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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축구선수들의 아름다운 선행, '추캥'을 아시나요?

제가 소나무 선생님을 처음 알게 된 건 2006년입니다. 당시 저와 친한 후배 한명은 오장은과 두터운 친분을 자랑했습니다. 후배는 오장은과 통화 중에 늘 이렇게 묻곤 했죠. “이번에 휴가 받으면 또 산에가요?”

여기서 산이란, 경상남도 함양군 안의면 산골을 말하는 거구요 소나무 선생님은 그곳에 계신 선생님을 가리킵니다. 정확하게 어떻게 설명해야할지는 모르겠어요. 그 분은 민간요법에도 능하시고 기치료에도 정통하고 순수의학이 아닌 대체의학을 통해 선수들의 심신을 맑고 건강하게 만들어주는 선생님이십니다.


오장은의 경우 발가락 2개가 어린시절 사고로 마디가 절단된 상태라 발란스를 유지하는데 어려움을 많이 겪습니다. 무게중심이 양 발바닥에 고루 퍼지지 못해 피로가 쌓이고 그러다보면 부상도 많이 당하곤 하죠.

그때마다 병원에서는 꽤 오래 쉬어야할 것 같다는 진단을 내렸지만 신기하게도 함양에 다녀오면, 그곳에서 소나무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며 쉬었고, 그러다보면 예정보다 빨리 나아 금세 복귀전을 치르곤 했죠.

제가 아끼던 선수 한명도 그곳을 잘 다녔습니다. 휴가 때 얼굴 보며 밥이라도 먹자고 하면 그 선수는 늘 말했죠. 산에 가야해요, 라고요. 버스를 타고 터미널에 내려 다시 마을버스를 타고 산 입구까지 가서 걸어올라가야하는 그곳. 그곳까지 가는 동안 정신없이 통화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러다보면 어느새 도착하죠. 이제 핸드폰 꺼야해요, 라는 말을 하면 도착한 겁니다. 그곳에는 불문율이라는 게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핸드폰을 통해 개인통화를 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또 생각하는 건... 늦은 시간까지 밖에서 돌아다니거나 여자를 만나지 않을 것. ^^

한번은 산에 있던 식구들이 모두 대구FC 경기를 보러 가서 혼자 있다며 그 선수가 전화를 한 적이 있습니다. 산 식구인 오장은을 응원하기 위해서였죠. 지금도 기억에 선연한 건, 평상에 누워 하늘을 바라보고 있는데, 별들이 나를 향해 쏟아지는 것 같다던 그 말입니다.

잘 모르는 사람들은 로맨틱한 대사라 기억하는 게 아니냐며 오해할 수 있겠지만... 그곳을 아는 사람들이라면 아마도 이해할 것입니다. 한번도 가지 못했지만 그 산을 방문하던 선수들은 참으로 맑아 아마추어 같은 프로선수들이었습니다. 아직도 아마추어 시절의 열정을 가슴 한 가득 품고 있던 그 느낌이 늘 좋았는데, 아... 저렇게 맑은 곳에서 쉬고 명상하면 그럴 수 밖에 없겠구나. 산과 하늘과 별을 닮은 그런 영혼을 가질 수 밖에 없겠구나. 그런 생각을 했더랬지요.

축구선수들에게 입소문이 제대로 나면 많은 돈을 벌 수도 있었겠지만 그곳에 계신 소나무 선생님은 돈보다는 인연과 영혼을 더 중요시했습니다. 그런 선생님의 치료를 받으며 산에 있던 선수들은 그 인연을 소중히 이어나가고 또 간직하기 위해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추캥’인데요, ‘축구로 만드는 행복’을 의미합니다. 그 앞 글자인 ‘축’과 ‘행’을 이어 발음한 ‘추캥’을 그대로 모임명으로 했습니다. 요즘 말로 하면 참 센스돋죠? ^^

박건하 코치님과 오장은, 김재성의 주도 아래 추캥 식구들은 십시일푼씩 모아 어려운 이웃을을 위해 썼습니다. 함안군 내 어려운 학생에게 장학금을 전한 선수도 있었고 고아원, 양로원을 방문해 선물도 드리고 친선게임도 가졌고요. 2000년부터 했으니 올해로 11년 째이네요. 그들의 선행이.


추캥은 올해 2000만원의 장학금을 모았습니다. K리그에서 골을 넣으면 30만원, 도움을 올리면 10만원씩 적립했는데 5골·12도움을 기록한 구자철이 270만원, 2골·3도움을 올린 오장은이 90만원을 냈습니다. 특히 구자철은 3년 째 안의초등학교 축구선수 2명을 후원하고 있다네요.

오래전부터 알았지만 저는 단 한번도 그들의 선행에 대해 기사를 쓴 적이 없습니다. 드러내고 하고 싶지 않다는 그들의 마음을 알았기 때문이죠. 조용히 알음알음으로 하는 그 본심을 존중하고자 저는 단 한번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랬는데요, 오늘은 드디어 추캥의 선행에 대해서 글을 쓰게 됐네요. 오늘 오후 함양공설운동장에서 아주 특별한 추캥의 축구경기가 열립니다.

설기현, 김재성, 신형님, 신광훈, 김다솔, 조성환, 서정진, 김두현, 윤석영, 백용선이 축구팀으로 나서게 되고 박건하, 이요한, 김승용, 하대성, 유경렬, 오장은, 김진욱, 최진수, 이용, 정혁이 행복팀으로 나눠 친선경기를 가집니다.

함양군 군수가 함양공설운동장에서 친선경기를 가질 수 있게 도와주었고 참가선수들을 위한 숙소도 무료로 제공했네요. 자선경기가 끝난 뒤 장학금은 함양군수에게 전달되고 일부는 함양출신의 연평도 피해 주민들을 위한 위로금으로 쓰이게 됩니다.

자선경기지만 협찬도 없고, 입장료도 없습니다. 선수들의 주머니에서 나오고요, 그 주머니에서 나오는 건 단순히 돈만이 아니라는 거... 다들 잘 아시죠? 프로라는 경쟁체제 속에서 이웃을 위한 사랑을 잊기 쉬운데, 10년이 넘게 오른손이 하는 일을 왼손이 모르게 묵묵히 행동으로 사랑을 실천했다는 건 참으로 대단한 일이죠.

돈을 많이 버는 프로선수라면 나라도 할 수 있겠다고, 누군가는 볼멘소리로 말하겠지요. 하지만 커피 한잔 값도 어려운 이웃을 위해 쓰지 않는 사람들이 참 많죠. 그런 점에서 귀중한 시간을 쪼개 축구를 통해 사랑을 베푸는 건 대단한 일이고 박수받아 마땅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추캥 자선경기에 꼭 오라고 초대했는데, 회사 일 때문에 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네요. 그래도 마음은 그곳에 있고요 건강한 그 모습이 오래도록 영원하길 응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