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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레나의 꿈의 구장/축구가 있는 풍경

올림픽출전 실패했지만 여자축구에도 관심을

 
실로 아쉬운 결말이었다. 2008여자아시안컵에서 안익수 감독이 이끈 한국 여자대표팀은 일본과 호주에 밀려 4강 진출에 실패했다. 그러나 5년 만에 일본을 상대로 낚은 짜릿한 역전승과 신흥 강호 호주와의 대등한 경기에서 알 수 있듯 나쁘지 않은 내용으로 대회를 마감했다. 아쉬움이 남는 것은 어쩔 수 없으나, 희망이라는 뒷맛이 더 컸기에 여자대표팀의 내일 날씨는 현재, ‘맑음’이다.


세대교체의 절정
이번 여자아시안컵에 나선 안익수 사단의 평균 연령은 22세로, 선수단의 약 80%가 1980년대 중·후반에 태어난 ‘젊은 피’로 이뤄졌다. 대표팀에서 1970년대 생은 1979년에 태어난 주장 김유미(대교)가 유일하다. 물론 지난 2월 동아시아축구대회 당시까지만 해도 안익수 감독은 ‘맏언니’ 삼총사 유영실 송주희 김유미를 대표팀에 남겨두며 잠시 세대교체 숨고르기에 들어가는 듯 보였다. 그러나 3월 아시안컵 예선을 시작으로 대대적인 대표팀 리빌딩 작업에 착수했고 이 과정에서 심서연(1989년생/장호원고) 김윤지(1989년생/울산과학대) 이은미(1988년생/강원도립대) 김도연(1988년생/위덕대) 전가을(1988년생/여주대) 권하늘(1988년생/위덕대) 김수연(1989년생/강일여고) 조소현(1988년생/여주대) 등 고교 및 대학 선수들이 ‘새 얼굴’로 대거 대표팀에 합류했다.

그 중 21살 동갑내기 권하늘과 조소현, 여고생 김수연은 금번 아시안컵 조별예선 3경기에 모두 출장하며 세대교체 중심에 우뚝 섰다. 그리고 무엇보다 그 꼭짓점에 박희영이 있다는 사실을 간과할 수는 없을 것이다. 2008동아시아대회 중국전에서 2골을 터뜨리며-이는 당시 여자대표팀의 유일한 득점이었다-주목을 끌기 시작한 박희영은 이번 아시안컵에서도 일본을 상대로 2골을 퍼부으며 자신의 능력을 아낌없이 발휘했다. 박은선 이후 공격의 방점을 찍어줄 확실한 스트라이커를 찾지 못했던 여자대표팀은 박희영의 등장으로 한숨 돌린 상태다. 이에 안익수 감독은 “그간 박은선이라는 메이저급 선수에 대한 미련 때문에 다른 선수들을 바라보는 시야가 좁았던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박은선의 부재는 다른 재능있는 젊은 선수들을 새롭게 발견할 수 있는 기회가 되었다”고 말했다. 안익수 감독은 덧붙여 “축구는 팀 스포츠이지 않나. 이번 대회를 통해 선수들은 ‘스타’에 의존하기 보단 모든 선수가 조직적으로 움직일 때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는 점을 깨우쳤다”고 말했다.

무엇을 얻었나
이렇듯 젊은 피 수혈은 대표팀 심장에 자신감을 심어줬다. 2008올림픽 지역예선을 앞두고 강팀과 만나지 않기 위해 ‘전략적 패배’를 감행하던 2007년과는 다른 모습이다. 당시 1차예선에서 인도 홍콩 등과 한조가 된 여자대표팀은 최종예선에서 북한 호주와의 대결을 피하고자 의도적으로 홍콩에 패하며 ‘조2위’를 택한 바 있다. 이에 안익수 감독은 아시안컵 일본전을 예로 들며 2007년과 달라진 상황에 대해 설명했다. “일본전에서 전반 9분 만에 자책골을 기록했다. 순간 ‘졌다’는 생각에 급격히 무너질 수도 있었지만 이후 선수들은 3골을 몰아넣었다. 예전 같으면 그런 상황에서 나락으로 떨어진 경우가 많았다. 지난 동아시아대회 북한전을 생각해봐라. 후반에 북한에게 골을 허락하고 나서 연이어 3골을 더 허용하지 않았나. 그러나 이제는 다들 ‘내줬으면 그보다 더 넣으면 된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정신적으로 강해졌다.”

전술적 변화 또한 눈에 띈다. 안익수 감독은 부임과 동시에 과감히 4-4-2 포메이션을 도입했다. 물론 안종관 감독 역시 2년 전 여자대표팀에 포백을 시도한 바 있다. 그러나 당시의 실험은 실패로 끝났고 결국 3-5-2 포메이션으로 회귀할 수밖에 없었다. 과거의 전철을 밟지 않기 위해 안익수 감독은 고심했고 세대교체의 바람 속에 김유미(1979년생/A매치 56경기) 홍경숙(1984년생/A매치 41경기) 류지은(1983년생/A매치 25경기) 등 수비진만은 그간 대표팀에 꾸준히 부름 받은 선수들 위주로 구성했다. 물론 안익수 감독은 “맨투맨 수비에 익숙했던 선수들이라 가르치던 나도, 배우는 선수들도 모두 힘들었다”며 그동안의 어려움을 토로했지만 “포백 도입 6개월 만에 아시안컵에서 이 정도 경기력을 선보였다는 사실은 칭찬할 만하다”며 선수들의 노고를 치하했다.

여자대표팀은 일본과의 첫 경기에서 자책골을 허용했지만 더 이상 실점하지 않았으며 난적 호주에게 내준 2실점도 선전에 가깝다. 호주에게 4골을 허용했던 2006아시아여자선수권이나 일본에게 6골을 내주며 급격히 무너졌던 2008올림픽 아시아최종예선을 생각한다면 지금의 모습은 분명 ‘성장’이라 말할 수 있다. 그러나 안익수 감독은 “동아시아대회에서 보여준 포백 완성도는 20%에 불과하다. 물론 이번 아시안컵에서 보여준 모습 역시 40%에 지나지 않는다”며 수비라인의 성장은 여전히 ‘진행형’에 있음을 다시 한 번 강조했다.

아시아의 중심이 되기 위해선
이번 아시안컵에서 여자대표팀이 올린 성과는 인정한다. 하지만 그간 아시아무대에서 중국 북한 일본 등에 밀려나 있던 한국 여자축구의 현실을 잊어서는 안될 것이다. 물론 2003년 아시아여자선수권에서 일본을 따돌리며 극적으로 월드컵 본선진출 티켓을 얻은 바 있지만, 당시 월드컵 무대에서 얻은 성과는 세계의 높은 벽을 실감했다는 정도뿐이었다. 그 와중에도 한국을 제한 다른 국가들의 성장은 계속됐다. 상비군체제를 강화하는 등 여자대표팀에 지원을 아끼지 않던 일본은 2006아시안게임 2008올림픽최종예선 2008동아시아대회에서 연거푸 한국을 격파했다 북한은 2007여자월드컵에서 미국과 비기며 이변을 연출한데 이어 이번 아시안컵에서는 우승컵까지 거머줬다. 중국 역시 쑨원의 은퇴 이후 세대교체에 실패했다는 비난을 받았지만 결국 아시안컵 결승에 오르며 아시아 여자축구의 여전한 강자임을 입증했다.

이 같은 현실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안익수 감독은 “5년 만에 일본을 이겼다고 아시아의 강자가 된 것은 아니다. 지금의 관심과 환호에 빠져 자만해서는 안 된다. 지금은 더 많은 노력이 필요할 때”라는 뼈 있는 한마디를 남겼다. 여기서 노력이란, 코칭스태프와 선수들이 흘리는 ‘땀’과 함께 축구협회나 여자축구연맹 측에서의 ‘지원’ 모두를 포함한다. 다행히 과거에 비해 지원의 폭은 점점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지난 동아시아대회에서 “우리도 일본처럼 합숙을 오래하면 잘할 수 있다”던 대표팀 15년차 유영실의 발언에서 알 수 있듯 그간 선수들이 가장 아쉬워하던 것은 부족한 훈련일정이었다. 그런 점에서 축구협회가 2008년 1차 이사회를 통해 “여자 각급 대표팀은 대회출전 여부와 관계없이 국내대회 일정에 지장을 주지 않는 범위 내에서 연 50일 이내의 훈련 보강기간을 가질 수 있다”는 규정을 추가한 것은 실로 고무적인 일이다.

이와 동시에 “경쟁력을 키우기 위해선 친선경기를 통해 국제경험을 늘려야한다”는 안익수 감독의 주장에도 점점 힘이 실리는 모습이다. 여자대표팀은 지난 4월 중국 진황도에서 중국대표팀과 2번에 걸쳐 친선경기를 가졌는데, 최근 안익수 감독은 “이를 시작으로 앞으로 A매치 횟수를 늘리겠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여자축구연맹 또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다. 드래프트제 시행을 통해 실업팀 간의 전력평준화를 유도, 경쟁을 통한 성장발판을 마련한데 이어 내년에는 연중리그를 통해 여자선수들의 경기력을 꾸준히 유지시키겠다는 계획을 세워 놨다.



아직은 조금씩이지만, 여자대표팀은 성장의 과정 속에 있다. 물론 그로 인한 아픔 역시 적잖지만 본디 성장통이라함은 오직 위를 향해 자랄 때 존재한다는 사실을, 우리는 결코 잊어서는 안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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