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또 어떤 날은 집 근처 산을 돌아다니며 채집한 풀을 먹이기도 하고요. 풀을 끓여 재운 물을 먹이고 에릭은 노트에다 보고서 비스무레하게 적기도 합니다. 그러나 후에 독풀을 먹고 난리가 나기도 한답니다. 새벽에 독풀로 인한 중독증세로 덱스터가 병원에 가자 덱스터 어머니는 어떤 풀을 먹였냐며 덱스터를 깨우죠. 풀 이름을 모르던 덱스터가 풀과 잎사귀를 붙인 노트를 통째로 주며 "이거에요!"라고 외쳤던 기억이 나네요.




그렇지만 결국 이 둘은 의사를 만나지 못한 채 다시 돌아옵니다. 덱스터가 너무 많이 아팠거든요. 에릭은 매일 자신을 손찌검하는 자신의 싱글맘 곁으로 갑니다. 그리고 덱스터는 결국 병원에 입원하고 맙니다.





"잠에서 깼는데 어두울 때 말야 천문학자들은 우주가 180억 광년에 걸쳐있다고 했잖아.계속해서 180억 광년을 더 간다고 가정해봐. 거기에 아무 것도 없으면 어떡하지? 가끔 잠에서 깼는데 깜깜하면 난 정말 무서워. 거기에 혼자 남겨진 채로 영원히 못 돌아올 것 같아."
그때 에릭은 덱스터에게 운동화 한짝을 주며 말하죠.
"자는 동안 이걸 꼭 잡고 있어. 만약 잠에서 깼는데 무서울 때 이렇게 생각해봐. 잠깐, 난 에릭의 신발을 잡고 있어. 대체 내가 왜 이 더러운 농구화를 들고 있는 거지? 1조 광년이나 멀리 떨어진 곳에서 말야. 난 지구에 있는게 틀림없어. 침낭속에서 안전하게 자고 있다고. 그리고 에릭은 바로 내 옆에 있을 거야. 이렇게 생각하란 말야."
"음. 괜찮은 방법 같다."
그리고 덱스터가 가는 마지막 길, 운동화 냄새를 맡으며 자신을 생각하라고, 그래서 그 길이 무섭거나 외로운 길이 아님을 깨닫으라고 에릭은 자신의 운동화를 덱스터 손에 쥐어 준 채 집으로 갑니다.
터덜터덜. 장례식장을 나온 에릭은 그렇게 한쪽 운동화 없이 걸어가죠. 한손에는 덱스터의 신발을 든 채 말입니다.
그리고 마지막 장면. 둘이 함께 놀던 강가에 가 조용히 신발을 띄우며 영화는 끝납니다. 그 둘이 함께 보트 위에서 떠내려가며 놀던 그 강 위엔 주인 잃은 덱스터의 신발이 그렇게 조용히 내려갑니다.
사춘기 시절, 저를 지배했던 영화 '굿바이 마이 프렌드'. 12년이라는 세월이 흘렀지만 저는 아직도 영화 속 장면 하나 하나를 생생히 기억합니다. 그만큼 제게 많은 영향을 끼친 영화였기에 가능한 것이겠죠.
그런데 그가 덱스터처럼 세상을 떠나고 말았네요. 현지시각으로 지난 15일 LA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고 합니다. 아직 정확한 사인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전날 친구들과 술을 마시며 놀다 돌연사한 것으로 보아 약물과다 복용에 의한 사망이 아닌가, 하는 추측만이 나돌 뿐입니다.
영화 '의뢰인'의 꼬마 주인공 브래드 렌프로는 '굿바이 마이 프렌드'로 대중에게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아역스타 반열에 올랐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보는 거기까지 였습니다. 그 영화 이후로는 큰 성공을 거두지 못했거든요.
대다수 헐리웃 아역스타들은 늘 한계와 만나곤 합니다. 어린시절 자신을 알린 영화 캐릭터에서 벗어나야만 한다는 압박이 때론 그들을 짓누르기도 합니다. 그 때문에 일찍 술과 마약에 빠지는 경우도 허다하고요. 그 옛날 ET에서 귀여운 거티로 열연했던 드류 베리모어가 그랬으며 터미네이터를 통해 스타 반열에 오른 에드워드 펄렁이 그랬죠. 맥컬리 컬킨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아도 알겠죠?
물론 그중에는 성공적으로 그 시기를 이겨내 진짜 배우가 되는 경우도 있습니다. 조디 포스터,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 나탈리 포트만이 그 예겠죠. 그들은 영화 밖에서도 다양한 자선활동과 선행으로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됐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브래드 렌프로는 결국 안타깝게 세상을 떠나고 말았네요. 그동안 무엇이 그를 그토록 힘들게 만든 것일까요. 어린나이에 너무 일찍 부와 명예, 그리고 인기를 맛보았기 때문일까요. 찬란했던 그 순간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서, 그리고 앞으로도 영원히 돌아오지 않을 두려움 때문에 그는 혼자서 힘들었던 것일까요.
하지만 이 질문에 답해줄 수 있는 사람은 이제 이 세상엔 아무도 없습니다. 우리는 그저 여러가지 생각을 하며 추측하고 그의 심정을 헤아려볼 수 밖에 없습니다. 에이즈에 걸린 친구의 치료약을 찾기 위해 뛰어 다니던 브래드 렌프로. 어쩜 정말로 치료약이 필요했던 사람은 그가 아니었는지요.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그의 영화는 오래도록 우리 가슴에 남아 '브래드 렌프로'라는 이름을 기억하게 만들겠지요. 그것을 위안 삼으며 이 글을 마칩니다.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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