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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박지성 동점골? 시작은 기성용이었다


후반 35분까지 한국대표팀이 이란에 0-1로 밀리자 순간, 이대로 경기는 끝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막연했으나 또 한편으로는 확실하다는 상념이 그렇게 머릿속을 덥고 있을 때, 캡틴 박지성의 동점골이 터졌다. 마지막 순간까지 찬스를 노리는 박지성 특유의 집중력이 돋보인 순간이었다.

이란 골키퍼가 펀칭으로 막아낸 공이 리바운딩돼자 박지성은 그 찰나를 놓치지 않았다. 껑충 뛰었던 박지성은 머리로 동점골을 성공시키며 다시 한번 '역시 박지성!'이라는 찬사를 온몸으로 끌어냈다. 



1-1 무승부로 경기가 끝나자, 함께 중계를 지켜보던 지인들은 박지성이 한국축구를 살렸다며 박수쳤다. 물론 결과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동점골이 터지기까지의 과정을 얘기하고 싶다. 동점골의 시작이 그의 오른발에서 나왔다는 사실은 결고 간과할 수 없기 때문에.

여기서 그는 과연 누구일까. 그렇다. 여기서 그란, 이제는 한국축구의 오늘이 된 젊은 재능, 기성용을 말한다. 넓은 시야에서 나오는 기성용 특유의 정확한 프리킥이 없었다면 한국의 동점골은 꿈나라 이야기로만 남았을 지도 몰랐으니 말이다.

참 놀랍다. 요즘 기성용의 모습을 보면. 멈춤을 모르는 나무처럼 그렇게 무럭무럭 성장하고 있다. 그 끝은 도대체 어디일까. 불과 1년 전, "K리그에서 많이 뛸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라며 웃던 20살 소년은 어느새 리그의 흐름을 쥐락 펴락하는 중심 선수로 거듭났다. 그때 모습을 어제 일처럼 기억하는 나로서는, 지금의 기성용의 모습이 그저 신기하고 또 대견스럽기만 하다.

내가 아는 기성용은 예의는 지키되 할 말은 하는 선수다. 기성용 특유의 솔직함이 무척이나 맘에 든다. 그래서 좋다. 한번은 인터뷰를 앞두고 만난 자리에서(그날이 우리의 첫만남이었다.) 청소년대표팀에 발탁됐다는 전화를 받게 됐었다. 그때 기성용이 했던 말은 기쁘다가 아닌, "꼭 대표팀 가야해요?"였다. 의외였다. 태극마크라면 누구나 달고 싶은 것 아닌가. 한데 기성용은 리그에서 더 많은 경험을 쌓고 싶다고, 클럽에서 이제 인정받기 시작한만큼 좀 더 확실한 인상을 심어주고 싶다고 했다. 그런데 대표팀에 가면 잠시 동안 클럽을 떠나 있어야하니까 그 점이 못내 아쉽다고 설명했다. 그는 대표팀은 클럽에서 더 실력을 키운 다음 가도 늦지 않다고, 일단은 팀에 필요한 선수가 되는 것이 먼저라고 말했는데, 그 솔직함이 참으로 인상 깊었다.

지난 봄 함께 화보촬영을 가진 적이 있었는데 그때 기성용은 다 식어버린 김밥도 참 맛있게 먹어줬다. 허기진 그를 위해 준비했던 김밥이었는데, 그 정성을 생각해서 부러 맛있게 먹어준 것이었다. 그 마음 씀씀이가 얼마나 고마웠던지. 얼마 전에는 그의 브로마이드가 실린 잡지를 믹스트존에서 건네줬는데, 며칠 후 경기장에서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제 방문에다 붙여놨어요"라며 웃으면서 고마움을 표했다. 당연하게 생각하며 혹은 잊고 넘어갈 수 있는 것에도 이렇듯 고맙습니다, 라는 말을 잊지 않고 해주는 사람이었다. 기성용은.

늘 예의바른 선수로 기억되고 있지만 그런 기성용이 팬들의 뭇매를 맞은 적이 있다. 올림픽대표팀이 오랫동안 골가뭄에 허덕이고 있을 때, 그런 대표팀의 모습에 실망한 팬들이 미니홈피 방명록에 하나 둘씩 글을 남기기 시작했다. 그런데 도를 넘어선 글들이 꽤 있었나보다. 결국 이를 참지 못한 기성용은 홈피 메인에 "답답하면 너희들이 축구하던지~"라는 글을 쓰고 말았고, 팬들과 언론은 프로답지 못했다며 연일 기성용과 관련된 이야기를 떠들기 시작했다.

후에 그에게 물었다. 그럴 사람이 아닌 줄 알기 때문에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다고. 그때 기성용은 내게 말했다. "제가 못한 거잖아요. 그러니까 저 한 사람에게만 뭐라 하면 되잖아요. 저한테만 욕하면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런데 왜 저희 아버지 어머니 욕까지 하는 건지, 전 정말 모르겠어요. 정말 입에 담을 수 없을 정도로 심한 욕들을 저희 아버지 어머니께 했어요. 그런데 슬픈 건 그런 사람이 한 둘이 아니었다는 거에요. 그래서 더이상 참을 수 없었어요. 내가 너무나 사랑하는, 그러나 아무 죄 없는 우리 가족까지 욕하는데, 어떻게 참을 수 있었겠어요."

그런데도 기성용이 언론을 통해 반성한다, 잘못했다, 라며 사과했던 이유는 다름 아닌 그의 아버지 때문이었다. 아버지가 언론을 통해 먼저 "아들을 잘못 키운 내 잘못이다"라며 고개 숙였기 때문이다. 이미 세간에 알려졌다시피 그의 아버지는 금호고에서 김태영, 윤정환, 고종수 등을 키운 바 있는 '축구인' 기영옥씨다. 그에게 아버지는 인생과 축구를 가르쳐 준, 세상에서 가장 존경하는 유일무이한 사람이었다. 그런 아버지가 자신 때문에 "내 책임"라며 사과하는 모습을 본다는 사실은 나이의 많고 적음을 떠나 견디기 힘든 일이었다. 결국 내가 경솔했던 탓이라며 기성용이 사과하는 것으로 사건은 끝이 났다. 마음은 아팠지만 잃은 것보다는 얻은 것, 배운 것이 더 많은 시간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해본다.

내가 아는 기성용은, 지독한 치열함을 가슴에 지닌 사람이다. 호주 유학 시절 처절한 외로움 속에서도 오직 가족만 생각하며 볼을 찼던 아이였다. 이후 또래 친구들이 모두 FC서울 1군에서 뛰고 있던 시절 홀로 2군에서 뛰어야만 했음에도, 묵묵히 그 시간들을 버티고 이겨낸 소년이었다. K리그 데뷔 이후 데뷔골을 터뜨리기까지 꽤 많은 시간을 보내야만 했지만, 그는 마지막까지 조급해하거나 초조해하지 않던 선수였다. 오히려 자신의 부족함을 깨닫고 홀로 운동장에 남아 슈팅연습을 가졌고 부족한 체력과 근력을 기르기 위해 웨이트 트레이닝 시간을 늘렸다. 오늘날 클럽과 대표팀을 오가며 중추를 책임지는 '중심'에 있게된 것도, 중요한 순간마다 골을 터뜨리는 빛나는 결정력을 갖게 된 것도, 결국은 보이지 않던 기성용만의 '땀'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것이다.

얼마 전 알게 된 사실이다. UAE와의 2010월드컵 아시아최종예선 2차전을 앞두고 기성용은 감기몸살 증세를 보이며 링거를 맞았다고 한다. 이처럼 몸상태가 정상이 아니었음에도 기성용은 경기 내내 중원과 전방을 넓게 움직이며 끝임없이 찬스를 노렸고 동료 선수들에게 양질의 패스를 아낌없이 보냈다. '링거투혼'이라는 악재 속에서도 시종일관 경기를 지배했다는 사실을 아는 이가 과연 얼마나 될까. 아마도 그때 당시 그의 플레이에서 그 어떤 흠과이나 부족함 같은 것들을 읽을 수 없었기 때문이라고 짐작해본다.

젊음을 본다는 것은 언제나 기분 좋은 일이다. 한데 그 젊음에게서 여느 사람들에게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함과 재능이 엿보인다면, 그보다 더 즐거운 일은 또 없을 것이다. 기성용이 바로 그렇다. 그래서 이렇게나 매 순간 눈을 뗄 수가 없나보다. 무엇보다 그의 모습에서 한국축구의 희망을 읽을 수 있기에 이토록 오래 시선이 갈 수밖에 없나보다.
오늘보다 내일이 더 기대되는 젊은 보석, 기성용. 스무살 그의 앞날이 오늘처럼, 그리고 언제나처럼 빛나길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