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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수환 추기경님의 얼굴을 뵐 수 있는 마지막 밤이었던 어제(18일) 저녁. 6시 종이 울리지마자 미리 준비한 두툼한 잠바를 챙기고 회사를 나왔다.

어제 오후 명동성당을 찾았던 엄마는 2시간 동안 기다린 끝에 추기경님을 뵙고 집으로 돌아왔다고 하셨다. 말이 2시간이지 실제로는 꽤 긴 시간이라 추위를 심하게 느낄 거라며 단단히 채비하라는 조언을 해주셨다. 엄마의 말씀을 떠올리며 장롱 속에 모셔뒀던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고 갔다.


명동역에 내린 시간은 오후 7시. 9번 출구 밖으로 긴 줄이 보이길래 '설마 이줄이 전부 명동성당을 가기 위한 줄일까?'라는 의문이 들었다. 설마했는데 이럴수가. 명동성당을 향한 줄이 맞았다. 그 길의 끝을 찾기 위해 5분 가량 걸은 뒤 겨우 끄트머리를 찾을 수 있었다. 추기경님을 뵙기 위한 긴 기다림은 그렇게 하여 시작했다.


지인 없이 홀로 추도 행렬에 동참했던 난 느릿느릿 행진이 진행되는 가운데 이런 저런 상념에 잠겼었다. 추기경님을 처음 뵜을 때 감히 "추기경님, 너무 좋아합니다. 싸인해주세요~"라던 21살 어린 내가 생각났다. 그것도 노랗게 탈색한 머리를 하고선 싸인과 사진촬영을 부탁드려 '쟨 뭘까?'라는 어른들의 시선을 받았었지. 그 뒤 6개월 뒤 추기경님을 다시 뵙게 되었을 땐 삭발한 머리를 기른 지 얼마 안돼 남자같은 스포츠 머리를 하고선 나타나 '쟨 누구길래 추기경님을 귀찮게 하는 걸까?'라는 시선을 다시 한번 받기도 했고.

옆에 계시던 신부님은 추기경님이 피곤해하시니 인사만 하고 가라 하셨지만 당시 추기경님은 허허 웃으시며 괜찮다며 내게 당신의 묵주와 열쇠고리를 선물로 주셨다. 추기경님 방 서랍에는 나무로 만든 묵주와 추기경님의 사진이 담긴 열쇠고리, 그리고 손 안에 쏙 들어가는 사진들이 수십개가 있었는데 추기경님을 뵈러 온 사람들에게 주기 위한 선물로 보였다. 그때도 난 혼자 사는 늙은 고모가 생각나 감히, 묵주를 하나 더 주실 수 있냐는 부탁까지 했었고. 집에 돌아와선 그 묵주가 너무 소중해 뜯지도 않은 채 서랍 속에 고이 모셔두었다.  지금까지 말이다. 이제는 고인이 되신 추기경님을 뵈러 가는 길, 묻혀 두었던 기억들은 그렇게 수면 위로 하나 둘씩 떠올랐다. 기다리는 시간이 즐거웠던 까닭이다.

2시간 쯤 지나자 슬슬 한기가 느껴졌다. 두툼한 잠바를 입었음에도 내 몸은 춥다고 외치고 있었고, 특히나 구두를 신은 발은 얼얼해 감각을 느낄 수 없었다. 3시간이 가까워졌을 땐 칼로 베는 듯한 통증마저 느껴졌다. 그러나 이 행렬에서 이탈할 수는 없었고 옆에서 묵주기도를 외는 아주머니들의 낮은 음성을 들으며 한 걸음 한 걸음씩 명동성당을 향해 갔다.

올라가는 길목마다 자원봉사자들이 고생이 많다며 따뜻한 차를 건네주었고 내 뒤에 계신 아주머니들, 실제론 많이 연로하셔 할머니에 가까운, 그 분들을 향해선 "조금만 참으면 추기경님을 뵐 수 있었습니다"라는 말씀과 함께 추운 손을 잡아주며 초콜렛을 주기까지 했다. 순간, "고맙습니다. 서로 사랑하세요"라던 추기경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추기경님 안에서 우리는 그렇게 사랑을 실천하고 있었다. 그래서 더 추기경님께 고마움을 느끼던 순간이었다.

수 시간 기다리다 보면 화장실 생각도 날 터. 특히나 나이가 지긋하신 분들에게는 더 어려웠을 시간이다. 고맙게도 명동성당 가는 길가에 있는 음식점과 카페들은 '화장실 마음껏 쓰세요' '화장실 사용 가능합니다'라는 문구를 입구에 붙여 사람들에게 화장실을 내주는 성의를 보여줬다.

그리고 기다린지 3시간 30분이 되었을 때 마침내 명동성당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자원봉사자들과 신부님들은 아직도 뒤에서 기다리고 있는 사람들이 많으니 조의는 목례로 간단히 부탁드린다는 이야기를 반복해서 외치고 있는 중이었다. 그런데 우리보다 더 오래 바깥에 있었을 그분들의 얇은 겉옷이 눈에 띄더라. "신부님. 고생 많으십니다"라고 인삿말을 건네자 신부님은 깍지 낀 손을 한 채 맑은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신부님이 나눠준 검은 리본을 왼쪽 가슴에 부착한 채, 잠바를 벗고 옷을 가다듬은 뒤 드디어 명동성당 내부로 들어갔다. 3시간 45분만에 들어선 순간이었다. 들어서자 제단 앞에 두 손을 가지런히 모은 채 잠들어 계신 추기경님이 보였다. 기억보다 더 작고, 또 흰머리도 더 많던 추기경님은 사람들의 연도를 들으며 그렇게 긴 잠 속에 빠진 듯한 모습으로 누워계셨다. 눈물이 날 줄 알았는데, 이 짧은 3초를 영원히 기억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들었다. 잊고 싶지 않아 나가는 문까지 가면서도 내내 뒤를 돌아 추기경님의 마지막 모습을 망막에 담았다. 잊지 말아야지. 기억과 마음과 심장에 아로새긴 채 살아야지.

4시간에 가까운 기다림. 그리고 3초간의 만남. 추위와 싸우며 보낸 긴 시간이었지만 아쉬움보단 아련함이 더 많았던 시간이었다. 성당에서 나와 2000원을 주고선 양초를 샀다. 내 앞에 서 있던 모르는 이가 자신의 촛불로 내 양초에 불을 지펴주는데 사랑은 이렇게 시작은 작은 손길이지만 넘어가고 넘어가는 과정에서 넓고 큰 힘을 발휘하며 전파되는 것이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그래서 성모마리아상 앞에 불 붙은 양초를 고이 놓은 뒤 추기경님께 감사기도를 드렸다.

추기경님의 선종 이후 내 삶과 내 주위 사람들을 더 아끼며 사랑하며 살겠다는 다짐을 하게 돼 감사드린다며. 추기경님의 마지막 말씀대로 아낌없이 더 사랑하며 살겠다고 말씀드리며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자정이 훌쩍 넘은 시간, 집에 도착하자 쇼파 위에서 선잠을 주무시던 팔순이 넘은 할머니가 인기척에 눈을 뜨는 모습이 보였다. 오랜만에 할머니 옆에 앉아 주름진 살로 뒤덮인 마른 손을 잡아 봤다. 추기경님의 말씀처럼 우리가 서로 사랑한다는 의미는, 그리고 사랑하세요 라는 말의 속뜻은 이렇게 삶 속에서 조금씩, 실천하는 가운데 깨닫는 것이겠지. 하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오랜만에 깊이 잠들 수 있던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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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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