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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이청용 태클, 비판은 하되 마녀사냥은 그만하자


어제 경기에서 제가 한 일은 팬여러분에게 보이지 말았어야 할 그런 행동이었습니다. 어제 게임 끝나고 후회도 많이 했고 혼자 무척 괴로웠습니다…

저에게 많은 기대를 가지시고 응원해주시는 많은 축구 팬들에게 실망을 드린 것 같아서 죄송스럽게 생각합니다. 골도 내주고 상대 선수들이 거칠게 나오다 보니 저도 모르게 그랬던것 같습니다…

이번 일을 계기로 반성하고 더 성숙한 선수가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앞으로 더 열심히 해서 축구 실력, 성숙한 매너를 갖춘 좋은 모습만 보여드리는 선수가 될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아직 부족한 면이 많지만 팬 여러분 앞에 부끄럽지 않은 이청용이 되겠습니다…
다시 한번 이번 일로 실망하셨을 팬 여러분께 죄송한 말씀 드리며 경기장에서 열심히 하는 모습으로 인사 드리겠습니다…


FC서울 홈페이지에 이청용의 공식 사과문이 떴다. 이청용에게는 참으로 길고 괴로웠던 하루였을 것이다.

지난 일요일 부산아이콘스와 FC서울과의 경기 도중 부산 수비수 김태영을 향해 보여준 이청용의 날라차기 태클이 어제 오늘 넷심을 뒤흔들었다. 이날은 마침 2010월드컵 최종예선 대표팀 명단이 발표된 날이었고, 이청용의 대표팀 소집과 관련해 비난과 불만의 목소리를 높이는 축구팬들 또한 많았다.

분명 이청용의 태클은 다분히 고의성 짙게 느껴졌고, 페어플레이 정신이나 동업자 정신을 찾아 볼 수 없는 모습이었다. 쓴소리를 들을만한, 또 레드카드를 받을만한 행동이었다. 그러나 이청용의 선수자격정지를 원한다, 대표팀에 탈락해야한다, 추가징계를 원한다 등등의 이야기를 듣고 있다 보니 마음 한켠이 씁쓸해졌다.

이청용의 징계는 추후 연맹에서 회의 후 내려질 것이다. 하지만 그는 지금 그보다 더 심한 징계로 마음 고생 중이다. 인터넷을 도배한 자신을 향한, 도통 끝이 없는 비난이 바로 그것이다. 어차피 스스로 자초한 일 아니냐고 말하는 이들이 있다면 그들에게 묻고 싶다. 우리 모두는 살면서 실수를 하지 않냐고. 누군가는 이에 대해 이청용의 경우 이번 사건이 처음 있었던 일이 아니기에 더 용서할 수 없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것은 추후 징계로 다스려질 몫이라고 생각한다.

정선희씨의 방송 중 발언으로 수많은 네티즌들이 정선희-안재환씨가 함께 팔던 화장품 불매운동을 했던 당시가 생각난다. 이청용의 대표팀 탈락과 관련해 아고라 청원까지 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며 마음 아프게도 당시 그 모습이 오버랩됐다.

결자해지라고, 자신이 저지른 일은 스스로 해결해야만 한다. 잔뜩 엉켜진 실타래들을 풀고 매듭을 지을 사람은 스스로 뿐이다. 이미 이청용은 우리가 생각한 것 이상으로 많은 것들을 잃었고, 그동안 쌓은 이미지와 커리어에 상처를 입었다. 거기에 연맹의 중징계까지 기다리고 있다.

이 세상에 하늘과 땅이 함께 분노해 도저히 용서하지 못할 일이라는 없다. 잘못을 한 이청용에게 반성할 시간을 주며 행동을 개선, 교화할 기회를 줄 수는 없는 것일까. 입장을 바꾸어 살인태클에 피해자인 김태영 선수의 입장을 생각해봤냐고 묻는다면, 나는 역지사지의 정신을 발휘하여 수많은 사람들에게 비난당하며 ‘공공의 적’ 처지에 놓인 이청용의 지금 심정을 생각해보라고 묻고 싶다.

영화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말미에 박 할머니(김지영)는 자신의 딸을 죽인 윤수(강동원)의 얼굴을 감싸 쥐며 이제 그만 너를 용서하겠다고 말하며 꺽꺽 우는 장면이 나온다. 윤수는 박 할머니의 용서를 통해 구원 받았고, 그 용서를 통해 그들 모두는 숭고해질 수 있었고, 자유로워질 수 있었고, 또 변화될 수 있었다.

용서를 했다고 윤수의 살인죄가 감형되는 것이 아니듯 이청용을 용서했다고 그의 징계가 사라지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기에 그를 향한 처벌의 공은 이제 징계를 내릴 연맹에게 넘기며 이제 그만 그를 용서하려고 한다. 그리고 모쪼록 이 용서가 지난날과는 다른, 성숙된 이청용을 만들 수 있기를 바란다.

이번 사건이 평생 마음의 짐으로 남았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를 용서해준 사람들을 위해서라도, 또 앞으로 건강하게 발전한 K리그를 위해서라도 다시는 이런 일이 발생해서는 안될테니 말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이번 사건을 보며 가장 안타까운 것 중 하나는 학력과 인성을 문제 삼으며 쏟아지는 인신공격들이었다. 그러한 공격적인 비난과 악플은 이청용에게 가한 또 다른 ‘태클’이 아닐까. 그의 태클은 문제였지만, 그를 향한 우리의 태클은 과연 아무 문제 없던 것일까. 과연 정당화될 수 있는 것일까. 스스로에게 묻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