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방/TV상자
아프리카에서 장금이는 또 다른 희망이었다.
Helena.
2008. 9. 27. 03:46
MBC 스페셜 <나는 이영애다>가 지난 밤 드디어 전파를 탔다. 방송을 통해 오랜만에 모습을 드러낸 이영애는, 화장끼 없는 얼굴에 청바지와 티셔츠를 즐겨 입는 수수한 30대 여성이었다. 빅뱅의 거짓말을 흥얼거리며 운전하는 모습이나, 모자를 푹 눌러쓴 채 서점과 산을 오가는 등 일상 속에서 대중과 대면하는 모습 또한 놀라웠지만 이보다 더 놀라웠던 건 삼각김밥과 우유를 먹는 모습이 아니었나 싶다.
이슬은 아닐지라도 피부미인답게 유기농 식품만 먹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야. 그제야 우리가 생각하는 이영애의 모습은, 그녀 스스로가 아닌 우리네 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쩌면 자신을 옥죄는 듯한 느낌에 갑갑해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외려 자신을 사랑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예뻤던 영애씨였다.
심지어 자신의 부인을 ‘앙금’이라는 애칭으로 부르는 남편 또한 있었으니, 지금 중동에는 때 아닌 ‘이영애 바람’이 불고 있는 중이었다.
“짐바브웨에서까지 대장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는 놀라웠어요. 좀 알아봐주세요.” 조근조근 말하며 웃는 이영애의 모습을 보며 “짐바브웨?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그 나라?”라고 소리쳤는데, 역시나 2010월드컵에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위쪽, 그러니까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위치한 나라 짐바브웨가 맞았다.
대장금을 수입해 방영하고 있던 방송국 사장은 올림픽 기간에도 방송을 중단할 수 없었다고, 그 만큼 인기가 높기에 재방송까지 보내고 있다며 대장금을 향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설명했다. 이야기 도중 대장금 관련 시청자 퀴즈에 응모한 사람만 480만 명에 달한다는 대목에선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전체 인구가 1300만 명이라고 하니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대장금 퀴즈에 응모했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인기나 열기 대신 광기라는 단어를 써야할 듯싶다.
“장금이는 제게 의사의 꿈을 갖게 했어요.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나도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금이는 내게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죠.”
대장금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는 짐바브웨 소녀의 말이다.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왜 그들이 대장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현재 짐바브웨에서 미 1달러의 가치는 100억 짐바브웨 달러에 달할 정도로, 격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붕괴와 화페 가치 하락이 동시에 진행됐다. 인플레이션은 2004년 초만해도 624%였지만 2006년 12월에는 1281.1%를 기록했다. 현재는 5000%를 넘은 상태로 이로 인해 짐바브웨 국민들이 겪는 부침은 상상을 초월한다. 1980년 영국의 자치 식민지에서 독립국가 짐바브웨로 새 출발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전쟁과 가난 기아 인권유린으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짐바브웨 국민들에게 늘 벼랑 끝까지 몰리지만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던 장금이의 모습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는 항상 힘 안들게 살려고 하는데 늘 힘이 드옵니다”며 옅게 웃던 장금이었지만 언제나 마지막 순간엔 “어느 누구도, 내게 포기를 가르칠 순 없다”며 희망을 꿈꾸곤 했다. 그리고 이를 갸륵히 여긴 하늘은 언제나 솟아날 구멍을 마련해주었고 그렇게 그녀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본받고 싶던, 그리고 인상 깊었던 모습은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또 다른 내일을 위해 땀 흘리는 매 순간들이었다. “비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거기에 들어간 땀과 정성만이 비법이었습니다”던 수랏간 나인은, 노력에 노력을 더하여 결국엔 조선조 유일한 임금의 여성 주치위로 거듭날 수 있었다.
이슬은 아닐지라도 피부미인답게 유기농 식품만 먹을 것만 같았는데 말이야. 그제야 우리가 생각하는 이영애의 모습은, 그녀 스스로가 아닌 우리네 대중이 만들어낸 이미지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퍼뜩 들었다. 어쩌면 자신을 옥죄는 듯한 느낌에 갑갑해 할 수도 있었지만 그녀는 외려 자신을 사랑해줘 감사하다고 말했다. 그 모습이, 참으로 예뻤던 영애씨였다.
한데 나를 또 깜짝 놀라게 만들었던 건 일본, 중국 뿐 아니라 중동(이란)과 아프리카(짐바브웨)까지 퍼진 대장금, 나아가 장금이 역을 열연한 이영애의 인기였다. 테헤란 거리에서 만난 사람들은 이영애의 사진을 보더니 ‘앙금(장금이의 이란식 발음)’이라 외쳤다. 지난 해 방영이 끝났지만 DVD까지 구입하여 저녁시간마다 즐겨보는 가족이 있었는가 하면 자신의 방을 이영애 사진으로 도배한 어린 소녀도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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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바브웨에서까지 대장금이 인기를 끌고 있다는 이야기는 놀라웠어요. 좀 알아봐주세요.” 조근조근 말하며 웃는 이영애의 모습을 보며 “짐바브웨? 아프리카 대륙에 있는 그 나라?”라고 소리쳤는데, 역시나 2010월드컵에 열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위쪽, 그러니까 아프리카 대륙 남부에 위치한 나라 짐바브웨가 맞았다.
대장금을 수입해 방영하고 있던 방송국 사장은 올림픽 기간에도 방송을 중단할 수 없었다고, 그 만큼 인기가 높기에 재방송까지 보내고 있다며 대장금을 향한 국민들의 뜨거운 관심을 설명했다. 이야기 도중 대장금 관련 시청자 퀴즈에 응모한 사람만 480만 명에 달한다는 대목에선 두 눈이 휘둥그레질 정도였다. 전체 인구가 1300만 명이라고 하니 3분의 1이 넘는 사람들이 대장금 퀴즈에 응모했다는 이야기다. 이 정도면 인기나 열기 대신 광기라는 단어를 써야할 듯싶다.
“장금이는 제게 의사의 꿈을 갖게 했어요. 드라마를 볼 때마다 나도 사람들을 돕고 싶다는 생각을 했어요. 장금이는 내게 꿈을 이루기 위해 공부를 할 수 있도록 용기를 주었죠.”
대장금을 보며 의사의 꿈을 키웠다는 짐바브웨 소녀의 말이다. 어린 소녀의 이야기를 통해 왜 그들이 대장금을 사랑할 수밖에 없는지에 대한 의문을 조금이나마 풀 수 있었다.
현재 짐바브웨에서 미 1달러의 가치는 100억 짐바브웨 달러에 달할 정도로, 격렬한 인플레이션으로 인해 경제붕괴와 화페 가치 하락이 동시에 진행됐다. 인플레이션은 2004년 초만해도 624%였지만 2006년 12월에는 1281.1%를 기록했다. 현재는 5000%를 넘은 상태로 이로 인해 짐바브웨 국민들이 겪는 부침은 상상을 초월한다. 1980년 영국의 자치 식민지에서 독립국가 짐바브웨로 새 출발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전쟁과 가난 기아 인권유린으로 불안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그런 짐바브웨 국민들에게 늘 벼랑 끝까지 몰리지만 언제나 희망을 잃지 않던 장금이의 모습은 여러모로 시사하는 바가 컸다. “저는 항상 힘 안들게 살려고 하는데 늘 힘이 드옵니다”며 옅게 웃던 장금이었지만 언제나 마지막 순간엔 “어느 누구도, 내게 포기를 가르칠 순 없다”며 희망을 꿈꾸곤 했다. 그리고 이를 갸륵히 여긴 하늘은 언제나 솟아날 구멍을 마련해주었고 그렇게 그녀는 다시 날아오를 수 있었다.
무엇보다 가장 본받고 싶던, 그리고 인상 깊었던 모습은 현실에 안주하는 대신 또 다른 내일을 위해 땀 흘리는 매 순간들이었다. “비법은 없었습니다. 오로지 거기에 들어간 땀과 정성만이 비법이었습니다”던 수랏간 나인은, 노력에 노력을 더하여 결국엔 조선조 유일한 임금의 여성 주치위로 거듭날 수 있었다.
짐바브웨 국민들은 장금이가 흘린 눈물과, 꽃피운 웃음과 꿈꾸는 희망과 두 손으로 일군 현실에서, 자신들의 삶을 투영하는 것은 아닐까. 장금이를 통해 지금 당장 힘들다는 이유로 절망하거나 노여워하는 대신 다른 미래를 만들기 위한 힘을 얻는 것은 아닐까. 그들에게 대장금은 드라마를 넘어선, 희망이었다. 그리고 그 희망의 기저에는 자신이 가진 진정성을 드라마 속에서 구현한, 배우 이영애가 있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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