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이번 월드컵에서 김정우를 주목해야하는 이유
Helena.
2010. 6. 4. 19:02
가상의 아르헨티나였던 스페인과 평가전에서 우리 대표팀은 0-1로 석패했습니다. 공-수에 걸쳐 노련하게 경기를 이끌던 캡틴 박지성의 부재 속에서도 유로2008의 챔피언 스페인을 상대로 잘 싸웠습니다. 이번 스페인전은 박지성이 없을 때의 대비책인 플랜B의 조합을 실험할 수 있었던 경기였고 그 가운데서 우리는 김정우의 재발견이라는 열매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사실 김정우는 유난히 가늘고 마른 몸매 때문에 우리에게는 약골 이미지가 강합니다. 학창시절 친구들은 그에게 뼈정우라는 별명을 붙여주기도 했지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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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갸날픈 체격과 달리 체력과 활동량 만큼은 두 개의 심장을 가지고 있는 박지성 못지 않습니다. 패스와 중거리슈팅 역시 정확하고 남다르죠. 청소년대표 시절부터 “센스 하나만은 타고 났다”며 동료들의 부러움을 한 몸에 받은 김정우입니다.
일찍이 그를 지도했던 임종헌 코치(부평고 시절) 조민국 감독(고려대 시절) 등은 “패싱력 수비력 슈팅력 3박자를 고루 갖춘 미드필더”라며 입을 모아 칭찬한 바 있습니다. 강원FC의 젊은 미드필더 권순형은 “대학시절 함께 훈련을 한 적이 있었는데, 너른 시야 속에서 나오는 한 박자 빠른 슈팅과 패스에 차원이 다른 선수라고 깨달았다”고 말한 적이 있고요.
스페인과의 평가전을 마친 후 대표팀 선수들은 입을 모아 수훈 선수로 김정우를 뽑았지요. 센터백 이정수는 “김정우가 많이 뛰어준 덕에 수비하기가 편했다”며 치켜세워줬으며 사실상 최종 수비벽이라 할 수 있는 정성룡도 김정우의 수비력에 엄지를 들어보였죠.
전반 14분 염기훈의 패스를 받은 김정우는 오밀조밀 스페인 선수들이 운집했던 문전을 향해 위협적인 중거리슛을 시도했습니다. 하기야, 2004아테나올림픽 조별예선 멕시코전 당시에도 날카로운 중거리슛을 성공하며 우리에게 강렬한 인상을 남긴 적이 있었죠.
김정우는 이날 풀타임을 소화했는데, 그 와중에도 이니에스타, 파브레가스, 사비, 알론소 등 세계 탑 레벨의 미드필더들과 맞서 싸우며 수비형 미드필더로서의 소임을 다했습니다. 김정우의 재발견은 우리가 이날 경기에서 얻은 최대 수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이날 한국대표팀은 4-2-3-1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는데요, 강원FC 역시 리그에서 같은 포메이션을 사용하는데요, 각각의 포지션이 다 중요하겠지만 경기의 승패를 가로지르는 시작은 두명의 수비형미드필더가 얼마나 제 역할을 해주었냐에서 나옵니다.
공수의 연결고리로서 삼선의 균형을 잡아주고 템포를 조절하는 것까지, 수비형미드필더는 공수 모든 부분에서 관여하며 살림꾼 역할을 해야합니다.
지난 유로2008에서 우승팀 스페인에겐 있었지만 탈락팀 이탈리아에겐 없었던 것은 무엇일까요? 명장? 용병술? 우승컵? 여러 답들이 나올 수 있겠지만 정답은 바로 세나 같은 ‘살림꾼’ 미드필더의 유무입니다. 실상 이탈리아가 조별예선에서 네덜란드에게 0-3으로 대패했던 요인 중 하나도 바로 미드필드 자원의 몰락 아니었던가요. 그만큼 현재 축구에서 허리싸움은 중요합니다.
“수비형MF가 공격수처럼 튀는 자리는 아니잖아요. 비록 눈에 띄진 않지만 소리 없이 강한 자리죠. 제가 해야할 일은 공격이 잘 이뤄질 수 있도록 밸런스를 맞춰주고 수비 시엔 적극적으로 1차 저지선 역할을 하는 것뿐이에요. 조용히 제게 주어진 역할을 해내고 싶습니다.”
언젠가 김정우가 제게 했던 말입니다. 그말처럼 김정우는 미드필드와 수비라인의 간격을 촘촘하게 유지하며 세계 수준의 스페인 미드필더들을 수비수들과 협력해 막아냈습니다. 사실 김정우의 수비력은 K-리그 시절부터 검증이 됐지요. 지난 2008북경올림픽에서 와일드카드로 선발됐을 당시에도 그는 자신의 수비력 덕분에 승선할 수 있었다고 언급한 바 있죠.
“제가 다른 미드필더보다 아주 조금 나은 부분이 있다면 ‘수비력’이 아닐까 생각해요. 프로입단 후 수비형MF로 보직을 변경했고 덕분에 수비력 하나만은 제대로 기를 수 있었어요. 우리나라가 이번 올림픽에서 이탈리아나 카메룬 같은 강팀들과 한 조에 묶였잖아요. 그런 팀들을 이기기 위해선 중원에서부터 강하게 압박해줘야 하는데, 아무래도 박성화 감독님께선 그 역할을 제가 잘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신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작 김정우는 “스페인 선수들의 기량이 너무 뛰어나 너무 힘든 경기였다. 축구인생에서 가장 힘이 들었던 경기가 아니었나 싶다”며 “어떻게 경기를 했는지 기억이 안 날 정도”라며 혀를 내둘렀습니다.
그야말로 정신없이 뛰었다는 얘기로 들려 역시 김정우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2006월드컵에서 흘린 눈물을 4년 뒤에는 웃음으로 바꾸기 위해 누구보다 노력했던 김정우였으니까요. 덕분에 이제는 꿈이라고 생각했던 목표 앞까지 성큼 다가왔네요.
“2004아테네올림픽 당시 말리전이 생각나요. 후반 10분까지 0-3으로 지고 있었죠. 그러나 저희에겐 메달을 따겠다는 강한 목표가 있었어요. 그 덕분에 3-3으로 따라붙으며 8강 진출을 이뤄낼 수 있었죠. 목표가 있다는 건 그래서 중요한 거예요. 마음 속에 숨어 있는 의지까지 끌어낼 수 있으니까요.”
의지 하나만으로 여기까지 올라온 외유내강맨 김정우. 이번 월드컵에서의 성장과 건투를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