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60대 후반의 남자 환자가 진료실에 찾아왔습니다. 음식을 먹어도 소화가 안 되고 가슴이 답답하고 막히는 증상으로 오랜 시간 고생한 환자였습니다. 이 환자 또한 대학병원에서 할 수 있는 검사를 다 해봤지만 역시나 “이상없음”이란 진단을 받았습니다.
자려고 몸을 뉘이면 환자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습니다. 어쩔 수 없이 환자는 반평생을 앉아서 잠을 자야 했습니다. 이 모습을 보다 못한 자녀들이 아버지를 모시고 최서형 박사를 찾아왔습니다. 아들, 딸, 며느리, 사위까지 온 가족이 다 같이 아버지를 모시고 진료실에 찾아온 것입니다.
“제발 저희 아버지 좀 살려주세요. 부탁드려요.”
자식들의 간절함이 최서형 박사의 마음에도 전해졌습니다.
‘그래. 내가 이 환자는 꼭 치료해줘야겠다.’
백 명이 넘는 환자를 진료하고 집으로 돌아온 최서형 박사는 저녁 식사를 마치면 서재로 향했습니다. 수많은 논문을 뒤져보고 구할 수 있는 연구 자료를 다 확인해봤지만 위가 딱딱해지는 과정과 원인을 구명하기는 여전히 쉽지 않았습니다.
어느 날 저녁식사를 마친 최서형 박사는 소파에 지친 몸을 누이는 대신 옷을 차려 입고 나갔습니다.
“여보, 청계산 가자.”
최서형 박사는 산의 찬 기운이 올라오는 것을 막을 수 있을 만큼 두툼한 방성과 두꺼운 점퍼를 챙겨 차 안에 넣었습니다. 국내 최고의 한의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치고 수 천 명의 환자를 치료해 봤지만 자신이 가진 의학적인 지식과 노력으로는 위가 굳어지는 원인을 알 수 없었습니다.
그날 이후 최서형 박사는 아내와 함께 청계산 기도원으로 올라갔습니다. 인간의 몸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인간의 몸에 대해 가장 잘 아신다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후덥지근한 여름과 살을 에는 찬바람이 부는 겨울 밤에도 청계산 기도원에 찾아갔습니다. 온도가 영하로 떨어지는 날에는 두꺼운 김장 비닐을 뒤집어쓴 채 아내와 함께 기도했습니다.
“밖이 정말 추운 겨울에는 몸에서 나온 열기 때문인지 뒤집어 쓴 비닐 안에 습기가 하얗게 차고는 했어요.”
최서형 박사와 함께 기도했던 아내는 그 당시의 추위를 잊을 수 없다고 합니다. 하지만 의사로서 강한 사명을 가진 남편을 존경했기에 아내는 묵묵히 그 길에 동행했습니다. 청계산에서 기도하고 내려오면 밤 11시가 넘었습니다. 다음날 아침이면 최서형 박사는 다시 진료실로 향했습니다. 환자들을 진료하며 논문에서 보고 연구한 내용들을 계속 떠올려보았습니다.
특히 점막에는 이상이 없지만 위장병에 시달리는 환자들을 대상으로 확인해 보았습니다. 위장 외벽을 누르면 환자들은 통증을 호소했습니다. 모두 단단하게 굳은 조직이 만져진다는 공통점이 있었습니다. 최서형 박사는 그렇게 진료와 연구, 기도에 매달리며 위장이 딱딱하게 굳는 이유를 찾았습니다.
“환자가 통증을 호소해도 자신의 의학 지식과 연결이 안 되면 ‘이상이 없습니다. 원인을 알 수 없습니다.’라고 환자에게 말하고 싶지 않습니다. 환자 입장에서, 환자의 질병 중심으로 의학이 반응하다 보면 저는 어떤 난치병도 답을 찾을 수 있다고 믿었거든요.”
여러 해가 지나고 연구를 거듭하던 최서형 박사는 새로운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내시경에는 나오지 않지만 “우리 몸의 정화조 역할”을 하는 미들존(위장 점막 속살 조직)에 답이 있었습니다. 많은 위장 질환과 이유 모를 전신 질환에 관여하는 미들존에 대한 연구를 좀 더 구체적으로 진행했습니다.
그리고 최서형 박사는 그동안 의학계에서 알려지지 않은 “숨은 위장병, 담적 증후군(S.H 신드롬)을 발견해냈습니다. 30년 넘게 간장과 위장병 환자들을 치료하면서 한계에 부딪힌 질병의 뿌리를 찾게 된 것입니다. 2003년부터 진료실, 연구실, 기도실을 오가며 노력한 결과였습니다. -다음 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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