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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이근호, 이젠 네가 희망이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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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골 누가 넣을까?”
“이근호 선수가 넣지 않을까?”


경기 시작 전 관중석에 앉아 지인과 이야기를 나누던 중 이근호 선수 이야기가 나왔습니다. 저는 가슴을 땅땅치며 말했죠. 이근호 선수가 넣을게 분명하다고요. 그냥 그런 예감이 들었습니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분명 넣을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8월 22일 오후 8시 상암월드컵경기장. 2008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 최종예선 우스베키스탄과의 첫 경기가 드디어 시작됐습니다. 이근호 선수는 변함없이 왼쪽 윙포워드로 선발출장했죠. 경기 내내 그는 특유의 힘을 바탕으로 활발히 측면 돌파를 시도했습니다. 계속해서 혼자 고립돼 있던 원톱 하태균 선수에게 열심히 크로스도 올렸고요. 때론 직접 중앙으로 이동해 슈팅을 시도하기도 했습니다. 고교 시절부터 함께 호흡을 맞춘 김승용 선수와의 스위치 플레이는 또 어떻고요. 그때마다 우즈벡 수비진은 당황해야만했죠.


후반 6분 한동원 선수 대신 이상호 선수가 투입되자 한국팀은 포메이션을 변경했습니다. 하태균 선수와 이상호 선수, 이렇게 두 명의 공격수를 두는 4-4-2 포메이션으로 경기에 임했죠. 이때부터 이근호 선수는 뒤로 돌아 들어가 중앙에서 적극적인 공격을 선보였습니다. 그리고 이것은 곧 효과를 보였습니다. 후반 33분 하태균 선수가 페널티 에어리어 왼쪽에서 머리로 떨어뜨려준 공을 받은 이근호 선수는 멋지게 가슴 트래핑 후 왼발 터닝슛을 선보였습니다. 골이었습니다. 그리고 문전 혼전 상황 중에 좁은 지역에서 터뜨린 그 골은 결승골이었기에 더욱 빛났습니다.


골네트가 출렁거리는 순간, 저는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답니다. 저질댄스를 추려다 기뻐서 달려드는 동료들 때문에 멈춰야만했을 때엔 좀처럼 웃음을 참을 수 없었죠. 그러고 보니 지난 8월 4일 열린 올스타전에서도 그는 거성댄스와 단신댄스 세레모니를 선보이며 지켜 보던 우리 모두를 즐겁게 해줬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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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올림픽팀에서 오랜 기간 골이 터지지 않았을 때 한번은 “골 좀 넣으라”고 타박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 이근호 선수는 “그러게요. 저도 빨리 넣고 싶어요. 조급하게 생각하지 않으려고요”라고 말했죠. 그런데 그 다음 대답이 또 저를 웃게 만들었답니다. “골 넣으면요, 타잔 세레모니 할거에요. 고트비 선생님이 파마한 제 머리보고 타잔 같대요. 만날 훈련 때마다 타잔이라고 불러요. 그래서 타잔 세레모니 해보려고요. 재밌겠죠? 그런데 제 머리 진짜 타잔 같아요? 잘 어울리지 않나요? 중계 카메라에 잘 나와야하는데…(웃음).”


그로부터 한달 뒤인 2007년 6월 6일. 그날은 공휴일이었습니다. 모처럼 집에서 쉬고 싶었죠. 그러나 제 마음은 대전에 가야한다고 말하고 있었습니다. 올림픽 2차 예선 UAE와의 경기가 그곳에서 열렸거든요. 그날도 그런 느낌이 들었습니다. 웬지 이근호 선수가 골을 넣을 것 같다는 예감 말이에요.


잠실에서 미디어다음 블로거 기자 하정임님과 몽구님을 만나 함께 대전에 내려갔죠. 내려가는 차안에 하정임님은 “기사 ‘야마’를 누구로 잡아야할지 모르겠다”며 저에게 조언을 구했습니다. 물론 고민할 필요도 없었죠. 그때 저는 “당연히 이근호죠. 오늘 이근호가 골 넣을 거예요. 분명해요. 이근호 선수만 찍으세요. 믿어도 좋아요”라며 오늘처럼 큰소리 쳤답니다.


결과는 물론 다들 아시죠? 그날 이근호 선수는 2골을 터뜨리며 3-1 대승의 주인공이 됐답니다. 지난 달에 이야기했던 타잔 세레모니도 코트비 코치와 즐겁게 했죠. 올림픽팀에서 넣은 첫 번 째 골이라 경황이 없었을텐데도 양 손으로 가슴을 치며 타잔 흉내를 냈답니다.


경기 종료 후 믹스트존에서 이근호 선수를 다시 만났습니다. 이근호 선수는 먼저 다가와 제게 오른손을 내밀었죠. 축하한다는 인사말을 하기도 전에 그는 “아, 와줘서 고마워요”라며 오히려 제게 감사 인사를 전했습니다. 무엇보다 제게 악수를 건넨 그의 손은 무척 따뜻했습니다. 따뜻한 마음 때문에 아마 그러한 것이겠지요. 


대부분의 선수들은 항상 먼저 선을 긋는 편입니다. 이 사람은 기자니까 조심해야지, 라는 마음으로 기자들을 대하곤 합니다. 격식을 갖추며 이야기를 나누지만 진심은 그다지 느껴지지 않습니다. 그저 일 때문에 만나는 것이라는 생각만 들 뿐이죠. 하지만 이근호 선수는 달랐습니다. 그가 제 손을 잡고 고맙다고 말할 때 저는 다시 한 번 따뜻한 인간애와 진실된 마음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악수를 통해 그 모든 것들이 전해졌으니까요.


그리고 오늘 저는 다시 한 번 그 순간과 만났습니다. 우즈벡전이 끝난 후 믹스트존에서 만난 이근호 선수는 언제나처럼 기자들에게 둘러 싸여  있었습니다. 쏟아지는 질문에 대답하기 바빴죠. 그리고 저는 뒤에서 조용히 그 이야기를 받아 적으며 서있었습니다. 인터뷰를 마친 그에게 “너무 축하해요. 제가 넣은 것처럼 기분 좋네요”라는 축하말을 건넸습니다. 그러자 이근호 선수는 가볍게 제 등을 안으며 “행복해요. 대구 한 번 놀러오세요”라고 말했습니다.


뭐랄까요. 기자와 선수로 처음 만났지만 이제는 그 관계를 초월한 것만 같아 가슴이 조금 뭉클했습니다. 어느새 우리는 “축하합니다.” “네, 고맙습니다.” 그런 형식적인 관계에서 벗어난 듯합니다. 기자석에 앉아 있을 때면 냉철하게 경기를 지켜보지만 그래도 마음 한편으로는 그의 눈부신 성장에 기뻐하고 잠깐의 좌절에 안타까워합니다. 무엇보다 프로라는 냉정한 곳에서 이런 진심 어린 만남을 가졌다는 사실에 한없이 감사할 뿐입니다.


인사를 하고 돌아서는 이근호 선수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처음 그를 만났던 지난 해 가을을 떠올려봤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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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승할 거라는 예상은 하고 있었어요. 꿈 자리가 좋았거든요(웃음). 그렇지만 MVP 받는 건 예상 못했어요. 그냥 형들이 네가 받는다. 긴장하고 있어. 이렇게 장난 식으로 이야기했는데 진짜로 받게 될 줄은 몰랐어요. 아버지께서 ‘상 받았으니까 외식할까?’ 하시네요(웃음).사실 1군 게임 못 뛰는 서러움을 떨칠 수 있는 자리가 바로 이곳, 2군리그에요. 그런데 이렇게 우승까지 했으니 그동안의 서러움을 모두 푼 것 같아 기분 좋네요. 더 열심히 하겠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욕심이 있기 때문에 여기서 만족할 수는 없겠네요. 다른 선수들처럼 이 상을 계기로 더 높이 올라가겠습니다.”


하고 싶은 말이 많긴 많았나 봅니다. 2군리그 결승전이 끝난 후 MVP 수상소감을 묻자 그는 가쁜 숨을 몰아쉬며 쉬지 않고 말했죠. 그러나 그보다 더 인상 깊었던 것은 까만 머루 같던 그의 눈동자였습니다. 더 뛸 수 있다는 확신과 언젠가는 다시 날아오르겠다는 믿음으로 가득 찼던 그 눈동자를 어찌 잊을 수 있을까요. 기회가 된다면 다시 한 번 그를 만나보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그로부터 한 달 후, 다시 그를 만날 수 있었습니다.


“아무래도 게임을 못 뛰는 게 제일 힘들었죠. 항상 좋았던 때만 있었거든요. 지금까지 축구하면서 게임 못 뛴 적은 한 번도 없었어요. 그런데 나중에는 2군 경기도 못 뛴 거 있죠. 말 그대로 3군이었어요. 사실 지금 당장 경기장에 열 살짜리 꼬마를 데리고 와 봐도 게임 뛰고 싶다 말할 거예요. 그러니 선수 입장에서는 오죽하겠어요. 그런데 전 2군 경기까지 못 뛰었으니 말 다한 거죠. 그때 진짜로 ‘정말 프로라는 곳에서 살아남기가 이렇게 힘들구나’, ‘지금까지 이런 적이 한 번도 없었는데 이젠 어떻게 해야 되나’하며 온갖 생각을 다했어요. 그러다 나중엔 청소년 대표팀에도 못 뽑혔어요. 그 상황에서 저는 대표팀은 생각조차 안하고 있었죠. 그런데 주위에서 괜찮다며 위로해주는 거예요. 그게 더 상처가 됐어요. 화살로 다시 날아와 이렇게 제 가슴을 콱콱 찔렀어요.”


계속해서 쏟아지는 그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중, 한 가지 이상한 점을 발견했습니다. 정말 이상했습니다. 힘들었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하는데도 그의 얼굴에선 빛이 났거든요. 마치 잘 딱은 거울처럼, 그렇게 오래도록 반짝반짝 말이에요.


“기대도 안했죠. 올림픽 대표팀에 뽑힐 줄은 정말 몰랐거든요. 뽑히고 나서도 과연 잘할 수 있을지 걱정 많이 했어요. 그렇지만 곧 마음 편하게 먹었죠. 처음에 축구 시작할 때의 마음, 축구를 즐기던 그때 그 마음으로 다시 한 번 해보자. 어차피 바라지도 않던 기회니까 한번 죽기 살기로 해보자. 그렇게 다짐했어요.”


믿음은 자신감을 낳았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곧 효력을 발휘했습니다. 지난 해 11월 창원과 도쿄에서 연이어 열렸던 일본과의 친선경기에서 이근호 선수가 보여줬던 모습은 ‘왜 그동안 우리는 저 선수를 모르고 있었지?’라는 의문을 불러 일으키기에 충분했습니다. 그의 이마 위로 끝없는 서광이 비치는 듯 했습니다.


“제가 할 수 있는 것, 그것도 가장 잘할 수 있는 게 바로 뛰는 거잖아요. 더 많이, 더 열심히 뛰자. 다른 생각보다는 그저 열심히 하겠다는 생각. 그 생각만 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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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따뜻한 차를 마시며 꽤 오랜 시간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마지막으로 헤어지기 전 그는 “이제 시작인데요. 앞으로 더 좋은 소식 알려드릴 수 있게 최선을 다할게요”라는 인사말을 제게 남겼습니다. 물론 예의상 하는 말이라 생각할 수도 있었지만, 그 순간 ‘시작’이라는 그 단어만은 또렷이 들렸기에 저는 온전히 믿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모든 게 제 뜻대로 쉽게 되지는 않지만요, 꼭 다시 날고 싶어요”라던 그의 간절한 기도가 이뤄지길 바랬습니다.


그러나 그날 제가 미처 깨닫지 못한 것이 하나 있습니다. 바로 그의 기도가 이렇게나 빨리 이뤄질 것이라는 사실 말입니다. 


 “왜 저만 보면 그렇게 웃으세요? 저 개그맨 아니에요. 축구선수에요.”


2007년 3월 4일 서울전을 시작으로 이근호 선수는 대구의 주전 공격수로 뛰기 시작했습니다. 그 덕분에 예년과 달리 경기장에서 그를 만날 기회가 늘어났죠. 그런데 그때마다 이근호 선수는 “왜 나만 보면 웃느냐”며 볼멘소리를 했답니다. 그렇지만 어쩌겠어요. 그만 보면 웃음이 나오는 걸요. 그의 모습은 분명 웃음을 자아내는 힘을 갖고 있으니까요.


생각해보세요. 이제 막 걸음마를 뗐다고 생각했던 아이가 어느 날 갑자기 달리기 시작했을 때, 그 성장에 감탄하며 웃지 않을 사람이 과연 어디 있을까요? 더욱이 지난 해의 아쉬움들을 묵은 해에 보내겠다며 씁쓸해하던 그의 모습을 기억하는 사람으로선 결코 웃지 않을 수 없겠죠.


“축구가 좋아요. 세상에서 제일 좋아요. 여자친구보다 더 좋은 게 축구에요. 제 인생의 전부인 축구를 너무 많이 사랑합니다.”


요즘도 이근호 선수는 만날 때마다 “왜 이렇게 축구가 좋은지 모르겠어요. 그래서 제가 연애를 못하나봐요”라며 너스레를 떱니다. 지금에 와서 고백하지만 사실 이근호 선수에게서  “축구가 제일 좋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만 해도 저는 그 속에 실린 진정성을 미처 헤아리지 못했답니다.


그렇지만 이제는 잘 알고 있습니다. 축구를 향한 이근호 선수의 진심 어린 사랑 말입니다. 그리고 그것이 오늘날의 이근호 선수를 만든 기저라는 사실도요.


손바닥 뒤집듯 쉽게 바뀌는 세상을 살아가지만 이근호 선수의 축구 사랑만큼은 영원할 것임을 확신합니다. 그것은 마르지 않는 옹달샘처럼, 언제나 지금처럼 퐁퐁퐁 샘솟을 것이 분명합니다. 그리고 이근호 선수의 오늘과 내일이 더 기대되는 이유 역시 바로 그 때문일 것입니다.


더 많은 사람들이 그를 아끼고 사랑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는 그럴만한 가치를 지닌 선수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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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김동표 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