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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다방/TV상자

돌아온 PD수첩, 그 7년의 아픔을 돌아보며


돌아온 PD수첩. 얼마 만에 화요일 밤 PD수첩을 보기 위해 텔레비전 앞에 있게 된 건지. 

2012년 170일 파업 이후 사회공헌실로 부당전보 당한 손정은 아나운서가 특별 진행자로 나섰다. 그것만으로도 충분히 상징성 있는 복귀전이었다. PD수첩은 ‘MBC 몰락, 7년의 기록’이라는 제목으로 지난 7년간 MBC가 보낸 고통의 시간을 되짚었다.

사실 PD수첩이야말로 MBC 파업의 시발점이 아니었던가. 지난 9월 4일 MBC와 KBS는 동시 파업에 들어갔는데, 그에 앞서 PD수첩 제작진들은 7월 제작 거부에 들어갔다. 송일준, 최승호, 한학수 등 사명감 넘치던 PD들이 방송을 책임지던 지난 날 PD수첩은 황우석 논문 조작, 광우병 소고기 수입 문제 등을 다루면서 시대의 파수꾼 역할을 톡톡히 해냈다.

PD수첩의 제작거부를 시작으로 파업이 시작됐고 결국엔 김장겸 사장이 떠났으며 해직자였던 PD수첩 출신의 최승호PD가 신임 사장으로 부임하게 됐다. ‘새옹지마’말고는 이보다 더 잘 설명할 사자성어를 찾기가 힘든 것 같다. 

이번 PD수첩은 흡사 <공범자들> TV판을 보는 듯했다. 권력에 부역한 언론인들의 모습들은 슬펐고, 2010년 국가정보원의 'MBC 정상화 전략 및 추진방안' 대외비 문건대로 방송이 장악되는 과정은 충격적이었다.

그 과정에서 시사교양국을 없애며 최승호PD, 이우환 PD, 한학수 PD 등을 전보했고 <PD수첩> 작가진을 해고했다. 2012년 파업에 참여했던 아나운서, PD, 기자들을 향한 보복성 인사도 이어졌다. MBC아카데미에서 브런치 만들기 같은 교육을 받았고 최일구 앵커는 재교육 현장을 가리켜 “아우슈비츠, 그러니까 유배지”라고 했다. 재교육 현장에서 찍은 단체사진에서는 MBC에 몸담고 있던 지인들의 얼굴이 보였다. 찰나였지만 짠했다. 공범자들에서도 나온 문제의 장면 <PD수첩>의 이우환 PD가 스케이트장에서 눈을 치우는 모습은 또 어떻고.

“태극기 집회는 없는 그림까지 찾아와 외부자료까지 쓰고 무조건 사람 많은 숏을 쓰라고 했다”
“유튜브에서 얻은 태극기 집회 영상은 방송에 쓸 수 없을 만큼 화질이 떨어졌지만 뉴스에 사용하라고 했다.”

지난 7년 동안 기자들의 아이템은 거침없이 킬 당했고, 세월호 참사, 백남기 농민 사망, 촛불시위 등 많은 뉴스들이 축소되거나 조작됐다.

지난 겨울 태극기 부대의 모습은 몇 십초 가량 내보내는 것에 반해 촛불집회는 몇 명의 사람들만 나오게 찍어 대조적으로 편집하였고, 좌익과 종북 등의 태극기 부대의 거침없는 발언도 그대로 뉴스에 나왔다. 

2015년 민중총궐기 대회에서 백남기 농민이 경찰이 쏜 물대포를 맞은 사건의 경우 MBC는 시위대의 모습을 중점적으로 보여주며 폭력성을 강조했고 백남기 농민이 물대포를 맞는 장면 대신 구급차를 타고 떠나는 모습을 뉴스에 담았다.

“백남기 농민이 맞은 물대포는 물 세기가 엄청 셌다. 그러나 우리는 물이 찔끔 나오는 걸 썼다. 외부자료는 절대 사용하지 말라고 했다.”

어디 그뿐이던가. MBC는 세월호 관련해서도 참가자가 우는 모습을 사용하지 못하게 했으며 세월호 탑승 학생들이 생전에 찍었던 영상도 특정 부분만 반복해서 보여줄 뿐이었다.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이 나오는 영상은 절대 사용하지 않았다.

그리고 공범자들에서도 나왔던 김선태 전 목포MBC 보도국장이 PD수첩에 다시 나왔다. 전원구조가 아니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서울MBC에 배 안에 수백 명이 갇혀 나오지 못했다고 알렸지만 MBC는 9차례나 ‘전원 구조’ 자막을 내보냈다. 이 보도에 구조작업을 돕기 위해 왔던 민간 잠수사가 돌아가기도 했다고 한다. 이와 관련해 당시 전국부장으로 있던 박상후 부장에게 인터뷰를 요청했으나 그는 대답할 의무가 없다고 했다.

목포신항에 거치된 세월호 선체 앞에서 김선태 전 보도국장은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

“내가 진짜 그때 조금만 용기를 가지고 뉴스 속보를 냈으면 단 한 명이라도 더 구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여기 오기가 싫고, 오기만 하면 눈물이 난다.”

이렇게 처참한 슬픔 앞에서도 MBC는 잔인했다. 유민아빠 김영오씨가 세월호 특별법을 요구하며 단식을 했을 때도 이혼 후 아이들을 챙기지 않았다는 물타기 보도를 하기도 했다. 그 때문에 매달 양육비를 보낸 흔적이 남아있던 통장 사본과 유민이와 주고받은 카톡을 공개하기도 했다. 김영오씨는 “언론이 저를 두 번 죽인 것”이라고 했다.

그런 점에서 지난 9월 9일 돌마고에서 세월호 예은아빠 유경근씨의 발언은 여러모로 의미가 깊었다.

“제가 여러분의 파업을 지지하는 건 여러분이 쾌적한 환경에서 근무하라는 게 아니라 바로 내가 또 다시 죽고 싶지 않아서, 내가 언론 때문에 또 다른 고통을 받고 싶지 않아서다”

PD수첩 내내 MBC는 반성하고 또 반성했다. 손정은 아나운서의 내레이션 가운데 마음에 오래 남는 멘트들을 옮기며 오늘 포스팅을 마칠까 한다.

“지난겨울 촛불 집회가 벌어진 이곳에서 MBC는 시민 여러분께 숱한 질책을 당했다. MBC도 언론이냐, 권력의 나팔수, 입에 담기 힘든 욕설까지 들었다. 시민 여러분이 얼마나 실망하고 화가 나셨을지 짐작하고도 남는다. 오랫동안 시청자 여러분의 사랑을 받은 MBC가 불과 7년 만에 이렇게 외면당하고 침몰할 수 있었나. 오늘 'PD수첩'에선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갖고자 한다”

“공영방송 MBC는 국정원 문건이 제시한 시나리오에 따라 차근차근 권력에 장악돼 갔다. 말 그대로 청와대 방송이 된 거다. 그런 상황에서 발생한 것이 세월호 참사. 유례없는 국가적 재난 상황에서 MBC는 슬픔에 빠진 국민과 유가족을 위로하기는커녕 권력자의 안위를 살폈다. 사회적 공기였던 공영방송이 사회적 흉기가 돼 버린 거다”

“MBC 몰락의 가장 큰 책임은 구성원들에 있다. 거듭 사과드린다”

“권력에 장악되며 허물어져버린 MBC 7년의 몰락사는 저희에게도 소중한 교훈을 남겼다. MBC의 존재는 권력자에게 인정받을 때가 아니라 국민을 위한 공정방송을 할 때 비로소 사랑받고 인정받을 수 있다. 그러기 위해 끊임없이 질문하고 자성하겠다. 국민을 위한 방송, 시민의 안전과 권리를 위한 방송, 사회적 약자를 대변하는 방송, 그런 MBC로 거듭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