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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World Football

벨라루스전을 통해 얻은 득과 실은 무엇일까

대한민국 국가대표팀이 벨라루스와의 평가전에서 0-1로 패했습니다.

하지만 단순히 패배에만 큰 의미를 두고 싶지는 않습니다. 지난 25일 일본을 떠나 오스트리아로 도착한 대한민국 대표팀은 6일만에 경기를 치렀습니다. 보통 축구선수들의 경기를 치른 후 회복하는데 걸리는 시간은 3일입니다. 여기서 3일은 이동 없이 충분히 홈에서 휴식을 취했을 경우입니다.

특히나, 한일전이라는 ‘혈전’을 치르느라 체력 뿐 아니라 정신적으로도 쇠진한 선수들이 긴 비행 뒤에 바로 경기를 치러야만했습니다. 7시간이나 벌어진 시차와 고지대를 동시에 적응하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선수들의 공수 전환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던 점은, 압박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았으며 다소 움직임이 무겁게 보였던 것도 그런 원인이 크게 작용하지 않았나 생각됩니다. 특히나, 저는 개인적으로 ‘고지대’라는 특성을 지목하고 싶습니다.

지난 2월 강원FC 선수단 훈련을 보기 위해 중국 쿤밍에 다녀온 적이 있습니다. 쿤밍은 해발 1895m의 고지대입니다. 우리나라도 아르헨티나와의 조별리그 2차전을 1753m의 고지대 요하네스버그에서 치릅니다. 쿤밍에 도착한 첫날 사실 고지대 별거 아니네, 하는 생각을 하며 잤던 기억이 납니다. 워낙 아무데나서 잘 먹고 잘 자는 체질이라 고지대에도 쉽게 적응한다고 생각했죠. 더욱이 저는 훈련을 하지 않기 때문에 단순히 생활하는데는 무리가 없을 거라고 여겼죠.

그러나, 고지대는 일반 사람에게도 적응하기 어려운 곳이었습니다. 다음날 다소 몸이 무거워졌고 쉽게 피곤해지더군요. 베이징에서 쿤밍으로, 비행기를 갈아타느라 몸이 지쳐서 그랬을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3일 째 되는 날 밤, 자기 위해 침대에 누웠는데 제 가슴 위로 무거운 돌덩이 하나가 얹혀 있는 듯한 답답함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4일 째부터는 극심한 피로감을 호소했죠. 그때마다 선수들은 고지대에서 뛰는 건 자기들인데 왜 제가 힘들어하는지 모르겠다며 웃었지만, 제게는 전혀 웃을 일이 아니었습니다. 제가 고지대에 적응하는데 걸린 시간은 꼬박 일주일. 물도 많이 먹고 충분히 휴식을 취했음에도 7일이라는 시간이 걸렸습니다. 지금의 대표팀 역시 그런 시간 속에 있지 않나 생각됩니다.

사실 평가전에서의 목표는 단순한 승리가 아닙니다. 월드컵이라는 본선무대에서 최정예 멤버를 선발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을 통해 선수들을 '평가‘하고 부족한 점을 ’발견‘하고 ’보완‘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번 평가전에서 보여준 선수 개개인의 경기력과 컨디션을 잘 점검해야할 것이며 경기 중 노출됐던 단점들을 보완하는 것이 선결과제겠지요.

이번 평가전을 통해 대한민국 대표팀은 우리보다 월등한 하드웨어를 지녔을 뿐 아니라 제공권에 강하고 거친 몸싸움을 즐기는 유럽 선수들을 상대로 한 ‘예방주사’를 제대로 맞았다고 생각합니다.

사실 그간 우리나라 대표팀은 지난 동아시아대회 일본전 쾌승을 시작으로 코트디부아르, 에콰도르, 일본을 연달아 꺾으며 순항하고 있었습니다. 이때 주의해야할 것이 바로 정신력입니다. ‘나태’야 말로 가장 조심해야할 내부의 적인 셈이죠.

이번 패배는 그런 점에서 선수단 내부에서부터 다시 한번 정신력 재정비, 혹은 재무장을 일깨워주는 좋은 ‘기회’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벨라루스 대표팀이 보여줬던 압박과 힘, 제공권에서 시종일관 밀리는 모습이었습니다. 장신 수비숲을 뚫기 위한 공격루트와 해법들을 모색해야겠지요. 그것이 이번 평가전이 대한민국 대표팀에 내준 ‘숙제’입니다.

무엇보다 박주영의 몸상태가 정점을 향해 달려가고 있다는 점을 알게 된 것은 가장 큰 수확이었습니다. 프랑스에서 오른쪽 허벅지 뒷근육을 다쳐 지난 한일전에서는 후반에 교체 투입됐던 박주영은 이번 평가전에서 선발 출장하여 인상적인 모습들을 보여줬습니다.

전반에 보여줬던, 아쉽게도 골키퍼가 미리 방향을 읽고 펀칭해서 막아냈지만, 박주영의 날카로운 프리킥은 부상 걱정을 날려보내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프리킥 감각이 여전하다는 것은 곧 부상 회복의 방증이겠지요.

그러나 이번 평가전에서 가장 걱정스러운 부분은 곽태휘의 부상입니다. 전반 31분 헤딩 경합 후 착지하는 과정에서 부상을 당한 곽태휘는 다시 일어서지 못하고 들 것에 실린 채 이정수와 교체됐습니다.

왼쪽 무릎 인대를 다친 것으로 여겨지는데, 그간 큰 부상 때문에 오랫동안 재활에 매진해야만 했던 곽태휘의 부상 병력을 알기에 걱정스러운 마음이 큽니다. 2008년 3월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왼쪽 발목 인대가 끊어지는 부상으로 독일에서 수술을 받았던 곽태휘는 그해 8월 겨우 복귀할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11월 수원과의 원정경기 도중 이번에는 오른쪽 무릎 인대를 다치며 태극마크의 꿈을 뒤로 미뤄야만 했던 아픔이 있습니다.

곽태휘가 우리에게 처음 이름을 알린 것은 2008년 1월 칠레전을 앞두고 처음으로 태극마크를 달면서부터입니다. 그 뒤 곽태휘는 2월 2010월드컵 아시아지역 3차 예선 1차전 투르크메니스탄전과 동아시아선수권대회 중국전에서 2경기 연속골을 터트리며 ‘골 넣는 수비수’로 명성을 떨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신데렐라 탄생의 신호탄을 쏘자마자 안타깝게도 부상으로 태극마크를 반납해야했습니다. 하나 8월 K-리그 복귀 후 10월 다시 국가대표팀에 재승선한 그는 2010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2차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믿고 기다려준 허心에 보은하기도 했지요.

이운재 못지 않게 콜플레이에 능한 포백라인의 ‘리더’를 평가전에서의 부상으로 잃는 것은 아닌지 정말 걱정이 큽니다. 만약 부상의 정도가 심해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면 우리 대표팀은 다시 한번 플랫 4를 재정비해야만하는 난관에 봉착하게 됩니다.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그리 길지 않습니다. 대한민국 대표팀은 이번 평가전을 통해 산적한 과제들을 해결하는데 주력해야할 것입니다. 무엇보다 곽태휘 선수의 빠른 복귀를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