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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Footballers

K리그 신인왕 후보, 박현범과 조용태를 만나다



3월19일 수원월드컵경기장. 칼바람이 에우는 꽃샘추위 속에도 1만 5000여명의 관중들은 컵대회 1라운드 제주전을 보기 위해 경기장을 찾았다. 결과는 3-0, 수원의 대승이었다. 경기 종료 후 차범근 감독은 “박현범과 조용태, 두 신인 선수들이 잘해줬다”며 함박웃음을 터뜨렸다.

그야말로 복덩이가 따로 없다. 수원이 12경기 무패행진을 이어나간 동안(3월9일 대전전 2-0 승~5월5일 전북전 2-0 승) 조용태(10경기 2골3도움)와 박현범(11경기 2골1도움)은 순도 높은 기록으로 팀 승리에 일조했다.



이렇듯 시작이 경쾌했으니 두 사람과의 만남이 사뭇 기대됐던 것도 사실이다. 파릇파릇한 얼굴의 두 청년이 들려줄 꿈과 희망, 그리고 내일에 관한 이야기가 벌써부터 궁금해졌다. 수원클럽하우스로 가는 길, 하늘은 더없이 푸르렀다.

어렵고 험한 길
아직 인터뷰가 낯선 듯 조용태와 박현범은 살짝 긴장한 표정으로 나타났다. 조심스레 자리에 앉은 두 사람에게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는 무엇이냐는 가벼운 질문부터 던져봤다. 어깨 가득 쌓여있던 긴장을 풀어주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웬걸. 두 사람 모두 처음 등장할 때보다 더 굳은 표정이다.

“왜 이렇게 살 빠졌어?” 요즘 가장 많이 듣는 이야기란다. 아아, 그래서 그리도 진지한 얼굴을 했나 보다. 약속이라도 한 듯 두 사람 모두 입단 3개월 만에 3kg이나 빠졌다고 한다. 왜 그럴까? 운동이 힘들어서 그런 것이냐고 묻자 단박에 고개를 젓는다. 박현범이 먼저 입을 열었다. “아무래도 심적인 부담이 큰 탓이라고 보면 될 거예요.”

옆에 있던 조용태도 거들었다. “수원은 선수층이 두텁잖아요. 입단 초반에 ‘신인인 내가 이렇게나 훌륭한 선수들 틈에서 잘할 수 있을까?’ ‘과연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많이 했어요. 이렇듯 마음이 여유롭지 못한 상황이다 보니 자연스레 살이 빠지더라고요.”

그렇다면 지금은? 꾸준히 출장횟수를 늘리고 있는 상황이라 마음의 부담을 덜었을 법도 한데. 이번에도 박현범이 먼저 대답했다. “같은 포지션에서 경쟁해야 하는 선수가 어디 한 둘인가요. 언제 누가 올라올지 몰라요. 저 역시 지금은 컨디션이 좋지만 어느 순간 떨어질지 모를 일이고요. 매번 경기에 나가 뛸 수 있다는 보장은 전혀 없습니다. 그 때문에 매 순간 ‘마지막 경기일지도 모른다. 그러니 잘하자’고 다짐하며 경기에 임하고 있어요. 그러니 늘 부담이 될 수밖에요.”

조용태 역시 비슷하다 말했다. “공격수는 골로 실력을 판단하잖아요. 저희 팀에는 워낙 대표 선수들도 많고 다들 공격 포인트도 높은 편이라 경기장에 들어설 때면 ‘나도 포인트를 올려야 할텐데…’라는 생각뿐이에요. 그러다보니 부담감을 늘 안고 뛰게 되네요.”

그러나 한편으론 얻은 것도 많은 시간이었다. 조용태는 “주위를 돌아보면 롤모델로 삼고 싶을 정도로 훌륭한 실력을 자랑하는 선배들뿐이에요. 이렇듯 좋은 선수들 틈에 있다 보니 그만큼 보고 배우는 것도 많아요”라고 말했다. 옆에서 듣고 있던 박현범은 “‘수원에서 살아남으면 어디 가서도 살아남을 수 있다’라는 말이 있잖아요. 그만큼 경쟁에서 살아남기 힘들기 때문에 나온 말이 아닐까 생각해요. 힘든 만큼 스트레스도 크지만 이렇게 경기에 뜀으로써 ‘나도 충분히 잘할 수 있구나’라는 자신감을 많이 얻게 됐어요”라고 말했다.

강한 자만이 살아남을 수 있다는 프로의 논리, 특히나 기존의 틀을 부수고 자리를 잡아야하는 새내기 입장에서 혹독하지만 값진 시간을 보내고 있는 조용태와 박현범이다.

기회는 노력하는 자의 것
시즌 전 일본에서 진행된 동계훈련 기간 중 박현범과 조용태는 4골을 기록하며 신영록과 에두(7골)에 이어 팀 내 최다 득점자로 이름을 올렸다. 그러나 두 사람 공히 차범근 감독에게 확실한 눈도장을 찍기에는 부족했다고 고백했다. 우선 조용태가 먼저 말했다. “동계훈련에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해도 전 이제 막 들어온 신인이잖아요. 그동안 선배들이 한 게 있으니까 저는 ‘그 뒤’라고 생각했어요. 그저 ‘조금씩 나아가자. 그래서 한 단계씩 올라서자’는 마음으로 훈련에 임했죠. 일단은 출전 엔트리에 이름 올리는 것이 최대 목표였습니다.”

다음은 박현범. “올 시즌 주전으로 뛸 수 있을 거라곤 상상조차 못했어요. 선배들이 다치거나 컨디션 난조를 보일 때 쯤 기회가 주어질 거라 생각했죠. 그런데 시즌 초반에 (백)지훈이 형과 (안)영학이 형이 다치는 바람에 미드필드 진영에 공백이 생기고 말았어요. 기회가 생각보다 일찍 찾아오게 된 셈이죠.”

데뷔전은 조용태가 조금 빨랐다. 3월9일 대전전. 2008시즌 개막전이기도 했던 그날, 조용태는 후반 시작과 동시에 안영학 대신 경기에 투입되며 데뷔전을 치렀다. 박현범은 그로부터 일주일 후인 3월16일 성남전에서 풀타임으로 뛰며 신고식을 마쳤다. 이번에는 다소 재미난 질문을 던져봤다. 자신의 데뷔전을 별점으로 매겨본다면? 박현범이 먼저 대답했다. “별3개요.” 조용태는 그보다 하나 더 많이 얹어 주고 싶다고 대답했다. “언제라도 투입될 수 있도록 최상의 몸 상태를 만들려고 했어요. 준비하는 단계에서 제가 쏟은 노력을 높이 사기에 별4개 줄래요.”

출전과는 다르게 골맛은 박현범이 빨리 보았다. 박현범은 3월19일 제주Utd와의 컵대회 개막전에서 프로 데뷔골을 터뜨렸다. 데뷔 2경기만에 얻은 성과였다. “사실 매일 밤 자리에 누워 언제 데뷔골을 넣을 수 있을까 혼자 생각하곤 했어요. 그때마다 신인교육 시간에 배운데로 사진기자가 많은 쪽으로 뛰어가야겠다고 다짐했죠. 그런데 마음먹은 것처럼 되지 않더라고요. 머릿속이 멍해지는 바람에 사진기자 반대편으로 뛰어가고 말았어요(웃음).”

조용태의 골소식은 다소 늦었다. 그러나 기다린 만큼 반가웠고 또 값졌다. 4월2일 ‘상암빅뱅’으로 명명된 서울전에서 조용태는 후반48분 쐐기골을 성공시키며 팀의 2-0 승리를 이끌었다. “경기 전날 차 감독님께서 ‘서울전은 많은 관심을 받는 경기다. 그것을 기회라 생각하고 꼭 골을 넣어라’고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정말로 골을 넣을 줄은 몰랐어요. 다 현범이가 패스를 잘 넣어준 덕분이죠. (현범이가)경기 후 씩 웃으면서 말하더군요. ‘전부터 하나 주려고 그랬어’라고요.”

청춘의 끝없는 도전
그러나 가만히 이야기를 듣고만 있을 박현범이 아니었다. “재미있는 이야기 해드릴까요?” 그런데 박현범의 이야기가 시작되기도 전, 그의 손을 덥썩 잡으며 조용태가 말을 막았다. “현범아, 형은 진짜 기억이 안나.” 다음은 박현범이 밝힌 하소연(?). “많은 사람들이 저희가 대학(연세대)에서 처음 만났다고 생각하는데 사실은 그게 아니에요. 유소년상비군 시절 처음 만났어요. 그때 다들 6학년이고 저 혼자만 5학년이라 괴롭히던 형들이 좀 있었어요. 그래도 용태 형만은 저를 참 많이 챙겨줬죠. 한번은 공에 맞아 아파서 울고 있는데 형이 저 멀리서 ‘현범아, 괜찮아?’하며 달려오는 거예요. 너무 고마웠죠. ‘슈팅은 나비처럼 날아서 벌처럼 쏘는 거야’라던 말도, 같이 목욕탕 가던 것도, 심지어 나란히 누워 자던 일까지 난 다 기억하는데… 문제는 그 모든 것들을 형이 하나도 기억 못한다는 사실이겠죠(웃음).”

그 때의 인연이 연세대를 거쳐 수원까지 이어졌다. 나이를 초월한 우정 역시 그 시간들 속에서 켜켜이 쌓여갔다. 그러나 이제 두 사람 앞에는 ‘신인왕 경쟁’이라는 피할 수 없는 대결이 놓여 있다. 그와 관련해 박현범이 솔직한 이야기를 털어놨다. “시즌 초반에는 정말 신인왕을 타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금은 그때처럼 간절한 마음은 없어요. 팀이 우승했으면 좋겠다는 생각뿐이에요. 팀이 우승한다면 신인왕은 저희 둘 중 더 공헌도가 큰 사람에게 자연스럽게 따라오겠죠. 제가 못 타도 괜찮아요. 팀만 우승하면 되요.”

조용태도 비슷한 견해를 밝혔다. “팀 우승이 먼저인 것 같아요. 다행히 느낌이 좋아요. 시즌 초부터 잘될 것만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밀려 왔어요. 팀이 우승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다보면 신인왕이라는 좋은 결과도 함께 오겠죠.”

이어 박현범이 덧붙였다. “대부분의 선수들은 같은 포지션의 선수들을 경쟁상대로 생각해요. 저와 용태 형이 신인왕 경쟁구도 속에 있다고 서로를 경계할 것만 같지만 일단은 서로 다른 위치에서 뛰고 있기 때문에 라이벌 의식은 크게 없어요. 오히려 용태 형이 골을 넣어서 이기면 그게 좋은 거죠. 우리 팀이 이긴 것이니까요.”

두 사람 모두 신인상 수상보단 “나태해지는 마음을 다잡는 정신력이 더 필요하다”고 입을 모았다. “지금의 관심과 칭찬에 휩쓸려 초심을 잃을까봐 걱정된다”는 의젓한 이야기도 이어졌다. “혹시라도 변했다는 소리를 들을까봐 항상 조심스러워요. 앞으로는 백 마디 말보다 90분 경기를 통해 저희가 가진 모든 것을 보여드리고 싶어요.” 익을수록 고개 숙이는 벼가 되겠다는 이야기다.

청춘(靑春). 빗대 설명하자면 싹이 파랗게 돋아나는 봄철 쯤 되겠다. 이 봄날이 지나면 살로 돋아난 움들은 어느새 선연한 푸른빛으로 영글 것이다. 그것은 자연의 섭리이자 청춘의 여정이다. 그리고 앞으로 조용태와 박현범이 함께, 또 각자 만들 풍경이기도 하다.

“깜짝 나타났다 소리 없이 사라지는 선수가 아닌, 끝까지 팀과 함께 오래 가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대학 새내기들이 당차고 씩씩하듯 올 시즌 K리그 새내기답게 도전하고 부딪히고 또 덤비고 싶어요. 겁없다는 소리를 들어도 좋아요. 깨져도 좋아요. 주위에서 알아주기만을 기다리기보다는 제 실력을 보여줘야하는 것이 먼저니까요. 제가 힘낼 수 있도록 끝까지 많은 격려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변함없이 애정 어린 시선으로 지켜봐주세요,” (박현범)




“시즌 시작 전 서포터스 그랑블루와 함께 하는 행사가 있었어요. 그때 그랑블루가 무엇이냐는 질문에 ‘날개’라고 답했던 기억이 나요. 높이 날아오르고 싶어요. 그러기 위해서라도 날개는 꼭 필요한 법이죠. 제겐 팬들의 응원이 바로 날개에요. 끝없이 날 수 있도록 앞으로도 응원 부탁드려요. 혼자가 아닌 팬들과 함께 날고 싶습니다.” (조용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