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강원FC와 전남드래곤즈가 전지훈련 중이던 중국 쿤밍을 취재 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그날은 전남 선수들이 쉬는 날이라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를 만나기 위해 전남 선수들이 숙소로 쓰고 있던 호텔에 갔죠. 호텔 야외 벤치에 앉아 한국서 공수해온 커피믹스를 타서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시간이 됐습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나오는데 외출 나갔던 전남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라고요.

여러명의 선수 중 제가 아는 선수는 왼쪽 풀백 젊은 피 윤석영 뿐 죄다 모르는 얼굴이라서 후배에게 전남 신인들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후배는 저 키 큰 선수 모르냐며 슈퍼신인 지동원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호들갑을 떨더군요. 후배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지금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곧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거야. 후배는 제게 그렇게 말했죠.


지동원을 다시 만난 건 3월 28일 강원 대 전남 경기에서였습니다. 당시 지동원은 전반 1분만에 골을 기록했는데요, 그때 뭐 저런 신인이 다 있나 했습니다. 3-1로 앞서고 있던 후반 26분에는 도움도 기록했습니다. 아크 오른쪽에서 올려준 볼을 인디오가 잡아 팀 2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3-2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아쉽게도 5-2로 패하면서 K-리그 데뷔골과 데뷔 도움 기록은 빛이 바랬죠. 그렇지만 19살 소년이, K-리그 5경기만에 순도높은 기록을 세운 건 정말 주목할만 했습니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건 6월 2일 컵대회에서였습니다. 이번에는 광양에서 열린 전남 대 강원의 컵대회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지동원은 또 골을 기록했지요. 후반 8분 정윤성의 크로스를 받아 팀 3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2달 만에 만난 지동원은 어느새 K-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187cm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고 기본기도 탄탄했습니다. 보통의 장신 선수들은 보폭은 넓지만 스피드는 느리고, 발란스가 맞지 않아 키핑력이 부족하고 유연하지 못하여 수비수들의 부딪힐 때마다 쉽게 넘어지곤 하는데요, 지동원은 그렇지 않더군요.

몸싸움에도 능했고, 볼을 받고 돌아서는 움직임도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보는 내내 K-리그에 물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전남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경남과의 FA컵 16강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 날개까지 달았으니, 올 시즌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인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쯤하면 신인왕도 탈 수 있겠지 싶습니다.

여기에 신인왕 도전장을 내민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조광래 유치원의 우등생 윤빛가람입니다. 올 초 K-리그의 이슈메이커는 경남FC였습니다. 탄탄한 수비 뒤에 정확한 패스웤을 바탕으로 경남은 역습에 능했고 무엇보다 루시오라는 결정력 높은 외국인 공격수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리그 1위까지 오르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었죠. 조광래 감독이 A대표팀에 승선한 이후 파괴력이 조금은 잠잠해진 듯 하지만 여전히 상위권(리그 3위)에 랭크돼있습니다.

지난해 K-리그 드래프트 현장에서 조광래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꽤 많이 받아야만 했습니다. 2순위에서 윤빛가람을 지명했거든요. 잊혀진 천재를 뽑은 이유에 대해 기자들은 굉장히 궁금해했죠. 당시 조광래 감독은 “빠른 패스워크 위주로 전개되는 경남의 플레이스타일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선수”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습니다.


사실 윤빛가람은 2007년 U-17월드컵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대표팀이 소집할 때마다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윤빛가람에게만 쏠렸죠. 비가 내려 실내에서 진행됐던 포토데이 당일날, K-리그는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 프리미어리그를 자주 보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라는 말은 쏙 빼고 “K-리그보다는 프리미어리그를 즐겨봐”라고 기사를 전송했지 뭡니까. 덕분에 ‘악플만 백만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등 대표적인 ‘밉상’선수로 낙인 찍히고 말았죠.

U-17월드컵 조별리그 토고전에서 역전골을 터뜨렸지만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었고 이후 블랙번으로 진출하겠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 된 듯합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유럽 중소클럽들을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서 조광래 감독과의 만남은 그에게 제2의 축구인생을 열어준 ‘전환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워크 아래 이뤄집니다.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수비축구입니다. 수비를 탄탄히 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흐름대로 경기를 끌어가며 공격을 감행합니다. 무엇보다 수비안정이 중요하고 미드필더, 공격수에게도 수비가담을 요구하죠.

조광래 감독 밑에서 뛰는 동안 윤빛가람은 ‘예쁘게 공을 차던 아이’에서 정확한 패스로 게임을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성장 중입니다. 19경기에서 벌써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골과 도움 모두 고르게 관여하며 어엿하게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재밌는 건 지동원도 19경기 출장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윤빛가람과 똑같은 공격포인트(9)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를 비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죠. 특히나 지동원 같은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경우 더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 없이 강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살림꾼 미드필더인 윤빛가람의 경우 조광래 감독의 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표팀에서만큼은 지동원보다 더 밝게 빛날지도 모릅니다.

K-리그에서 시작된 신인왕 경쟁이 국가대표팀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앞으로가 상당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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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어머니, 아버지께서 많이 뿌듯해하셨어요. 주위에서 아버님한테 축하메시지 많이 가니까 약주 많이 하셨죠. 사실 국가대표에 발탁될 거라고는 예상하지 못했어요. 그렇지만 부딪혀보면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있었고, 그 기회가 오면 잡으려고 했죠. 나이는 중요하지 않아요. 언제든지 할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러기 위해선 준비를 잘하고 있자, 그래서 꼭 기회를 잡자라고 생각하며 운동했죠. 지는 걸 싫어하는 악바리 근성이 있어요. 제가.”



2년 전, 허정무 감독 밑에서 또 다른 신데렐라 스토리를 썼던 곽태휘 선수. 제가 그를 만났을 때 그는 6개월간의 재활을 마치고 복귀한지 얼마 안됐을 때였습니다. 2007년 11월25일 포항과의 FA컵 결승 1차전에서 곽태휘 선수는 극적인 역전골을 터뜨리며 전남의 대회 2연패의 초석을 마련했습니다.

이듬해 1월에는 ‘생애 첫 국가대표 발탁’이라는 경사까지 누렸습니다. 한데 금상첨화라고 A매치 데뷔전과 데뷔골 기록이라는 겹경사도 맞았으니 웃음이 가실 길 없었죠. 특히 2010월드컵 3차예선 투르크메니스탄전에서 터진 A매치 데뷔골은 550분 간 이어졌던 대표팀 골가뭄을 해갈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었습니다.

하지만, 호사다마라고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고 말았습니다. 3월8일 포항과의 개막전에서 왼쪽발목 인대파열로 교체아웃 된 이후 근 6개월동안 재활에 매진해야만했습니다. 그랬던 그가, 또다시 부상 때문에, 이제는 다 올라갔다고 생각한 월드컵이라는 고지에서 다시 내려와야만 합니다. 부상은 그렇게 또다시 그를 붙잡았군요.

“축구를 하면서 부상이 많았어요. 고등학교 때는 눈을 다쳤고 대학교 때는 어깨도 다치고 프로와서는 발목에 무릎까지... 한번 다치면 부상이 심해 오래 쉬어야만 했어요. 제가 생각해도 너무 많이 다치면서 축구를 했던 거 같아요.”

아시겠지만 그는 한쪽 눈이 보이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이제는 익숙해졌다며 담담히 말했던 곽태휘 선수였습니다.

“눈은 고등학교 3학년 올라갈 적에 다쳤어요. 처음엔 다쳤을 땐 어머니가 많이 슬퍼하셨어요. 공에 맞았는데 그 순간에 공이 돌면서 망막이 찢어지고 말았어요. 수술을 했지만 시력은 돌아오지 않았죠. 하지만 요즘은 일부러 그런 얘기를 안하려고 하는데요, 운동하는 선수들은 다들 부상 때문에 힘들어하면서 운동해요. 저만 특별한 게 아니니까요. 처음엔 많이 불편했는데 이제는 많이 적응했어요. 아직까지는 조명을 본다거나 햇볕이 비출 때는 거리가 안 맞고 글씨가 잘 안 보이는데, 한쪽으로만 생활하다보니 시력이 점점 나뻐지고 있어요. 나이를 좀 먹으면 그나마 보이던 눈이 더 나빠질까봐... 그게 걱정이에요. 눈이 점점 나빠지고 있는데,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한번씩 그런 생각할 때가 있어요. 그럴 때 생각만 이레 하는데 답이 없으니까 막막하더라고요.”

그러고 보면 그는 참 오뚝이 같은 인생을 산 듯했습니다. 17살 늦은 나이에 축구를 시작한 것도 그랬고, 한쪽 눈의 시력을 잃었지만, 보란 듯이 일어서서 프로에 입단했고 결국엔 태극마크까지 달았으니까요.

“운동은 어릴 때부터 많이 좋아했어요. 왜관에서 인문계 고등학교를 다니다가 1학년 여름방학 때 대구공고에 가서 테스트를 받았어요. 그때 감독님께서 졸업할 때까지 한게임도 못 뛸 수도 있다. 지금와서 뭘하겠느냐, 라고 하셨던게 생각나요. 그래서 축구를 할 수 있게만 해달라고, 그 다음은 제가 알아서하겠다고 했는데, 알겠다며 받아주시더라고요. 처음에 대구공고 축구부에 들어가서 다른 친구들이 훈련할 때 저는 뒤에서 기본기를 연습하곤 했어요. 늦게 들어왔으니까 당연히 그래야하니까 스트레스는 없었어요. 제가 하고 싶어서 했기 때문에 늘어가는 과정을 즐기면서 했어요. 힘들 때도 있었지만 제가 좋아서 시작한 축구니까 즐기면서 하려고 했죠. 처음엔 가족들 반대도 심했지만 제가 고집이 있어요. 한다고 하니까 결국 다들 허락해주셨죠. 그리고 나서 경기에는 1학년 말부터 투입이 됐는데, 생각보다 기회가 빨리 왔죠.”

. 17살 적 처음 축구부 문을 두드렸을 때, 그 나이에 축구를 시작하기엔 너무 늦었다는 말에좌절했지만, 혹은 망막 부상 이후 “축구선수로 대성하기는 힘들 것”이라는 세간의 목소리에 흔들렸다면, K리그와 대표팀을 누비는 곽태휘 선수의 모습을 우리는 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 제가 만난 곽태휘 선수는 참으로 단단했고, 역경에 굴하지 않던 ‘긍정’으로 똘똘 뭉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저도 솔직히 인간인데 그런 거 한번씩 생각하죠. 안 다쳤으면 어땠을까 생각도 해봤거든요 지금 안 다쳤으면 어느 정도 이름이 알려지고 어느 정도 위치까지 올라가있을까, 하고요, 하지만 생각만 하면 가슴만 아프죠. 이미 다친 걸 돌릴 수는 없으니까요. 너무 급하게 올라가서 그런가 돌아보라고 그랬나 하는 생각도 많이 들어요. 지금부터 다시 또 올라가면 되요.”

하늘은 내게 월드컵을 허락하지 않았지만, 내게는 또 다른 길이 있을 것이라고 결코 세상에 지지 않겠다고, 지금도 곽태휘 선수는 생각하고 있겠지요.

“계속 발전하고 싶어요. 점점 더 발전해서 말했듯이 기회가 되면 다른데 가서 부딪혀보고 싶어요. 여기서 멈추는게 아니라 계속 업그레이드 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사람은 자기 마음먹기에 달린 것 같아요 나쁜 일이 있어도 나중에 잘될 거니까 신경쓰지 말자, 하며 좋은 쪽으로만 생각해요. 시련이 와도 역경이 와도 다시 할 수 있다고 마음 먹고 준비하면 일어서다 보면 좋을 결과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마인드도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2년 전 제가 말했던 것처럼 그는 계속 도전하고, 그 속에서 발전하는 선수가 되고 싶다는 꿈을 여전히 꾸고 있을테니까요.

그리고 월드컵에 나서지 못한다고 하여도 여전히, 곽태휘 당신은 우리들의 국가대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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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4년 6월 광양에서. 전국대학축구선수 대회 중 박주영의 모습>




 누군가 내게 물었다.


 "도대체 축구의 매력이 뭐야? 도대체 왜 축구를 좋아하는건데?"


 도대체, 
 왜...?


 나의 대답은 의외로 간단했다.


 치열함.

 그렇다. 난 그저 잔디 위의 그 치열함이 좋다.


얼마 전 조원희 선수를 만났는데 그가 그러더라. "어떻게 하면 대학에 갈 수 있는거죠?" 그의 질문에 내가 답했다. "어떻게 하면 국가대표가 될 수 있는거죠?"


2004년 11월 쯤으로 기억하낟. 추계대학연맹전 취재 때문에 남해에 내려갔다. 그날 나비연습구장은 각 대학 축구선수들로 가득 차 있었다. 한 100여명 쯤 있었으려나. 남해의 햇볕을 받으며, 따뜻해서 참 좋다, 라고 생각하며 웃고 있을 때, 고대 축구부 골키퍼 후배는 내게 이렇게 말했다.


"누나, 축구선수들 참 많지? 안 보이는 곳에서는 더 많은 선수들이 있을거야. 그 많은 선수들 속에서 우리는 살아남아야 해."


 예전에 공부가 가장 쉬웠어요, 라는 책이 베스트셀러가 된 적이 있다. 누군가는 어떻게 공부가 가장 쉬웠냐며 반문할지 모르겠지만, 나 역시 그 책 제목처럼 공부가 가장 쉬었다고 생각한다.


 한 사람의 선수가 모두에게 주목받는 국가대표가 되는 것은, 엄마 찾아 삼만리의 주인공, 마르코가 떠나는 그 험난 여정과도 비슷하다. 부모들은 없는 살림에 아들 뒷바라지를 해야한다. "축구화 사달라", "합숙비 내야한다", 말할 때마다 더 많이 해주지 못함에 당신들의 가슴은 찢어진다.


 지방을 돌아다니며 시합을 할 때마다 어머니들은 경기장 가까운 모텔을 전전하며 아들이 뛰는 경기를 보러간다. 승부차기 순간에 관중들은 '저 선수가 과연 넣을 수 있을까?'가 궁금할 뿐이지만, 경기를 보는 부모님들은 숨도 못 쉰 채 기도만 할 뿐이다. 그 순간 침이 마르다 못해 피까지 마르는 부모 마음을 아는지.


 선수들의 합숙소 생활은 또 어떤가. 선배가 야단칠 때 말대꾸란 존재할 수 없다. 토라도 다는 날이면 방 한 구석에 머리를 박은 채 몇 시간이고 있어야한다. 매일 해도 끝이 없는 청소와 빨래. 호텔 메이드라도 된 냥 선배의 잠자리까지 챙기고 이불까지 깔아줘야한다. 게다가 선배가 있는 방에서 마음 놓고 통화하기도 힘들다. 숙소 복도 끝에 숨어 사랑하는 그녀와 통화하는 순간의 씁쓸함이란.


 그렇다면 경기장에서는? 한 번의 실수가 축구 인생을 마치는 날까지 따라다니는 경우는 비일비재하다. 자신의 실수 하나 때문에 게임이라도 지는 날이면, 경기장을 나서 버스에 앉는 순간까지도 차마 고개를 들 수 없다. 눈물이 턱을 타고 땀과 함께 뚝뚝 떨어진다. 모든 영광은 결코 쉽게 얻어지지 않으며, 그날을 위해 지금도 선수들은 땀 흘리고 있다.


 경기장에서 카메라를 들고 서 있을 때면 그들의 거친 숨소리가 들려온다. 가끔은 욕도 하고, 태클에 넘어져 구를 때도 있다. 공 하나를 향해 뛰는 그들을 바라보고 있을 때면, 잊었던 내 꿈을 떠올려본다. 자주 포기하고 주저 앉곤하는 나에 비해, 그들은 숨이 턱까지 차올라도, 심장이 터질듯한 고통 속에서도 그 공 하나만을 향해 뛴다. 꼭 비장한 각오가 있어야 뛸 수 있는 것만은 아니다. 

 저 작은 공이 그들이 품는 꿈. 그리고 키워내는 꿈. 그들의 모습을 보며 나는 '치열함' 이라는 단어의 뜻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다시 뛸 수 있는 힘을 얻는다.

 가끔 축구선수들을 인터뷰할 때, communication gap 때문에 혼자 상처받고 마음 상할 때가 있다. 하지만 그들을 이해할 수 밖에 없다. 아니, 이해해야만한다. 그들 역시 현 시스템의 피해자가 아니던가.


 수업도 빠진 채 공을 차고 시합에 나가야하는 선수들. 이렇게 어린시절부터 그들은 축구만 하며, 축구하는 사람들만 만난다. 이런 그들에게 우리 같은 보통사람들의 사회성을 기대하는 것은 힘들지 않을까.


 공부를 계속하고 싶다. 그래서 내 아이는 지금보다 나은 환경에서 축구를 할 수 있게 해주고 싶다. 내 아이를 축구선수로 키울거냐고? 그건 모르는 일이니, 앞으로 태어날 우리 모두의 아이들이라고 해두자.


 그러니 꼭 열심히 공부하리라. 상업주의에 물든 월드컵을 위해서라도. 공인구를 만들기 위해 밥도 못 먹은 채, 어두운 공장에서 일하고 있을 제3세계의 어린이들을 위해서라도. 그리고 우리나라 축구 꿈나무들을 위해서라도.


 축구를 통해 아름다운 세상을 만드는 일은 분명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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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북한과의 마지막 경기를 남겨둔 시점에서 한국대표팀은 일찌감치 최종예선 진출을 확정지으며 3차예선을 통과했다. 물론 최종티켓을 따낸 공은 인정하나 3차예선에서 보여준 모습들이 다소 실망스러웠던 것도 사실이다. 이에 전문가들에게 쓴소리도 좋다며 전반적인 평가를 부탁했다. 그러나 그들은 모두 이제 막 장도에 오른 대표팀에 좀 더 시간이 필요하다며 성급한 판단을 경계했다.


김호 <대전시티즌 감독>
일단 월드컵을 향한 고개 하나를 통과했다는 사실에 축하 인사말을 건넨다. 3차예선에서 발견된 문제점은 누구보다 허정무 감독이 잘 알 것이다. 그동안 노출된 문제점들을 잘 분석해 최종예선에 임한다면 분명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물론 난관도 있을 것이다. 전술에 맞는 선수들을 선발해 배치할텐데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가 발생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전적으로 각 전술에 적합한 선수를 배치하는 ‘눈’은 곧 감독이 가진 ‘능력’이다.

관련해 첨언한다면 공격수들은 다양한 루트를 통해 득점할 수 있는 방법을 연구해야만 한다. 쉽지만은 않다. 금세 만들어질 수 있는 부분이 아니기 때문이다. 따라서 무게감 있는 중앙공격수도 필요하다고 본다. 수비 쪽에선 ‘리더’가 가장 필요하다. 수비라인을 조율하고 이끌 수 있는 사람을 발굴해야 한다. 현재의 자원 중에 가장 적합한 사람을 선택하여 수비조직을 안정되게 이끌 수 있도록 그 역할을 맡겨야한다.

앞으로 최종예선을 통과하기 위해선 선수들의 부단한 노력이 요구된다. 이는 기본이다. 따라서 지금보다 더 많이 땀을 쏟으며 감독이 요구하는 전술에 대한 이해력을 키워야만 한다. 마지막으로 해외파와 국내파 상관없이 대표팀에 뽑힌 선수들은 한 배를 탔다는 생각으로 지도자와 합심해야할 것이다. 가장 중요한 것은 ‘조화’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이용수 <KBS 해설위원>
공격수들의 골 결정력 부족을 먼저 지적하고 싶다. 공격수들이 골을 넣지 못했다는 사실은 문제가 있다. 최종예선에서 만날 상대들은 3차예선보다 어렵고 강하다. 어떻게 하면 득점찬스를 골로 결정지을 수 있는지에 대한 고민과 해결책이 필요하다. 수비 조직력에서도 문제점이 많았다. 상대 역습 시 중앙수비수 뒷공간으로 연결되는 패스나 공격에 허점을 노출했다는 사실은 많은 걱정을 낳게 한다. 중앙수비수들에게 중요한 것 중 하나가 바로 ‘커뮤니케이션’이다. 경기장에서 가능한 많은 대화를 나누며 라인을 조율해야하는데 현 대표팀에서는 그런 리더 역할을 하는 선수가 없는 듯하다.

해외파들의 경기력 난조에 대해서도 많은 이야기들이 오갔지만 최종예선까지는 아직 시간이 있기 때문에 일단 그 부분은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싶다. 한편 가능성을 엿볼 수 있던 선수들의 등장은 반가웠다. 데뷔전에서 이청용이 보여준 움직임이나 패스연결 등은 기존 선수들이 갖고 있지 못한 부분들이었다. 대표팀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것이라 본다. 또 수비형MF로 출전한 조원희는 그동안 단순히 수비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했다. 그러나 3차예선 동안 공격상황에서 보여준 패스나 움직임들이 상당히 인상적이었고 또 괜찮았다. 김치우도 칭찬해주고 싶다. 3차예선에서는 투르크메스탄과의 2차전 때만 출장했지만 스피드, 크로스, 오버래핑 등 모두 좋았다.

김정남 <울산현대 감독>
2010월드컵에 출전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는 점에서 최종예선 진출은 축하할 일이다. 월드컵 진출을 향한 기대가 높기 때문에 다들 부담이 많을 것이다. 다행히 경기를 거듭할수록 나아지고 있는 모습이다. 희망적이다. 물론 일부 팬들은 경기 중 노출된 몇몇 단점들을 지적하며 성을 낼지도 모른다. 그러나 한때 대표팀을 맡았던 경험자로서 말한다면 그럴 때마다 저마다 목소리를 높이다 보면 감독은 혼란에 빠지기 쉽다. 동시에 선수들이 겪는 압박감도 상당하다.

월드컵 진출을 위한 걸음은 이제 막 시작되지 않았나. 아직 가야할 길이 멀기에 그들이 좀 더 힘낼 수 있도록 격려하고 칭찬하는 일이 수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나라가 아시아에서 월드컵 참가 경험이 가장 많다고들 하지만 최근 아시아 국가들의 수준이 전체적으로 상향평준화 되고 있는 실정이라 월드컵 최종티켓을 따는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을 것이다. 긍정적인 점은 선수들에게서 자신감이 느껴진다는 사실이다. 이 자신감이 앞으로 쌓을 조직력, 포지션별 경쟁을 통한 시너지 효과 등과 잘 버무려진다면 충분히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축구에서는 늘 변수가 생기기 마련이고 그 때문에 순탄치 않을 때도 많겠지만 그런 가운데서도 포기하지 않고 노력한다면 마지막에는 꼭 좋은 성적이 이에 보답할 것이다.

신문선 <한국축구연구소 책임연구원>
최종예선을 앞두고 풀어야할 숙제가 많다. 수비 문제는 여전히 개선되지 않은 채 되풀이 됐고 전방 공격수들의 움직임은 유기적으로 연결되지 못할 뿐 아니라 골 결정력에서도 문제를 보였다. 미드필드 지역 역시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간 한국이 상대를 완전히 제압하지 못하는 흐름으로 가게 된 가장 큰 원인은 이 3선의 밸런스가 완벽하지 않았다는 점에 있었다.

이청용에 관한 부분도 짚고 넘어가고 싶다. 이청용이 요르단과의 1차전에서 부상당하기 전까지 보여준 모습이 인상깊었던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단 1경기만으로 선수의 능력을 논한다는 것은 어려고 위험한 일이다. 그 때문에 선수들 사이에서 위화감이 조성될까 걱정스럽다. 그가 가진 가능성과 능력은 대표팀에 선발됨으로서 이미 평가받은 것 아닌가. 선수의 발전을 위해서라도 좀 더 지켜볼 필요가 있다.

덧붙여 우리는 1경기에 일희일비하는 경향이 큰 것 같다. 해외파 선수들이 리그에서 뛰지 못한 탓에 컨디션 난조가 있었지만 몇 경기만으로 매도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 그 선수들이 그동안 국제대회에서 보여준 모습들과 기여도를 생각해봐라. 성급한 평가는 약이 아니라 독이 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현 대표팀은 과거에 비해 훈련일수가 줄어들어 조직력을 쌓는데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허정무 감독 이하 선수들 역시 이러한 변화 적응, 노력 중이므로 조금 더 지켜보자.

장외룡 <인천Utd. 감독>
이제 3차예선을 마친 상황이라 구체적으로 평가하기 어렵다. 판단을 내리기엔 아직 시기상조라고 본다. 그러나 대표팀 내에서 세대교체가 진행됐다는 부분은 상당히 바람직하다고 생각한다. 세계적인 추세가 그렇지 않나. 유수 클럽들을 살펴보면 20대 초반 선수들이 팀 스쿼드의 중요한 자리를 꿰차고 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유로2008만 봐도 그렇지 않나. 지난 대회에 나섰던 선수들을 고수한 팀들은 새 얼굴과 함께 등장한 팀들에게 맥없이 무너지고 있다.

사실 우리나라도 2002월드컵 이후 제대로 된 세대교체를 이루지 못했다. 그 때문에 허정무 감독이 장고에 장고를 거듭한 듯하다. 특히 요르단전에서 이청용을 기용한 사실은 상당히 좋았다고 본다. 어린 선수들에게는 박지성 이영표 같은 해외파 선수들과 함께 훈련을 하는 것만으로도 좋은 경험이다. 게다 이청용은 A매치까지 소화했으니 상당한 자신감을 얻었을 것이라 예상된다.

그러나 최종예선에서는 젊은 선수들에게 이 같은 기회가 많이 생기기는 힘들 것이라고 본다. 실상 최종예선에서 여유 있는 행보를 보일 나라가 얼마나 있겠는가. 최종예선은 월드컵에 진출하기 위해 사활을 거는 승부의 장이지 영건들이 경험을 쌓는 장은 아니다. 다행히 우리나라는 최종예선에 들어서기 전, 좋은 젊은 선수들을 발굴, 육성했다. 따라서 앞으로 남은 과제는 신구조합을 통한 조직력 강화뿐이라고 본다.

김대길 <KBS N 해설위원>
전방에 위치한 3명의 공격수 간의 유기적인 움직임이 부족했다. 골 결정력의 부재 또한 뼈아팠다. 미드필드 지역에서는 전방을 향해 보내는 패스의 날카로움이 떨어졌고 2선에서 침투하는 능력 역시 부족했다. 수비라인 쪽에서는 중앙수비들이 뒷공간을 자주 노출시키며 불안했고 풀백들은 공격의 시발점으로서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했다.

요르단과의 1차전에서 김용대가 불안하긴 했지만 결과적으로 2실점을 골키퍼만의 책임으로 보기는 어렵다. 중앙에서 후방으로, 계속해서 상대에게 공을 내주며 밀리다 실점으로 이어졌는데 실상 골키퍼의 결정적인 실수가 아니었으므로 모든 책임을 전가할 수는 없다. 최종예선 진출이라는 목표는 달성했지만 전체적으로 경기내용은 만족스럽지 못했다.

그래도 희망을 찾는다면 이청용을 거론하고 싶다. 부상 때문에 원정 경기에는 나서지 못했지만 첫 경기에서 보여준 가능성은 성공적이었다고 칭찬하고 싶다. 득점에는 성공하지 못했지만 그 과정까지 가는데 보여준 날카로움이 꽤 인상적이었다. 아울러 투르크메니스탄과의 2차전에서 김두현의 플레이가 살아났다는 점, 김치우 최효진의 투입으로 측면 공격에 대한 해법을 찾았다는 점도 희망적이다. 마지막으로 김두현의 2번째 득점 장면을 칭찬해주고 싶다. 최근 대표팀이 세트피스 상황에서 보여준 모습은 날카롭지 못했고 기대 이하였던 것도 사실이다. 그런 가운데 김두현의 득점이 바로 세트피스 상황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고무적인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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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선배, 저 대학원 또 떨어졌어요.”

오랜만에 후배에게서 걸려온 전화. 수화기 너머 속 후배는 한숨을 푹 쉬며 말했다. 또 떨어졌다고. 작년만 해도 “괜찮아요. 내년이 있잖아요”라며 웃던 후배였는데. 그런데 후배는 “그거 알아요?”라며 이내 말을 이었다.

“주영이는 붙었더라고요.”



주영이? 그 말에 “설마, 축구선수 박주영?”하며 되묻자 “네, 박주영이요”라고 대답한다. 누군가에서 ‘주영이’라고 친근하게 듣기는 오랜만이라 한 번에 알아듣지 못했다. 후배는 여전히 그를 ‘박주영’이 아닌 ‘주영이’라고 부르고 있었다. 비록 축구부에서 1년이라는 짧은 시간동안만 함께 생활했지만 그래도 후배는 후배니까, 그에게 ‘주영이’는 여전히 ‘주영이’였다.

월요일 오후, 정기 브리핑을 듣고자 오랜만에 협회 건물을 방문했다. 그러다 부장님이 라면을 쏜다기에 스포츠조선 선배와 라면을 먹던 중 자연스레 학교 이야기가 나왔다. 우연의 일치였는지 우리 셋 모두 같은 대학 출신이었기 때문이다. 대학시절 이야기를 하다 보니 자연스레 박주영 이야기까지 나왔다. 스포츠조선 선배의 이야기-박주영이 최근 언론 대하는 태도가 달려졌다고, 요즘은 기자들 앞에서 자기 생각도 참 잘 말하는 것 같다는-를 듣던 중 박주영이 대학원에 합격했다는 이야기가 생각나 화제에 올렸다. 그런데 당시엔 특별한 뉴스거리라고 생각치 않던 그 이야기가 바로 다음날 뉴스로 등장하고, 다른 언론사에서 기사를 받아쓰는 것을 보며 신기했고 놀라웠고 또 무섭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글을 쓰는 지금도 ‘왜 박주영은 하필 지금 이 시점에 대학원에 진학하는 것일까?’라는 의문을 지울 수 없다. 물론 학문을 향한 박주영의 욕심을 잘 알지만서도 말이다.

FC서울에 입단한 이후에도 학기 초면 교수님을 찾아가 수업에 자주 들어가지 못하는 상황을 알리며 양해를 구한 것으로 모자라 훈련이 없는 날이면 수업을 듣고자 꼬박꼬박 학교를 찾던 박주영이다. 이는 분명 기존 축구선수들과 궤를 달리했다. 사실 대부분 선수들은 학교에서 알아서 학점관리를 해주는 상황을 이용해 훈련이 없는 날이면 수업을 듣는 대신 휴식이나 개인시간으로 자신의 빈 시간을 활용하곤 한다. 애석하게도 그것이 현실이었다. 그런 점에서 훈련 외 시간을 쪼개 수업을 듣던 박주영의 모습은 분명 귀감이 될 만했다. 뿐만 아니라 대학 1학년 시절부터 개인 영어교사와 회화 공부에 몰두했던 것도, 이미 알 만한 사람은 아는 일화였다. 축구선수로서의 인생은 짧지만 축구지도자로서의 인생은 길기에, 그는 은퇴 후 다가올 삶을 대비하고자 이렇게 일찍부터 ‘배움’에 많은 노력을 쏟고 있었다.

그러나 진정 그가 ‘학문’에 큰 뜻을 품었다면 지금 대학원에 입학해서는 안됐다. 알다시피 대학원은 학부와 수업 수준과 질에서부터 차원을 달리한다. 수업에 한번 빠지는 것은 그만큼 한 계단 뒤쳐지는 것을 뜻한다. 대학시절처럼 친구의 노트를 복사하는 것만으로 뒤쳐진 진도를 따라잡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면 오산이다. 더욱이 박주영은 국가대표팀과 소속팀을 오가며 경기를 치르고 훈련에 매진할 수밖에 없을 터인데, 그런 그가 과연 꾸준히 대학원 수업에 참여할 수 있을까? 기실 학부 과정도 ‘나름’ 열심히 이수했다고 하지만 실지로는 ‘제대로’ 마치지 못한 박주영이다. 교육대학원 수업이 일주일에 두세 번, 그것도 야간에 있다 하더라도 현 시점에서 박주영에게는 무리라고 본다. 그리고 수업을 빠진 후에 오는 공백을 그는 과연 어떻게 메울 수 있을까? 외국 대학원처럼 ‘튜터제’를 운영하지 않는 학교인데, 뒤쳐진 진도를 어떻게 따라잡을 수 있을까. 그가 두 가지 삶을 능히 병행할 수 있는 ‘슈퍼맨’이라면 또 모르겠지만.

진정 배움에 열망이 있었다면, 선수생활을 은퇴한 이후에나 석사과정을 밟았어야했다. 그때야말로 자신의 선수시절 경험을 실제 수업과 논문에 응용하며  수업에 참여하고 공부할 수 있었을 테니까. 그것이 바른 수순이었다. 지금은 그저 ‘군 입대를 피하고자 대학원에 입학한’ 선수의 모양새만 갖출 뿐이다. 그래서 아쉽다. 그것도 무척이나.

서두에 언급한 후배가 박주영 때문에 떨어진 것은 아니지만 누군가 1명은 박주영 때문에 떨어졌음이 분명하다. 그가 지원하지 않았다면 그 합격증은 다른 사람의 몫이 됐을테니까. 이름도 모르는 ‘그’는, 지금 이 순간 좋은 지도자가, 혹은 체육 선생님이 되기 위해 원서를 냈다가 눈물을 흘리며 내년을 기약하고 있을지 모른다. 그 때문에 1년이 늦어졌고, 어쩌면 1년을 그냥 통째로 날려 보낼 수밖에 없는 사람이 있을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그러니 바란다. 문 앞에서 바로 문이 닫히는 모습을 봐야만 했던, 그로 인해 좌절의 쓴잔을 들이킬 수밖에 없었던 탈락생들을 생각해서라도 부디 학업에 정진하는 학생 박주영이기를. 또 그래야만 대학원에 진학한 의미에 진정 부합할 수 있으니, 부디 똑부러진 학생 박주영을 볼 수 있기를 희망한다. 진심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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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10월드컵 3차예선 마지막 경기였던 북한전은 0-0 무승부로 끝났습니다. 한국과 북한은 나란히 조 1,2위를 기록하며 최종예선에 동반진출하게 됐죠. 경기가 끝난 후 믹스트존에서 북한 선수들을 기다리는데, 솔직히 긴장도 되고 또 기대도 컸습니다. 저로서는 태어나서 처음으로 만나게 된 북한 선수들이었으니까요.



첫 테이프는 정대세 선수가 끊었습니다. 정대세 선수는 역시나 소문대로 한국 취재진들이 던진 질문에 성심성의껏 대답했죠. “플레이가 단조롭지 않나”는 질문에 “단조롭다”는 말의 뜻을 몰라 갸우뚱 거리기도 했고 “생명 걸고 시합하려고 했는데”라는 2% 어색한 한국어로 모두를 웃게 만들기도 했습니다. 또 “한국 텔레비전에 많이 나오고 싶다”는 엉뚱한 말에 이번에는 취재진이 갸우뚱 거리며 되묻자 “한국은 같은 민족, 내 민족이니까 내 존재를 알리고 싶다”고 이유를 말해 모두를 숙연하게 만들기도 했죠.



정대세 선수가 지나간 뒤 북한 선수들이 우르르 나왔는데, 역시나 그들은 취재진들을 향해 미소만 살짝 짓더군요. 대답 대신 고개만 끄덕끄덕. 다음으로 북한의 실질적 키플레이어라 할 수 있는 홍영조 선수(정대세 선수의 말에 따르면 엘리트 코스를 밟은, 북한 내에서도 기대 큰 유망주라고 합니다)가 나타났습니다. 몰려드는 취재진을 보고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지 “남과 북 모두 월드컵에 진출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말을 남긴 채 버스에 올라탔죠.

그리고 마지막으로 나타난 선수는 바로 안영학 선수. 안영학 선수 역시 수원삼성에 뛰고 있는 터라 취재진들의 질문을 피하지 않았죠. 그런데 너무 늦게 나타난 바람에 다른 모든 선수들이 버스에 올라와있었고 북한 쪽 관계자 분께서 “안 동무! 얼른 오시오!”하는 바람에 결국 취재진들에게 작별을 고해야했답니다. 동영상 마지막 부분에 “안 동무!”라고 애타게 부르는 북한 분의 목소리가 담겨있습니다. 실제로 “동무”라는 말을 듣기는 처음이라 어색한 웃음을 짓던 기자들이 몇몇 있었죠.


제 눈앞에 나타났다 사라지는 북한 선수들을 바라보며 ‘분단’이라는 특수성 때문에 그들과 제대로 된 이야기 하나 나누지 못했음이 못내 아쉬웠습니다. 스포츠에서만큼은 이념의 장벽을 조금 낮출 수는 없는 것일까요. 여러모로 많은 생각을 낳게 했던 경기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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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정무 감독이 돌아왔습니다. 다시 돌아오기까지 7년이라는 시간이 흘렀네요. 2000년 이후 외국인 감독들의 독무대였던 대표팀 감독 자리가 7년 만에 국내파에게로 다시 돌아왔네요.

허정무 감독이 대표팀 수장으로 가기 전 가나안 농군학교에서 만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전남 드래곤즈 선수단과 함께 2박 3일동안 의식개혁 및 인성에 관한 교육을 받았거든요.

그곳에서 가장 재밌던 풍경은 모든 사람들이 새벽 5시에 일어나 저녁 10시까지 시간표에 맞춰 생활하는 것이었습니다. 경기장에서 멋진 모습만 보여줬던 선수들이 학생처럼 지내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그저 웃음만 나오더군요. 그 와중에 조를 나눠 방과 식당 청소도 직접 했답니다. 이는 청소에 손을 뗀지 이미 오래인(?) 고참 선수들 역시 빠질 수는 없었습니다.

자, 짐작하시겠죠? 왜 제가 재밌어했는지요. 허정무 감독 역시 청소에서는 해방될 수 없었답니다. 처음 모든 사람들이 청소를 해야만한다고 했을 때 ‘설마?’라는 생각이 먼저 들었지만 후에 허정무 감독이 선수들 틈에 섞여 식당 테이블을 닦는 모습을 보고 나서야 비로소 수긍됐죠. 그리고 조금 놀라기도 했고요.

이곳의 규칙이라고 하지만 감독이라면 충분히 거부할 수 있는 힘을 갖고 있지 않습니까. 그런데도 허정무 감독은 “모두가 해야하는 것이라면 솔선수범하겠다”며 열심히 청소를 했답니다. 물론 막판에는 청소감독 역할을 하며 살짝 빠지는 모습을 보였지만요. 

이때만 해도 K-리그에서 계속 만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던 허정무 감독을 내년부터는 대표팀에서 만나게 되네요. 이렇게 하여 지난 8월 베어벡 감독이 사퇴하며 4개월 동안 공석으로 있었던 대표팀 감독 자리도 드디어 주인을 찾았습니다.

사실 그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허정무 감독은 잠그기 전술만 일관하는 재미없는 축구의 선봉주자라는 인식이 강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만난 허정무 감독은 누구보다 선수들을 생각하며 늘 고민하고 공부하는 지도자라는 인식이 더 강합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원칙을 중요시하죠. 그것은 곧 정도(正道)를 걷겠다는 의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저는 허정무 감독을 믿기로 했습니다. 아무도 보지 않는데도 열심히 청소를 하던 그 모습을 생각해서라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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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얼마 전 벌어진 국회위원들의 룸살롱 파문을 다들 기억할 것입니다. 국회 과학기술정보통신위원회 소속 몇몇 국회의원들은 지난 22일 대전 7개 기관 국감을 마친 뒤 룸살롱 방식으로 운영되는 모 단란주점에서 폭탄주 파티를 가졌습니다. 성접대를 받은 국회의원이 있었는가하면 그 모든 비용을 피감기관이 지불한 것으로 알려져 아주 큰 파문을 일으켰죠.


처음 국회위원들의 룸살롱 사건 이야기를 들었을 때 어린 시절 어른들이 자주 하던 말씀처럼 “역시 정치하는 놈들은 썩었어. 그러니 우리나라가 이 모양이지”하는 생각이었습니다. 그런데 이와 비슷한 일이-경우는 조금 다르겠지만-우리나라 축구대표팀에서도 발생하고 말았군요.


뉴시스의 보도에 따르면 지난 아시안컵 기간 중 대표팀 선수 중 일부(4명)가 숙소를 이탈, 자카르카 현지 룸살롱을 찾았다고 합니다. 선수들이 처음으로 룸살롱을 찾은 7월 13일은 바레인전을 이틀 앞둔 날이었습니다. 알콜의 타격 때문이었을까요? 우리 대표팀은 그날 김두현의 선제골에도 불구하고 1-2로 패하고 맙니다. 그러나 그들은 바레인전이 끝난 후에도 다시 룸살롱을 방문하고 말았습니다. 이틀 후에는 다시 인도네시아와의 경기가 있었는데 말이죠. 다행히 인도네시아에게 1-0으로 이기며 8강에 진출했지만 만약 사우디 아라비아가 바레인을 대파하지 않았다면 '조별예선 탈락'이라는 수모를 겪었을지도 모릅니다.


뉴스가 보도된 이후 축구팬들 사이에서는 갑론을박이 벌어졌습니다. 누군가는 단합을 위해 맥주 몇 병 마신 것 가지고 다들 호들갑 떨고 있는 듯하다고 말했습니다. 취재를 하고 기사를 쓰는 와중에 와전된 것 아니냐며 물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는 분들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축구는 팀 스포츠이기 때문에 아무리 ‘단합’이 중요하다 하더라도 그것을 술로 푼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라고요. 얼마만큼의 피로와 스트레스가 그들을 괴롭혔는지는 모르겠지만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하여 음주를 했다" 사실은 분명 크게 잘못됐습니다. 어떤 이유를 대더라도 면죄부가 될 수 없습니다. 그저 상황을 모면하기 위한 변명거리에 지나지 않습니다. (더욱이 룸살롱 아가씨들의 증언도 있었습니다. 그녀들은 선수들의 얼굴과 이름, 그리고 자신들에게 준 팁까지 정확하게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를 대표해서 간 선수들입니다. 뛸 때마다 빠른 박자로 뛰던 그들 심장 위에는 태극마크가 있었습니다. 선택된 자만이 가질 수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많은 축구 선수들이 꿈꾸는 바로 그 태극마크 말입니다. 그들은 그렇게 대한민국의 표상을 가슴에 단 채 뛰었습니다. 그리고 우리는 그런 그들의 모습을 보며 끝없이 응원했습니다. 이란과의 8강전, 이라크와의 준결승전, 마지막으로 일본과의 3~4위전까지 말입니다.


혹시 아시나요? 매 경기마다 수 많은 사람들이 “제발, 힘을 내세요. 이렇게 응원할게요”라고 외쳤다는 사실을요. 그러나 당신들은 우리의 한없는 마음과 간절했던 염원, 그리고 변함없던 믿음을 저버렸습니다. 아주 무참히 짓밟아버렸습니다. 더운 날씨 속에서 말라리아 예방약을 먹어가며, 물갈이 때문에 고통스런 와중에도 열심히 뛰던 그 모습에 가슴 저려했던 모든 순간들이 원망스럽습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거짓 연기에  당한 것만 같은 생각도 듭니다.


네, 물론 압니다. 숙소를 이탈한 선수는 소수에 불과하다는 사실 말입니다. 그들을 제외한 나머지 모든 선수들은 아시안컵 우승을 위해 온 몸을 다해 뛰었죠. 후에 고트비 코치는 사석에서 제게 말했습니다. 근육에 경련이 일어나는데도 다시 일어나서 뛰고 또 뛰는 모습은 눈물겨웠다고 말이지요.

 

하지만 절제와 자기관리로 후배들에게 모범을 보여야 할 몇몇 노장 선수들이 아시안컵 기간 중에 보인 일탈행동은 그 어떤 눈물 어린 호소로도 용서받기 힘들 것입니다. 물론 시즌 중간에 술을 마시는 것은 개인의 자유의사에 달려있습니다. 우리나라 축구팬들은 그 사생활까지 간섭할만큼 참견쟁이가 아닙니다.


그렇지만 당신들은 대한민국이라는 이름 아래 중요한 국제대회에 출전한 대표 선수들이었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 아시안컵 기간은 잠깐의 일탈이 주는 쾌감을 즐길 시간이 아니었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그런데도 당신들은 너무나 무책임한 행동을 저지르고 말았군요. "아가씨들에게 팁까지 주며 2차까지 갔다"는 내용에선 결국 할 말을 잃고 말았습니다. 무엇이 그리도 즐거웠기에 새벽 5시까지 그녀들과 함께 한 것인가요. 그것도 시합을 바로 앞두고 말입니다.


당신들은 우리 마음에 거대한 실망만 안겨줬습니다. 그리고 지금 이 순간 당신들이 뛰는 K-리그를 사랑하는 팬으로서 작금의 현실에 아주 많이 마음이 아픕니다. 이 마음은 과연 무엇으로 보상받을 수 있을까요?


다음은 대한축구협회 홈페이지(http://www.kfa.or.kr)에 실린 <아시안컵 대표팀 일부 선수의 물의와 관련한 사과문> 전문입니다. (2007년 10월 30일 기준)


대한축구협회는 2007 아시안컵 기간 동안 일부 대표선수들의 부적절한 행동이 있었다는 보도를 접하고 당혹감과 송구스러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정확한 사실 여부를 파악해야겠지만 축구팬과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분들께 심려를 끼쳐드린 것에 대해 깊이 사과드립니다.

대한축구협회는 그동안 대표선수들이 소집되면 선수들에게 한국축구뿐만 아니라 우리나라를 대표하는 선수로서 명예와 자존심을 갖고 행동도 ‘대표선수’답게 처신하라고 누누이 강조하고 교육했습니다만 이번과 같은 사태를 낳게 되어 죄송스러울 따름입니다.

대한축구협회는 조속한 시일 내에 이번 사고의 진상을 규명하고 필요하다면 해당 선수의 징계 등을 통해 다시는 이러한 일이 재발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우는 데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다시 한 번 축구팬과 한국축구를 사랑하는 국민들께 머리 숙여 사죄드리며, 대한축구협회는 이번 사고를 교훈삼아 대표팀 운영에 더욱 만전을 기하도록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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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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