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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신나는 스포츠 세상

은메달 유원철이 자랑스럽고 대견스런 이유

유원철 선수에겐 참으로 미안한 얘기지만, 이번 올림픽이 중반을 넘어 후반까지 가는 지금까지, 저는 그의 이름을 몰랐습니다. 한국체조?하면 늘 양태영 선수의 이름만 어른거렸을 뿐이죠. 최종결선에 올라간 선수들이 나올 때 저의 눈은 양태영 선수만 좇았습니다. 양태영 선수와 함께 나란히 걸어오던 유원철 선수를 봤을 땐 그저 아, 대한민국 선수가 한 명 더 올라왔구나, 라는 생각만 했죠.


남자 체조 평행봉 결선. 다들 긴장이 컸던지 처음부터 실수가 잦더군요. 어떤 선수는 회전 도중 바닥에 쿵, 떨어지고 말았습니다. 다행히 부상은 아니더군요. 그리고 우리나라 선수 차례가 왔습니다. 유원철 선수라는 캐스터의 설명이 있었습니다.

아, 체조에 대해 그리 잘 알진 못하지만 그래도 알겠더군요. 정말 완벽에 가까운 솜씨라는걸요. 묘기 수준이라는 말이 절로 나왔습니다. 공중에서 한 바퀴 돈 다음 착지. 몸의 중심이 조금 앞으로 쏠리는 바람에 앞 꿈치가 살짝 나왔습니다. 그러나 정말 깔끔한 착지였고, 마지막까지 완벽하게 마무리했습니다. 그도 만족스러웠는지 두 손을 번쩍 든 채 “해냈다!”는 포즈를 취하고 있었습니다. 점수는 16.250. 예상대로 1위였습니다.

그러나 2명의 선수가 남아있었죠. 다음 순서는 2004 아테네올림픽 오심파문을 딛고 다시 도전한 양태영 선수. 기대가 컸으나 경기 중간, 마지막 착지에서 실수가 있었습니다. 허리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죠. 안타깝게도 7위로 미끄러졌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주자. 베이징체육관 내 관중들의 함성소리가 커졌습니다. 자국 출신 선수가 등장한거죠. 중국의 리샤오펑 선수였습니다. 2000시드니올림픽에서도 금메달을 딴, 저력있는 선수라던데. 다른 선수들처럼 실수가 그와 함께 하길 바랐으나 마지막 착지까지 참으로 깔끔했고 16.450점을 얻으며 유원철 선수를 밀어냈습니다.

아쉽게 은메달을 탔으나 모두가 기대하지 않던 상황에서도 꿋꿋이 자신의 몫을 해낸 유원철 선수가 참으로 자랑스러웠습니다. 대한민국 체조대표팀이 숨겨놓은 메달 후보라고 했지만, 전 정말 결선까지 그의 이름조차 몰랐습니다. 너무 무심했던 것 같아, 괜히 미안해졌습니다.

우리가 흔히 그간 노력 혹은 실력에 비해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한 사람들을 일컫을 때 ‘2인자’라고 이야기합니다. 그 2인자가 뭔가 대단한 일을 해냈을 땐 ‘2인자의 설움을 딛고’라고 표현하죠.

한데 유원철 선수는 2인자도 아니었습니다. 양태영 선수와 김대은 선수에 가려 3인자로 지냈죠. 그렇지만 그는 괜찮다고, 섭섭하지 않다며 웃었습니다. 더 전진해서 좋은 선수가 되겠다고 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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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상식을 지켜본 사람은 아시겠지만 유원철 선수는 시상대에 올라가기 전, 자신 때문에 0.05점차로 밀려 동메달을 따게 된 안톤 포킨(우즈베키스탄) 선수에게 다가가 악수를 청하는 스포츠맨쉽도 발휘했습니다.

기자회견장에서는 금메달을 차지한 리샤오펑 선수에게 축하의 인사를 건넸죠. 정말로 훌륭하게 연기를 잘했다면서요. 중국 텃세에 눌린 심판을 향한 볼멘소리를 할 줄 알았건만, 그는 담담히 결과를 받아들이더군요. 아쉬운 마음을 남의 탓으로 돌릴 법도 했지만 그는 다음 대회 때 못다 이룬 금메달의 꿈을 이루겠다며 새로운 의지를 보여줬죠.

세상은 그를 3인자로 생각했지만, 그는 주위 시선에 신경쓰는 대신 노력에 노력을 거듭해 언젠가는 최고가 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긍정의 힘은 결국 효력을 발휘했죠. 유원철 선수는 대한민국 대표팀에 체조 부분 유일한 메달을 안겨준 사람이 되었습니다. 은빛 미소를 보여준 유원철 선수, 참으로 자랑스럽고 또 대견스러워보입니다.

덧붙임) 29살의 나이는 체조선수로 따지면 중년에서 노년으로 가는 나이라고 합니다. 그런데도 양태영 선수는 참으로 멋진 묘기를 보여줬습니다. 만약 부상이 없었다면 4년 전 아깝게 놓친 금메달을 목에 걸 수 있었을텐데 말이죠. 양태영 선수에게도 격려의 인삿말을 남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