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기자였을 땐 미처 몰랐던 박지성을 만나다.

Helena. 2009. 4. 20. 02:32
믹스트존에서 박지성은 날래다. 다른 선수들 틈에서 슬쩍 묻혀 가는데 그때마다 난 참 애탄 목소리로 그를 부르곤 했다. 한데 그냥 부르면 안된다. 진짜 애탄 목소리로 손까지 휘휘 저으며 이리로 오라고 해야한다. 예전엔 그냥 지나갔고 그런 그를 몇번 놓치곤 했다.

그 와중 나름 생긴 노하우라는게, 난 정말 당신과의 인터뷰가 필요해요, 라는 애절한 표정으로 오른팔로 아주 큰 동선을 그리며 그를 부르는 거다. 그게 통한 건지 아닌지는 모르겠지만 그렇게 부르면 박지성은 오곤 했다. 고맙게도.


박지성을 처음 만난게 딱 9년 전 여름이었다. 2000년 8월의 어느 날 타워호텔. 당시 허정무 올림픽 대표팀 감독이 운영하던 웹진 허스풋볼에 들어갈 선수 인터뷰 취재 차 호텔이 방문해 올림픽대표팀 선수 전원의 멘트를 땄었다. 그때 박지성도 인터뷰를 하게 됐는데, 호텔 로비에서 꽤 오랜 시간 서서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난다. 당시 박지성은 두서없이 긴 이야기를 죽 늘어놨었다. 지금은 그 모습이 잘 상상이 가지 않겠지만. 나 역시 그가 했던 이야기들을 기억하지 못한다. 다만 무척이나 열심히 말해줬었다, 는 생각만 아련히, 또 어렴풋이 날 뿐이다.

그리고 기자 경력이 일년 이년 쌓여 이제는 웬만한 축구선수 인터뷰가 쉬워지기 시작했을 때, 그와는 반대로 박지성은 참으로 인터뷰 하기 어려운 선수가 됐었다. 그러던 중 한가지 재미난 이야기를 들었다. 어린 시절, 그러니까 국가대표를 꿈꾸며 공을 차던 그 시절, 박지성이 가장 즐겨보던 잡지가 다름 아닌 베스트일레븐이었다는 이야기를 지인을 통해 듣게 되었다. 정기구독까지 하며 매달 닳을 때까지 읽었을 정도였단다. 한데 더 재미났던 것은 말미였다. 올림픽대표가 되고 국가대표가 되고 나서도 정기구독을 끊지 않았는데, 이제는 브로마이드로 내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들었음에도 불구하고 브로마이드 주인공이 되지 않아 은근 섭섭해했더란다.

그 이야기를 듣고 나서 꼭 석달 뒤인 2008년 6월. 6월호 표지 주인공은 다름 아닌 박지성이었다. 그리고 시작된 2010월드컵 아시아 3차예선. 파주NFC에 국가대표팀 선수들이 모여 훈련을 시작하게 됐는데, 난 갓 나온 따끈따끈한 베스트일레븐 6월호를 들고 파주로 달려갔다. 훈련이 끝나고 숙소로 돌아가는 선수들 틈에 있던 박지성을 불렀다. "박지성 선수!!!!" 역시나 다급한 내 목소리에 고개를 살짝 돌려주시고. 난 긴장된 목소리로 "저희 잡지에 표지로 나오셨어요. 드릴게요"라고 말하며 아주 멋지게 잡지를 내밀었다. 한데, 박지성 표정이 좀 이상하다. "네. 감사합니다"하며 받긴 받았는데 표정이...역시 이상하다.

돌아서면서 선배에게 "박지성 선수 표정이 별로 안 좋은 것 같아요. 왜 그럴까요?"라고 묻자 선배 내게 말씀하시길. "이눔아. 표지가 나오게 줘야지, 축구공 광고가 실린 뒷면을 주면 어떡하냐." 뿔싸. 너무 긴장한 나머지 난 뒷면을 주면서 표지 운운하고 있었다. 그렇다. 박지성은 내겐 너무 어려운 선수였다. 때문에 그런 어이없는 실수를 하게 된 것이고. 그렇게 여느 선수와 다르게 날 긴장시키는 그런 어려운 선수. 그가 바로 박지성이었다.

보통 선수들은 자주 만나는 기자들에게는 눈인사나 농담을 하며 친분을 드러내곤 한다. 그럴 때면 기자 대 선수로 만나지만 어느 정도 인간 대 인간으로 만난다는 느낌 때문에 편하게 질문을 던질 수 있게 되는데 박지성은 유독 달랐다. 항상 정도의 대답만 할 뿐이고 때문에 기자 대 선수로 만났다는 인상을 깊이 받았다. 그 벽을 뛰어 넘기란... 역시 힘들었다. 하지만 그런게 바로 프로 아니겠는가.

한데 MBC 스페셜 "당신은 박지성을 아는가"에서 만난 박지성은 경기장에서, 또는 믹스트존에서 만난 박지성과 달랐다. 언젠가 한 기자가 이런 이야기를 했더랬지. "인터뷰 때문에 박지성 에이전트에게 전화를 한 적이 있었는데, 전화기 너머로 와하하, 하며 누군가 크게 웃는 소리가 나더라고. 그게 누구였는지 알아? 박지성이었어. 정말 호탕하게 웃더라고." 그 얘기를 듣는 내내 들었던 생각은 우습게도 아, 박지성도 그렇게 웃을 줄 아는 사람이구나, 였었다. 사람이니까 당연히 그리 웃을 줄 알텐데도 박지성이? 하며 신기하게 생각하던 나라니. 참 우습지 않은가.

축구오락을 즐겨한다는 이야기를 들었지만 실제로 자신을 주인공 삼아 플레이까지 하는 줄은 몰랐다. "박지성!"을 외치며 골이 들어갔다며 입으로 중계하며 오락을 즐길 줄 또한 몰랐다. 20살 이후로 일본과 네덜란드, 그리고 영국까지, 줄곧 해외에서 뛰며 모든 일을 스스로 하겠다는 생각을 했었지만 자신의 세탁물까지 직접 찾아 갈 것이라곤 생각조차 하지 못했다. 어린시절부터 국가대표를 꿈꾸며 열심히 축구일지를 작성하던 꿈많은 축구선수라는 생각을 했었지만, 모두가 존경하는 위치에 오른 지금까지 "여전히 축구를 잘하고 싶다"고 말할 줄은 몰랐다. 잘하고 싶은 마음에 그 쓴 개구리즙을 먹으며, 결국엔 역겨워 게워낸 적도 있었지만, 그 와중에도 싫다는 소리 없이 마셨을 줄은, 역시 몰랐다.

올림픽대표팀에서도 히딩크 감독 밑에서 2002월드컵을 준비하던 대표팀 그 시절에도, "대표팀 퇴출명단 1호"에 꼽혔지만 그런 언론의 쓴소리와 잣대와 상관없이 "누구도 배우지 못한 것들을 배웠기에 상관하지 않았다"며 담대하게 생각하며 운동했을 줄은 몰랐다. 맨유 시절 미국까지 날아서 무릎 수술을 받고 모두가 예전과 같은 기량은 돌아오지 않을 것이라는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음에도, 맨유 주치의들과 재활 트레이너들이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독하게 재활에 매달렸을 줄은 몰랐다. 그리고 당시의 상처를 아무렇지 않게 보여주며 덤덤히 말하는 사람일 줄도 몰랐다.

언젠가 화제가 됐던, 상처투성이의 그의 발. 그의 축구인생이 모두 담겨있는 소중한 그것.


그 중에서도 가장 인상깊었던, 그리고 마음에 오래도록 남았던 장면은 박지성의 부모님이 흘린 눈물이었다. 2002월드컵 최종 엔트리 명단 발표를 앞두고 집에 돌아왔을 때, 언론에서는 탈락 선수들을 꼽았는데 그 중에서도 가장 1순위로 뽑힌 선수는 다름 아닌 박지성이었다고. 그의 아버지는 그 이야기를 하며 채 말을 잇지 못하다 결국엔 눈물을 흘리고 말았다.

160cm를 갓 넘은 키 작은 아들을 위해 전국의 산이란 산은 다 돌아다니며 뱀과 개구릴 잡아 먹이던, 그래도 모자라 고기라도 많이 먹여야겠다는 생각에 정육점 가게를 냈던, 맨유로부터 제의가 들어왔을 때 무조건 가자며 결단력을 보여줬던 그의 아버지. 늘 기자들에게 웃으면서 인사하던 푸근하던 박지성의 아버지는 이제 7년도 더 된 옛 이야기를 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기자에게는 박지성 퇴출 1순위라는 문장이, 수많은 기사 속에서 큰 의미 없는 한 줄의 문장에 불과했겠지만, 아버지의 마음에서는 오랫동안 깊은, 그리고 숨은 상처로 남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그 모습을 지켜 보던 내 마음 역시 아팠다.

하지만 그 보다 더 마음 아팠던 건 박지성의 어머니가 눈물 흘리며 하던 말씀이었다. 남들은 화려하다 생각하며 부러워할지 모르겠지만 운동만 하며 살았던 아들을 생각하면 마음이 아프다며, 어머니는 뜨거운 눈물을 쏟아냈다. 그 나이 또래면 누구나 다 할 것들을 하지 못하고 살아서, 추억이 하나도 없는 것 같다 마음 아프다며 눈물 쏟던 모정을 지켜보며... 어쩜 우리는 눈앞에 보이는 박지성의, 그러니까 맨유라는 최고의 팀에서 화려하게 활약하는 그 겉에만 너무 치중하며 바라본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보았다.

작년 여름 월드컵 예선 때문에 한국에 돌아온 박지성을 만났을 때, 한결 여유로워진 그의 모습에 기자들끼리 농담식으로 했던 말이 생각난다. 박지성에게 여자친구라도 생긴 게 아닐까? 여전과 다른 여유로운 표정과 말투에서, 사랑 혹은 연애라도 하게 돼 사람이 달라진 것은 아닌가, 하는 이야기가 자연스레 기자들 사이에서 오가기도 했었다. 하지만 다큐멘터리를 보고 나서 내린 결론은, 최근에 느껴진 박지성의 여유란, 치열한 프로의 세계에서 다져진 가운데서 얻은 '성장'에서 나온게 아닐까, 였다. 

그렇다. 박지성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깊은 뿌리를 뻗은 나무였다.  그리고 이제는 그 가지들을 잘라 후배들을 위한 축구센터까지 준비 중인 기특한 청년이기까지 했다. 

아인트호벤에 적을 뒀던 시절, 무릎 부상으로 원하던 플레이를 보여주지 못하자 홈 팬들에게까지 야유를 받던 그때, 박지성은 공이 자신에게 오는 것이 두럽다고 고백하였다. 그러나 지금은 축구를 하는게 즐겁다며 더 잘하고 싶다며 웃었다. 우리는 그 시간 동안 그가 흘린 눈물과 땀과 시련과 고난, 그리고 노력들을 미처 다 헤아리지는 못하나, 최고의 자리에 오르기 위해 최선을 다했고, 지금도 여전하다는 사실을 알기에, 다만 이렇게 존경의 박수를 보낼 뿐이다.

기자였을 땐 미처 몰랐던 박지성을 만난 소중한 시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