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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림픽 기본정신 알려준 김재범과 비쇼프의 결승전

Helena. 2012. 8. 1. 10:27



김재범이 유도 81kg 이하급에서 금메달을 땄다. 효자종목으로 불리던 유도에서 따낸 첫 번째 금메달이었다. 4년 전 자신을 누르고 베이징올림픽 금메달리스트에 오른 독일의 비쇼프와의 한판대결에서 따낸 금메달이었기에 그 감격은 남달랐다.

4년 전 비쇼프의 안다리 걸기 기술에 유효를 내준 뒤 일방적으로 밀렸던 김재범이었지만 4년 후는 달랐다. 안다기 걸기로 선제점을 따내며 우위에 올랐고 2분 여 뒤에는 엎어치기 공격에 성공했다. 비쇼프는 모든 것을 다 내려놓은 표정을 한 채 경기 내내 끌려 다녔다. 효과적인 공격과 안정적 전술이 빛나던 완벽한 경기였다.

 

 


금메달이 확정되고 하늘을 바라보며 눈물을 흘리는데, 김재범의 마음이 조금은 짐작이 되었다. 같은 상대와 만나 통한의 눈물을 흘렸던 4년 전 과거의 ‘나’와 지금 이 순간을 위해 4년 간 단내 나는 훈련과 고통을 참았던 지금의 ‘나’가 오버랩되는 바람에 좀처럼 눈물을 참기 힘들었을 것이다.

도복을 가다듬고 승부를 겨뤘던 두 선수가 인사를 나누는데, 김재범이 격정의 눈물을 터뜨리며 좀처럼 감정을 주체하지 못한 채 비쇼프에게 그만 안기고 말았다. 81kg급의 새 영웅도래를 인정한 것인가. 비쇼프는 그런 김재범을 수초간 다독거려주며 축하해주고 있었다.

 

 
유도는 예로 시작해 예로 끝나는 스포츠다. 예의와 상대를 존중하는 마음을 가장 중요시하게 생각하는데, 패배를 깨끗이 인정하고 진심어린 박수를 보내주던 비쇼프에게선 스포츠의 진정성이 느껴졌다.

 

 


시상대에 오르기 전 멋진 대결을 펼친 비쇼프를 향해 김재범이 손을 내밀었다. 사나이답게 하이파이브를 하며 축하해주는 비쇼프의 모습 또한 선명하게 각인됐다. 어디 그 뿐이던가. 경기장을 한 바퀴 돌며 관중에게 인사를 할 때도 비쇼프는 금메달인 김재범에게 먼저 나가라며 손짓했고 기자들 앞에서 포즈를 취할 때도 가운데로 에스코트하며 금메달리스트 김재범을 우대하는 모습을 보여줬다.

 

 


메달의 색깔이 바뀌는 숨 막히는 순간 앞에서 규칙과 존중은 실종되기 쉽다. 선수들에게 올림픽의 기본정신을 강조하지만 경기 종료 후 자신의 패배가 확정됐을 때에도 스포츠맨쉽을 발휘하기란 쉽지 않다.

믿고 싶지 않은 패배 앞에서 실천하기란 쉽지 않음을 알기에 비쇼프의 여유와 진심어린 축하는 유난히 더 반짝반짝 빛났다.

그리고 마지막. 김재범이 보여준 투혼을 이야기하지 않을 수 없다. 금메달 확정 후 플래시인터뷰에서 김재범은 “4년 전에는 죽기 살기로 했다. 그러니 졌다. 지금은 죽기로 했다. 그래서 이겼다”라는 소감을 밝혔다.

매트 위에서 죽을 각오로 경기에 임했다는 이야기였는데, 그의 몸 상태를 살펴보니 그럴 만 했다. 왼쪽 팔꿈치 인대는 늘어났고 왼쪽 손가락 인대는 1달 전에 끊어졌다. 움직일 때마다 덜렁거린다는 표현이 맞을 정도로 고장 난 왼쪽 무릎과 고질적인 왼쪽 어깨탈골이 김재범을 괴롭혔다. 결국 성한 곳 하나 없는 왼쪽을 포기한 채 오른쪽으로만 공격하며 버티며 결승까지 올랐던 것이다.


올 초 김재범은 방송사와의 인터뷰 도중 올림픽이 끝나면 쉴 날이 많기 때문에 내 몸이 참고 버텨줬으면 좋겠다는 속내를 털어 논 적이 있다. 습관성 어깨 탈골은 수술 밖에 방법이 없다. 재활을 통해 치료를 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예기치 않은 충격으로 인해 다시 탈골되고 손으로 뼈를 맞추는 일을 반복한다. 축구선수들 중에도 수비와 태클을 반복하다 어깨를 다치고 습관성이 되는 선수들도 종종 있는데 결국엔 다들 수술대에 올라간다. 운동을 하는 동안 탈골을 막는 방법은 수술 밖에 없기 때문이다.

“올림픽이 끝난 후 수술대 위에 올라가서 어떻게 되든 상관없으니 올림픽 때까지만 버텨줬으면 좋겠다”던 김재범은 결승전 당일에는 “팔이 부러져도 좋으니 오늘까지만 버티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말했다.

 


그 절박함이 지금의 김재범을 괴물로 만든 것일까. 김재범은 이번 런던올림픽 금메달로 그랜드슬램(올림픽, 세계선수권, 아시안게임, 아시아선수권) 작성이라는 위업을 달성했다.

한계를 극복한 괴물 김재범의 이야기와 깨끗하게 자신의 패배를 인정하며 축하와 격려를 아끼지 않은 비쇼프의 모습은, 연일 오심으로 우리 마음을 멍들게 했던 올림픽이 그래도 살아있음을 알려주는 방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