 쉽지 않음을 알기에, 어느새 박태환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의 경지에 올라와있음을 나는 깨달았다.

그리고 다시 시작된 자유형 200m에서 박태환은 또다시 은메달을 땄다. 400m 결승을 마치고 인터뷰 내일 하면 안 되냐며 눈물을 보였던 박태환이, 이번엔 진행요원들의 제지가 있을 때까지 기자들과 믹스트존에서 인터뷰를 했단다.

“아넬은 왜 그렇게 빨라요? 마지막 5m는 정말 못 가겠더라고요. 근데 저보다 신체가 크잖아요.”

경기 후 진행된 인터뷰 기사를 읽어보니 싱글벙글 박태환의 모습이 그러졌다. 이럴 땐 또 소년 같은데 또 어른스럽게 은메달의 의미를 이야기한다.

“아넬은 물론 쑨양과 같이 200m에서 레이스 같이 했다는 게 의미가 있어요. 색깔은 금이 아니지만 올림픽 은메달이 아니라 메달을 또 하나 걸 수 있다는 거 역시 큰 의미에요. 런던이라는 무대가 큰 의미가 있었어요. 금도 따고 싶었지만 전 그래도 은색이 더 멋있는 것 같아요.”

결승에서 쑨양과의 만남을 라이벌 구도로 보는 언론 앞에서 박태환은 “아시아선수 2명이 자유형 200m에서 함께 은메달을 딴 것은 큰 의미”라며 아시아수영의 발전으로 의미를 확대시켰다.

박태환은 진화했다. 이제는 정신적으로도 성숙한 박태환에게서 나는 레전드의 향기를 느낀다.

박태환은 이제 명실공히 한국 수영계의 살아있는 영웅이다. 그가 가르는 물살 위에서 늘 새로운 역사가 쓰여지고 있다. 박태환은 2006년 도하아시안게임 3관왕(자유형 200m, 400m, 1500m)과 대회 MVP으로 우리를 놀라게 했으며 이듬해에는 한국 수영 역사상 최초로 세계선수권 대회 우승(자유형 400m)이라는 위업을 작성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에서는 동양인 최초로 400m 금메달을 땄으며 2010년 광저우아시안게임에서는 3관왕에 오르며 아시안게임 2연속 3관왕이라는 새로운 기록을 올렸다. 박태환은 이듬해인 2011년 세계선수권 대회에서 우승하며 다시 한 번 금자탑을 쌓았다. 그리고 이번 올림픽에서는 우리나라 남자선수들 가운데 최초로 2연속 2개 메달 획득이라는 또 다른 기록을 세웠다.

 


유난히 승부사기질이 강한 박태환이기에 금메달을 따고 싶은 마음은 누구보다도 컸을 것이다. 그러나 마지막 남은 에너지까지 다 쏟아낸 박태환이기에 “후회는 없다”며 웃었다. 그 웃음에서 진심이 느껴졌다. “은메달이 더 예쁜 것 같다”는 박태환의 그 진심이 나는 더 예쁘다. 금만이 빛나는 존재이고 귀중한 것이라고 생각하던 우리에게 색깔과 상관없이 모든 메달은 값지고 고귀하다는 것을 박태환은 말과 행동으로 우리에게 알려주었다.

그래서 우리는 이제, 박태환이라 쓰고 레전드라 읽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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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