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시절 언젠가 황영조 선수가 특강을 하러 온 적이 있습니다.

당시 그는 운동기계 같은 삶을 강요하는 현 운동계의 시스템에 대해서 열변을 토했습니다. 어떤 날은 훈련이 너무 힘들어 달리고 있던 도중 도로 위로 뛰어들고 싶다고 말이죠. 차라리 차에 치여서 다쳐 운동을 못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많이 힘들었다고 하는데, 얼마나 고통이 심했으면 다치다 못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을까, 하는 생각에 고개를 절래절래 흔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우리에게는 국민 마라토너였죠. 이봉주 선수가 오늘 은퇴를 했습니다. 1990년 전국체전에서 처음 42.195km를 달렸던 그는, 자신이 데뷔했던 그 전국체전에서 은퇴하며 선수생활을 마감했습니다.

19년의 선수생활 중 그간 그가 완주한 마라톤 코스는 41회. 중도포기는 단 두차례에 불과할 정도라고 하니 세계 마라톤사에 앞으로도 지워지지 않을 기록인 듯 싶습니다. 참고로 몬주익의 영웅 황영조 선수는 마라톤 완주 횟수가 8번이라고 하니 이봉주 선수가 얼마나 대단한 기록을 세웠는지 짐작이 가시죠?

은퇴를 하며 눈물을 흘렸던 이봉주 선수. 아마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지 못했다는 아쉬움도 컸겠지요. 황영조 선수가 바르셀로나올림픽에서 금메달을 따며 손기정 옹에 이어 다시 한번 월계관을 썼지만 다음 대회였던 애틀란타올림픽에 나선 이봉주 선수는 아쉽게 은메달에 그쳤습니다. 2001년 마라토너들에게는 꿈과 같은 보스톤마라톤에서 1위를 하며 화려하게 꽃을 피웠지만 이상하게도 우리에겐 1인자보단 2인자로 기억되는 이봉주 선수.

하지만 그가 마라톤을 그만두지 않고, 달리고 또 달리며 계속해서 도전했던 이유는 단순히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걸기 위함만은 아니었을 것입니다. 대회를 앞두고 고기만 먹다 다시 탄수화물만 섭취하는 식이요법과(강원FC 선수들도 소고기만 먹다 경기 이틀 전에는 탄수화물 섭취를 늘리는데 정말 괴롭다고 하더군요. 한데 마라토너들은 이보다 더 강도가 높으니 그 고통이 어떨지... 다는 아니더라도 조금은 이해가 갑니다.) 하루 30~40km를 달리는 지옥훈련까지. 메달만이 목표였다면 그는 이겨내지 못했겠죠.

힘들지만 달리는 것이 좋았다던, 그리고 자기 자신과의 싸움에서 이기고 싶다던 이봉주 선수. 평발인 것도 모자라 양발 사이즈가 달라 뛸 때 몸의 균형이 맞지 않았지만 특유의 꾸준함과 도전정신으로 신체적 약점을 극복했습니다.

힘들고 배고프다는 이유로 마라톤에 도전하는 선수들이 없는 요즈음, 이봉주의 역주는 단순히 마라톤이 아닌 우리 인생에도 시사하는 바가 큽니다.

나이와 신체에서 오는 불리함을 극복하고, 고통 속에서도 띄었던 걸음 걸음은, 나를 비롯한 또다른 누군가에게는 희망의 다른 이름이었겠죠.

그동안 고생 많으셨습니다. 이제는 사랑하는 아들과 함께 그간 함께 하지 못했던 시간들을 보상받으세요.

이제는 더 이상 뛰는 모습을 보지 못하겠지만 우리 기억 속에는 최고의 마라토너로 남아있을 것입니다. 포기를 모르던 당신의 모습은 우리 생애 최고의 감동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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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elena.

경기장을 찾을 때면 언제나 행복합니다. 온 몸의 감각이 열리니까요. 푸른 잔디의 반짝임, 조금은 톡쏘는 파스 냄새, 선수들의 땀방울, 그리고 관중들의 환호성. 이 모든 것들을 느낄 수 있어 행복합니다. 혹시, 여름밤의 축구를 좋아하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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