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 곳곳에서 일제히 열렸던 K-리그 경기로 인해 열기 넘쳤던 주말이 끝나고, 지난 주말 혈전들로 스포츠 섹션이 채워질 거라는 예상은 빗나갔다. 풍운아 이천수가 또다시 여론의 도마 위에 올랐다. 앞서 “페예노르트가 이천수의 이적을 추진하고 있다. 연봉 9억원 이상을 지불하는 팀이 나타나면 이천수가 이적을 거부할 수 없는 옵션이 걸려 있다”던 에이전트의 발언은 급조된 조항으로 밝혀졌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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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우디아라비아 알 나스르 이적을 몰래 추진하던 중 그래도 자신을 보듬고 받아준 은사 박항서 감독을 보호하기 위한 어쩔 수 없는 처사라고 하였다. 의도는 하얀 거짓말이었다고 하더라도 한 마디로 언론과 팬들을 우롱한 처사에 지나지 않는다.
지난해 7월 말 페예노르트에서 수원삼성으로 1년간 임대됐던 이천수는 수원에서도 코칭 스태프의 지시 불이행과 태업 등을 이유로 쫓겨난 아픔이 있다. 그런 이천수를 “선수로서 가진 재능을 썪히기 아깝다. 내가 다 책임지겠다”며 품에 안은 박항서 감독이었다. 그러나 이천수는 마지막까지 은혜를 칼로 되갚으며 지난 날의 반성은 한낮 거짓에 불과했다는 것을 다시 한번 재확인시켜주었다.
지난 주말 포항전을 앞두고 전남 코칭스태프는 이천수에게 이적을 할지라도 포항전에는 출전하여 ‘유종의 미’를 거둘 것을 부탁하였다. 그러나 이천수는 사타구니가 아프다며 출전을 거부했다. 이 과정에서 선수단이 지켜보는 가운데 팀 닥터를 향해 언성을 높였고 보다 못한 김봉수 코치가 유리컵을 이천수에게 던지는 사건이 발생했다. 결국 이천수는 “유리컵이 날아올 때 생명의 위협을 느꼈다”며 숙소를 무단으로 이탈하며 사태는 파국으로 치달았다.
올 시즌 초 주먹감가 세레모니로 6경기 출장정지와 페어플레이 기수단 지시가 떨어졌을 때 전남 구단은 이천수가 상처 입지 않도록 선수단 및 구단 프론트, 팬들이 함께 기수단에 참여하며 마지막 남은 선수로서의 자존심을 존중해주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을 향한 처우나 대우가 심히 못마땅했다며 심야에 기자들을 불러 격정을 토로하며 항변했지만 페예노르트와의 계약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우디로 가는 줄만 알았던 팬들은 배신감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나 역시 뒷통수를 축구화 스파이크로 세게 맞은 듯한 배신감과 실망감을 동시에 느끼고 있다. 2년 전 이천수와 인터뷰를 갖는 동안 세간의 이미지는 언론과 대중이 포장한 허울에 불과했다며 이제라도 제대로 된, 진심으로 축구를 사랑하는 진짜 이천수를 만났다며 무척이나 흥분된 상태에서 밤 새 기사를 써내려갔던 기억이 난다.
한데, 내가 만난 이천수는 진짜였을까. 이천수가 내게 했던 말들은 모두 진심이었을까. 기자를 향한 립서비스에 제대로 속은 듯한 기분이 드는 이유는 무엇일까. 진심이 진심이 아니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당시 그 눈빛에 혹해 열과 성을 다해 그의 말을 옮겨적은 그 순간들을 지워버리고 싶다는 생각마저 드는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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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수는 지금 인천 집에서 혼자 운동하면서 마음 정리 중이에요.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지 않냐며 담담하게 받아들이고 있어요. 여름에 다시 이적시장이 열리면 그때 가면 된다고 이젠 괜찮다고 했어요.”
이천수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대신 이천수의 에이전트 일을 맡고 있는 김철호 씨와 어렵게 연락이 닿았다. 김철호 씨는 “현재 상황을 차분히 받아들이고 있다” 고 이천수의 근황을 전해줬다.
마지막으로 이천수를 만난 날은 울산현대 포토데이 행사가 열렸던 지난 1월 18일. 당시 이천수는 모자를 쓰고 나왔다. “모자가 썩 잘 어울린다”는 인사말을 건네자 “탈모 증세가 있어서 쓰고 온 것” 이라는 대답이 돌아왔다. 그러더니 모자를 살짝 벗으며 머리를 보여줬다. 듬성듬성 머리가 빠진 것으로 보아 원형탈모증 초기 증세인 듯했다.
“죽겠어요. 스트레스를 너무 많이 받는 통에 머리까지 빠지고 있어요. 제가 괜히 모자 쓰고 나온 게 아니라니까요.”
그날 이천수는 “이번 1월이 인생을 바꿀 수도 있는 중요한 시간” 이라고 거듭 강조하며 속내를 드러냈다.
“고민이 많아요. 그래서 너무 힘들어요. 이렇게 웃으면서 이야기 있어도 너무 힘들어요.“
그에게 물었다. K-리그에서 안정적으로 대우받으며 뛰는 게 더 편하지 않냐고.
“저 정말 간절해요. 다들 아실 거예요. 지금까지 계속 에이전트 문제 복잡했고 그 덕분에 위약금도 많이 물었던 복잡한 선수였던 거. 다 마음이 급해서 그랬던 거예요. 외국에는 너무 나가고 싶었으니까 급한 마음에 이쪽 저쪽 다 사인해버렸죠. 그 정도로 가고 싶었어요. 그때는 너무 가고 싶은 마음 뿐이라 여기 저기 사인한 건데 결론은 제가 멍청했던 거죠. 그렇지만 '아, 이천수가 이만큼 간절하게 가고 싶어하는구나‘ 하고 생각해줬으면 좋겠어요.”
이천수는 유럽무대를 향한 자신의 간절한 마음이 어느 정도인지 덧붙여서 설명했다.
“제가 어느 정도로 가고 싶냐면요 영국, 스페인, 이탈리아 등 좋은 리그들 많잖아요. 그런 곳이 아닌 작은 리그에서 제안이 들어온다고 해도 받아들일 의향이 있어요. 제가 돈을 좀 깎고 손해를 본다고 해도 가서 보여주고 싶다는 생각뿐이에요. 물론 일본에서도 딜은 들어오고 있어요. 하지만 제가 다 거절했어요. 일본에 대한 생각은 죽어도 해본 적 없어요. 일본 간다고 했을 때 네티즌들도 가지 말라고 그랬잖아요. 저는 지금 유럽을 원하고 있고 축구를 좋아하시는 분들도 이천수 한번 유럽에서 더 하는 거 보고 싶다고 원하기 때문에 저는 하고 싶다 이거죠. 돈 이야기도 나오고 그러는데 그런 생각 역시 해본 적 없고요. 이미 한번 유럽에서 실패를 해봤기 때문에 꼭 한 번 더 가서 성공하고 싶다는 생각만 머릿속에 있어요. 솔직히 말해 도박이잖아요. 잘될지 안 될지는 모르지만 그냥 제 자신을 믿어보려고요. 할 수 있을 것 같아요. 할 수 있다 생각하고 한번 도박을 걸어보려고요. 이제 금방 서른이 되요. 서른이 되기 전에 모험을 걸고 싶어요. 그렇기 때문에 앞으로 남은 3년이 정말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사실 이천수에게는 유럽무대에서 이미 한번의 뼈아픈 실패가 있다. 지난 2003년 이천수는 레알 소시에다드로 이적하며 한국인으로는 최초로 프리메라리가에 진출하는 쾌거를 이뤘지만 이듬해 8월 누만시아로 임대됐고 결국 현지적응에 실패하며 2005년 K-리그로 다시 돌아왔다. 그에게 2년은 짧지만 긴 시간이었다. 그 기간 동안 얻은 것도 많았지만 그만큼 잃은 것도 있었다.
“경험도 없던 제가 처음 프리메라리가로 나갔잖아요. 강한 리그였고 압박감이 많았어요. 결국 실패하고 돌아왔지만… 이젠 괜찮아요. 그때는 괴로웠지만 지금은 마음 편히 생각해요. 어찌됐든 간에 제가 실패한 건 사실이고요 그래서 그런지는 몰라도 다시 도전해서 성공하고 싶다는 마음이 커요. 하지만 이겨낼 수 있는 방법이 뭔지 알았기 때문에 다시 유럽에 가게 된다면 잘 극복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옛날에 제가 첼시가고 싶다고 했잖아요. 그때 욕을 많이 먹었는데요. (웃음) 사람에게는 누구나 목표가 있고 그 목표는 높게 잡아야한다고 생각해요.“
사실 간절히 무언가를 바라고 꿈꾸는 이천수의 모습은 그동안 비춰지던 이미지와는 살짝 어울리지 않는 것 같기도 했다. “너무 순수한 모습은 이천수가 아닌 것 같다” 는 농담을 건넸더니 이천수는 “저도 여린 사람이에요” 라는 말로 억울한 심정을 토로했다.
“저도 여려요. 제가 한번 씩 크게 실수하잖아요. 그럴 때면 인터넷도 안하고 돌아다니지도 않고 그냥 집에만 있어요. 잘 몰라서 그러시는데 A형이거든요. (웃음) 그렇지만 여린 모습들을 남들에겐 보여주기 싫어해요. 그냥 강한 이천수로 남고 싶어요. 물론 강한 거는 일찍 부러지죠. 그래서 제가 욕을 많이 먹는 것 같아요. 얼마 전까지는 이제야 비로소 여유가 생겼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이렇게 큰 실수를 하나씩 하는 걸 보면 아직 여유가 생긴 건 아닌 것 같아요. 아직까지는 성숙하지 못한 면이 있는 듯해요. 그렇지만 이제는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기 위해서 뭘 해야 할 지 잘 알고 있어요. 앞으로 차츰차츰 고쳐나갈 거예요.”
그래도 한번 뿌리 내린 이미지가 바뀌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이천수 역시 잘 알고 있을터.
“이 이미지라는 게 참 그래요. 저는 경기장에서만큼은 부드러운 축구 선수가 되고 싶지 않거든요. 11명 중에 최고 거칠면서 제일 승부욕이 많은 선수가 되고 싶어요. 키가 큰 것도 아니고 체격 조건이 좋은 것도 아니잖아요. 승부욕이 없었다면 이만한 몸집으로 아무 것도 이루지 못했을 거예요. 지금의 이천수는 없었을 거예요. 그 승부욕을 버린다는 건 축구를 버리는 거랑 똑같다고 생각해요. 그렇기 때문에 운동장에서만큼은 정말 강한 남자가 되고 싶어요. 물론 운동장 밖에서는 부드럽고 착한 사람이 되고 싶죠. 그게 제 마음인데 운동장에서 나타나는 그 성격이 그대로 쭉 따라와서 문제죠. (웃음) 이게 멈춰져야 되는데 꼭 따라와서 문제네요. 이젠 자제 좀 해야죠. 27살이잖아요. 바뀌기 위해 열심히 노력할 거니까 주변에서도 좀 많이 도와줬으면 좋겠어요. 자꾸 하지 마라 하지 마라 그러면 저도 사람이기 때문에 안한다고요. 주변에서 자꾸 안 좋은 쪽으로 생각하시니까 삐딱하게 나간다고 생각해요. 앞으로 축구만 열심히 할 테니까 많이 도와주셨으면 좋겠어요. 저 요번에 해외무대로 나가게 되면 크게 한번 써주세요. 연말에 많이 힘들었잖아요. 아셨죠?”
‘연말에 많이 힘들었다’ 는 그의 표현은 2006년 11월 경기 중 심판판정에 반발하며 욕설을 뱉은 사건을 가리키는 것이었다. 경기 후 이천수는 자신의 홈페이지에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남자의 모습이고 사람의 도리입니다. 저의 잘못된 행동에 대해 사과드립니다’ 라는 내용의 글을 게재하며 잘못을 뉘우치는 모습을 보였다. 그러나 구단에서는 이천수의 사과와는 별도로 사회봉사 징계를 내렸고 얼마 전 그는 뒤늦게 동료 선수들과 함께 봉사활동에 나섰다.
“사회복지관에 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왔어요. 정말 열심히 했어요. 좋았어요. 며칠 더 하고 싶을 정도였어요. 제가 잘못한 거니까 뉘우치고 받아들여야죠. 잘못했죠. 정말 많이. 물론 처음에는 마음고생이 정말 심했어요. 후회도 많았고 잠도 많이 못 잤어요. 제가 지는 걸 정말 정말 싫어하거든요. 승부욕이 심할 정도로 강해요. 그러다 그만 욱하고 터진 건데 나중에 너무 후회했죠. 정말 태어나서 제일 많이 후회했어요. 그렇지만 이제 앞으로는 절대 후회할 일 만들지 않을 거예요. 안 나서려고요. 싸우고 있으면 저쪽 구석으로 있을 거예요. 저는 가만히 구경만하려고요. (웃음) 어쨌거나 봉사활동을 얼마나 했느냐는 중요하지 않은 것 같아요. 그런 사건들을 계기로 변하는 이천수를 보여주는 게 제일 중요한 것 같아요. 앞으로 천천히 보여드릴게요.”
언제였더라. 아마도 2001년 6월 초였을 거다. 가만히 서 있어도 송글송글 땀이 맺히던 그런 날이었다. 손등에 땀을 훔친 다음 손목시계를 힐끗 쳐다보니 어느덧 바늘은 4시 30분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리고 그가 있었다. 이천수였다, 오후훈련을 마치고 모두들 떠난 운동장에서 그늘 한 점 없던 그곳에서 폐타이어를 끌며 뛰고 있는 중이었다. 거침 숨소리에서 독기마저 느껴졌다. 그 순간, 최인호의 소설 ‘지구인’ 의 한 구절이 절로 떠올랐다. “수사 생활을 십 년 해 왔지만 이렇게 독종은 처음 보았소.” 그날 이천수의 모습이 그랬다.
다음해 이천수는 학교에 휴학계를 제출한 뒤 K-리그에 전격 데뷔했다. 그 뒤 한동안 이천수는 사람들 사이에서 ‘말만 앞서는 선수’ 로 미운 털이 박혔다. 물론 아직도 의견은 분분하다. 이천수를 향한 사람들의 평엔 호불호만 있을 뿐이다. 당사자인 이천수 역시 이미 오래 전에 인정한 바 있다. “K-리그에는 나를 좋아하는 사람과 싫어하는 사람만 있을 뿐이다” 라고.
기실 살면서 한번 쯤 까닭 없이 미운 사람이 한 명쯤은 있을 것이다. 어쩜 우리에게 이천수가 그런 선수였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가장 가까이서 그를 지켜본 선수들은 “팬들이 생각하는 것처럼 나쁜 사람이 아니다”는 말을 자주 하곤 했다. “따뜻한 사람이에요.” “의리 있어요.” “진정 프로에요.” 이렇게 예상 데이터에 없던 이야기들이 자주 들려왔다. 그중 지난 1년 동안 울산현대에서 함께 운동했던 이상호의 말이 유독 인상 깊었다.
“사람들은 천수 형을 안 좋은 이미지로 보잖아요. 그런데 천수 형 정말 좋은 사람이에요. 고등학교 졸업하고 처음 프로 가서 적응하기 힘들 때 형이 좋은 말 많이 해줬어요. 평소에도 후배들을 정말 아끼고 사랑해요. 조언도 많이 해주고요. 형이 그랬어요. 프로에 왔다고 자만하면 안 된다고. 더 큰 목표를 가지고 노력을 해야 좋은 선수가 될 수 있다고요. 항상 상대 선수보다 두 세 가지를 먼저 생각하고 뛰어야 좋은 플레이가 나온다고 아마추어랑 프로랑은 완전히 다르니까 몸으로 한번 느껴보라고 좋은 이야기 많이 해줬어요. 그 말들이 저한테는 많은 힘이 됐어요.”
돌이켜보면 ‘말 뿐인 선수’ 라며 ‘입천수’ 라 불리는 순간에도 이천수는 웃었다. “저는 미워해도 K-리그는 사랑해주세요.” 그 정도로 넉살이 좋았다. 그리고 무엇보다 K-리그를 사랑했다. 지난 해 MBC ‘일요일일요일밤에’ 코너 중 하나인 ‘몰래카메라’에 출연할 당시에도 이천수의 마지막 멘트는 “대표팀 사랑하는 만큼 K-리그도 많이 사랑해주셨으면 좋겠다” 였다. 뿐만 아니라 'K-리그 많이 사랑해주세요' 라고 적힌 머리띠를 둘러맨 사진을 자신의 미니홈피에 올릴 정도로 리그를 향한 사랑이 넘쳤던 그다.
그동안 우리는 이천수를 “생각 없이 말을 뱉는다” 며 마냥 가벼운 이미지로만 생각했지만 그는 ‘프로’ 였고 승패로 몸값이 결정되는 냉정한 세계에서 진정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 이었다. 이천수의 에이전트를 맡고 있는 김철호 씨가 몇 년 전 집안 사정이 어려워 공부를 하기 힘들어졌을 때 말없이 도와준 일화는 그의 인간됨을 알려주는 작은 예일 뿐이다.
영국으로 출국하기 전 이동국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천수는 항상 유럽 진출을 도전해 왔다. 대표팀에서 좋은 모습 보여주고 있고 유럽 팀들도 관심 갖고 있기 때문에 꿈을 잃지 않으면 언젠가는 좋은 결과가 있을 것이다.”
대표팀 선배 이동국의 멘트는 많은 것을 시사한다. 어쩌면 지금 이천수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믿음과 격려의 메시지인지도 모른다. 당신은 할 수 있다는 믿음, 그리고 다시 달리라는 격려 말이다. 물론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는 이천수의 모습을 보며 실패자의 낙인을 찍을 지도 모른다. 그러나 실패를 두려워하지 않는 이천수의 용기는 그 자체만으로 존경받을만하다.
피를 토하는 심정으로 간절히 두드렸지만 문은 열리지 않았다. 그러나 이천수는 좌절하기 보단 오히려 여름에 다시 두드리겠다는 의지를 보여줬다. 쉽게 포기하고 눈물짓는 이들에게 이천수의 도전은 많은 것을 의미한다. 물론 아직 그의 꿈은 아직 이뤄지지 않았다. 그렇지만 이천수는 그 ‘꿈’ 을 ‘현실’ 로 만들기 위해 다시 뛸 준비를 하고 있다. 쉬이 날개를 접지 않은 이천수에게 존경의 박수를 보내고 싶은 오늘이다. -2007년 1월 이천수와의 인터뷰 전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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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스승 박항서 감독은 그래도 팀은 추스러야하지 않겠냐며 이천수와 관련된 직접적인 언급을 피했다. 마지막 순간까지 스승 대 제자로서의 관계를 생각하여 말을 아낀 박 감독의 모습을 보며 나는 또 한참동안 할 말을 잃는다.
이제라도 진실을 말하는, 진심어린 이천수의 모습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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