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났던 레슬링 김현우의 태극기 세레모니
결승전. 신나는 음악에 맞춰 늠름하게 나오는 선수들을 보고 있는 그 시간은 내 편, 네 편 없이 마음 편히 즐기는 유일한 순간이다. 그런데 헉, 하고 말았다. 김현우의 오른쪽 눈이 퉁퉁 부어올랐기 때문이다. 피멍이 들었고 심하게 부어버려 오른쪽 눈은 감겨있다는 표현이 더 맞을 지도 몰랐다.
종목을 떠나 운동선수에게 가장 중요한 것이 ‘시야’ 아니던가. 특히나 레슬링 같은 1-1 겨루기 종목 선수의 경우 한쪽 눈이 안 보이면 거리감을 확보하기 힘들어진다. 치고 빠지면서 적정 거리를 유지하면서 상대를 잡아야하는데 제대로 할 수 나 있을지. 김현우의 부모 마음이 돼서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경기는 완승이었다. 패시브를 받았을 때도 김현우는 노련하게 빠져나오며 위기를 극복했고 헝가리의 타마스 로린츠를 2-0 완벽한 스코어로 물리쳤다. 대표적인 효자종목으로 불렸지만 내가 기억하는 금메달 레슬러는 빳데루 돌풍을 일으켰던 1996년 아틀란타 올림픽의 심권호와 MC몽 도플갱어로 알려진 2004아테네올림픽 그레코로만형 60㎏급 정지현이 전부다. 그런데 이렇게 또 한명, 영광의 레슬러가 추가됐다.
왼쪽 눈으로만 싸운 슈퍼맨 김현우.
외눈으로 힘겹게 싸운 승리에 감격했는지 금메달이 확정되자 김현우는 감독과 코치가 있는 벤치로 달려가 감격의 포옹을 나눴다. 고마운 마음에 김현우가 절을 하자 코칭스태프도 맞절을 한다. 어쩔 줄 몰라하는 그 기쁨을 보는 것만으로도 기쁘고 즐거웠는데, 어느새 김현우는 태극기를 들고 매트를 한바퀴 돌더라.
이번 올림픽에서 처음으로 제대로 본 태극기 세레모니. 대한민국이 밉고 싫을 때도 많았는데. 또 이렇게 한계를 이겨낸 국가대표 선수가 태극기를 흔들 때만큼은 그렇지 않다. 대한민국이라는 이름에, 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나게 해준 이곳에 고마운 마음이 생긴다. 조국을 자랑스러워하는 선수의 모습을 보고 있다보면 절로 감정이입이 된다. 그게 우리의 힘이겠지, 하는 생각에 눈물이 난다. 나이가 들어서인지, 선수들 가까이서 마음 고생하면서 운동하는 모습을 지켜봐서 그런지, 이번 올림픽에서 나는 몇 번을 울었는지 모른다.
나 같은 마음으로 지켜본 국민을 위해서, 김현우는 매트를 한참 돌다 중앙에 곱게 놓은 채 큰 절을 올렸다. 울컥 하는 마음이 들었는데 그 모습을 사진기로 담는 진지한 심판의 모습에 그만 웃음이 나오고 말았다.
김현우는 레슬링을 “내 삶의 전부”라고 정의했다. 유도선수였던 초등학생은 레슬러로 전향한 뒤 인생이 바뀔 것을 예감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을 앞두고 체중감량에 실패해 다음 올림픽을 기약했지만, 그때의 아픔은 스스로를 정진시키는 채찍질이 되었다. 나보다 더 땀을 많이 흘리는 사람은 없다, 라고 말할 수 있는 당당함은 지난 4년 간 쏟은 고통의 시간이 없었다면 나올 수 없는 것이었다.
우리팀 선수들과 이번 올림픽을 지켜보며 나눴던 이야기 중 하나가 모든 선수들이 노력하겠지만 훈련량으로 따지면 레슬링을 이길 종목은 없을 거라는 이야기였다. 그 지옥훈련 속에서 살아남은 강인한 레슬러임에도 김현우는 어쩜 그렇게 해맑게 웃을까. 감독님 말씀대로 눈웃음이 예쁜 선수였다는. 어떻게 왼쪽 눈으로만 싸웠냐는 질문에도 “정신력으로 했다”며 웃던 미소천사. 우리를 울고 웃게 만든 김현우에게 박수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