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월 강원FC와 전남드래곤즈가 전지훈련 중이던 중국 쿤밍을 취재 차 방문한 적이 있습니다. 마침 그날은 전남 선수들이 쉬는 날이라 친하게 지내던 대학 후배를 만나기 위해 전남 선수들이 숙소로 쓰고 있던 호텔에 갔죠. 호텔 야외 벤치에 앉아 한국서 공수해온 커피믹스를 타서 마시며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다 헤어질 시간이 됐습니다. 택시를 잡기 위해 나오는데 외출 나갔던 전남 선수들이 우르르 들어오더라고요.

여러명의 선수 중 제가 아는 선수는 왼쪽 풀백 젊은 피 윤석영 뿐 죄다 모르는 얼굴이라서 후배에게 전남 신인들이냐고 물었죠. 그랬더니 후배는 저 키 큰 선수 모르냐며 슈퍼신인 지동원을 어떻게 모를 수가 있냐고 호들갑을 떨더군요. 후배의 마지막 말이 지금도 생각납니다. 지금은 잘 모를 수도 있겠지만 곧 주목할 수 밖에 없을 거야. 후배는 제게 그렇게 말했죠.


지동원을 다시 만난 건 3월 28일 강원 대 전남 경기에서였습니다. 당시 지동원은 전반 1분만에 골을 기록했는데요, 그때 뭐 저런 신인이 다 있나 했습니다. 3-1로 앞서고 있던 후반 26분에는 도움도 기록했습니다. 아크 오른쪽에서 올려준 볼을 인디오가 잡아 팀 2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3-2로 추격의 발판을 마련했는데, 아쉽게도 5-2로 패하면서 K-리그 데뷔골과 데뷔 도움 기록은 빛이 바랬죠. 그렇지만 19살 소년이, K-리그 5경기만에 순도높은 기록을 세운 건 정말 주목할만 했습니다.

이후 그를 다시 만난 건 6월 2일 컵대회에서였습니다. 이번에는 광양에서 열린 전남 대 강원의 컵대회 마지막 만남이었습니다. 이번에도 지동원은 또 골을 기록했지요. 후반 8분 정윤성의 크로스를 받아 팀 3번째 골을 성공했습니다. 2달 만에 만난 지동원은 어느새 K-리그에 완벽하게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187cm의 장신임에도 불구하고 상당히 빠른 스피드를 자랑했고 기본기도 탄탄했습니다. 보통의 장신 선수들은 보폭은 넓지만 스피드는 느리고, 발란스가 맞지 않아 키핑력이 부족하고 유연하지 못하여 수비수들의 부딪힐 때마다 쉽게 넘어지곤 하는데요, 지동원은 그렇지 않더군요.

몸싸움에도 능했고, 볼을 받고 돌아서는 움직임도 빠르고 정확했습니다. 보는 내내 K-리그에 물건이구나, 하는 생각이 들어 내심 전남이 부럽기도 했습니다. 여기에 경남과의 FA컵 16강전에서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득점 날개까지 달았으니, 올 시즌 가장 주목할 만한 신인임은 틀림없습니다. 이쯤하면 신인왕도 탈 수 있겠지 싶습니다.

여기에 신인왕 도전장을 내민 선수가 있습니다. 바로 조광래 유치원의 우등생 윤빛가람입니다. 올 초 K-리그의 이슈메이커는 경남FC였습니다. 탄탄한 수비 뒤에 정확한 패스웤을 바탕으로 경남은 역습에 능했고 무엇보다 루시오라는 결정력 높은 외국인 공격수가 있었습니다. 덕분에 리그 1위까지 오르는 등 화제의 중심에 있었죠. 조광래 감독이 A대표팀에 승선한 이후 파괴력이 조금은 잠잠해진 듯 하지만 여전히 상위권(리그 3위)에 랭크돼있습니다.

지난해 K-리그 드래프트 현장에서 조광래 감독은 기자들의 질문 세례를 꽤 많이 받아야만 했습니다. 2순위에서 윤빛가람을 지명했거든요. 잊혀진 천재를 뽑은 이유에 대해 기자들은 굉장히 궁금해했죠. 당시 조광래 감독은 “빠른 패스워크 위주로 전개되는 경남의 플레이스타일에 충분히 적응할 수 있는 선수”라고 지명 이유를 밝혔습니다.


사실 윤빛가람은 2007년 U-17월드컵에서 에이스로 활약했습니다. 그래서 청소년대표팀이 소집할 때마다 기자들의 관심은 온통 윤빛가람에게만 쏠렸죠. 비가 내려 실내에서 진행됐던 포토데이 당일날, K-리그는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 프리미어리그를 자주 보게 된다라고 말했는데, 기자들이 ‘중계를 많이 해주지 않아’라는 말은 쏙 빼고 “K-리그보다는 프리미어리그를 즐겨봐”라고 기사를 전송했지 뭡니까. 덕분에 ‘악플만 백만개’라는 별명으로 불리는 등 대표적인 ‘밉상’선수로 낙인 찍히고 말았죠.

U-17월드컵 조별리그 토고전에서 역전골을 터뜨렸지만 관심을 갖는 이는 드물었고 이후 블랙번으로 진출하겠다는 기사가 나왔으나 이마저도 흐지부지 된 듯합니다. 어린 나이에 자신의 실력을 과신한 나머지 유럽 중소클럽들을 전전하는 떠돌이 신세가 된 것 같아 한편으로는 측은하기도 했습니다. 제대로 된 지도자를 만나면 조금 달라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래서 조광래 감독과의 만남은 그에게 제2의 축구인생을 열어준 ‘전환점’이라 불러도 과언이 아닐 듯 합니다.

조광래 감독이 추구하는 축구는 빠르고 정확한 패스워크 아래 이뤄집니다. 공격축구를 구사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보면 수비축구입니다. 수비를 탄탄히 한 상태에서 자신들의 흐름대로 경기를 끌어가며 공격을 감행합니다. 무엇보다 수비안정이 중요하고 미드필더, 공격수에게도 수비가담을 요구하죠.

조광래 감독 밑에서 뛰는 동안 윤빛가람은 ‘예쁘게 공을 차던 아이’에서 정확한 패스로 게임을 조율하는 ‘플레이메이커’로서 성장 중입니다. 19경기에서 벌써 5골 4도움을 기록하며 골과 도움 모두 고르게 관여하며 어엿하게 팀의 중심으로 자리잡았습니다.

재밌는 건 지동원도 19경기 출장 6골 3도움을 기록하며 윤빛가람과 똑같은 공격포인트(9)를 기록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사실 스트라이커와 미드필더를 비교하기엔 조금 무리가 있죠. 특히나 지동원 같은 파괴력 있는 스트라이커의 경우 더 눈에 들어올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소리 없이 강한, 묵묵히 제 몫을 해내는 살림꾼 미드필더인 윤빛가람의 경우 조광래 감독의 축구를 가장 잘 이해하고 있는 선수 중 하나이기 때문에 대표팀에서만큼은 지동원보다 더 밝게 빛날지도 모릅니다.

K-리그에서 시작된 신인왕 경쟁이 국가대표팀에서는 어떻게 진행될지, 앞으로가 상당히 기대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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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황선홍 밴드로 요즘 인기몰이 중이신 최진철 코치. 무뚝뚝한 인상과 말 없는, 그러나 화가 날 때는 확 달아올라 그 화를 쉽게 잘 참지 못하는 다혈질 성격 때문에 제게는 늘 어려운 코치님이십니다.

그래서 처음 황선홍 밴드 CF가 나왔을 때, 헤드폰을 끼고 “오 대한민국~ 승리의 함성~”을 외치는 첫 번째 CF를 봤을 때만해도 평소 코치님 모습 그대로인 듯하여 제게는 큰 감흥이 오지 않은 그런 CF였습니다.

그런데 2탄이 곧 나왔어요. 발로 손을 두 번 올렸다 내린 뒤, 큰 박수를 치는 동작이 나오는 CF였는데요, 그 CF가 나온 뒤에 코치님과 단둘이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그때 코치님께서 “음치인 줄 알았는데 박치에다 몸치였다”며 CF를 찍던 당시의 고통을 몸소 재연하시더라고요. 처음에 그 동작을 배우는데 너무 어려웠다면서 계속해서 엉거주춤하는 자세로 배웠다고 하시는데, 그 모습이 절로 상상해 순간 웃음이 나왔습니다.

동작을 익힌 다음에는 CF촬영에 들어갔는데 반나절 동안 같은 동작을 반복하며 찍었다고 하네요. 찍고 난 코치님의 소감은...?

“팔이랑 다리가 아고고 너무 아파 죽는 줄 알았어.”

아무래도 다리를 들어 올리고 큰 박수를 반복해서 치는 동작이다 보니 팔과 다리의 움직임이 컸죠. 축구를 할 때 쓰는 근육과는 다른 근육을 쓰다 보니 힘들었나봅니다.

그러나 코치님은 이내 씩 웃으면서 “그래도 축구만 하다 보니 이런 경험은 처음이라서 재미있게 찍었지”라고 하시더라고요.

그로부터 며칠 뒤 강원FC 선수단은 K-리그 심판 가이드라인 교육을 받았습니다. K-리그 경기 영상을 심판들과 같이 보고 파울과 반칙, 경고 및 퇴장에 대한 심판들의 지침과 선수들이 지켜야할 룰에 대해 배웠는데, 교육이 끝나고 질의 응답 시간이 있었죠.

한데 선수들은 저녁 늦게까지 심판 교육을 받은 터라 꽤나 피곤했어요. 빨리 숙소로 돌아가 쉬고 싶은데 코치님들의 질문이 계속 이어졌습니다. 그리고 이제는 끝났겠지, 하는데 최진철 코치님이 질문을 던지셨습니다.

질문도 길었는데요, 마침 그때 앞자리에 앉아있던 어린 선수가 앉은 자리에서 다리와 손을 올렸다 내렸다하면서 CF 속 최진철 코치님을 흉내내더라고요. 그때 와, 하며 선수들이 웃었는데 코치님은 왜 선수들이 웃는지 그 이유를 아마도 몰랐을 겁니다. 물론 저도 웃음을 참지 못한 1인이었죠. ^^

그리고 얼마 전. 드디어 사건이 터졌습니다.

프로축구 2군리그인 R리그 경기가 열린 강릉축구공원. 오후 3시에 열리는 경기라 꽤나 더웠습니다. 오후 1시 30분부터 나와 준비를 한 터라 더위에 지쳤고, 짜증도 나기 시작했죠.

그런데 볼보이 자원봉사를 하게 된 한 학생이 최진철 코치님이 지나가자 CF속 춤 동작을 흉내내더라고요. 경기가 나가기 위해 웜업을 하는 시간은 다소 진지한 시간인데, 그 모습을 보고 선수들이 순간 웃고 말았습니다.

갑자기 최진철 코치님이 “학생, 이리와 봐!”하며 버럭 소리를 지르시더라고요.

순간 큭큭 웃던 선수들의 얼굴에선 긴장이 감돌았고, 문제의 그 학생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그 자리에 얼음처럼 서있었습니다.

“이리와 보라는 소리 안 들려!”

최진철 코치님이 다시 고함을 치셨습니다.

그 학생은 고개를 푹 숙인 채, 이대로 시간이 멈췄으면 좋겠다는 표정으로 코치님 앞에 쭈뼛쭈뼛 걸어갔죠.

“아까 한 거 뭐야? 엉? 내가 보는 앞에서 다시 해봐!”

학생이 가만히 있자 화가 잔뜩 난 표정으로 “내 말 안 들려? 다시 해보라고!”하셨습니다.

가만히 있으면 코치님의 화가 풀리지 않을 것 같았는지 학생은 천천히 아까 했던 동작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리를 살짝 올렸다 내렸고 그때마다 손도 함께 올라갔다 내려갔죠.

한참동안 그 동작을 보시던 최진철 코치님은 여전히 화가 난 표정을 말씀하셨습니다.

“동작이 그게 아니잖아. 마지막에 큰 박수를 딱딱 쳐줘야한다고. 이렇게.”

그러시더니 큰 박수를 치시며 “알겠어? 이렇게!하시더라고요.

이번에도 웃음이 나왔지만 이대로 큰 소리로 웃었다간 경기에 임하는 자세가 이게 뭐냐며 야단을 맞을 것 같아 입을 가린 채 힘들게, 아주 힘들게 웃음을 참았답니다.

그날 경기가 끝나고 저와 선수들은 말했죠.

역시 최진철 코치님은 국가대표 출신이라 그런지 달라. 대인배야, 라고요.

월드컵에서 보여줬던 그 모습 그대로, 은퇴 뒤에도 여전히 멋진 최진철 코치였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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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