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남 감독님에게는 신기(神氣)라도 있는 것일까요? 전날 열린 기자회견에서 김정남 감독은 ‘결승전에 활약할 기대주’로 양동현 선수를 꼽았지요. 그 말에 양동현 선수는 통쾌한 왼발슛으로 보답했습니다. 그것도 경기가 시작된지 3분 만에요. 울산의 입장에서는 쉽게 경기를 풀어나갈 수 있게 됐습니다. 그 덕분에 미드필드 지역에서 우세를 보이면서 계속해서 FC서울을 압박했죠.
그런데 이게 웬 운명의 장난입니까. 전반 48분, 최원권 선수는 왼발로 중거리슛을 날렸습니다. 그리고 박동혁 선수는 그 순간 그만 공에 손을 대고 말았지요. 골문을 향해 가던 공이 아니었는데도 말이에요. 결국 그는 핸드볼 파울로 경고를 받았으며 FC서울에게는 페널티킥이 주어졌습니다.
“페널티킥은 항상 자신 있어요. 거의 져 본 적이 없는 것 같은데요”라며 늘 자신하던 김영광 선수였지만 이번에는 어쩔 수 없었나봅니다. 공은 김영광의 움직임보다 빨랐습니다. 결국 1-1 무승부로 전반전이 끝났습니다.
그때 고개 숙인 채 라커룸으로 들어가던 박동혁 선수의 모습이 보였습니다. 자신의 핸드볼 파울로 인해 페널티킥이 주어졌을 때, 그는 제일 먼저 김영광 선수에게 달려가 어깨를 두드리며 말했습니다. “일부로 그런 게 아닌데 이렇게 돼버렸네. 영광아, 잘 할 수 있지? 너만 믿는다.” 어떤 마음으로 그 이야기를 했을지 짐작이 갑니다. 그리고 고개 숙이던 그 순간의 마음까지요. 그렇죠. 쉽게 갈 수 있었던 경기가 어렵게 가게 됐으니 동료들의 얼굴을 어찌 제대로 보겠습니까.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문득 지난 겨울, 박동현 선수가 제게 했던 말이 생각나는군요.
“사실 제가 인터넷으로 뉴스 같은 건 절대 안 봐요. 다른 선수들은 보는데 저는 절대 안 보죠. 댓글 같은 거 보면 상처 받거든요. 예전에 우즈베키스탄하고 경기할 때 실수로 실점한 적이 있어요. 그때 사람들이 제 미니홈피까지 와서 욕하고 그랬는데, 그때 정말 많이 상처받았어요. 그때 정말 힘들었는데. 밥도 안 들어갈 정도였어요. 운동할 때, 밥 먹을 때, 심지어 잠잘 때까지 의욕이 없었어요.”
2006년 6월 3일 독일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우즈베키스탄전. 그날 박동혁 선수는 패스하는 과정에서 실수로 그만 상대 공격수에게 공을 뺏기는 실수를 하고 말았습니다. 결국 그것은 골로 연결됐고 박동혁 선수는 눈물을 흘리며 태극마크를 반납해야만 했습니다. 더 정확히 말하자면 더이상 태극마크를 달 기회가 주어지지 않은 거죠.
“전반전 끝나고 다들 괜찮다고 위로해줬어요. 그 덕분에 마음 편히 먹고 다시 경기장에 나섰고 그래서 골이 터진 것 같아요. 내가 뭔가를 해줘야한다는 생각이 컸거든요.”
그 생각이 크긴 컸나 봅니다. 후반 18분 박동혁 선수는 기적처럼 역전골을 터뜨립니다. 골이 터지지마자 그는 FC서울 서포터즈 앞으로 달려가 ‘쉿!’하며 조용히 하라는 골 세레모니를 선보였습니다. 그게 끝일까요? 네, 아니었습니다. 곧 이어 티샷을 날리는 세레모니까지 선보였죠. 우리가 이기는 모습 보기 싫으면 말해. 골프공처럼 날려보내줄까? 마치 그렇게 말하는 듯한 그의 모습에 저도 모르게 웃음이 나왔습니다.
결국 경기는 2-1 울산현대의 우승으로 끝났습니다. 1998년 아디다스컵 이후 9년 만에 맛보는 컵대회 우승이었죠.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 그날의 모든 취재도 끝났습니다. 그런데 불꺼진 경기장을 나서던 중 한 아저씨께서 제게 다가와 부탁을 하시더군요. 사진기가 없어서 그런데 사진 한 장 찍어줄 수 없냐고 말이에요. 물론 어려운 일 아니었기에 흥쾌히 찍어드리겠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런데 그 아저씨께서 하시는 말씀을 듣고 저는 깜짝 놀라고 말았지요. “내가 박동혁이 애비인데 우리 동혁이 뛰는 거 보려고 군수님도 오셨어요. 단체사진 잘 좀 부탁합니다.” 이럴 수가. 지옥에서 천국으로, 결승골의 사나이 박동혁 선수의 아버님이었습니다. 그래서 더 특별히 신경쓰며 사진을 찍어드렸습니다. ^^
이렇게 해서 컵대회도 드디어 끝났습니다. 다음 경기가 열리는 8월 8일까지 K-리그도 잠시 휴식기에 들어갑니다. 물론 그 와중에도 크고 작은 축구대회가 열릴 예정입니다. U-20 청소년월드컵, 아시안컵, 피스컵, U-17 청소년월드컵 등등이요. 그러나 제 마음은 벌써부터 K-리그가 다시 시작하는 8월 8일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그날까지 모두들 건강하세요. K-리그가 다시 시작하는 8월 8일에 웃으면서 다시 만납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