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레나의 꿈의 구장/신나는 스포츠 세상

내가 아는 장미란, 마음씨도 금메달

Helena. 2008. 8. 17. 02:33
미란씨가 인상 1차 시기를 앞두고 있을 때, 전 회사 사무실에 앉아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TV 속 그녀 모습을 지켜봤습니다. 어찌나 긴장이 되던지요. 미란씨 얼굴에서도 살짝 긴장이 느껴지더군요. 끙, 하는 소리와 함께 130kg을 들었을 때 전 잠시 멈췄던 숨을 내쉈습니다. 그녀가 인상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고, 다시 용상에서 세계신기록을 작성하며 금메달을 확정짓는 그 마지막 순간까지, 저는 숨조차 제대로 쉬지 못한 채, 손바닥을 쥐락 펴락 하며 지켜봤습니다.

그리고 용상 마지막 3차시기를 세계신기록으로 마감한 순간, 미란씨는 바벨 앞에서 털썩 주저앉은 채 감사기도를 드리더군요. 4년 전, 그러니까 아테네올림픽에서 처음 그녀와 만났을 때도 그녀는 그렇게 무릎 꿇고 기도 드렸죠.

어려운 날들을 이겨내고, 결국은 꿈을 이뤄낸 미란씨가 너무 장하고 대견스러워서, 또 언젠가 제게 했던 그 말이 생각나. 결국 눈물을 흘리고 말았습니다.

“저는 2004년 때만 해도 올림픽이 어떤 대회인지도 몰랐어요. 그냥 나가서 시합하면 된다고 생각해서 크게 긴장도 안했어요. 그런데 이제는 올림픽이라는 게 어떤 건지 아니까 걱정도 되고 두려움도 있고 그래요. 반면에 노련미가 많이 생겼기 때문에 기대도 되지만 두려움이 더 많죠. 왜냐하면 무대 위에 올라가면 누가 대신 해주는 게 아니라 내가 혼자 들어가서 들어야하니까. 솔직한 마음으로 부딤이 많이 되죠. 주변에서 기대를 많이 해주시니까요. 기자분들이 그러더라고요. 종합대회 콤플렉스라고. 제가 세계선수권에서는 우승을 여러 번 했지만 아시안게임이나 올림픽에서는 금메달을 못 땄잖아요. 정작 사람들이 관심갖는 건 종합대회니까 그 기대치를 충족시켜줘야하는데 아쉬움을 안겨드릴까봐 걱정돼요.”

그래서 혹시라도 안부를 묻는 제 작은 인사가, 미란씨에게는 부담이 될까봐, 베이징에 가는 그날까지 전 아무 말도 하지 못했습니다. 잘하라는 말조차 짐이 될까봐 특별한 인사 없이 베이징에 가는 그 뒷모습을 조용히 바라봤죠. 제가 할 수 있는 건 다만 기도뿐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고보면 처음 만났을 때부터 미란씨는 참 어른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 이야기를 집중해서 들어주던 그 자세가 좋았고, 다소 썰렁했던 제 농담 앞에서도 참 사람좋게 웃었지요. 헤어지기 전 가방에서 폴라로이드 카메라를 꺼내 그날 함께 보낸 시간들을 담던 그 세심한 마음도 나는 참 좋았습니다.

“역도는 아버지가 시켜서 하게 됐어요. 중1 때부터 권유했는데 솔직히 싫잖아요. 그러다 엄마랑 약속한 게 있었는데 그걸 지키지 못했어요. 거의 도살장 끌려가듯이 가서 억지로 시작을 했어요. 그렇게 시작 했는데 처음엔 많이 힘들었지만 자세 배우는 것도 재밌고 기록도 금방금방 느니까 재밌게 시작했어요. 운동하면서 그만두고 싶을 정도로 힘든 적은 없었어요. 사실 전 제 또래 여자아이들처럼 날씬하지도 않았고 예쁘지도 않았어요. 그렇다고 공부를 남들보다 잘하는 것도 아니었어요. 정말 잘하는 게 아무 것도 없었고 내세울게 아무 것도 없었는데 역도를 하면서,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응원을 받으면서, 또 그 사람들에게 나라는 존재가 희망이 되고 기쁨을 줄 수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됐을 때, 정말 역도하길 잘했다고 생각했어요. 제가 사람들에게 알려진 계기가 아테네올림픽 때였잖아요. 그때를 못 잊을 것 같아요.”

그날 우리는 도산공원을 함께 걸었고 근처 카페로 자리를 옮겨 국화향이 나는 따뜻한 차를 마셨죠. 운동선수 장미란과 인간 장미란의 간극에 서서 참 많은 이야기를 나눴죠. 예쁘지도, 또 공부를 잘하지도 않던 내가 누군가에게 희망의 존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에 감사하다는 그 말이 가슴에 참 와닿았습니다.

그리고 그렇게 시작된 인연을 참 소중하게 생각해주던 미란 씨였습니다. 가끔씩 혼자 태릉선수촌 숙소에 있을 때면 그녀는 제게 손수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묻곤 했죠. 그때마다 참으로 호탕한 웃음소리로 제 마음을 시원하게 만들어줬죠. 무엇보다 가장 고마웠던 순간은 지난 6월16일, 제 생일날입니다.

생일인데 일을 해야한다며, 속상한 마음을 토로했을 때, 미란씨는 밥을 사주겠다며 약속시간을 잡자고 했죠. 베이징올림픽이 2달도 채 안남았던 때라 조심스러웠습니다. 저와의 만남이 그녀의 소중한 시간을 방해해서는 안됐으니까요. 괜찮겠냐고 3번을 물었죠. 그녀는 웃으며 밥을 먹어야 운동을 하는 것 아니겠냐고 응수했죠.

그녀가 즐겨찾는 이탈리안레스토랑에서 함께 점심을 먹으며 또 한번 즐거운 데이트 시간을 가졌습니다. 제 생일을 쓸쓸한 날이 아닌 세상에서 가장 즐거운 날로 만들어준 것도 고마웠는데, 그녀는 손수 만든 카드와 손수건을 선물로 주며 또 한번 날 감동의 바다에 빠드리고 말았죠. "요즘 많이 힘든 것 같은데 힘내요."라던 그 마지막 문장을 저는 아직도 잊지 못합니다. 힘내라는 말은, 오히려 제가 해주고 싶었던 말이었는데 말이죠.

“아시안게임 가기 10일 전에 허리를 다쳐서 움직이지 못했어요. 어떤 운동이나 마찬가지인데 3일 이상 쉬면 감각을 찾는게 시간이 오래 걸려요. 특히 역도는 어깨나 힘으로 하는 걸로 아는데 세심한 기술이 많이 필요해요. 그런데 일주일 가량 침대에 누워만 있다 갔거든요. 기록도 좋았는데 속상했죠. 그런데 절망하면 뭐해요. 나만 힘들어지는데. 연습 때 아무리 잘해도 시합 때 잘한다는 보장도 없고요. 나 쉬라고 다치게 됐나보다. 그렇게 생각하고 편안히 마음 가지니까 신기하게 몸이 빨리 낫더라고요.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게 좋은 것 같아요.”

미란씨의 내면에는 참 강한 긍정의 정신이 있었죠. 그러한 정신이 전 지금의 미란씨를 세계 최고의 선수로 만들었다고 생각합니다. 아마 또 많은 사람들은 그런 미란씨의 모습을 지켜보며 많은 것들을 느끼고 배우겠죠.

열심히 노력하고, 간절히 바라고, 주어진 결과를 담담히 받아들이는 그 모든 모습들, 참으로 아름답고 멋졌습니다. 앞으로도 변함없이 지금의 모습 간직하세요.






아, 참 미란씨.“우리 아빠가 우스개 소리로 인상이 기술을 많이 요하니까 인상 쓰면서 하는 게 인상이고 용상은 용쓰면서 하는 게 용상이라고. 기억하기가 쉽잖아요. 요령이죠. 용상은 요령도 필요하고 힘도 좋아야해요. 인상은 힘도 좋아야하지만 기술이 더 좋아해요”라고 했던 말이 생각나 경기 말미엔 살짝 웃었어요. 건강한 모습으로 돌아와 한국에서 다시 봐요. 또 게먹으러 가야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