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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강원도의 힘, 강원FC

수원팬들 보며 눈물흘린 서동현

한 남자가 있습니다. 어릴 때부터 자신의 꿈만 생각하며 성실하게 살았던 청년이 있습니다. 성인이 되고 나선 어린 시절 꿈을 이뤘고 사랑하는 여자도 생겼습니다. 그런데 그 여자의 새 아버지가 둘의 사랑을 반대했습니다. 그 남자는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던 그녀와 결혼까지 생각했고 그녀가 아닌 다른 여자는 생각해본 적조차 없었죠.

그런데 새 아버지의 반대는 심했고 그녀는 결국 새 아버지의 뜻대로, 아버지가 정해주신 남자를 받아들이기로 했습니다. 남자는 상처가 컸지요. 그렇지만 그녀와의 결혼이 자신의 꿈 전부가 아니었기에 마음은 아팠지만 깨끗이 잊기로 하고 다시 열심히 살아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훗날 그녀가 자신을 다시 보게 됐을 때, 누구보다도 멋진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고 생각하며 다시 묵묵히 자신의 길을 걸어갔습니다.

남자는 또 이런 생각도 했지요. 그녀와 다시 만나게 됐을 때, 아름답게 성장한 자신을 모습을 보고 후회했으면 좋겠다고 말입니다. 그런데 그녀와의 만남이 생각보다 일찍 찾아왔습니다. 그녀와의 대면을 앞두고 남자의 좋은 모습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열정은 누구보다 뜨거웠죠. 그렇지만 마음이 앞섰는지 그녀 앞에서 그는 100% 자신이 가진 모든 것을 보여주지 못했습니다.

다시 또 그녀를 만날 수 있겠지만, 그래도 헤어진 후 처음 가진 만남이었는데, 더 멋진 모습을 보여주지 못해서 남자는 슬펐지요. 그래서 오래도록 고개를 들지 못한 채 눈물을 속으로 삼켜야만 했지요.

축구 이야기를 할 줄 알았는데 갑자기 한 남자의 사랑에 관한 이야기가 나와서 이해가 안가셨을지도 모르겠습니다. 강원FC와 수원삼성의 K-리그 20라운드 경기를 보는 내내 저는 위와 같은 생각이 내내 들었거든요. 이쯤 하면 다들 짐작하시겠죠. 여기서 그 남자는 바로 서동현입니다.

2005년 건국대학교 2학년을 마치고 중도에 K-리그로 입성한 서동현은 2006년 수원삼성에 입단, K-리거로서의 인생을 시작합니다. 스쿼드가 화려하기로 소문난 수원에서 서동현은 26경기 2골 2득점을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시즌을 보냈지요. 그해 9월 30일 광주상무와의 홈경기에서 들어간지 3분만에 결승골을 터뜨렸던 순간이 가장 기억에 남네요. 수원은 덕분에 13경기 무패행진을 벌이며 선두자리를 지킬 수 있었죠.

당시 서동현은 아시안게임 대표에 탈락한 것이 아쉽지만 2008년 베이징에서 열리는 올림픽대표팀에는 꼭 선발되겠다며 다부진 각오를 보였고 저 역시 그 꿈이 이뤄질 거라고 믿어 의심치 않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2008년 서동현은 35경기 13골 2도움을 올리며 프로 데뷔 이래로 최고의 시즌을 보냈거든요. 그것도 조커로 투입 족족 골을 성공시켰으니 '서동현은 추꾸천재입니다'라는 말이 절로 나올 정도였죠.

하지만 올림픽대표팀 마지막 공격수 카드가 자신이 아닌 팀 동료 신영록에게 돌아갔고 국가대표팀에서도 도장을 찍지 못한 이후 시련의 나날이 시작됐습니다. 2009년 15경기 1도움을 기록했지만 수원의 공격수로서는 다소 초라한 성적표였죠. 기대가 컸던 만큼 실망도 컸던 팬들의 탄식과 원망 역시 거셌습니다.

그리고 2010년 여름 그는 고향팀으로 돌아왔습니다. 윤성효 감독은 애제자 박종진을 영입하기 위해 강원도 홍천 출신의 서동현을 고향팀 강원FC로 보냈습니다. 갑작스러운 트레이드에 꽤 많이 혼란스러웠겠죠.

하지만 다행인 건 서동현은 이적 후 일주일도 되지 않아 금세 팀에 적응한 모습이었습니다. 먼저 선수들에게 다가가 스스럼없이 장난도 치고 자신의 집으로 동료 선수들을 초대하는 모습들을 지켜보며 이곳 생활에 적응하기 위해 노력하는 마음이 느껴졌습니다.

서포터스 나르샤를 위해 이적 후 첫 골 세레모니는 그들을 위해 보여주겠다며 준비하는 모습은 또 얼마나 기특했는지요. 워낙에 수원에 있을 적부터 팀 충성도가 높은 선수였던지라 여전히 수원을 그리워할 거 같다고 생각했는데, 그래도 노력하는 모습이 참 예뻐보이더라고요.

서동현은 수원과의 경기에서 꼭 이기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그건 복수심도 아니었고 증오심도 아니었습니다. 앞서 서두에 꺼낸 이야기처럼 자신을 아껴줬던 옛 팬들 앞에서 최고의 모습을 보여주고 싶다는 마음 때문이었지요.

서동현은 이적이 확정된 후 “‘가야할 때를 알고 떠나는 이의 뒷모습은 아름답다’라는 말이 있는데요, 저는 별로 아름답지도 않은 뒷모습만을 남기고, 지난 5년동안 함께했던 정든 이곳을 떠나게 되었습니다”라고 서포터스 그랑블루 홈페이지에 마지막 글을 남긴 바 있죠. 그래서 이번 수원전에서 멋진 모습을 보여주며, 그래 이 모습이 우리가 열광했던 서동현이었어, 라는 기억을 남기고 싶어한 듯 싶습니다.

수원전을 앞두고 몇몇 수원팬들은 과연 서동현이 경기 종료 후 인사를 하기 위해 S석으로 올까요, 라는 글들이 올라왔던 것으로 압니다. 그 글을 읽으며 저는 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어요. 서동현은 이적 후 첫 경기였기 때문에 당연히 그랑블루 팬들에게 경기 종료 후 인사를 드리겠다고 했거든요.

당시 박종진은 이적 후 친정팀과의 첫 경기에서 어떻게 인사를 해야할지 잘 모르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동현이 형은 경기 종료 후 인사하러 간다고 했는데, 너도 그렇게 인사해. 그런데 몸풀러 나올 때 한번 더 인사하는 건 어때? 그럼 팬들이 더 좋아할 것 같아, 라고 조언을 해줬죠. 착한 박종진은 다행히도 제 말대로 2번 인사를 하고 갔답니다. 나르샤 팬들이 굉장히 좋아했죠. ^^

경기는 1-2 강원FC 패배로 끝이 났습니다. 서동현은 경기 종료 후 잔디 위에 누워서 좀처럼 일어나지 못했고요. 구단 직원이 다가가 그런 서동현을 일으켜세웠지만 반쯤 고개 숙인 채 한동안 가만히 있었습니다. 옛동료였던 수원선수들이 다가와 어깨를 토닥토닥, 하고 갔죠.

그리고 N석으로 달려가 강원FC 서포터스 나르샤에게 인사를 드린 후 서동현은 발걸음을 S석으로 돌렸습니다. 옆에 있던 이상돈에게 상돈아, 가자, 라고 말하며 함께 걸어갔지요.

만감이 교차했던 서동현의 그 표정을 지금도 잊을 수가 없습니다. 골골골골 서동현, 하는 그의 콜도 그날 그 순간이 마지막이었죠. 영원히는 아니겠지만 당분간은 그랑블루가 부르지 못할 그 이름 서동현. 자신의 콜을 불러준 그랑블루를 향해 마지막 인사를 드리고 가는 서동현의 뒷모습이 지금도 마음에 밟힙니다.

그래도 다음날 춘천에서 열리는 팬사인회 현장을 함께 가게 됐는데요, 분명히 제가 봤을 땐 눈이 빨갛게 충혈돼있었거든요. 그래서 어제 운 거 다 안다며 농담을 건넸는데 서동현은 끝까지 아니라며 오히려 제게 헬레나씨 술 마신 거 다 안다며 발끈하더라고요. 그러면서 어제 자신의 콜 들었냐면서 이야기를 꺼내는데 어제 그 표정은 금세 사라지고 다시 밝아졌더라고요.

특히 그랑블루가 자신을 위해 만들어준 콜 이야기를 꺼낼 때 표정은 나 이런 사람이에요, 라고 말하고 있었고요. ^^ 저는 일부러 놀려대며 기분을 업시켜주려고 골골골, 이 아니고 고고고, 아니냐고 빨리 가라고 그러네, 라고 말했고요. ㅋ

요즘 들어 서동현과 이야기를 나눌 때가 잦았던 저로서는 서동현은 여전히 그랑블루를 사랑하는 것 같더군요. 그래서 뼛속까지 수원이었던 아이였구나, 하는 생각도 들었고요. 그래도 이곳에서도 정을 붙이려고 노력하고 있기에 잘하든 못하든 이제는 우리 선수라, 라는 생각 하나만 갖고 품어줘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됩니다.

누가 뭐래도 서동현, 당신은 축구천재이고요, 앞으로 강원FC 이곳에서 골 단비를 뿌려주세요. 이제는 강원의 레이메이커님.

덧. 그랑블루님들의 1박 2일 즐거운 강릉여행을 위해 수원구단을 통해 제가 50% 할인된 가격에 방 20개를 알선해주고 추가로 다른 모텔도 소개시켜줬는데... 다들 즐거우셨는지요. 새벽에 택지에서 돌아다니다가 만난 그랑님들. 인사는 못했지만 굉장히 반가웠고요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 세워져있던 단체버스들도 넘 반가웠습니다. 손님맞이는 역시, 강원 정도되야 어디가서 신경 좀 썼다 듣는 것이겠지요? ^^

그리고 마지막. 이 영상들은 제 피와 땀이 서려있는 소중한 영상입니다. 제발 불펌하지 말아주세요. 주소 복사해서 올리는 건 괜찮은데, 기계로 이용해 통째로 복사해서 자신이 찍은 것인양 알싸에 올린 거보고 굉장히 충격받았습니다. 하여 이번 영상은 주소 복사도 막았습니다. 보고 싶으면 링크 걸어서 타고 넘어와서 보세요.



곽희주와 맞서던 참으로 낯설었던 서동현의 모습.



회심의 슈팅이 크로스바 위로 지나가자 고개 숙인 서동현.
그런 서동현의 머리를 쓰다듬고 가던 옛 동료 리웨이펑.



공격이 잘 풀리지 않자 한숨을 쉬는 서동현.


경기 종료 후 좀처럼 일어서지 못했던 서동현.



수원에서 함께 이적해 온 이상돈에게 같이 그랑블루 앞으로 가자고 말한 서동현.



서동현과 이상돈을 위한 콜 해준 서동현. 그리고 그런 그들을 바라보던 두 사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