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220.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람이 차가웠고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폐도 같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택시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바라고, 기도하고, 노력하며 꿈꾸었던 것들. 그것들 중 내게 왔던 것은 무엇일까. 칼바람을 맞으며 서 있어도 택시는 오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재수 좋게 택시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순간과 내 인생은 왜 그리 겹쳐 보였던 것일까.

결국에 평소보다 2배의 요금을 지불하고 나서야 택시를 탈 수 있었고, 집으로 가던 길 기사님께 물었다. 아산병원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죠? 10분입니다. 그렇게 가까워요? 그러면 그쪽으로 먼저 좀 가주실래요?

자정이 넘은 시간. 슬픈 내 마음이 이끈 곳. 종현의 빈소가 안치된 아산병원 장례식장이었다.

빈소 안에 들어가니 민호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온유와 태민, 그리고 종현의 어머니가 계셨다. 세 사람은 이야기 중이었고, 처음 한 걸음 디뎠을 때 온유와 태민이 나를 슬쩍 봤는데 모르는 얼굴이라서 그런지 이내 고개를 돌린 채 하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따뜻하면서도 아리고 슬펐던 그날의 풍경이란.

종현의 어머니는 앉아 계셨고, 그 맞은편에 서 있던 온유가 큰 손동작을 하며 어머니께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 오른쪽에 앉아 있던 태민은 몸을 어머니 쪽으로 돌린 채 간간이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었다.

모르는 누군가가 봤다면 어머니와 두 아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서로에게 익숙했고, 그래서 편해보였다. , 이렇게나 가까운 사이였구나. 슬픔으로 뒤덮인 그 공간에서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찬찬히 살펴본 온유와 태민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항상 반짝반짝하던 눈매는 그때의 빛을 잃은 모습이었고, 한없이 작디작은 종현 어머니 어깨로 시선이 갔을 때 내 마음은 아려왔다.

노란 국화를 영정 위에 놓는데, 영정 사진 속 종현은 참 예쁘게 웃고 있었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던 나에게 종현은 참 잘 웃는, 샤이니에서 가장 활기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미쳐 몰랐구나. 그 검푸른 슬픔을, 그 절망과 우울을.

하지만 1년 남짓 우울증에 걸려봤던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는 건 우울증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사람을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병이다. 모든 것이 다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종현의 마음을 이해한다. 자살은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라고 하지만 적어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매일 밤 자리에 누웠을지만큼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영정사진 앞에서 명복을 비는 그 시간, 나는 천국이 있다면, 제발 천국에 가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만 반복해서 하다 눈을 떴던 것 같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민호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만날 때마다 항상 먼저 악수해주던 민호의 손이 이렇게나 차갑고 건조한 것은 처음이었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 와중에 새벽임에도 식사하고 가라며 테이블로 안내해주시며 챙겨주신 SM 관계자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작년 겨울 강원FC1부리그 승격이라는 기적의 드라마를 쓰고 난 뒤 민호가 다시 강원FC 숙소가 있는 오렌지하우스를 찾아온 적이 있다. <내게 남은 48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을 찍고 있었는데, 인생에서 딱 이틀의 시간이 남았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모습을 찍는 리얼리티 프로였다. 그때 민호는 강릉에 내려와 아버지 최윤겸 감독님과 시간을 보냈고, 그 덕분에 나 역시 본방사수를 하며 그 프로를 챙겨보게 되었다.

그때 민호가 가상으로 보낸 삶의 마지막 장소는 샤이니의 연습실이었다. 온유에게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을 때, 당시 온유는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보다 오래 지낸 사람이기에 네가 없어지면 삶의 일부분도 없어지는 것 같아. 그만큼 소중한데 왜 먼저 가야 했는지 배신감도 들고 공허함도 들지 않을까, 라면서.

온유의 말처럼 샤이니는 가족이었고, 서로의 가족은 또 각자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날 밤의 풍경이 그랬으니까. 종현은 없었지만 그의 어머니를 위해 온유와 태민, 그리고 민호는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기에. 단지 그룹의 멤버였기에 상주 역할을 한 것이 아님을 나는 직접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너희들은 진짜 가족이었구나. 그런데도 우울감과 슬픔,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던 종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얼마나 스스로를 탓하고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0년 전쯤, 그러니까 샤이니가 데뷔하던 2008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때가 생각났다. 어릴 적 내 추억에 있어 절반을 차지했던 나의 할아버지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며 약을 삼킨 뒤 병원에 실려가신 적이 있었다. 불면증이 심하다며 병원에서 받아온 수면제를 모으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음에도, 나도, 가족 중 누구 하나도, 그것을 눈치재지 못했다.

위세척을 하고 나서 정신이 드신 할아버지는 너무 힘드니 이제 그만 좀 놓아달라는 말씀만 반복해서 하셨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한 감정은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었다. 할아버지의 깊은 슬픔을 알아보지 못한 내가 미웠다.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곡기를 끊으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며 책망할 때가 많다. 왜 그때 나는 몰랐던 걸까, 라면서.

상주 역할을 맡았던 샤이니 멤버들의 마음 역시 그랬을 것 같다. 가족을 잃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미칠 것 같은 괴로움은 눈도 귀도 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잃고 나서 나는 세수를 하다가도, 밥을 한 숟가락 뜨다가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도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쏟으면서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버스를 탔고, 회사에서 타자를 치다가도 눈물이 터져 말 그대로 눈물 방울 방울을 뚝뚝 흘리며 일하는 날이 많았다.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은 말은 못해준 것들 투성이라며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것.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그렇지 못해 스스로를 힘들게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함께 웃고, 감정을 공유하고, 추억을 쌓았던 그 시간을 떠올릴 때면 아주 잠시지만 같이 있는 것 같아 행복했다. 할아버지도 내가 그렇게 지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종현 역시 너희만큼은 부디, 아니 무조건 행복하기를 원할 것이다. 세상과 이별하기 전 할아버지께서 무조건 행복해야해, 알겠지? 라고 내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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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야근하던 중 샤이니 종현의 자살 소식을 들었다. 아이돌에 관심 없는 나이가 됐지만 종현의 자살 소식 앞에선 그렇지 못했다.

내가 모셨던 최윤겸 감독님의 막내 아들이 샤이니의 랩퍼 민호다. 감독님은 항상 기승전축구 그리고 민호였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샤이니 이야기도 듣게 됐고 당시엔 민호도 자주 경기장에 왔던 터라 어느새 내게 샤이니는 가까운 동네밴드 같은 느낌이었다.

민호는 참 잘 자란 바른생활 청년이었다. 머리부터 발끝까지 예의가 몸에 배어있었다. 아빠 직장에 와서 그런 걸까. 처음엔 연예인이라는 색안경을 끼고 의심의 눈초리로 민호를 봤었다. 그런데 몇 번 만나고 나서야 알게 됐다. 민호는 그냥 착한 아이였다.

감독님께 어쩜 그렇게 아들을 잘 키우셨냐며 참 선한 느낌이 좋았다고 하니 허허 웃으시며 SM 관계자분들도 그렇게 말씀하신다고 하셨다. 아이들이 참 착해서 혈기왕성한, 피 끓는 청춘임에도 불구하고 어디 내놓아도 걱정 안 된다고 그랬단다.

감독님도 처음엔 그게 잘 이해되지 않았다고 한다. 그러다 언젠가부터 SM이 활동비 정산을 매달 하는 것으로 바뀌게 되면서 제대로 알게 되었다고. 아무래도 비용 정산 때문에 부모들끼리 만나다보면 어른의 만남이기에 매번 조용히 넘어간다는 건 아무래도 힘들 것이다. 왜 우리 애는 이것밖에 못 받아요? 왜 이번에 우리 아들은 개인 활동이 미뤄졌나요? 혹 그런 이야기들을 세게 하시는 부모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샤이니 멤버들의 부모들은 그렇지 않았다. 항상 우리 부족한 아들을 가르치고, 키워주고, 돈까지 벌게 해주고, 팬들에게 많은 사랑까지 받게 도와줘서 감사하다는 인사만 늘 가득한 자리였다고 한다. 감독님은 아들 동료의 부모님들을 보고 나서야 왜 그 아이들이 그리 선한지, 어떻게 그리 서로를 위하는지 알게 되었다고.

민호가 드라마를 찍을 때면 온유도 뮤지컬 해야 하는 게 아니냐고 하고, 그러면 또 온유는 이번엔 종현의 싱글이 나올 때가 되지 않았냐는 식으로 서로의 개인 활동까지 챙기면서 남다른 우정을 자랑했다고 한다. 데뷔한지 거의 10년이 다 되어가는데 민호가 여전히 숙소 생활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그 때문이었고.

그 얘기를 익히 들어 알고 있던 나였기에 강원FC 유니폼을 민호에게 선물하면서 다른 멤버들 것까지 챙겨줬었다. 그때 민호는 다른 멤버들이 너무 좋아한다며 너무 감사드린다는 말을 몇 번이고 내게 했었다.

민호를 처음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던 중 종현의 첫 싱글이 나왔을 때 정말 기뻤다는 부분에서 뭐가 그렇게 좋았냐고 물었던 적이 있다. 그때 민호는 형이 앨범 준비하면서 얼마나 고생했는지 알기 때문이라고 그랬고, 감독님은 샤이니 아이들이 서로를 챙겨주는 마음은 정말 부모 자식 사이를 떠나 참 예쁘다고 하셨던 기억이 난다.

직접 이야기를 나눈 적은 없지만 민호에게서 들은 종현은 그랬다. 남다른 음악관을 가졌던 심오한 바다 같은, 그런 청년이었다.

음악을 향한 고민이 많았고, 그만큼 노력했고, 또 마음도 여렸다. 도쿄돔을 가득 채운 팬들의 넘치는 사랑에 고마워서 펑펑 울었을 정도였으니까. 우리 아들이랑 키, 태민, 종현이 부둥켜안고 울고 난리도 아녔다는 감독님의 전언 역시 생각난다.

그래서 마음이 아프다. 얼마나 힘들었던 거니. 꽃다운 나이에 스스로 뿌리를 뽑아내기까지 너는 얼마나 멍들어있었던 거니.

삼가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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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최윤겸 감독님께서 멀리, 터키로 떠나셨습니다. 터키 2부리그에 있는 “카이크루 리제스포르”라는 이름마저 생소한 클럽에서, 앞으로 코치로 계실 것이라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전부터 외국에 떠날 채비를 하신다길래 저는 가까운 중국이나 일본으로 떠나실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토록 먼 나라로 가실 줄은 정말 꿈에도 몰랐습니다.


작년 이맘 때 쯤, 대전 숙소를 방문했던 그날 저녁이 생각나는군요. 저녁 식사 후 감독님은 저를 숙소 뒤편으로 데려 가셨죠. 숙소 뒷편에 이런 곳도 있었구나, 하는 찰나에 선생님의 보물이 눈에 띄었습니다. 아, 감독님께서는 이걸 보여주시기 위해 저를 여기까지 데리고 가신 거였더군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감독님을 올려다보며 웃었습니다.

“저게 그 비바 K-리그에 나왔던 그 토끼들이군요.”
“그렇죠. 참 예쁘죠?”
“네. 감독님께서 직접 먹이 주시면서 키우는 것도 알고 있어요.”
“그렇죠. 얘네들이 어느덧 새끼까지 낳고 이렇게 늘었네요.”
“자식처럼 잘 키우셨어요.”
“그런데 내 자식 같은 우리 대전시티즌 아이들은 한 번도 토끼를 보러 안 오네요.”
“정말요? 한 번도 안와요? 그래도 한번은 올 수 있을텐데… 아쉽네요.”
“원래 그때는 하나만 보게 돼있어요. 당장 경기 나가서 이기는 게 중요하니까. 나 역시 그게 아쉽죠. 조금만 여유를 갖고 주위를 둘러보면 좋으련만. 삶의 여유를 갖는다면 세상이 다르게 보일 수 있을텐데 우리 아이들은 아직 그걸 모르네요. 물론 하나에만 모든 걸 바치면서 뛰고 있다보니 그럴 수밖에 없겠지만요.”
“언제까지 그렇게 사는 거죠? 영원히 안 바뀌나요?”
“바뀌죠. 선수 생활이 끝나면 다들 바꿔요. 그런데 그때 바뀌는 건 너무 늦는 것 같아요. 조금만 더 일찍 눈을 떴으면 좋으련만.”
“저도 가끔 그런 생각 하는데. 감독님도 그런 생각하셨군요.”
“감독님이 우리 애들 많이 도와주세요. 하나만 아는 녀석들이니까. 옆에서 좋은 이야기도 많이 해주시고요. 부탁해요. 내 자식 같은 아이들이니까.”
“감독님이 부탁 안하셔도 감독님 밑에서 자라는 선수들이니까 분명 감독님 마음 다 알 거예요. 제가 아는 대전시티즌은 그런 팀이에요.”
“그렇게 생각해주니 고맙네요.”
“그런데요, 저 오늘 숙소 처음 와봤는데 주위 풍경들이 참 좋아요. 선수들은 다들 피 끓는 청춘이니까 시골 구석에 있다고 투덜댈 수도 있겠지만, 음… 뭐랄까? 시골에서 살던 어린시절이 생각나요. 무척 아늑하고 편안해요. 나중에 결혼하면 신랑한테 국곡리에서 살자 그럴까봐요. ^^”
“가끔 오면 좋지 만날 있어봐요. 젊은 사람들은 살기 힘들어요.”
“아닌데요. 풀 냄새, 나무 냄새, 꽃 냄새… 너무 좋은데요. 여기 온지 겨우 1시간 밖에 안됐는데 벌써 정들었어요.”
“허허허.”

그날, 저녁바람은 참 따뜻했어요. 어느새 노을이 지고 있었고 주홍빛으로 물든 햇볕은 은은하게 감독님의 얼굴을 감싸고 있었죠. 우리 아빠 같던 감독님의 그 인자한 웃음이 좋았고 바람에 실려 오던 자연 냄새가 좋았어요. 기분 좋게 마른 나무 냄새 또한요. 그렇게 머리를 쓸어 넘겨주던 그 바람을 어떻게 잊을 수 있을까요. 그날의 기억을 모두 담고 있는 그 바람을 어찌 잊을까요.

인터뷰를 마친 뒤 인사를 드리기 위해 방에 찾아갔을 때 감독님은 홀로 누운 채로 텔레비전을 보고 계셨어요. “기자님, 조심히 들어가세요”라며 언제나처럼 존댓말로 제게 먼저 인사해주시던 감독님의 그 인자함에 저는 또 한 번 감동 받았죠.

그날 밤, 숙소를 나오던 제 머리 위로는 수많은 별들이 은가루를 뿌리며 떨어지고 있었고 제 마음은, 앞으로도 오랫동안 국곡리의 밤하늘을 잊지 못할 것 같다고 속삭였죠. 아주 오랫동안 말이에요. 그 순간, 개골개골 우렁차게 울어대던 개구리들의 합창 소리는 어찌나 씩씩하던지요. 창문 밖으로 흘러나오던, 최신 인기 가요를 흥얼흥얼 따라 부르던 어느 선수의 흥겨운 목소리는 또 어떻고요.

그날 이후로 다시는 감독님을 볼 수 없게 됐지만 지금도 그날 저녁의 기억은 여전히 제 마음 속에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전화를 드렸을 때 감독님께서는 “우리 아이들을 잘 부탁한다”고 말씀하셨죠. 잘하면 아낌없이 칭찬해주고 늘 따뜻한 시선으로 봐달라고 말이죠. 무엇보다 격려가 필요한 아이들이라고 마지막까지 말씀하셨죠.

작년 이맘 때 쯤 감독님의 둘째 아드님이 SM에서 가수 준비 중인 ‘연습생’이라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팬들은 제게 “우리 감독님을 닮아 너무 멋지다”고 제게 말했죠. 늘 말로만 듣던 둘째 아드님이 이제 샤이니의 ‘민호’로 모두에게 알려지고 있군요.

터키로 떠나시기 전, 아들들에게 좋은 또 멋진 아버지가 되고 싶다던 감독님의 말씀이 생각납니다. 하지만 감독님은 대전을 사랑하던 모든 사람들에게 여전히, 언제나, 그리고 앞으로도 늘 멋진 아버지라는 사실, 부디 잊지 마세요. 제게도 감독님은 존경하는 또 다른 아버지이시니까요.

이제는 가요프로그램을 보는 순간에도 감독님이 생각날 듯합니다. 모쪼록 건강히 그곳에서 또 다른 축구인생을 펼치시길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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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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