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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으로 그린 세상

벚꽃과 함께 집으로 가던 4월의 어느 밤

집으로 가던 길, 전화 한통이 왔습니다. 손전화를 들어 확인해 보니 친구였습니다. 요즘 너무 많이 힘들어, 라는 친구의 말과 함께 통화가 시작됐죠.

제 친구는 운동선수입니다. 개인종목이 아닌 단체종목에서 뛰고 있습니다. 단체종목은 팀스포츠이다보니 혼자만 열심히 한다고 다 되는 법은 아니지요. 조직력이 극대화 될 수 있도록 팀에 녹아 내려야합니다. 즉 조화를 이뤄야 한다는 말이죠. 하지만 이것도 ‘기회’가 주어져야지만 가능한 일입니다.


문제는 ‘기회’에 있습니다. 그 ‘기회’라는 것은 결코 쉽게 주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지도자와 궁합이 얼마나 잘 맞느냐, 지도 철학에 맞춰 얼마만큼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느냐 등등에 따라 선수들의 명암은 극에서 극으로 갈립니다.

올 초 친구가 있는 팀에는 새 감독님이 오셨습니다. 그리고 친구는 그날 이후로 팀에서 뛸 기회를 잃고 말았습니다. 새로 부임한 지도자와 스타일이 맞지 않았던 것이죠. 친구는 다시 열심히 해보자, 라고 다짐하며 머리도 잘랐다고 하였습니다.

아깝지 않냐고 묻자 단박에 아니, 라는 대답이 들려옵니다. 그녀는 가끔 운동이 없는 날이면 고무줄로 꽁꽁 묶던 머리를 한번씩 풀곤 했습니다. 그것이 운동선수인 친구가 할 수 있던 유일한 사치였습니다. 그러고 보니 친구는 이십대 중반이 됐건만 아직 제대로 화장하는 법조차 모릅니다. 아니 알려고도 하지 않았다는게 더 맞는 표현일 것 같습니다.

그렇게 그녀의 모든 정신은 늘 운동에만 쏠려있습니다. 그때마다 전 “넌 정말 못 말리는 운동쟁이야. 가끔은 한눈 팔아도 돼.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숨쉬며 살 수 있겠어”라고 말했고요.

그런데 그런 그녀가 너무 힘들어 모든 걸 다 그만두고 싶다고, 내려놓고 싶다고 제게 말합니다. 고민 끝에 저는 힘내, 라는 형식적인 말 대신 “집으로 가는 길인데 벚꽃이 너무 예쁘네. 너에게도 보여주고 싶구나”라는 말로 제 마음을 전했습니다. 제가 만난 아름다운 풍경을 함께 보고 싶은, 또 언제고라도 보여주고 싶은 진심 때문에 말이지요.



벚꽃이 나리는 4월입니다. 그 꽃을, 내 오랜 벗과 함께 보고 싶습니다. 집으로 가는 길, 그렇게 매일 밤 저를 반겨주는 벚꽃을 친구에게 보여주고 싶습니다. 그 평온한 일상을 함께 공유하며 운동과 현실, 이 모든 것들에 지쳐버린 친구의 마음을 말없이 위로해주고 싶습니다.

벚꽃이 ‘벗’꽃이 되었으면 하는 바람을 담아 친구와 통화하던 순간을 찍어 봤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