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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강원도의 힘, 강원FC

<독점> '맨땅에 헤딩' 실제모델은 강원FC 김영후!

“떨거지 차봉군이 FC소울 선수가 됐다구!” - 맨땅에 헤딩 2화 中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에 나오는 대사입니다. 자연스레 수원삼성 차범근 감독과 FC서울이 연상되죠. 실제로 차봉군이 데뷔전을 치렀던 경기장은 FC서울이 홈으로 삼고 있는 상암월드컵경기장이고 드라마 중간 나오던 서포터들은 FC서울 서포터스 수호신이었습니다.

그러나 내셔널리그에서 고군분투하다 극적으로 K-리그에 입성, 데뷔전을 치른 후 시나브로 팬들에게 강렬히 이름을 기억시킨다는 차봉군의 이야기는 올 시즌 K-리그서 많이 본 누군가의 이야기입니다. 그는 과연 누구일까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둡대요. 그러니까 아무리 어둡고 캄캄해도… 무서워하면 안 돼. 조금만 기다리면 해가 뜨니까… 어두울수록 빛이 가까운 거니까.” - 맨땅에 헤딩 2화 中

숙소에 앉아 MBC 수목드라마 <맨땅에 헤딩>을 보고 있던 김영후는 극중 주인공 차봉군(유노윤호)의 에이전트 김해빈(고아라)의 독백을 들으며 옅은 미소를 지었습니다. 처음 내셔널리그에 입성할 당시 그의 어머니가 자신에게 해줬던 이야기가 생각났기 때문이죠.

2005년 12월 20일은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가 열린 ‘운명의 날’이었습니다. 그리고 냉혹한 현실과 만난 날이기도 하고요. 눈이 아주 많이 내렸던 그날, 김영후를 지명한 구단은 단 하나도 없었습니다. 2005년 한국축구대상 대학부 최우수선수상(MVP)을 수상하기도 했던 그였지만 프로의 벽은 실로 높았습니다. ‘선택받지 못한 자’라는 좌절 속에서 며칠을 보내고 있던 중 모교 숭실대 축구부 감독에게서 “프로 연습생과 울산현대미포조선 行 중 하나를 택하라”는 연락이 왔습니다.

당시 김영후의 어머니는 “해뜨기 전이 가장 어두운 법”이라는 말과 함께 “미포조선에서 열심히 뛰다 보면 또 다른 빛이 기다리고 있을 것”이라고 조언해줬습니다. 그의 어머니는 “믿음과 기도, 그리고 노력이 함께 한다면 곧 밝은 태양이 비추는 아침이 돌아올 것”이라 말했고, 그 말대로 꼭 3년 후인 2008년 11월 20일. 김영후는 ‘K-리그’라는 아침 해와 드디어 만나게 되었지요.

2009 K-리그 신인선수 선발 드래프트에서 강원FC 최순호 감독이 우선지명한 김영후는 “올 시즌 목표는 10골”이라는 말과 함께 취재진 앞에서 웃는 여유까지 보였습니다. 그리고 그 모습을 디지털 캠코더로 고스란히 담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현재 <맨땅에 헤딩> 연출을 맡고 있는 박성수 PD였습니다.

제가 박성수 PD와 만난 순간이기도 했지요. 그날 저는 베스트일레븐 8월호에 실릴 인터뷰 때문에 김영후와 인터뷰를 가졌던 7월 이후 약 4개월만에 만났던 터라 그와 아주 반갑게 인사를 나누고 있던 중이었죠. 당시 박성수 PD가 그런 저와 김영후의 모습을 유심히 지켜보고 있었는데, 그때만해도 저는 박성수 PD의 얼굴을 모르고 있던 터라, 속으로 ‘어. 모자를 푹 눌러쓴 저 아저씨는 누구지. 계속 쳐다보고 계시네’라고 생각하고 있었습니다.

강원FC가서도 잘할 거라고 믿는다는 덕담을 건네며 악수를 나눈 뒤 돌아서는데 모자를 푹 눌러쓰고 있던 아저씨(?)가 제게 다가와 축구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는데 도움을 받고 싶다며 명함을 건넸습니다. 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다며 설명을 하시는데 처음엔 ‘혹시 사기꾼 아닐까?’라는 생각을 했었답니다. 방송국 PD라고 사칭하면서 사기치는 사람들 이야기를 좀 들었나요. 지금에 와서 다시 생각해보니 날 드라마에 출연시키고 싶다는 것도 아닌데 왜 그런 생각을 했는지 모르겠습니다. ㅎ 

그리고... 집에 가서 정말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제게 명함을 주신 그 PD님이 지금도 최고의 드라마로 회자 중인 ‘네 멋대로 해라’를 연출했던 그 PD님이더라고요. 그리하여 김영후 덕분에 저는 박성수 PD와 만나게 되었고 축구 드라마를 준비하는 시간 동안 아주 조금 도움을 줄 수 있었습니다. 크진 않았던, 미약한 도움이었지만 그래도 제가 알고 있는 축구 지식, 축구 선수들과 얽힌 에피소드들이 드라마에 녹아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무척이나 기쁜 일이었습니다.

무명선수가 국가대표가 되기까지, 그리고 3번이나 죽을 고비를 넘기는 가운데 결국엔 꿈을 이룬다는 내용의 축구드라마를 준비하고 있던 박성수 PD는 내셔널리그에서 K-리그로 입성한 김영후의 7전8기 스토리를 눈여겨 지켜보고 있던 터였습니다. 그래서 드래프트 현장에서 김영후의 곁을 떠나지 않았고 그러다 자연스레 저와도 만나게 된 것이지요. 김영후의 이야기는 드라마를 준비할 당시 주인공 차봉군의 캐릭터 설정에 아주 많은 영향을 끼쳤고요.

박성수 PD는 본격적인 드라마 촬영 전 K-리그 경기장을 둘러보며 사전답사에도 심혈을 기울였는데, 박 PD가 처음 찾았던 경기장이 바로 강릉종합운동장입니다. 박성수 PD가 강릉에 왔던 4월 10일. 경포 근처 횟집에서 저녁을 함께 했는데, 그날  인터뷰 때문에 김영후와 문자를 주고 받던 저를 보고 있던 중 제 핸드폰을 뺏으시더군요. 그러더니 “우리 가슴 뛰게 만드는 멋진 골 기대!”라고 문자를 제 이름으로 보내시더라고요.

드라마 준비 중 강릉 월드구장에서 강원FC 선수단 훈련을 지켜보던 박성수 PD님. 드라마의 리얼리티를 위해 사전준비에도 참 열심히셨죠.

한데 신기하게도 그 문자는 곧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전남드래곤즈와의 11라운드 경기가 열렸던 다음날, 김영후는 박성수 PD가 보는 앞에서 K-리그 데뷔골에 이어 추가골까지 터뜨리며 ‘괴물 공격수’의 부활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그 골은 지켜보던 이들의 가슴을 뛰게 만드는 정말로 멋진 골이었습니다.

<맨땅에 헤딩>이 처음 방송됐던 9월 9일 저녁. 저와 주무는 김영후의 방에 가서 “오~ 김영후 드라마 드디어 나오는 거야?”라며 놀려댔습니다. 다음날 드라마를 본 소감을 묻자 “1회 때 차봉군이 내셔널리그에서 뛰는 장면이 나오는데, 작년까지 몸담아 뛰었던 곳이라 보는 순간 가슴이 짠했어요. 차봉군의 최종목표가 ‘국가대표’인 것으로 알고 있는데, 제 목표 역시 태극마크를 다는 거예요. 제가 ‘원조’인 만큼 차봉군보다 먼저 국가대표가 됐으면 좋겠네요”라며 웃더군요.

또한 김영후는 2회 마지막 장면에서 차봉군이 FC소울 입단 확정 소식을 들은 뒤 “나는 K-리거다!”라고 소리치는 장면을 <맨땅에 헤딩> 최고 명장면으로 뽑았습니다. “우선지명으로 강원FC에 입단하게 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저 역시 차봉군처럼 ‘드디어 K-리거가 됐다’고 방에 앉아 소리쳤던 기억이 나요. 꿈을 향해 달려가는 차봉군의 모습에서 내셔널리그 무대에 있었을 당시 K-리거가 되겠다는 꿈을 잊지 않고 노력했던 그때의 나를 떠올려보곤 해요”라고 말했지요.

누군가는 축구가 실종된 축구드라마라고 하지만 이상하게도 제게는 참으로 현실 같은 축구드라마로 느껴집니다. 드라마에 나오는 대사 하나 하나가 제겐 곧 현실이었으니까요. <맨땅에 헤딩>에서 에이전트 해빈은 차봉군에게 다음과 같이 말하죠.

“좀 바보같지만 나한테는 소중한 '첫 번째, 내 선수' 에요.”
“차봉군. 진짜 멋진 선수로 만들 거에요. 에이전트 일 할 수 있게 해준 선수고... 공동 운명체니까.”

제게도 김영후는 소중한 우리팀 강원FC의 첫 번째 내 선수입니다. 언젠가 저는 그에게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영후 선수 위해서라면 잘 부탁드린다며 고개 숙여 인사할 수 있어요. K-리그에서 가장 멋진 선수로 만들 거에요. 그래서 꼭 신인왕 타게 도울 거구. 어쩜 신인왕 타는 날 엉엉 울지도 몰라요. ^^”라고요.

지난 여름, 맨체스터Utd.와 FC서울과의 친선경기가 열렸던 날, 상암월드컵경기장에 사람들로 가득찼다는 문자를 보내자 김영후는 “상암이세요? 완전 좋겠다^^”라고 답문을 보내왔지요. 그날 저는 김영후에게 장문의 문자를 보냈습니다. “오늘은 TV앞에서 그들을 보고 있지만 언젠가는 맨체스터Utd 선수들과 함께 뛸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더 넓은 무대에서 멋지게 뛸 영후 선수 모습을 그려보며. 지금도 최고지만 앞으로는 더 최고의 선수가 될 거라 믿어요.”

해빈도 봉군에게 비슷하게 말한 적이 있죠. “내 꿈이 뭐냐면요.. 맨유 가는 거. 그쪽이랑.생각만 해도 숨이 막혀요. 올드 트래포드에서.. 공중에 뜬 볼을 발리슛으로 내다 꽂는 거야. 함성 소리.. 들려요? 차봉군을 보고.. 열광하는 거야. 그쪽이 달리는 모습... 골세레머니 하는 모습 보면서.. 어떤 사람은.. 살고 싶어질 거에요.”

어디 그뿐인가요. K-리그 미디어데이 때 운전을 못하는 저로 인해 김영후는 강릉에서 서울까지 무려 3시간 30분 동안 쉬지 않고 운전을 했었답니다. 돌아오는 길에는 피곤에 지쳐 영동고속도로에서 졸기도 했고요. 그날 어찌나 심장이 덜컹했었는지요. 그래서 지난 여름 전 매일 새벽 5시에 일어나 새벽 6시마다 운전교육을 받았습니다. 면허를 따기까지 꼬박 1달 반이라는 시간이 걸렸는데요, 새벽잠이 너무 많아 여느 때의 저라면 침대에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겠지만 운전학원을 다니던 그때만큼은 달랐습니다. 자명종 소리와 함께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으니까요. 하루 빨리 운전면허를 따 선수 대신 내가 운전할 것. 단순명료했지만 절대적으로 지킬 수 밖에 없던 저와의 약속 때문이었죠.

그리고 지난 8월 조모컵 한일올스타전이 열렸던 그때, 저는 드디어 제 차로 김영후를 인천까지 데려다줄 수 있었죠. 제가 초보운전이었기 때문에 김영후는 거듭 자신이 운전하겠다고 했지만 “운전하느라 힘 빼면 안되요. 우리 선수니까요”라며 운전대를 잡았죠. 마치 해빈이 봉군에게 “비 맞으면 안돼. 내 선수”라고 말했듯이요.

김영후는 제게 말했습니다. “꿈을 이룰 수만 있다면 맨땅이 아닌 시멘트바닥에라도 헤딩할 수 있어요”라고요. 그 말이 참 와닿더라고요. 그런 절박함과 치열함이 지금의 김영후를 만들지 않았나 싶습니다. 앞으로도 저는 <맨땅에 헤딩>을 보며 자충우돌하는 봉군에게서 김영후의 모습을 대입시키겠죠. 차봉군도, 김영후도 언젠가는 꿈에 그리던 태극마크를 가슴에 달길 바라며 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