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일상이 을용타인 이을용, 그러나 진실은...

Helena. 2010. 5. 23. 17:06
2003년 12월 7일 일본 사이타마 경기장에서 열린 제1회 동아시아축구대회 중국과의 경기. 전반 종료 직전 이을용 선수의 도움을 받은 유상철 선수의 선제골로 한국이 1-0으로 앞서나가고 있었습니다. 사건은 후반 14분에 발생했습니다.

볼을 받은 이을용 선수가 바로 동료에게 패스했음에도 불구하고 중국의 리이 선수가 오른쪽 발목을 뒤에서 걷어찬 거죠. 볼의 소유와 상관없이 거칠게 들어온 비신사적인 행위였죠.


한데 문제는 그 부위가 마침 오랫동안 부상으로 힘들어하다 막 회복된 부위였다는 사실에 있었습니다. 부상악몽의 재현될 수도 있었던 위험한 상황이었습니다. 결국 부상의 위험까지 느꼈던, 다분히 의도성이 느껴졌던 중국 선수의 과격한 태클에 이을용 선수는 중국 선수의 뒤통수를 손바닥으로 때리며 응징했죠.

당시 분노에 찬 이을용 선수의 모습과 머리를 잡고 쓰러져 있던 중국 선수의 사진이 연합뉴스를 통해 포털에 전송되었고 네티즌들은 다양한 패러디 사진으로 만든 다음 ‘을용타’라는 이름을 붙여줬습니다. 지금은 불의를 보면 바로 응징할 때 쓰는 신조어로 자리매김하고 있죠.

연합뉴스 원본사진.

패러다. 책 읽는 을용타.

다스베이더로 변신한 을용타.

지난해 2월 쿤밍에서 진행됐던 강원FC 전지훈련 기간 중에도 비슷한 장면이 연출되기도 했습니다. 지금은 안정환 선수의 소속팀으로 유명한 다롄스더와 연습경기가 있었는데요, 그때도 중국 선수들은 발목을 향해 태클이 들어오는 등 난폭할 뿐 아니라 비신사적인 행위를 계속해서 반복했습니다. 중국 심판이 다롄스더 선수들에게 카드를 주며 누차 경고 멘트를 날렸지만 그들은 오히려 심판에게 항의했고 결국 화가 난 심판은 중국 선수들에게 이런 선수들이 뛰는 경기는 더 이상 심판을 볼 수가 없겠다며 경기장을 떠나는 사건까지 터지고 말았죠. 그래서 강원FC 코칭스태프들이 주심과 부심을 보게 됐는데, 역시나 스포츠맨십에 어긋나는 중국 선수들의 플레이는 계속 되더군요. 결국 선수들의 부상위험을 염려한 코칭스태프는 경기를 중단하겠다는 결정을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그날 찍힌 한 장의 사진. 예전 을용타의 포스보다는 약하지만, 그래도 역시 을용타의 향수를 느끼게 하는 사진이 아닐 수 없습니다. 지금 봐도 동생들의 부상을 걱정하는 강원FC 큰형님다운 포스가 느껴지죠?


여전히, 팬들이 보기에는 무뚝뚝하고 말도 없어 보이지만, 곁에서 보는 이을용 선수는 묵묵히 후배들을 챙기는, 참으로 속 깊은 사람입니다. 창단 첫해, 프로 경험이 없던 선수들이 강팀들과의 경기를 앞두고 잔뜩 긴장할 때면 “형이 뛰어봐서 하는데, 저 선수들이랑 너희랑 다를 거 하나도 없어. 볼에 대한 집중력과 근성만큼은 오히려 너희들이 더 나아. 그러니 끝까지 밀어붙이면 우리가 충분히 이길 수 있어. 잘할 수 있지?”라며 큰 소리로 선수들의 사기를 올려주곤 했습니다.

언젠가 김영후 선수도 그랬어요. “을용이 형이 할 수 있다고 하면 정말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어요”라고요. 우리는 알고 있죠. 말 자체에서 힘이 느껴지고, 그 에너지가 고스란히 상대에게 전달되기란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요. 그래서 이을용 선수의 리더십은 더욱 존경받을 수 밖에 없습니다.

후배들과는 이야기도 많이 하고, 잘 웃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시나, 잘 모르는 사람들과 있을 때면 그 미소를 찾기란... 참으로 어려운 일입니다. 아무래도 20년 동안 축구라는 테두리 안에서 운동만 했으니 모르는 사람에게 먼저 다가가 말을 걸기가  이을용 선수에게는 어려운 일이겠죠.


지난 토요일에도 그랬습니다. 제2회 율곡대기 리틀 K리그 전국 유소년 축구대회 개최와 관련해 특별 인터뷰를 하게 됐을 때도 이을용 선수는 무뚝뚝한 사람, 그 자체였답니다. 아나운서들과 짧은 인사 뒤에도 무표정한 얼굴로 침묵했기 때문이죠. 바로 옆에 예쁜 여자 아나운서가 있었는데도 이을용 선수는 무심했습니다. 일부러 분위기를 띄워보려고 “옆에 계신 아나운서 분 너무 예쁘지 않아요?”라고 말을 걸어봤더니, 돌아오던 이을용 선수의 대답은... “몰라.” 지극히 이을용 선수스러운 대답이었습니다. ^^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이을용 선수의 관심을 끄는 것도 있었으니...


바로 축구를 하던 유소년들이었죠. 큰아들과 둘째아들이 마침 딱 그 정도 또래였던터라 더 눈길이 갔나봅니다. 인터뷰 중간에도 삼남매 이야기가 나오자, 그때만큼은 참 사람 좋은 미소를 얼굴 한 가득 띄웠었죠.

문득 작년 일이 생각나더라고요. 작년 6월 홈경기가 끝나고 다음날 기자와의 인터뷰가 있다고 하자 이을용 선수는 인터뷰가 어렵겠다며 다른 날로 미뤄달라고 했죠. 한데 그 기자도 그날밖에 시간이 안 된다고 하였고, 하여 저는 이을용 선수가 맞추는 수밖에 없을 것 같다고 인터뷰를 그대로 진행하려고 했어요. 그런데, 결국 그 인터뷰는 취소될 수밖에 없었습니다. 아들 생일이라서 꼭 서울에 가야한다고 했거든요.

재활 중일 때면 꼭 닮은 아들들의 손을 잡고 경기장에 오는데요, 머리를 쓰다듬는 손길에서도 아들에 대한 남다른 사랑이 전달되더군요.

아빠만큼 유명한 아들 태석이와.

참... 그날 인터뷰 때문에 이을용 선수의 차 열쇠와 핸드폰을 제가 잠시 보관했는데요, 막내 공주님의 사진이 들어있는 열쇠고리더라고요. 일상에서도 이을용 선수의 자식사랑이 참 깊이 느껴졌습니다.


1975년생으로 올해 나이 36세. 누군가는 이제 은퇴를 생각할 나이가 아니냐고 하지만 강원FC에게는 이을용 선수가 필요합니다. 그에게는 여전히 90분 경기를 풀타임으로 소화할 체력과 경기력, 그리고 빛나는 리더십이 있으니까요.

무엇보다도 세 아이들에게 자랑스러운 아버지가 되고 싶다는 생각이 있는 한, 우리는 앞으로도 그라운드에서 경기를 지배할 이을용 선수의 모습을 볼 것입니다. 그는 자랑스러운 아버지일 뿐 아니라 자랑스러운 강원FC 선수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