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다방/Society

샤이니 종현의 장례식장에 다녀오다, 그리고 마음을 다해 전하고 싶은 말

Helena. 2017. 12. 23. 15:39

지난 1220. 회식이 끝나고 집으로 가기 위해 택시를 기다리는 중이었다. 바람이 차가웠고 공기를 깊숙이 들이마시고 내쉴 때마다 폐도 같이 얼어붙는 듯했다. 아무리 기다려도 오지 않는 택시는 내 인생의 한 장면을 보는 것 같았다.

내가 바라고, 기도하고, 노력하며 꿈꾸었던 것들. 그것들 중 내게 왔던 것은 무엇일까. 칼바람을 맞으며 서 있어도 택시는 오지 않고 내가 할 수 있는 건 단지 재수 좋게 택시가 빨리 왔으면 좋겠다고 생각하는 것 뿐이다. 그 순간과 내 인생은 왜 그리 겹쳐 보였던 것일까.

결국에 평소보다 2배의 요금을 지불하고 나서야 택시를 탈 수 있었고, 집으로 가던 길 기사님께 물었다. 아산병원까지 가는데 얼마나 걸리죠? 10분입니다. 그렇게 가까워요? 그러면 그쪽으로 먼저 좀 가주실래요?

자정이 넘은 시간. 슬픈 내 마음이 이끈 곳. 종현의 빈소가 안치된 아산병원 장례식장이었다.

빈소 안에 들어가니 민호는 보이지 않았다. 대신 온유와 태민, 그리고 종현의 어머니가 계셨다. 세 사람은 이야기 중이었고, 처음 한 걸음 디뎠을 때 온유와 태민이 나를 슬쩍 봤는데 모르는 얼굴이라서 그런지 이내 고개를 돌린 채 하던 대화를 이어나갔다.

그날로부터 며칠이 지났지만 그 순간이 잊히지 않는다. 따뜻하면서도 아리고 슬펐던 그날의 풍경이란.

종현의 어머니는 앉아 계셨고, 그 맞은편에 서 있던 온유가 큰 손동작을 하며 어머니께 뭔가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어머니 오른쪽에 앉아 있던 태민은 몸을 어머니 쪽으로 돌린 채 간간이 미소를 지으며 듣고 있었다.

모르는 누군가가 봤다면 어머니와 두 아들이 함께 있는 모습이라고 생각했을 것 같다. 서로에게 익숙했고, 그래서 편해보였다. , 이렇게나 가까운 사이였구나. 슬픔으로 뒤덮인 그 공간에서 잠시나마 따뜻함을 느꼈던 순간이었다.

그렇지만 다시 찬찬히 살펴본 온유와 태민 얼굴은 말이 아니었다. 항상 반짝반짝하던 눈매는 그때의 빛을 잃은 모습이었고, 한없이 작디작은 종현 어머니 어깨로 시선이 갔을 때 내 마음은 아려왔다.

노란 국화를 영정 위에 놓는데, 영정 사진 속 종현은 참 예쁘게 웃고 있었다. 보고 싶은 대로만 보던 나에게 종현은 참 잘 웃는, 샤이니에서 가장 활기찼던 사람이었다. 그런데 미쳐 몰랐구나. 그 검푸른 슬픔을, 그 절망과 우울을.

하지만 1년 남짓 우울증에 걸려봤던 사람으로서 말할 수 있는 건 우울증 앞에서는 그 어떤 것도 답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우울증은 사람을 아무 것도 할 수 없게 만드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블랙홀 같은 병이다. 모든 것이 다 빨려 들어가기 때문에 무기력해지기만 한다. 그래서 나는 종현의 마음을 이해한다. 자살은 정당화할 수 없는 행위라고 하지만 적어도 그가 어떤 마음으로 매일 밤 자리에 누웠을지만큼은 가슴으로 느낄 수 있다.

그래서 영정사진 앞에서 명복을 비는 그 시간, 나는 천국이 있다면, 제발 천국에 가게 해주세요, 라는 기도만 반복해서 하다 눈을 떴던 것 같다.

인사를 드리고 나오는데, 여기까지 와주셔서 감사하다며 민호가 내 손을 잡아주었다. 만날 때마다 항상 먼저 악수해주던 민호의 손이 이렇게나 차갑고 건조한 것은 처음이었다. 올려다본 그의 얼굴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지쳐 있었다. (그 와중에 새벽임에도 식사하고 가라며 테이블로 안내해주시며 챙겨주신 SM 관계자분 정말 감사했습니다.)

작년 겨울 강원FC1부리그 승격이라는 기적의 드라마를 쓰고 난 뒤 민호가 다시 강원FC 숙소가 있는 오렌지하우스를 찾아온 적이 있다. <내게 남은 48시간>이라는 프로그램을 찍고 있었는데, 인생에서 딱 이틀의 시간이 남았을 때 하고 싶은 일들을 하는 모습을 찍는 리얼리티 프로였다. 그때 민호는 강릉에 내려와 아버지 최윤겸 감독님과 시간을 보냈고, 그 덕분에 나 역시 본방사수를 하며 그 프로를 챙겨보게 되었다.

그때 민호가 가상으로 보낸 삶의 마지막 장소는 샤이니의 연습실이었다. 온유에게 내가 없어지면 어떻게 될 것 같냐고 물었을 때, 당시 온유는 억장이 무너질 것 같다고 했던 기억이 난다. 가족보다 오래 지낸 사람이기에 네가 없어지면 삶의 일부분도 없어지는 것 같아. 그만큼 소중한데 왜 먼저 가야 했는지 배신감도 들고 공허함도 들지 않을까, 라면서.

온유의 말처럼 샤이니는 가족이었고, 서로의 가족은 또 각자에게 있어서는 또 하나의 가족이었다. 그날 밤의 풍경이 그랬으니까. 종현은 없었지만 그의 어머니를 위해 온유와 태민, 그리고 민호는 빈자리를 채워주고 있었기에. 단지 그룹의 멤버였기에 상주 역할을 한 것이 아님을 나는 직접 보고 나서야 깨달을 수 있었다.

너희들은 진짜 가족이었구나. 그런데도 우울감과 슬픔, 절망으로 점철되어 있던 종현의 마음을 헤아리지 못했다며 얼마나 스스로를 탓하고 있을까.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 10년 전쯤, 그러니까 샤이니가 데뷔하던 2008년 할아버지께서 돌아가신 그때가 생각났다. 어릴 적 내 추억에 있어 절반을 차지했던 나의 할아버지는, 몸과 마음이 아프고 힘들다며 약을 삼킨 뒤 병원에 실려가신 적이 있었다. 불면증이 심하다며 병원에서 받아온 수면제를 모으는 데까지 시간이 꽤 걸렸음에도, 나도, 가족 중 누구 하나도, 그것을 눈치재지 못했다.

위세척을 하고 나서 정신이 드신 할아버지는 너무 힘드니 이제 그만 좀 놓아달라는 말씀만 반복해서 하셨다. 나는 그런 할아버지가 원망스러웠다. 그렇지만 그보다 더한 감정은 나 자신에 대한 미움이었다. 할아버지의 깊은 슬픔을 알아보지 못한 내가 미웠다. 그날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 곡기를 끊으신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당시에도, 그리고 지금도, 나는 여전히 그때를 생각하며 책망할 때가 많다. 왜 그때 나는 몰랐던 걸까, 라면서.

상주 역할을 맡았던 샤이니 멤버들의 마음 역시 그랬을 것 같다. 가족을 잃는 순간에는 아무 생각도 들지 않는다. 미칠 것 같은 괴로움은 눈도 귀도 멀게 만들기 때문이다. 그래서 고통스러웠을 것이다. 

할아버지를 잃고 나서 나는 세수를 하다가도, 밥을 한 숟가락 뜨다가도, 버스를 기다리고 있다가도 그냥 눈물이 쏟아졌다. 눈물을 쏟으면서 세수를 하고, 밥을 먹고, 버스를 탔고, 회사에서 타자를 치다가도 눈물이 터져 말 그대로 눈물 방울 방울을 뚝뚝 흘리며 일하는 날이 많았다.

먼저 겪은 사람으로서 내가 해줄 수 있은 말은 못해준 것들 투성이라며 자신을 탓하지 말라는 것. 물론 이렇게 말하는 나 역시 그렇지 못해 스스로를 힘들게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함께 웃고, 감정을 공유하고, 추억을 쌓았던 그 시간을 떠올릴 때면 아주 잠시지만 같이 있는 것 같아 행복했다. 할아버지도 내가 그렇게 지내기를 바랄 것이다. 그리고 종현 역시 너희만큼은 부디, 아니 무조건 행복하기를 원할 것이다. 세상과 이별하기 전 할아버지께서 무조건 행복해야해, 알겠지? 라고 내게 말씀하셨던 것처럼.

다시 한번 삼가 고인의 명복을 두 손 모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