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항전 또 무실점 수비로 웃는다.
최근 포항 스틸러스만 만나면 기분 좋은 결과물을 냈던 강원 FC다. 이번에도 포항을 상대로 웃음을 되찾고자 한다. 강원은 13일 오후 7시 강릉종합경기장에서 ‘현대오일뱅크 K리그 2011’ 21라운드 포항과의 홈경기를 갖는다. 강원은 올 시즌 K리그 2/3를 마친 가운데 1승 3무 16패로 순위표 맨 아래에 머물러 있다. K리그 7경기 연속 패했다. 그러나 아직 시즌을 포기할 단계는 아니다. 10경기나 남아있다.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 굳은 의지로 아름다운 갈무리를 해야 한다.


이런 가운데 포항을 만나게 되는 건 나쁘지 않은 일이다. 2위 포항을 얕잡아 보는 건 아니다. 강원이 유독 포항과 겨룰 때마다 힘을 냈기 때문이다. 강원은 포항과의 역대 전적에서는 1승 1무 3패 3득점 7실점으로 뒤져있다. 그러나 최근 2차례 맞대결에서는 1승 1무로 앞서 있다.

지난해 11월 7일 K리그 마지막 라운드 홈경기에서 서동현과 안성남의 연속골에 힘입어 2-0으로 승리해 유종의 미를 거뒀다. 그리고 지난 4월 30일 포항 스틸야드에서 열린 K리그 원정경기에서는 골키퍼 유현의 신들린 선방 속에 0-0 무승부를 거뒀다.

최근 맞대결에서 주목할 건 무패 행진이 아닌 무실점 행진이다. 포항은 K리그에서 막강한 공격력을 자랑하는 팀이다. 올 시즌에도 39득점(경기당 평균 1.95득점)으로 전북 현대(44득점)에 이어 최다 득점 2위를 기록하고 있다.

모따, 아사모아, 황진성, 노병준, 조찬호, 김재성 등 포항의 공격진은 화려할 뿐 아니라 실속도 있다. 무득점 경기는 2번 밖에 없으며 3득점 이상 경기도 5차례나 됐다. 그런 포항의 공격력을 무력화시켰던 강원 수비진이다.

강원은 올 시즌 포항과의 첫 맞대결에서 비기면서 시즌 첫 승점을 땄다. 연패 행진도 마감했다. 당시 연패가 7경기였는데 재밌게도 강원의 현 주소와 딱 맞아 떨어진다. 반면 포항은 K리그 7경기 연속 득점 행진을 마감하며 시즌 첫 무득점 경기로 마쳤다.

강원이 포항을 상대로 승점을 쌓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실수를 줄여야 한다. 그리고 전, 후반 시작 후 초반 10분 동안 집중력을 갖고 무실점 수비를 펼쳐야 한다. 강원은 최근 이른 시간에 실점하는 경향이 짙었다. 상대 선수들이 잘 한 것도 있으나 그 이전에 강원 선수들의 작은 실수가 실점의 빌미를 제공했다.

그러면서 효율적인 역습 패턴으로 포항 수비를 흔들어야 한다. 포항은 23실점으로 경기당 평균 실점이 1골을 넘는다. 최근 K리그 7경기에서 12골이나 허용했으며 무실점 경기는 1번 뿐이었다.

강원은 정경호가 부상에서 회복돼 돌아와 전술 및 선수 운용의 폭이 넓어졌다. 징계가 풀린 김진용도 돌아오면서 김영후, 서동현, 윤준하, 이정운 등과 함께 날카로운 공격을 펼칠 수 있게 됐다. 권순형의 강력한 중거리 슈팅도 강원의 주요한 득점 경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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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킬러가 없다.”
2004년 정규리그 우승 이후 수원은 3년 간 정상을 밟지 못했다. 차범근 감독은 결정적 ‘한방’으로 팀을 구원하는, 외인 특급 골잡이의 부재를 가장 큰 이유로 꼽았다. 2004년 K리그 최초의 외국인 MVP 수상자 나드손 이후 이따마르, 산드로, 올리베라, 실바 등 많은 용병들이 빅버드를 찾았지만 이들 중 기대에 부흥한 선수는 보이지 않았다. 아픈 기억의 절정은 2005년 챔피언결정전에서였다.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수원은 상대 ‘특급 골잡이’ 모따에게 2골을 허용했고, 모따의 ‘환상쇼’에 힘입어 성남은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었다.


홈에서 열린 2차전에서 수원은 상대 ‘특급 골잡이’ 모따에게 2골을 허용했고, 모따의 ‘환상쇼’에 힘입어 성남은 우승컵을 손에 쥘 수 있었다.차범근 감독의 머리에 무슨 생각이 들었을까. 그해 겨울 잘 키운 용병이 필요했던 수원은 외인 공격수 찾기에 골몰했고, 2007년 고민 끝에 간택된 이가 바로 분데스리가 출신의 브라질리언 에두다.

에두의 첫 시즌 기록은 34경기 7골4도움(리그 23경기 6골3도움/컵 11경기 1골1도움)으로, 일단 숫자상으로는 무난했다. 하나 골이 곧 실력의 척도로 매겨지는 공격수의 세계에서 에두의 첫 시즌 기록은 평균을 조금 넘는 수준에 불과했다. 더구나 승부처였던 포항과의 플레이오프전에서 90분 내내 슈팅 1개에 그치는 부진한 모습으로 쓸쓸히 시즌을 마감하고 말았다. 그러나 마땅한 대안을 찾지 못한 수원은 올 시즌 그를 재신임했다.

실상 이러한 환골탈태를 예상이나 했을까. 재신임된 에두는 달라져있었다. 올 시즌 에두가 거둔 성적은 36경기 15골7도움(리그 25경기 12골5도움/컵 11경기 3골2도움)으로, 득점 도움 공히 팀 내 1위에 올랐다. 일단 지난 시즌과 비교해 2배 이상 늘어난 득점이 눈에 띄며 도움이 늘었다는 사실 역시 고무적이다. 신영록, 서동현, 배기종 등 파트너와의 호흡이 제대로 이뤄졌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에두는 전체 득점 랭킹에서도 4위에 오르며 지난해보다 13계단 올라가는 괴력을 발휘했다. 여기에는 남다른 ‘성실함’이 한몫했다. 경고 누적으로 정규리그 마지막 경기 인천전에 나서지 못한 것을 제한다면, 올 시즌 에두는 리그 전경기(25)에 출전했다. 이는 큰 부상과 슬럼프 없이 시즌을 보냈다는 것을 의미하고, 바꿔 말하면 그만큼 자기관리능력이 나아졌다는 것을 뜻한다. 에두의 꾸준한 출장은 유난히 부상 선수들이 많아 ‘병동’으로 불렸던 수원에게 천군만마와도 같았다. 덧붙이자면 정규리그 내내 꾸준한 모습을 보여준 선수는 에두(25경기) 이운재(26경기) 조원희(23경기) 정도에 그친다.

높은 수준의 팀 공헌도 또한 눈여겨 볼만 하다. 7월5일 인천전 이후 에두는 7경기 연속 골 침묵에 빠졌는데, 날개를 잃었으니 팀 성적이 좋을리 만무했다. 결국 수원은 2승1무4패에 그치며 근 4개월 간 지속됐던 독주체제에 종식을 고하고 말았다. 그러나 이후 에두는 9월27일 전북전에서 8경기 만에 골맛을 보았고 10월5일 대구전, 10월18일 광주전에서 연달아 골을 성공시키며 수원이 리그 막판 선두경쟁에서 유리한 고지를 차지하는데 기여했다.

180cm 80kg이라는 다부진 체격에서 느껴지듯 전형적인 인파이터형 공격수다. 순간 스피드를 이용한 저돌적인 돌파와 정확한 위치선정, 파워와 결정력을 동시에 갖춘 슈팅 등이 인상 깊다. 여기에 공간을 만들어주고 동료 선수들에게 득점 기회를 제공해주는 능력 또한 탁월하다. 여타 브라질리언 공격수들과 달리 수비 가담에도 적극적이다.

뿐 만 아니다. 시난 시즌에는 경기 중 인천Utd. 캡틴 임중용과 싸우며 비성숙한 플레이로 물의를 일으키기도 했지만, 올 시즌 단 2장의 경고에 그치며 실력 외적인 면에서도 성숙해진 모습을 보였다. 눈에 띄게 줄어든 파울 수(71개→50개) 또한 완숙된 플레이를 위한 에두의 노력을 짐작케 한다.

아픔을 딛고 ‘더블 크라운’을 노리는 수원 공격의 핵심 키워드로 변신한 에두에게 올 시즌 K리그 최고 공격수의 영예를 선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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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에릭 선수의 첫 골이 드디어 터졌군요. 후반 49분 주승진 선수의 힐패스를 페널티에어리어 왼쪽 지점에서 오른발로 침착하게 성공시키며 K-리그 데뷔골을 기록했습니다. 얼마전 데닐손 선수를 무척 오랜만에 만났습니다. 그때 요즘 대전이 골 때문에 배고플 것 같다고 그 이유가 무엇이냐며 걱정스럽게 물었지요.



(다른 기자들은 데닐손 선수 자신이 고민해야할 문제 아니냐며 비웃었지만 ㅠㅠ 저는 데닐손 선수를 무척 좋아한지라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제 대답은 외국인 선수들이 작년 너희들(데닐손, 슈바, 브라질리아)처럼 제 몫을 하지 못하는 것 같다, 였습니다. 그런데 에릭 선수가 드디어 골을 터뜨리며 청신호를 밝혔네요. ^^

4월19일 성남전에서 대전은 0-3으로 패했습니다. 2006년 후기리그 개막전에서의 아픔이 생각나더군요. ㅠㅠ 작년 5월 성남 원정경기에서는 0-0으로 경기를 마쳤는데 차라리 그때가 그립더군요. 에릭 선수는 전반 43분 이여성 선수와 교체돼 나갔습니다. 경기 후 만난 에릭 선수는 교체 이유를 감독이 말해주지 않아서 그 이유는 모르겠다네요. 딱히 몸 상태가 안 좋은 것도, 전반전에서 보여준 자신의 플레이가 만족스럽지 못한 것도 아니었다고 했습니다. 그래도 자신보다는 팀이 먼저이기에, 또 감독의 생각을 존중하기에 전적으로 이해한다고 했습니다. 골을 넣지 못한다는 사실에 크게 부담 갖는 것은 아니라고, 부담이 크면 그만큼 골소식도 늦을 거라며 브라질리언 특유의 낙천성도 보여줬죠.

이날 경기장에 들어서며 관중석을 향해 손을 흔들었는데 그의 시선이 있는 곳으로 고개를 돌려보니 딸과 부인이 와있더군요. 경기 후 딸이 쪼르르 내려와 아빠 품에 쏙 안겼는데, 그의 말에 따르면 5개월만에 만나는 것이라네요. 다시 브라질로 돌아가기 때문에 당분간 또 작별이라며 아쉬워했습니다. 딸 사라가 프랑스어를 할 줄 안다고 해서 고등학교 시절 프랑스어 수업 때 배웠던 기억을 떠올리며 어설프게나마 프랑스어로 말도 걸어봤습니다. ^^ 라커룸 계단에서 기자들과 아빠 에릭이 인터뷰를 하는 동안 아빠 목덜미를 감싸고 있는 사라를 핸드폰 카메라로 찍어준다음 보여줬더니 꺄르르 웃습니다. 그 모습이 너무 예쁜지라 자리를 떠나기가 참 힘들었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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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8K리그 개막도 얼마 남지 않았네요. 채 일주일도 안 남았으니 말이에요. 이번 시즌에도 많은 외국인 선수들이 팀을 옮기는 대이동을 했습니다. 뽀뽀와 까보레, 따바레즈처럼 한국을 떠나 새로운 리그에서 새출발을 시작한 선수들이 있었는가 하면 더 좋은 조건 하에 다른 팀으로 옮긴 선수들도 있었습니다. 오늘 제가 소개할 선수들은 후자입니다. 소속팀에서의 활약 덕분에 타 팀에서 열렬한 구애를 보냈고

그 덕분에 올시즌부터는 새로운 유니폼을 입고 시작하는 외국인 선수들입니다. 그중에서도 가장 눈에 띄는 브라질 삼총사 데닐손, 루이지뉴, 두두가 바로 오늘의 주인공입니다. 분석글이다 보니 편하게 말을 놓겠습니다. 감안하시고 읽어주세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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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리를 부르는 브라질 탱크, 데닐손
3월4일 수원월드컵경기장에서 열린 2007K리그 개막전에서 대전은 수원에 2-1로 패하며 불안한 출발을 보였다. 이후 8경기 무승(4무4패)을 기록하며 팀 전체는 수렁에 빠지고 말았다. 그러나 그 와중에도 꿋꿋이 제 몫을 한 선수가 있었다. 데닐손이다. 연속무승행진을 기록하던 기간 중 대전이 올린 전체득점은 겨우 7골. 그중 절반(4골)이 넘는 골이 데닐손의 발끝에서 터졌다. 데닐손의 진가는 이후 더 드러나기 시작했다. 대전은 4월15일 전북전에서 2-0으로 승리하며 뒤늦게 시즌 첫 승을 신고했다. 2골 모두 데닐손의 작품이다. 4월18일 광주전에서는 1-0으로 이기며 창단 10년 만에 100승 고지에 올랐다. 데닐손의 결승골 덕분이었다. 4월은 데닐손에게 ‘잔인한 달’이 아니었다. 데닐손은 5경기 연속골(4월7일~4월22일) 행진을 펼쳤고 대전 선수들은 그에게 ‘데닐신(神)’이라는 별명을 지어줬다.

데닐손은 대전에서 다양한 진기록들도 세웠다. 데닐손은 4월11일 열린 컵대회 서울전에 전반 35초 만에 선제골을 넣었다. 2007시즌 최단시간 골 기록이었다. 물론 한 달 뒤에 방승환(11초)에 의해 밀려났지만 K리그 전체로 봤을 땐 12위에 해당한다. 9월22일 대구전에서는 해트트릭에도 성공했다. 전반 42분 만에 3골을 성공시켰고 이는 2007시즌 최단시간 해트트릭 기록으로 남았다. 동시에 대전에게는 창단 이래 첫 해트트릭을 선물했다. 데닐손은 후반 12분에브라질리아의 추가골을 도왔고 ‘북치고 장구까지’친 데닐손 덕분에 대전은 홈에서 4-1 대승을 거뒀다.

대전은 2007시즌을 데닐손 타이슨 페르난도, 이렇게 세 명의 용병과 함께 시작했다. 그러나 야심차게 영입한 타이슨은 부상에 시달리며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페르난도는 리그 적응에 실패했다. 국내 공격수 사정도 마찬가지였다. 최근식은 부상-수술-재활 수순을 밟고 있었고 우승제는 슬럼프가 심했다. 정성훈만 간신히 면치레 하는 수준이었다. 그런 상황에서 데닐손은 꾸준히 제 기량을 보여줬으니 대전 입장에선 구세주일 수밖에 없었다. 데닐손은 지난해 24경기에 출장하며 14골이나 넣었다. 득점순위로만 따지면 18골을 넣은 까보레에 이은 2위다. 데닐손을 처음 영입했던 최윤겸 前감독은 “골 결정력이 탁월하다”며 칭찬했다. PO에서 데닐손을 상대했던 박병규(울산)는 “탱크처럼 힘이 상당히 좋아 애를 먹었다”고 말했다. 그의 말처럼 데닐손은 파워 넘치는 드리블러답게 문전 앞까지 위협적으로 달려드는 스타일이다. 찬스가 생기면 놓치지 않고 바로 슈팅으로 연결한다. 슈팅수로만 따지면 87회로 정규리그 1위다. 어찌보면 골 욕심이 많아서일 수도 있겠다.

그러나 데닐손은 골 수당 때문에 과욕을 부리는 일부 용병들과 다르다. 그의 진가는 슈바 영입 이후 더욱 드러났다. 대전은 여름 휴식기 동안 타이슨과 페르난도를 내보내고 슈바와 브라질리아를 데려왔다. 지난 시즌 데닐손이 올린 5도움 중 4도움이 바로 이들의 합류 이후 이뤄진다. 특히 슈바와의 콤비 플레이가 눈부셨다. 3경기 연속도움(9월22일~10월6일)도 이때 이뤄졌다.

후반기 대전은 3-4-3에서 4-3-3 포메이션으로 새 옷을 입었다. 최전방 데닐손을 중심으로 좌우날개로 브라질리아와 슈바가 섰다. 그러나 라인을 따라 뛰는 브라질리아와 달리 슈바는 살짝 처진 상태에서 데닐손과 자주 스위칭을 시도하며 그를 도왔다. 확실히 데닐손 혼자 고분분투하던 전반기와는 달랐다. 시즌 종료 후 몸값이 오른 데닐손은 아랍에미레이트리그에서 뛰기로 결정하며 11월 중순 경 두바이로 떠났다. 그러나 러브콜을 보냈던 감독이 성적부진으로 경질되는 바람에 허공에 붕 뜬 상태가 됐다. 다행히 포항이 적극적인 영입의사를 밝혔다. J리그 某팀보다 더 좋은 조건이었다. AFC챔피언스리그에 출전한다는 사실도 그의 마음을 크게 움직였다.

지난 시즌 우승팀 포항은 3-4-1-2 포메이션으로 성공시대를 이뤘다. 올해도 포메이션은 크게 변화되지 않을 전망이다. 부상이라는 이변이 없는 한 투톱 중 한 자리는 데닐손 몫이다. 데닐손의 짝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다. 알도, 이광재, 남궁도, 고기구 중 유력한 후보는 알도와 남궁도다. 그중 데닐손-남궁도 투톱이 눈여겨볼만하다. 동계훈련 기간 중 데닐손은 남궁도와 함께 뛰며 루미니아1부리그 소속팀 U.클뤼를 2-0으로 눌렀다. 골도 사이좋게 하나씩 기록했다. 데닐손을 향한 파리야스 감독의 믿음은 크다. 지난 해 야심차게 영입한 마우리시오(전반기) 슈벵크 조네스(이상 후반기) 모두 ‘실패한 농사’로 평가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올해는 다르다. 그 중심에 데닐손이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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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의 별을 꿈꾼다, 루이지뉴 
2006시즌 대구FC 브라질 트리오 에듀(3골) 지네이(4골) 가브리엘(2골)이 성공시킨 골은 도합 9골이다. 용병 셋의 합작이라고 말하기엔 심히 부끄러운 성적표다. 그래서일까. 이듬해 박종환 감독 후임으로 온 변병주 감독은 터키에서 진행된 동계훈련 기간 동안 용병 영입에 가장 큰 신경을 썼다. 그런데 때 마침 변 감독의 마음을 단번에 사로잡은 선수가 나타났다. 그가 바로 루이지뉴다. “루이지뉴는 화려한 드리블과 빠른 스피드, 거기다 골 결정력까지 겸비한 선수였다. 보는 순간 ‘저 선수다’ 싶었다.”

루이지뉴는 산토스FC의 촉망받던 유망주 중 하나다. 1997년 산토스 유스팀에 들어가 호빙유(레알마드리드) 디에고(브레맨) 등과 같이 축구를 배웠다. 그중 디에고와는 함께 방을 쓰며 우정을 쌓았다. U-17 및 U-20대표팀(2001년~2005년)에서 뛰었으며 파리아스 감독과 그때 처음 연을 맺었다.

루이지뉴를 향한 변 감독의 신뢰는 컸다. 루이지뉴는 그 덕분에 FC서울과의 개막전을 시작으로 3월 첫 달, 6경기 연속 선발출장할 수 있었다. 그러나 그의 플레이는 감독의 기대와는 반비례했다. 개막달 루이지뉴가 기록한 골은 단 2골. 그것도 2번 모두 필드골이 아닌 PK골이다. 보다 못한 변 감독의 따끔한 지적이 이어졌다. 이런 식이라면 다시 브라질로 돌려보내겠다는 엄포도 있었다. 그뒤 4월에 다시 만난 루이지뉴는 분명 달라져 있었다. 4월에만 무려 9골을 몰아넣었다. 루이지뉴는 그 비결을 ‘에닝요 덕분’이라 설명했다. 요지는 이렇다. “에닝요는 패스를 통해 경기를 풀어나갈 줄 아는 선수다. 3월 말부터 합류한 에닝요는 내게 많은 도움이 됐다.” 컵대회에서 7골을 넣은 루이지뉴는 5골을 넣은 데얀, 데닐손을 제치며 득점왕을 수상했다. “데뷔 첫해 받은 상이라 더 기쁘다”는 소감처럼 K리그에서 보낸 첫 시즌은 스스로도 만족스러워 보였다. 그렇지만 소속팀 대구는 2007K리그에서 12위를 기록했다. 그나마 12위도 감독내홍으로 수난시대를 맞이한 부산(13위)과 만년꼴찌 광주(14위) 덕분이라는 이야기도 들어야만 했다. 자존심이 상할 법도 했다. 그러나 칭찬의 목소리도 있었다. 이근호-루이지뉴 투톱의 위용만큼은 여느 팀에 뒤지지 않는다는 평이 그것이다.

루이지뉴는 수비수와 일대일 상황일 때 개인기를 이용, 돌파하는 스타일의 선수는 아니다. 주로 수비 배후 공간으로 돌아들어가는 걸 즐기는 편이다. 이때 보여주는 놀라운 스피드와 정확한 슈팅은 그간 골을 많이 넣을 수 있는 중요한 이유 중 하나다. 대구에서 함께 운동했던 조홍규는 “문전 앞에서 보여주는 공을 향한 집착과 집중력, 위치선정은 무서울 정도로 좋다”라고 평했다. 그의 말처럼 루이지뉴는 문전 앞에서만큼은 기가 막힐 정도로 골 냄새를 잘 맡는다. 지난 해 기록한 18골 가운데 PK 3골을 제외해도 자그마치 14골을 골에어리어 안에서 성공시켰다. 조홍규는 “골키퍼를 제외한 모든 선수들이 골에어리어 안에서 뒤엉킨 상황에도 기가 막히게 골이 될 만한 위치를 찾아냈다”고 회상했다. 175cm의 단신이지만 공중볼 장악능력도 좋다. 4월14일 수원전에서는 수원의 장신수비벽을 뚫고 동점 헤딩골을 성공시켰다. 그러나 그런 루이지뉴에게도 단점은 있다. 스리백을 쓰는 팀을 만날 때면 ‘한없이 작아진다’는 것이다. 맨투맨 수비에 약하기 때문이다. 다행히 그럴 때면 이근호가 나타나 좌우 중앙에서 활발히 움직이며 이를 뚫어줬다. ‘태양의 아들’ 이근호의 커버 플레이가 빛났기에 루이지뉴도 동반상승할 수 있었다. 덧붙이자면 지난 시즌 이근호가 8골로 득점순위 8위(국내선수 1위)에 오를 수 있던 까닭도 바로 여기서 기인한다.

2007시즌을 끝으로 대구와 계약이 만료된 루이지뉴는 울산에 새둥지를 틀었다. 지난 해 울산은 공격수들의 연이은 악재 때문에 FC서울 못지않은 분루를 삼켰다. 호세를 시작으로 마차도 양동현이 부상으로 시즌을 접어야만 했다. 여름 이적시장 때 이천수는 네덜란드로 떠났고 정경호와 맞트레이드 한 염기훈은 피로골절로 시즌 막바지였던 PO때 겨우 출전할 수 있었다. 노장 우성용 혼자 울산의 공격을 담당하기엔 버거웠다. 울산이 올 시즌을 영입한 용병은 루이지뉴 브라질리아 레안드롱(임대복귀)이다. K리그를 통해 이미 검증된 선수들과 하고 싶다는 김정남 감독의 의지가 읽혀지는 대목이다. 올해도 울산은 스리톱과 투톱을 적절히 혼용하며 경기에 임할 계획이다. 투톱일 경우 루이지뉴는 우성용(양동현)과 함께 빅 앤 스몰 조합을 구성할 예정이다. 반면 스리톱에서는 중앙이 아닌 측면에서 타깃맨을 지원사격할 듯하다. 오른발을 주로 쓰기 때문에 염기훈이 아닌 이상호 또는 브라질리아와의 경쟁이 예상된다. 이천수가 떠난 뒤 울산은 ‘스타’없는 밤하늘을 바라봐야만 했다. 2008년 루이지뉴는 과연 그곳을 빛낼 별이 될 수 있을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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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마의 날개가 되어라, 두두
“두두는 20분 만에 2번이나 결정적인 찬스를 잡았다. 그 중 1번은 골키퍼 선방에 막혔지만 정확하게 골대 안으로 들어갔다. 두두를 보고 배울 필요가 있다.” 2007년 3월11일 전남과의 원정경기에서 FC서울은 정조국의 결승골로 1-0 승리를 거뒀다. 그러나 귀네슈 감독은 공격수들에게 쓴소리를 가했다. 골을 넣지 못한 두두의 위치선정과 감(感)을 보고 배우라는 이야기였다. 그러나 그날 두두는 좀처럼 잠을 이루지 못했다는 후문이다. 귀네슈 감독 부임 이후 벤치멤버로 밀려났기 때문이다. FC서울은 개막전에서 대구를 상대로 2-0으로 이겼지만 두두에게는 잊고 싶은 경기였다. 승리가 거의 확정적이던 후반42분 아디 대신 투입됐기 때문이다. 두두의 수난시대는 그 뒤로도 계속됐다.

2007시즌 초 귀네슈 감독은 4-4-2 포메이션으로 팀을 재정비하며 ‘공격축구론’을 펼쳤다.  두두에게는 왼쪽 측면을 맡겼다. 갑작스레 왼쪽 윙어로 보직을 변경하게 됐지만 두두는 스트라이커 출신답게 중앙을 파고들며 날카로운 공격을 선보였다. 이렇듯 귀네슈 감독의 공격축구에 힘을 실어주는 듯 했지만 문제는 ‘주전’이 아니라는데 있었다. 박주영이 해트트릭을 기록하며 수원을 4-1로 이겼던 그날도 두두는 후반43분 교체선수로 투입됐다. 시즌 시작 이래로 6경기 연속 교체출전. 말이 좋아 ‘조커’였지 한때 성남에서 최고의 공격 삼각편대를 이뤘던 두두에게는 자존심에 금이 갈 법한 사건이었다.

그리고 4월29일 홈에서 경남에게 3-0으로 지는 모습을 벤치에서 지켜봐야만 했던 그날이후 두두는 사라졌다. 배가 아프다는 이유였다. 몇몇 선수들은 태업(怠業)에 들어갔다고 추측했다. 그러나 곧 병명이 밝혀졌다. ‘스포츠 헤르니아’였다. 두두는 수술 대신 재활을 선택, 브라질로 돌아갔다. 그리고 여름 휴식기가 끝날 쯤 두두는 부상에서 완벽히 회복한 상태로 팀에 복귀했다. 당시 FC서울은 김은중, 정조국, 박주영, 심우연 등 주전 공격수들의 부상으로 신음 중이었다. 팀이 어려운 상황에서 두두는 복귀전이었던 8월8일 포항전에서 귀중한 결승골로 귀네슈 감독에게 승리를 안겼다. 이어 열린 제주전에서는 1골 1도움으로 2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다. 마치 2년 전 FC서울로 팀을 옮기자마자 3경기 연속 공격포인트를 기록했던 그때를 보는 듯 했다.

2004년 8월 브라질1부리그 크루제이루에서 뛰던 두두는 계약금 10만 달러에 성남과 계약했다. 이듬해 두두는 최고 전성기를 누렸다. 박주영, 마차도와의 득점경쟁은 모두의 관심을 불러일으키기에 충분했다. 두두는 2005시즌 10골 4도움으로 마차도(13골 1도움) 박주영(12골 1도움)에 이어 득점랭킹 3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함께 성남 공격 삼각편대를 이뤘던 김도훈은 5위, 모따는 9위(7골 4도움)였다.

당시 김도훈-두두-모따로 구성된 삼각편대의 공격력은 매서웠다. 지금은 모따를 더 인정하지만 그때만 해도 모따보다는 두두였다. 상대 수비수들이 두두만 잡으면 된다고 말할 정도였다. 두두는 성남을 2004컵대회 우승과 2004AFC챔피언스리그 준우승으로 이끌었다. 2005후기리그와 2006전기리그 우승컵도 들었다. 2006컵대회에서 준우승을 했을 때엔 히칼도(前서울,4도움)를 제치고 도움왕(5도움)도 수상했다. 두두는 컵대회를 마치고 FC서울로 전격 이적했다. 당시 팀을 이끌던 이장수 감독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전기리그 내내 득점이 없어 고민이었다. 그렇기에 두두의 영입은 큰 의미가 있다. 만족스런 보강이다.” 2006 후기리그 때만 해도 두두는 2년차 슬럼프에 빠졌던 박주영을 제치고 주전자리를 꿰찼다. 그러나 두두는 전형적인 브라질리언이었다. 자율적인 분위기에서는 절제하지 못하는 성격 탓에 체중은 점점 증가했다. 성남시절에는 팀 규정상 아침저녁으로 몸무게를 체크하며 관리했다. 그러나 FC서울에서는 모든 것을 자신이 통제하고 관리해야만 했다. 볼 컨트롤과 왼발 프리킥은 여전히 뛰어났지만 늘어난 체중 탓에 결국 움직임은 예전만 못했다.

2008시즌을 앞두고 두두는 비록 임대지만 다시 친정팀 성남으로 돌아왔다. 그러나 성남으로의 복귀는 그에게 전화위복이 될 듯하다. 왼쪽 윙포워드 자리를 다시 찾았기 때문이다. 2005후기리그와 2006전기리그 우승컵을 들 당시 성남에게는 ‘두두’와 ‘모따’라는 양 날개가 있었다. 두두가 다시 찾은 날개가 될 수 있을지는 아직 모른다. 그러나 김학범 감독 아래서 예전의 모습을 찾을 수 있다면 두두는 부활이라는 이름하에 분명 천마의 화려한 날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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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2007 삼성하우젠 K-리그 우승팀은 ‘전통의 명가’ 포항 스틸러스에게 돌아갔습니다.

11월 11일 성남 탄천운동장에서 열린 챔피언결정전 2차전에서 포항은 전반 43분 터진 죠네스의 선제골을 잘 지켜 2연승(1차전 3대 0 포항 승)으로 너무나 쉽게 2007 시즌 K-리그 우승컵을 들어 올렸지요.


이번 포항의 우승은 여러모로 인상 깊습니다. 우선은 리그 5위 팀이 '6강 플레이오프 제도' 덕분에 경남, 울산, 수원을 연거푸 제압하며 결국엔 우승했다는 사실이 가장 눈에 띕니다. 그러나 무엇보다 포항의 우승이 더욱 주목을 끄는 이유는 바로 ‘축구는 이름값으로만 하는 것이 아니다’라는 명제가 ‘참’임을 다시 한 번 증명시켜줬다는 사실에 있습니다.  


비록 1차전에서 장학영 선수에게 한 골을 허용했지만 골키퍼 정성룡 선수는 특유의 침착함으로 마지막까지 포항의 골문을 지켜냈습니다. 청소년대표 시절 한 살 어린 차기석 선수에게 밀리며 2인자의 설움을 겪어야만 했지만 그는 홀로 계신 어머니를 생각하며 묵묵히 이겨냈지요. 결국 정성룡 선수는 이번 챔피언결승전에서 포항을 우승으로 이끌며 ‘진정한 1인자’로 빛났습니다. 그래서 더욱 그가 대단하게만 보이는군요.

박원재 선수 역시 그렇습니다. 그는 이번 대회에서 포항 스틸러스가 배출한 또 다른 스타지요. 수원과의 플레이오프에서 결승골을 터뜨리며 팀을 챔피언결정전으로 이끈 그는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연속골을 뿜어내며 단번에 자신의 이름을 모두에게 알렸습니다. 한 번도 태극마크를 달아보지 못한 ‘중고 신인’이 챔피언결정전을 통해 ‘스타’로 거듭났습니다. 또 하나의 신데렐라 역사를 쓴 그 모습이 그저 대견스럽기만 하네요. 


최효진 선수도 빼놓을 수 없겠죠. 2005년 인천 유나이티드에서 뛰었던 그때, 그는 울산에게 우승컵을 내주며 굵은 눈물방울을 잔디 위로 쏟아내야만 했지요. 당시 이를 보다 못한 장외룡 감독이 직접 나서 그를 달래줘야만 했을 정도로 그는 참 서럽게 울었습니다. 그러나 그날의 아픔은 결국 오늘의 기쁨으로 승화됐습니다. 올 시즌 포항으로 이적하며 오범석 선수에게 밀려 벤치 설움도 겪었지만 그는 결국 주전 자리를 꿰차며 우승의 주역이 되었네요. 그 모습에 대견하다는 생각만 연신 드는군요.  


이광재 선수는 또 어떻고요. 경남과의 6강 플레이오프 첫 경기에서 골을 기록하며 기분 좋은 조짐을 보였던 그는 이어 펼쳐진 울산전과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 1차전에서도 역시 골을 기록하며 ‘특급 조커’로서의 모든 것을 아낌없이 보여줬습니다. 역시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가봅니다.


그러고 보니 포항 수비의 핵 조성환 선수도 칭찬해주고 싶습니다. 한때 ‘김호의 아이들’ 중 하나로 총망 받는 미래를 보장받는 듯 했지만 포항 이적 후 잠시 잊혀진 존재가 됐던 것도 사실입니다. 더욱이 지난겨울 진행했던 루마니아 리그 진출이 여러 가지 사정에 의해 중단됐다는 사실을 알게 된 이후로는 많은 우려의 눈으로 그를 지켜봤던 것이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역시 프로였습니다. 마지막까지 완벽한 플레이로 포항의 수비를 책임졌으니까요.  그의 노고 역시 칭찬하지 않을 수 없겠죠.   


‘돌아온 스트라이커’ 고기구 선수를 빼놓을 수 없겠네요. 지난 해 포항은 이동국 선수의 갑작스런 부상으로 최전방 공격수의 부재를 걱정해야만 했지만 이는 기우에 불과했습니다. 9골3도움이라는 놀라운 성적으로 이동국 선수의 자리를 확실히 메운 고기구 선수가 있었으니까요. 그러나 올 시즌 개막전이었던 3월 4일 인천전에서 첫 골을 기록한 이후 10월 10일 울산전까지 그는 연이은 골 침묵 속에서 괴로워해야만 했습니다. 그 때문에 경남, 울산, 수원과의 플레이오프 경기에서 중용되지 못하는 결과와 만나야만 했고요. 그러나 성남과의 챔피언결정전에서 파리아스 감독은 그에게 기회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고기구 선수는 그 믿음에 보답했지요. 성남과의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보여준 그의 골은 정말 멋졌습니다.


마지막으로 노장 투혼을 불사른 K-리그 17년 차 김기동 선수를 언급하고 싶습니다. 그는 이번 챔피언결정전 2차전을 마지막으로 필드 플레이어로서는 최다출장(426경기)인 대기록을 세웠습니다. 만약 그만의 지독한 ‘자기 관리’가 없었다면 우승컵을 드는 오늘 역시 존재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17년 만에 손에 든 우승컵, 그 뒤에는 자기 자신과의 싸움 뒤에 얻은 승리가 있었습니다. 진정한 승자가 된 그에게 존경의 인사를 올리고 싶습니다.    


이로서 2007 K-리그도 끝이 났습니다. 2007 시즌 일정표가 나오길 기다렸던 지난겨울이 엊그제 같은데 시간은 참 빠르기도 하지요. 어느새 다음주에는 신인 선수 드래프트 일정까지 잡혀있고요. 내년에는 또 어떤 선수들이 등장하여 우리 가슴을 설레게 할까요?  그 생각만으로도 제 마음은 어느새 내년 봄을 꿈꾸며 빠르게 뛰기 시작하네요.


모두들 수고하셨습니다. 내년에 다시 만나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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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