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방/Society
최윤희님의 영면을 보며 돌아가신 할아버지를 이해하다
Helena.
2010. 10. 8. 16:57
행복전도사 최윤희님이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났습니다.
아시겠지만 자살로 생과 작별했고요 경찰에서는 유서를 공개했습니다.
유서를 읽어보면 최근 극심한 신체적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음이 밝혀졌습니다.
2년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번의 절망적인 선고.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 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라 생각합니다.
모든분들께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윤희님은 '흉반성 루푸스'와 '세균성 폐렴'을 앓았다고 합니다. CBS 보도에 따르면 루푸스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인체 외부로부터 지키는 면역계의 이상으로 인해 오히려 면역계가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질환”이라네요.
저는 최윤희님의 유서 중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라 생각합니다”가 가장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나기 전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2008년 8월 27일. 제 할아버지는 87세를 일기로 제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떠나기 일주일 전 쯤 저희 집 아파트 욕실이 수리 중이라 집 근처 할아버지네로 가서 샤워를 했어요. 바로 다음날 저는 조모컵 한일 올스타전 취재 때문에 일본에 가야했거든요.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할아버지가 헬레나왔냐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할아버지께 네, 라고 짧게 이야기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그때 할아버지는 기저귀를 바꾸고 계신 중이었거든요.
목욕을 하고 나오시다가 바닥이 미끄러워져서 할아버지는 넘어지셨고 허리를 많이 다쳤습니다. 수술을 해야하는데 고령이라 병원에서는 아무래도 힘들 것이라고 그냥 두시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허리를 심하게 다치셨고 그래서 나이가 들고 나서도 허리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하셨죠. 그 허리를 또 다치고 말았는데, 이제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전신마취는 어렵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다고 해서 회복이 어렵고. 더 이상 손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거죠.
그뒤로 할아버지는 누워서만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기저귀를 차야만 했고 둘째 고모가 같이 먹고 자면서 할아버지를 간호했어요. 정해진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끼워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이발과 면도도 직접 해줬고요.
그런데 가끔 고모가 일이 있어서 할아버지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날이면 늘 핸드폰을 손에 쥐어주고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하라며 신신당부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불을 켜놓고 가라고 하셨대요.
불꺼진 방에서, 암흑 속에서 혼자 어둠을 맞이하는 게 무서우셨나봅니다.
고모는 나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이야기를 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제 손을 잡고요.
가야할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쩜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게 두려웠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도 엉엉 울면서 그날 저녁, 할아버지의 부름에도 대답하고선 모른 척하고 갔던게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게 할아버지는 언제나 큰 산이었고,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어른이었습니다. 제가 흔들릴 때마다 엄마, 아빠보다 더 심한 말로 저를 꾸중하시는 참으로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늘 강했던 사람이 손녀 앞에서 기저귀를 갈아끼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못본 척, 모른 척 하고 할아버지 집을 나섰죠.
그런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생각하니, 제 마음 속에 영원히 후회인 순간으로 남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손을 잡고선 손녀가 왔다고 이야기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 할아버지와 관련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응급실로 실려갔던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반신불수의 날들로 있다 보니, 우울증까지 겹쳤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동안 모아놓았던 수면제를 드셨다네요.
할아버지가 너무 오래 주무시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응급실에 갔고 수면제를 드신 것 같다는 말에 위세척을 하고 겨우 살렸다고, 고모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때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께서 고모에게 하신 말씀은,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였다고.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게 두려워서 불을 켜놓고 겨우 잠드셨던 할아버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에는 늘 격심한 고통이 몸과 마음을 감싸고 있으니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역시 함께 있었고.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늘 시소처럼 왔다갔다 반복하며 하루를 지배했고 그렇게 힘들다는 말씀만 하시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수면제를 드셨을 때, 응급실에 모시고 가고 깨어나는 모습을 봤을 때, 그때 고모는 왜 수면제를 드셨냐며 책망하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대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가 모르는 고통이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우리 아버지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눈물만 났대요.
행복전도사 최윤희님의 영면 소식을 들으며 저는 다시 한번 당시 할아버지의 선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 세상을 떠난 저희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사랑하던,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나의 할아버지를 보낼 때처럼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
아시겠지만 자살로 생과 작별했고요 경찰에서는 유서를 공개했습니다.
유서를 읽어보면 최근 극심한 신체적 고통 속에서 하루하루를 보냈음이 밝혀졌습니다.
2년동안 입원 퇴원을 반복하면서 많이 지쳤습니다.
그래도 감사하고 희망을 붙잡으려 노력했습니다.
그런데 추석 전주 폐에 물이 찼다는 의사의 선고.
숨쉬기가 힘들어 응급실에 실렸고 또 한번의 절망적인 선고.
그리고 또다시 이번엔 심장에 이상이 생겼어요.
더 이상 입원에서 링거 주렁주렁 매달고 살고 싶지는 않았습니다.
혼자 떠나려고 해남 땅끝마을가서 수면제를 먹었는데
남편이 119신고, 추적해서 찾아왔습니다.
저는 통증이 너무 심해서 견딜수가 없고 남편은 그런 저를
혼자 보낼수는 없고... 그래서 동반 떠남을 하게 되었습니다.
호텔에는 정말 죄송합니다. 용서 또 용서를 구합니다.
너무 착한 남편, 미안하고 또 미안할 뿐입니다.
그동안 저를 신뢰해주고 사랑해주신 많은 분들께 죄송 또 죄송합니다.
그러나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라 생각합니다.
모든분들께 다시한번 죄송합니다.,
언론의 보도에 따르면 최윤희님은 '흉반성 루푸스'와 '세균성 폐렴'을 앓았다고 합니다. CBS 보도에 따르면 루푸스는 “자가면역질환으로, 인체 외부로부터 지키는 면역계의 이상으로 인해 오히려 면역계가 자신의 인체를 공격하는 질환”이라네요.
저는 최윤희님의 유서 중 “700가지 통증에 시달려본 분이라면 저의 마음을 조금은 이해해주시라 생각합니다”가 가장 눈에 들어왔습니다.
왜냐하면 세상을 떠나기 전 저희 할아버지께서도 제게 그런 말씀을 하셨거든요.
2008년 8월 27일. 제 할아버지는 87세를 일기로 제 곁을 떠나 하늘나라로 갔습니다. 떠나기 일주일 전 쯤 저희 집 아파트 욕실이 수리 중이라 집 근처 할아버지네로 가서 샤워를 했어요. 바로 다음날 저는 조모컵 한일 올스타전 취재 때문에 일본에 가야했거든요.
샤워를 하고 나오는데 할아버지가 헬레나왔냐면서 인사를 했습니다. 그런데 그때 저는 할아버지께 네, 라고 짧게 이야기하고 바로 집으로 돌아가고 말았어요.
그때 할아버지는 기저귀를 바꾸고 계신 중이었거든요.
목욕을 하고 나오시다가 바닥이 미끄러워져서 할아버지는 넘어지셨고 허리를 많이 다쳤습니다. 수술을 해야하는데 고령이라 병원에서는 아무래도 힘들 것이라고 그냥 두시는 게 나을 거라고 말했습니다.
할아버지는 일제시대 때 허리를 심하게 다치셨고 그래서 나이가 들고 나서도 허리 때문에 늘 고통스러워하셨죠. 그 허리를 또 다치고 말았는데, 이제는 수술을 해야하는데, 전신마취는 어렵고 마취를 하고 수술을 한다고 해서 회복이 어렵고. 더 이상 손쓰기 어려운 상황이었던 거죠.
그뒤로 할아버지는 누워서만 지내야만 했습니다. 그래서 기저귀를 차야만 했고 둘째 고모가 같이 먹고 자면서 할아버지를 간호했어요. 정해진 시간마다 기저귀를 갈아끼워주고 목욕을 시켜주고 이발과 면도도 직접 해줬고요.
그런데 가끔 고모가 일이 있어서 할아버지와 함께 잠들지 못하는 날이면 늘 핸드폰을 손에 쥐어주고 무슨 일 생기면 꼭 전화하라며 신신당부를 하곤 했는데, 그때마다 할아버지는 불을 켜놓고 가라고 하셨대요.
불꺼진 방에서, 암흑 속에서 혼자 어둠을 맞이하는 게 무서우셨나봅니다.
고모는 나중에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후 그 이야기를 하면서 펑펑 울었습니다. 제 손을 잡고요.
가야할 때가 가까워졌다는 것을 알면서도 어쩜 할아버지는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게 두려웠던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저도 엉엉 울면서 그날 저녁, 할아버지의 부름에도 대답하고선 모른 척하고 갔던게 너무나 마음이 아팠습니다.
제게 할아버지는 언제나 큰 산이었고, 그림자도 밟을 수 없는 어른이었습니다. 제가 흔들릴 때마다 엄마, 아빠보다 더 심한 말로 저를 꾸중하시는 참으로 어려운 사람이었습니다. 늘 강했던 사람이 손녀 앞에서 기저귀를 갈아끼우는 모습을 보여주고 싶지 않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일부러 못본 척, 모른 척 하고 할아버지 집을 나섰죠.
그런데 그게 마지막 만남이었다고 생각하니, 제 마음 속에 영원히 후회인 순간으로 남아버리고 말았습니다.
그때 할아버지 옆에 앉아서 손을 잡고선 손녀가 왔다고 이야기해야만 했어요.
그리고 얼마 전 할아버지와 관련해 또 다른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돌아가시기 전, 응급실로 실려갔던 위험한 순간이 있었다고 합니다.
허리 통증이 너무 심해서, 반신불수의 날들로 있다 보니, 우울증까지 겹쳤고 이렇게 힘들게 사는 것을 그만하고 싶다는 마음에 그동안 모아놓았던 수면제를 드셨다네요.
할아버지가 너무 오래 주무시는데, 뭔가 이상한 생각이 들어서 응급실에 갔고 수면제를 드신 것 같다는 말에 위세척을 하고 겨우 살렸다고, 고모가 제게 말했습니다.
그때 정신을 차린 할아버지께서 고모에게 하신 말씀은, 몸과 마음이 너무 아프고 힘들어서, 였다고.
어둠 속에서 죽음을 맞이하는게 두려워서 불을 켜놓고 겨우 잠드셨던 할아버지. 살고 싶은 마음이 있었기 때문이지요. 그렇지만 눈을 뜨고 있는 매 순간에는 늘 격심한 고통이 몸과 마음을 감싸고 있으니 다 놓아버리고 싶은 마음 역시 함께 있었고.
살고 싶은 마음과 죽고 싶은 마음이 늘 시소처럼 왔다갔다 반복하며 하루를 지배했고 그렇게 힘들다는 말씀만 하시다 하늘의 부름을 받았습니다.
할아버지가 수면제를 드셨을 때, 응급실에 모시고 가고 깨어나는 모습을 봤을 때, 그때 고모는 왜 수면제를 드셨냐며 책망하는 말씀을 드리지 못했대요.
얼마나 힘들었으면. 내가 모르는 고통이 얼마나 힘들게 했으면 우리 아버지가 그랬을까. 하는 생각에 그저 눈물만 났대요.
행복전도사 최윤희님의 영면 소식을 들으며 저는 다시 한번 당시 할아버지의 선택을 더 깊이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2년 전 세상을 떠난 저희 할아버지의 모습이 겹쳐, 사랑하던, 세상에서 단 하나 뿐인 나의 할아버지를 보낼 때처럼 눈물만 흘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