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의 꿈의 구장/신나는 스포츠 세상

무릎팍도사도 모르는 장미란 선수 이야기

Helena. 2008. 9. 4. 02:28
미란씨가 무릎팍 도사에 출연했습니다. 체중이 늘지 않아서 고민이라며 무릎팍 도사를 찾아갔지요. 문득 지난 겨울 처음 만났을 때 생각이 나더군요. 함께 커피숍으로 이동 중에 그녀는 제게 말했습니다. “단 걸 별로 안 좋아해요.” 따뜻한 커피와 함께 케이크를 먹자고 제안했는데 그녀는 고개를 살짝 흔들며 덧붙였죠. “먹기 싫은데 체중을 늘려야 해서 억지로 먹는 경우가 많아요.”



그렇게 하여 무릎팍 도사를 찾아간 미란씨는 언제나처럼 호탕하게 웃어 할아버지의 부음 때문에 요 며칠 동안 우울했던 제 마음 속 그늘을 없애줬습니다. 시원시원한 웃음소리는 여전하더군요. 그래서 참으로 오랜만에 웃어봤습니다.

그녀는 무릎팍 도사에게 말했죠. 2004아테네올림픽 때 마지막 순간 탄공홍 선수에게 밀려 속상했지만 아주 잠시 뿐이었다고. 4년마다 열리는 올림픽에 참가한 것도 기뻤는데, 거기다 메달까지 땄으니 아주 많이 기뻤고 또 행복했다고 말이죠. 듣던 중 언젠가 제게 말해줬던, “1등만 빛난다고 생각하고 1등만 기억하는 사람들이 많더라”던 미란씨의 말이 떠오르기로 했습니다.

방송에선 바벨 앞에서 보여줬던 그녀의 기도 세레머니 이야기도 나왔습니다. 세레모니를 보면 알다시피 미란씨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입니다. 2004년에 이어 2008년 올림픽 현장에서도 우리는 마지막 순간에 바벨 앞에서 무릎을 꿇고 기도하던 그녀의 모습을 볼 수 있었죠.

“종교 없이 하는 선수들이 전 대단하다고 생각해요. 역도는 개인운동이다보니 정점에 갔을 땐 나 스스로 해야하는 거잖아요. 그렇지만 혼자서 하기는 너무 힘들고 때문에 심적으로 의지할 곳을 찾게 되는데 그런 점에서 신앙은 제게 굉장히 큰 힘이에요.”

이렇듯 늘 기도하며 자신을 돌아보는 사람이다 보니 너그러운 마음가짐을 가지게 됐나 봅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 당시 탄공홍 선수가 마지막 시기에서 역전하며 1위로 등극, 금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하지만 판정이 다소 애매했죠. 바벨을 든 채로 자리 이동이 계속 있었는데도 버저가 울렸으니까요. 억울한 마음이 들 법도 했지만 미란씨는 은메달을 목에 걸고서 환히 웃었죠. 당시 환한 미소와 함께 관중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굳은 살이 잔뜩 박힌 그 손바닥이 화제가 되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날 선수촌 앞 정류장에서 미란씨는 탄공홍 선수를 만났습니다. 그런데 미란씨, 그녀를 보고 웃었다고 하네요. 저라면 ‘너 때문에 내가 금메달을 놓치고 말았어. 정말 밉구나’라고 생각하며 외면했을텐데 그녀는 참 대단했습니다. 탄공홍 선수를 바라보며 웃었으니까요. 그런데 이유가 참 재밌었습니다. 미란씨가 들려준 이유는 다름 아닌 “탄공홍 선수가 너무 귀여웠어요”였습니다. 하얀 원피스를 입고 이어폰을 뀐 채 음악을 듣고 있던 그 모습이 너무 귀여워 웃지 않을 수 없었다네요. 그 마음의 여유가 참으로 인상 깊었습니다.

미란씨의 넓은 마음에 깜짝 놀라고 감탄했던 순간이 또 있습니다. 2004년 아테네올림픽이 끝난 후 탄공홍 선수는 은퇴를 선언했습니다. 그 뒤 새로 등장한 라이벌은 역시 중국이 배출한 무제한급 스타, 무솽솽 선수입니다.

2005년도부터 국제대회 때마다 만나게 됐는데 그때마다 무솽솽 선수는 미란씨를 그냥 외면했다네요. 그럴 때마다 미란씨는 먼저 다가가 “안녕, 잘지냈어?”라고 인사를 했다고 합니다. 그래도 무솽솽 선수는 늘 고개를 훡 돌리곤 했지만요.

그렇지만 미란씨는 이해한다며 “역도 7체급 중에 5체급 금메달을 중국이 다 석권했어요. 나머지 한 체급을 러시아가, 또 다른 한 체급을 제가 가지고 갔는데, 무솽솽 선수도 얼마나 스트레스가 많았겠어요. 자기 나라 다른 선수들은 늘 1등만 하는데 자긴 2등이다 보니, 잘해야겠다는 부담이 늘 컸을 거예요”라고 말했죠.

지난 세계선수권대회에서 미란씨는 1위에 오르며 ‘세계선수권 3연패’를 달성했습니다. 코치 선생님들과 기쁨을 나누고 있던 중 한쪽 구석에서 울 것 같은 표정을 짓고 있던 무솽솽 선수가 눈에 띄었다네요. 그 모습이 계속 눈에 밟혀 결국 미란씨는 무솽솽 선수에게 다가가 어깨를 감싼 채 토닥토닥 해줬다고 합니다. “괜찮아. 다음에 잘하면 되지. 힘내.”

당시 영어가 짧았던 무솽솽 선수는 알 수 없는 중국어로 미란씨에게 말했습니다. 그런데 미란씨가 알아듣지 못해 고개를 갸우뚱 거리자 “베이징!”이란 아주 짧고 간단한 단어 한 마디로 끝인사를 나눴다네요. 미란씨는 “베이징!”이라는 말에 ‘아, 베이징올림픽에서 만나서 다시 승부를 겨뤄보자고 말하고 싶나보다’라는 생각에 “그래, 베이징!”이라 말한 뒤 무솽솽 선수와 헤어졌다고 합니다. 엄마처럼 따뜻한 마음씨에, 이야기를 듣고 있던 전 또 한번 감탄할 수밖에 없었죠.

참, 이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딴 후 미란씨가 가장 많이 받았던 질문이 뭔지 아시나요? 바로 남자친구 존재 유무였습니다. 사실 저도 처음 만났을 때 그녀에게 남자친구가 있냐는 질문을 던졌답니다. 당시 그녀는 남자친구가 없다는 말과 함께 다음과 같은 부연설명을 했죠.

“가끔 남자친구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은 하죠. 힘든 일이 있거나 고민이 있을 때 가족들은 너무 걱정을 하니까, 그런 이야기들을 나눌 수 있고 그럼으로써 힘을 얻을 수 있게 해주는 그런 사람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하곤 해요, 하지만 아직까지 크게 남자친구가 필요하다고는 느끼지 않아요. 남자친구에 대해 신경쓸 여력이 아직은 없어요.”

그렇다면 미란씨의 이상형은 과연 어떤 사람일까요.

“능력있는 남자요. 여기서 능력은 돈 같은 물질적인 걸 뜻하지 않아요. 어디서든지 리더가 될 수 있는 그런 능력을 뜻해요. 제가 존경할 수 있고, 배울 게 많은 그런 사람이었으면 좋겠어요.”

언젠가는 그런 사람을 만날 수 있을 것이라 믿습니다. 미란씨는 누구보다 아름다운 영혼을 지닌 사람이니까요.

학창시절 친구들과의 우정을 여전히 소중히 간직한 사람. 짧은 인연이라도 늘 고맙게 생각하는 사람. 부상을 당했을 때도 잠시 쉬어가라는 뜻으로 생각하는 긍정적인 사람. 그리고 그 밝은 긍정성을 다른 사람들에게도 가르쳐주는 사람. 뮤지컬 보는 것만큼 시사 프로그램 보는 것도 좋아하는 사람. 공부하는 역도선수가 되고 싶다며 영어 공부도 소홀히 하지 않는 성실한 사람. 폴라로이드를 늘 갖고 다니며 지인들의 모습을 직접 찍어주길 즐겨하는 사람. 손으로 만든 카드를 선물하며 감동도 함께 선사하는 사람.



제가 아는 미란씨는 바로 이런 사람이랍니다. 어때요? 참 멋진 사람이지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