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문화다방/Society

경희대 사건으로 돌아본 노동자의 삶

경희대 패륜녀 사건으로 때 아닌 사이버 세상이 뜨겁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에 고마운 건, 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다시 한 번 생각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해줬기 때문입니다.

지난해 겨울 ‘고려대 폐지전쟁’이라는 검색어가 실시간 검색 순위 상위에 올랐던 적이 있습니다.

솔직히, 그 단어를 클릭하기 전까지만 해도, 학교에 폐지가 너무 많아서, 그래서 폐지수거와 관련해 전쟁이라는 격한 단어를 쓴 게 아닐까, 하는  -지금 보면 말도 안되는- 생각을 했습니다.


대학시절, 학교에는 크고 작은 행사들이 참 많았습니다. 특히나, 대동제와 정기전 등의 큰 행사가 끝나고 나면, 학교는 쓰레기 천국이 따로 없었습니다. 워낙에 재학생 수도 많았고, 또 외부 손님들도 많았고, 또 무엇보다 치우는 사람들보다 버리는 사람들이 많았기에 폐지수거를 전쟁으로 표현했구나, 라고 자연스레 생각 했었죠.

고려대에서 청소를 하고 계시는 노동자들이 지난해 12월 본관에서 3일 동안 농성을 벌였습니다. 용역업체가 환경미화원들의 정년을 70살에서 60살로 낮추려 했고, 폐지를 판돈으로 밥값을 충당했던 관행을 막았기 때문이죠.

그 과정에서 저는 많은 것들을 알게 됐습니다. 처음 용역업체와 맺은 계약서에는 오전 6시부터 일을 하기로 돼있지만, 학교 측의 요구에 맞추기 위해서는 새벽 4시까지 출근을 해야 했다고 합니다. 2시간 일찍 나와야지만 업무량을 맞출 수 있었기 때문이죠. 초과근무수당은 없었고, 생각조차 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그렇게 매일 일해야 손에 주어지는 돈은 96만원. 식비가 나오지만 한 달에 3만 5천원밖에 나오지 않았고, 부족한 식비는 학교 내에서 버려지는 폐지를 주워다 파는 돈으로 메웠습니다. 그러다 “학교와의 계약에 따라 앞으로 폐지를 개별적으로 팔면 고발하겠다”는 공문을 받았다고 합니다. 고려대에서 폐지수거를 위해 다른 용역업체와 계약을 하게 됐기 때문이죠.

폐지처리를 놓고 고려대와 환경미화노동자들이 벌인 폐지전쟁은 폐지처리를 새 용역업체에 넘기는 대신 기존 노동자들을 고용한 업체와 새 업체, 두 곳으로부터 2만 5천원의 추가 식비를 받기로 합의했습니다. 또 내년에도 용역업체와 재계약이 성사되면 식비 상승분을 지급하겠다고 했는데, 문제는 고려대가 용역업체 공개입찰을 통해 기존 두 업체가 아닌 새 업체와 계약을 했다는 것에 있었죠.

고려대 환경미화 노동자들의 폐지전쟁은 결국 본관 농성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들은 △ 앞선 두 업체가 인상한 식비 2만5천원을 새로 선정된 업체들이 그대로 승계하고 △ 노조활동비 명목으로 매달 60만원씩 받아오던 활동보조금을 보장하고 △ 현재 정년으로 명시된 70세 보장을 학교 측에 요청했습니다.

본관 농성이 승리로 끝난 것은 아니지만 환경미화노동자들이 연대를 조직해 자신들의 권리찾기에 나섰다는 점에서 저는 승리였다고 말하고 싶습니다.

대학시절, 제 친구들이 학교 앞에 놀러오면 캠퍼스 투어를 시켜주곤 했는데, 그때마다 친구들은 제게 말했습니다. “너희 학교 화장실에서는 좋은 냄새가 나.”

사실, 폐지전쟁이 있기 전까지 저는 어머니, 할머니 연배의 노동자들이 새벽 4시에 출근에 윤이 날 때까지 걸레질을 하는 것도 몰랐고, 화장실 내 물품실, 그러니까 청소도구들이 쌓여있는 제일 마지막 칸에서 휴식을 취하고, 집에서 싸온 차가운 도시락을 먹는다는 사실 조차 알지 못했습니다.

1교시 수업을 위해 학교에 도착할 때면 건물 내 은은히 퍼져있는 좋은 냄새, 그러니까 우리 학교 냄새라고 생각했던 향긋한 냄새를 위해 흘린 눈물과 땀은 모른 채 말이죠.

이번 경희대 패륜녀 사건 녹취록을 들으면서, 누군가는 왜 그 어머니 노동자가 인격을 비하하는 발언까지 했는데, 왜 당하고만 있었냐며 안타까워했고 또 분개했습니다.

하지만 또 누군가는 그랬습니다. 격무 속에서 최저임금을 받고 일하면서도 언제든 해고될 수 있다는 불안감에 시달렸기 때문이라고요. 노동 피라미드 최하층에 있던 사회적 약자였기 때문에 그랬을 거라고요.

화폐시대로 넘어오면서, 자본주의시대가 도래하게 되면서 언제부터인가 사람의 가치를 평가하는 기준은 돈과 권력의 많고 적음으로 나눠졌습니다. 직업엔 귀천이 없다던 말도 실제로 직업에 귀천이 있기 때문에 나온 말이었죠. 그리고 그 귀천의 척도는 얼마나 더 대접받으며 얼마나 더 많은 돈을 벌며, 얼마나 많은 사람들에게 힘을 과시할 수 있는가로 매겨졌습니다.

저는 살면서 진정 어린 뜨거움조차 주지 못하면서도 길가의 연탄재는 함부로 차며 지냅니다. 내 손에 더러운 것이 묻히는 것은 싫지만 공중 화장실은 한 번도 깨끗하게 사용한 적 없으며 더러운 화장실을 보면 여전히 기겁합니다.

무엇보다 다른 사람의 상처에는 무심하면서도 종이에 새끼손가락이 조금이라도 베어 피라도 날라 치면 아프다며 온갖 울상입니다.

그러나 지극히 나 중심적인 사고 속에서도 우리의 어머니와 할머니 노동자는 최소한의 권리조차 묵살된 일상 속에서 살며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그녀에게 돌을 던지기 전에 내 과오를 되돌아봅니다. 부끄러움에 고개가 숙여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