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복 없던 유병수, 아시안컵서 성공할까
2010 K리그 시상식이 열린 그랜드힐튼 호텔. 일찍 도착하여 인터뷰 하기 위해 모인 선수들이 있던 대기실로 갔죠. 그곳에서 김영후 선수를 만나 왜 이렇게 늦게 왔냐며 구박하고 있는데, 선수 한명이 우리 쪽으로 다가왔습니다. 제가 아닌 김영후 선수에게 인사를 하기 위해서였는데요, 그 선수는 "오랜만이에요"하면서 김영후 선수의 어깨를 잡고선 웃음을 짓고 가더군요. 어찌나 여유가 넘치던지요. 저는 선배 선수인 줄 알았어요. 그렇지만 김영후 선수에겐 약간 후배인 유병수 선수였습니다. 이 자리가 익숙하지 않아 불안해보이기만 했던 김영후 선수와는 다른 느낌의 유병수 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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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말이죠. 이번에도 유병수 선수는 최고 공격수 자리에 이름을 올리지 못했습니다. 우승팀에서 배출한 데얀과 준우승팀에서 뛴 김은중이 받게 되었네요. 허정무 감독은 왜 4-4-2 포지션에 맞춰서 선수들에게 상을 주냐며 야속한 마음을 드러내기도 하였고요. 뭐, 당시 현장에 있던 저도 정말 충격을 받았거든요. 득점왕이 최고공격수로서 대우받지 못하다니, 하는 생각에 말이에요.
그러니 본인은 어떠하겠습니까. 내색은 하지 않았지만 속으로는 많이 놀랐고 충격도 받았을테죠.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유병수는 참으로 멋지게 득점왕 수상 소감을 밝히고 내려왔습니다. 아래는 당시에 제가 현장에서 찍은 영상입니다.
그날 바로 1년 전 신인왕을 놓고 각축을 벌이다가 유병수를 누르고 하나 뿐인 신인왕을 수상했던 김영후가, 이번에는 득점왕을 타게 된 유병수에게 꽃다발을 주며 축하해주는, 아주 훈훈한 장면을 연출해주기도 했습니다.
김영후가 신인왕을 탔을 당시 유병수가 꽃을 건네며 축하해주는 당시 고마움을 잊지 않았던 거죠. 바로 1년 만에 상을 받는 사람과 축하해주는 사람이 바뀌었습니다. 그 훈훈한 장면이 참 좋아서 집에 가기 전 호텔복도에서 만난 유병수에게 말해주었죠. 영후선수가 작년에 너무 고마워서 꽃 드린 거래요, 라고.
득점왕이 최고공격수로 인정받지도 못하는, 선수의 능력과 그것이 만들어낸 결과에 상관없이 팀 성적에 의해 상복이 정해지는 이 더러운 세상... 이라고 외치고 싶었던 K리그 시상식도 끝나고 그렇게 2010년도 조용히 유병수에 잊혀지는 듯했습니다.
그런데 이게 무슨 기쁜 소식입니까. 카타르에서 열리는 아시안컵에 참가할 예비 훈련명단이 나왔는데 그 속에 유병수도 들어갔지 뭐해요. 제주도에서의 경쟁을 끝으로 훈련이 끝났는데, 이번에는 공격수 박주영이 부상으로 아시안컵에 참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그리하여 한 자리에 비게 되었고 지동원과 유병수 둘 중 하나만 살아남을 것이라는 예상은 바뀌었고 공석 하나가 더 생긴 덕에 두 사람 모두 아시안컵에 참가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박주영의 부상으로 비게 된 한자리는 유병수가 어부지리로 잡은 듯한 모양세입니다.
바레인과의 조별리그 1차전에서 중앙공격수로는 지동원이 나섰고 교체선수도 손흥민이었고요. 유병수의 자리는 벤치였습니다. 어쩔 수 없는 결과였을까요. 유병수는 K리그에서 원톱로 나선 적이 거의 없고요 측면이나 처진 공격수로서 그간 팀을 이끌었으니까요.
득점왕의 자존심은 이렇게 무너지는 것인가요.
하지만 저는 유병수의 실력과 강한 정신력을 믿습니다. 아시안컵을 앞두고도 그는 경쟁을 하러 온 게 아니다. 나는 대회를 치르기 위해 왔다며, 강한 모습을 보여주었죠.
그는 A매치 데뷔전이었던 지난해 홈에서 열린 한일정기전을 기억합니다. 교체로 들어가 단 9분을 뛰었고 서너번의 볼터치 후 경기는 끝이 났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했던 그날의 아쉬움을 여전히 기억하고, 그 아쉬움을 승화시키기 위한 반전의 순간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시안컵에서 부디 그간의 아쉬음을 훌훌 털고 K리그 득점왕답게 멋진 모습을 보여주기를. K리그의 자존심을 세워주고 리그 팬들에게 자랑스러운 존재가 될 수 있기를. 인천 호날두 유병수의 힘찬 날갯짓을 기대하고 기도하며 지켜보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