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10월에는 마산에서 열린 피스퀸컵 브라질전. 15세 8개월만에 A매치에 데뷔한 그녀 때문에 한국 축구 최연소 A매치 기록이 깨졌습니다. 그녀는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으로 떠오른 지소연. 종전 기록은 16세 6개월에 A매치에 출전했던 박은선이 세웠죠.
한국여자축구 사상 최초로 AFC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 오른 것은 박은선(2004년). 후에 지소연이 그 뒤를 이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은 박은선 뿐이었습니다.
4강에 오른 U-20여자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 박은선이 소속팀 서울시청을 무단으로 이탈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서호정 서울시청 감독의 말에 따르면 박은선이 전반기를 마치고 준 휴가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0일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하네요.
박은선은 지난 5월 AFC 여자 아시안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선발됐으나 훈련을 소화할 정도로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라 중도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A매치가 2005년 8월16일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였으니 햇수로만 벌써 6년째. 여자대표팀에서 박은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4아시아여자청소년선수권에서 결승전 해트트릭을 포함, 8골을 터뜨리며 득점상과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여자축구의 ‘New hope’으로 떠올랐지만 그 이후의 나날들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와중에도 박은선은 2005동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가을에는 ‘FIFA 올해의 선수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녀의 이탈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죠. 2006년 5월26일 아시아여자선수권을 앞두고 소집된 국가대표 훈련 도중 합숙소를 2차례나 무단이탈하기도 했죠.
뿐 아닙니다. 박은선은 2005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둔 합숙훈련 당시에도 대표팀 이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표팀 내부적으로 ‘박은선이 우리 팀에 정말 필요한 선수인가?’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숨어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의견이 ‘필요하다’였기에 그녀는 다시 대표팀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찜찜한 기운은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여자대표팀을 맡고 있던 안종관 감독은 “나로선 할 만큼 다 해봤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2차례나 숙소를 무단이탈한 박은선을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다는 뜻이었습니다.
2007년 1월에는 소속팀 서울시청이 중국으로 동계훈련을 떠나기 이틀 전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쪽지를 남긴 뒤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고요. 그즈음 박은선 아버지와 구단 사이에서 연봉문제로 갈등이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 된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만이 난무했습니다. 6개월간 소식이 끊어졌고 늦여름, 잠적했던 박은선이 돌아왔습니다.
1년여의 공백이 있었지만 박은선은 8월과 9월 여왕기종별대회와 추계여자축구연맹전에 연속으로 득점왕에 오르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서울시청 서정호 감독은 “지도자 입장에서 돌출행위가 못마땅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포용하고 안고 가야한다”라며 “(박)은선이가 이렇게 되기까지엔 나 뿐 아니라 부모, 관계자들 등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 박은선이 이제는 오롯이 축구에만 전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녀의 방황은 계속 되고 있네요. 이제는 철이 들 때도 되지 않았냐고 누군가는 그러지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던 청소년기부터 사람들은 남자같은 선수가 등장했다며 그녀의 성정체성을 희화화하기도 했고, 선수가 아닌 득점 괴물 정도 쯤으로만 생각했습니다.
20대가 돼서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즈음으로 자신을 생각하여 정체성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래서 그녀의 방황이 저는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는 축구선수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한국여자축구 사상 최초로 AFC 올해의 선수상 후보에 오른 것은 박은선(2004년). 후에 지소연이 그 뒤를 이어졌지만 2000년대 초반만 해도 한국 여자축구의 희망은 박은선 뿐이었습니다.
4강에 오른 U-20여자축구대표팀의 선전에 모두가 박수를 보내고 있을 때, 박은선이 소속팀 서울시청을 무단으로 이탈한 사실이 최근 뒤늦게 알려졌습니다. 서호정 서울시청 감독의 말에 따르면 박은선이 전반기를 마치고 준 휴가의 마지막 날인 지난달 20일에 돌아오지 않았고 아직도 연락이 없다고 하네요.
박은선은 지난 5월 AFC 여자 아시안컵을 앞두고 국가대표팀에 선발됐으나 훈련을 소화할 정도로 체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판단에 따라 중도에 탈락하는 아픔을 겪기도 했습니다.
마지막 A매치가 2005년 8월16일 열린 남북통일축구경기였으니 햇수로만 벌써 6년째. 여자대표팀에서 박은선의 모습을 보지 못한 지도 꽤 많은 시간이 흘렀습니다. 2004아시아여자청소년선수권에서 결승전 해트트릭을 포함, 8골을 터뜨리며 득점상과 최우수선수상을 수상하면서 한국여자축구의 ‘New hope’으로 떠올랐지만 그 이후의 나날들은 순탄치 않았습니다.
그러나 와중에도 박은선은 2005동아시아선수권에서 한국을 우승으로 이끌었고 가을에는 ‘FIFA 올해의 선수 후보’에 이름을 올렸습니다, 그녀의 이탈은 이번이 처음만은 아니죠. 2006년 5월26일 아시아여자선수권을 앞두고 소집된 국가대표 훈련 도중 합숙소를 2차례나 무단이탈하기도 했죠.
뿐 아닙니다. 박은선은 2005동아시아선수권을 앞둔 합숙훈련 당시에도 대표팀 이탈 문제를 일으킨 적이 있습니다. 이 때문에 대표팀 내부적으로 ‘박은선이 우리 팀에 정말 필요한 선수인가?’에 대한 투표가 진행됐다는 비하인드 스토리도 숨어있습니다. 결과적으로 대다수 의견이 ‘필요하다’였기에 그녀는 다시 대표팀으로 들어올 수 있었으나 찜찜한 기운은 남아있었습니다. 그러나 2006년에는 사정이 달랐다. 여자대표팀을 맡고 있던 안종관 감독은 “나로선 할 만큼 다 해봤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월드컵 본선 티켓이 걸린 중요한 대회를 앞두고 2차례나 숙소를 무단이탈한 박은선을 더 이상 봐줄 수 없었다는 뜻이었습니다.
2007년 1월에는 소속팀 서울시청이 중국으로 동계훈련을 떠나기 이틀 전 “축구를 그만두고 싶다”는 갑작스럽고 당황스러운 쪽지를 남긴 뒤 감쪽같이 사라지기도 했고요. 그즈음 박은선 아버지와 구단 사이에서 연봉문제로 갈등이 있었는데 그것이 원인이 된 것 같다는 막연한 추측만이 난무했습니다. 6개월간 소식이 끊어졌고 늦여름, 잠적했던 박은선이 돌아왔습니다.
1년여의 공백이 있었지만 박은선은 8월과 9월 여왕기종별대회와 추계여자축구연맹전에 연속으로 득점왕에 오르며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이를 지켜보던 서울시청 서정호 감독은 “지도자 입장에서 돌출행위가 못마땅할 때도 있었지만 이제는 포용하고 안고 가야한다”라며 “(박)은선이가 이렇게 되기까지엔 나 뿐 아니라 부모, 관계자들 등 어른들의 책임이 크다”고 뼈있는 말을 남겼습니다.
그런 박은선이 이제는 오롯이 축구에만 전념할 것이라 생각했는데, 아직도 그녀의 방황은 계속 되고 있네요. 이제는 철이 들 때도 되지 않았냐고 누군가는 그러지만, 관심과 사랑이 필요하던 청소년기부터 사람들은 남자같은 선수가 등장했다며 그녀의 성정체성을 희화화하기도 했고, 선수가 아닌 득점 괴물 정도 쯤으로만 생각했습니다.
20대가 돼서도 남자도 여자도 아닌 어중간한 상태 즈음으로 자신을 생각하여 정체성 때문에 심각하게 고민했다는 이야기도 들었고요.
그래서 그녀의 방황이 저는 더 안타깝고 마음이 아픕니다. 이제는 축구선수로서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기를 희망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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